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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간병/ 박소란
은하수 추천 0 조회 50 16.02.06 15:4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간병/ 박소란

 

 

군만두를 사러 갔다 골목이 끝날 때까지 중국집은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었고

앓는 계절은 내내 겨울이었고, 나도 덩달아 추웠다

 

병실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간호사는 일러주었지만 대체로 친절했지만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나는 도무지 죽을 것 같지 않아서

회진 때가 되면 일부러 일어나지 않았다 보조침대에 누워 시든 꽃무늬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다 잠깐씩 숨을 참아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죽을 것 같지가 않아서

 

어느 새벽에는 창밖 사이렌이 알람 소리처럼 들렸다 부스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거울 앞에서 립글로스를 발랐다

일층 캄캄한 접수창구로 내려가 일없이 앉아 있었다 약에 취한 아침이 깨어 부를 때까지

 

군만두를 꼭 한 입만 먹고 싶다고 했는데

주머니에 숨겨 둔 휑한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손바닥에 그렁그렁 맺힌 핏기,

나도 덩달아 군만두가 먹고 싶었다


- 월간 《현대시학》 2015년 11월호

.......................................................................


 우리나라와 같은 ‘간병’ 시스템이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흔히 OECD국가를 들먹이지만 번듯한 나라치고 환자 가족들이 병실 비좁은 공간의 보조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간병인’을 개별적으로 고용해 그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하는 나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현실은 환자가족이 직접 24시간 밀착하여 돌볼 형편이 되지 않으면 간병인을 쓸 수밖에 없다. 병원 측 간호사들도 간병인을 따로 두지 않으면 싫어하는 눈치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간병인이 하는 일은 환자복 갈아입히기, 세수 등 몸의 청결 유지, 식사 수발, 용변 처리, 환자의 운동 돕기 등이다. 얼핏 별 것 아닌 일 같아도 병원에서의 근무환경 등을 고려하면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이 시에서 ‘간병’을 하는 사람이 환자 가족인지 전문 간병인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회진 때가 되면 일부러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는 걸 보면 전문 간병인은 아닌 듯하다. 어쨌거나 군만두가 먹고 싶다 하여 심부름할 정도면 중환자는 아니라 짐작된다. 가족이라 해도 극도의 긴장상태에 놓여있지는 않아 보인다. ‘도무지 죽을 것 같지가 않아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손소독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고 병실에 오래 있다 보면 없던 병도 생긴다는 말도 있다. ‘손바닥에 그렁그렁 맺힌 핏기’에 ‘덩달아 군만두가 먹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긴 직업이 간병인이고 입원 환자의 약 40%가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문제는 그 간병비가 재난적 의료비 수준이라는 데 있다. 


 며칠 전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긴다고 했을 때 병세의 호전으로 알고 내심 얼마나 반가웠는지. 폐렴 증상이 보여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좋아지리란 기대에 간호사가 알려준 대로 하루 9만 원의 간병인도 붙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수치가 불안정해 결국 40시간 만에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간병인은 물티슈로 어머니 얼굴을 몇 번 닦아주고 옆을 지켜주는 것으로 이틀 분 간병비용 18만 원을 받아갔다. 간병인의 입장에선 열악한 환경에서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환자가족에게는 한 달 270만 원에 달하는 큰 비용부담이다. 원칙적으로 병원이 적정한 간호, 간병 인력을 고용하여 책임져야할 부분인데 가족에게 전가된 것이다.


 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수많은 공약 가운데 기초연금 20만원의 지급, 보육은 전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 등과 함께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또한 100% 보장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장미빛 공약을 보다 못한 상대 후보가 실현 가능한 것이냐 묻자 박근혜 후보는 특유의 약간 흥분되고 주춤거리는 말투로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라고 했다. 결국 이 약속들은 지금껏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4대 중증질환 100% 국가책임’ 공약의 실효성 여부는 3대 비급여 항목인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차액, 간병비용의 부담 경감을 실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부담이 큰 간병비용 문제는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최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간병까지 책임지는 포괄간호서비스(보호자 없는 병동) 시범사업이 가동 중이라 들었다. 여기에 정부의 보조를 받아 간병인도 포함해 운영하면 의외로 간단히 풀릴 문제일 수 있다. 다인병실에 한명의 간병인을 반드시 두도록 하여 간호사들이 꺼려하는 똥 귀저기 처리와 환자 몸 씻기 등을 맡기면 된다. 물론 자질과 도덕성을 갖춘 간병인을 채용하여야 하고 적절한 대우도 보장해 줘야할 것이다. 간병인의 근로환경이 열악하고 처우가 좋지 않으면 간병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의료사고 위험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이미 간호 인력이 간병까지 담당하고 있으며, 가까운 일본도 20여 년 전부터 포괄 간병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포괄간호 서비스의 조속한 전국적인 확대시행을 촉구한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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