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삶을 통해 내 삶을 느끼고 싶다. 위대한 사람 뒤엔 항상 위대한 삶이 있다. 그들을 통해 비 극속에 매몰된 내 삶을 이제 그만 꺼내고 싶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지면 마구간으로 돌아와 쉬어야 하는 경주마가 밤새도록 황야를 달리는 야생마처럼, 마음이 집을 나가 배회했다. 내 마음이 나를 배신했다. 신이 다시 지나간 삶을 돌려준다고 하심 차라리 도려 달라고 하고 싶다. 이제 뇌 속의 썩은 부분은 잘라 내야만 한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나보다 더 힘든 이의 삶을 돌아본다. 바흐의 <645> 번을 듣는다.
조카가 영어 시험에 "배추"가 나왔다고 했다. Bach(바흐)였다. "Jesus! Fucking Stupid!!"라고 외칠 뻔했다.
바흐는 평생을 막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도서관의 모든 악보를 공부했다. 살아서 부, 명예, 인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었다. 자식 스무 명 중 반만 건졌다. 왜? 우리는 그런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까? 오랫동안 모든 이들이 다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이 호칭의 유래는 무엇일까? 아버지! 음악의 아버지! 이 호칭은 일본의 출판사들이 인기 없는 클래식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별칭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 태생의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바흐(1685~1750)의 모든 음악들은 그 성격상 두 가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 종교 음악>이다. 독실한 프로테스탄트였던 바흐에게 음악이란 신을 향한 기도였다. 그것은 자의적인 측면과 동시에 교회에서 돈을 벌어야 했던 인간 아버지의 직업적 사명을 말하는 것이다. 책임감과 과묵함 그리고 집념의 작곡가이자 스무 명의 자녀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 했고, 신앙과 소명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순수음악>적인 측면도 있다. 음악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했던 곡들이다. 이런 계통의 음악들은 대부분 귀족의 의뢰를 받은 것이었다. 변주곡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곡으로 평가받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있다. 이 곡은 바흐의 건반 테크닉이 집대성된 최고의 작품이다. 아내 안나에게 바친 <클라비어 소곡집>도 같은 맥락이다. 음악 자체를 위한 음악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산 헨델과 달리 바흐는 23세 되던 해에 사촌누이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결혼했다. 그녀는 3년 후에 네 아이를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다. 바흐는 매우 상심했다. 두 번째 아내인 소프라노 가수 안나 막달레나와 결혼한 것은 그다음 해였다. 비통에 잠긴 바흐는 자식들 생각에 결혼을 서둘렀어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두 번째 아내는 전처의 아이들도 잘 키우고 사랑이 많은 여인이었다. 현숙하고 어진 아내 덕분에 바흐의 집엔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인간 아버지로서의 바흐는 자녀를 열과 성의를 다해서 키웠다. 집, 교회, 레슨밖에 몰랐던 그는 평생을 자식 교육에 힘썼다. 노력과 헌신 덕분에 그의 가문은 200년 넘게 훌륭한 음악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바흐는 평생 독일 밖을 나가지 않았지만 그의 영향력은 전 세계에 퍼졌다.
바흐의 명성을 불러온 이들은 그의 아들들과 제자들이었다. 그들이 모든 것을 정리했고 그의 위대성을 세상에 알린다. 아내 안나 또한 남편에 관한 글을 꼼꼼하게 기록, 회고록을 냈다. 바흐 사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악보들이 다시 수집되고 출판되었다. 바흐가 죽고 100년의 세월이 흐른 후, 1829년 금수저 음악가 멘델스존이 그의 작품 <마태수난곡>을 초연하면서 다시 광풍을 일으켰다. 이제, 세계는 바흐를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부른다.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인 이유>
첫 번째 , 평균율 정립/도~레~미~~ 도 사이의 간격을 찾아 음계 사이에 기준율을 찾아냄. 배열된 음 사이에 규칙을 찾아 정리함. 세상의 모든 서양 음악이 큰 재앙으로 사라져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아 곡>만 있음 다시 복원 가능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1977년 보이저 2호가 우주로 갈 때 황금 레코드판에 바흐의 곡이 3편이나 실렸다.
두 번째, 구조가 탄탄한 음악을 만들어 후대 음악가들에게 큰 기여를 했다. 바로크 시대 유행 음악인 돌림노래 형식의 푸가를 바흐의 푸가로 재 탄생시켰다.
세 번째, 오르간,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 등 다른 악기들과의 합주를 시작했다.
나름 교양 있어 보이려고 천곡의 클래식을 반복해서 들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커피를 마시면서 계속해서 듣고 또 들었다. 괜히 들었다. 이제 천 개가 다 헷갈린다. 대부분의 제목들이 <현악 4중주 16번 F조 >이런 식이다.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이 외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원소기호 보다 더 어렵다. 차라리 러시아 작가나 일본 화가 이름 외우기가 더 쉬울 것 같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남편 앞에서 아는 체하려다 실패했다. "괜찮아, 가사가 없어서 외우기가 어려운 거야! 어쩔 수 없어"라는 위로 아닌 좌절을 받았다. 트롯 <사랑><찐이야>처럼 쉬운 제목이었다면 금방 외웠을 텐데.. 들으면 들을수록 더 어려워지는 클래식 음악! 그래도 오늘, 난 클래식을 듣는다. 좋은 음악은 내 귀에도 좋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야기가 되는 저녁, 오늘도 난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사람은 가도 이야기는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