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이후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아르헨티나의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대표작 출간!
그해 최고의 범죄 소설에 주어지는
대실해밋상 만장일치 수상
종교적 광신이 산산조각 낸 소녀를 둘러싼 비밀
범죄 소설의 정점에 오른 마스터피스
보르헤스 이후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아르헨티나의 대표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대표작 《신을 죽인 여자들》이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30년 전, 온몸이 토막 난 채 불에 탄 소녀를 둘러싼 비밀을 풀어나가는 이번 작품은 그해 가장 뛰어난 범죄소설에게 수여되는 대실해밋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하였다. 평론가들로부터 도스토옙스키, 레이먼드 카버와 비교되는 한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또한 아마존 평점 4.4점, 굿리즈 평점 4.2점을 기록하는 등 독자들에게도 압도적인 호평을 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작품임을 증명해냈다.
각자 다른 종교에 대한 신념으로 인해 붕괴되는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 《신을 죽인 여자들》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가 그간 천착해온 주제가 집대성되어 있는 작품이다. 사회의 압제가 여성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종교가 개인에게 어떤 합리화의 명분을 주는지, 맹목적 진실 추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등 거장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범죄 소설의 한계를 넘어 한 정점에 오른 걸작을 지금 확인해보자.
30년 전, 온몸이 토막 난 채 불에 탄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모든 것은 30년 전, 마을 공터에서 온몸이 토막 난 채 불에 탄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며 시작된다. 소녀의 이름은 ‘아나’, 사르다 가족의 셋째 딸이었다. 아나의 끔찍한 죽음은 그간 하느님의 보살핌 아래 살아가던 사르다 가족을 산산조각 낸다. 급기야 범인마저 잡히지 않고 사건이 미제로 종결되자, 아나의 둘째 언니 리아는 종교와 가족과 나라를 모두 버리고 타국으로 떠난다. “내가 믿음을 버린대도 얼마나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가족 중 유일하게 배교자가 된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준 아버지와만 편지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알프레도가 30년 동안 홀로 범인을 추적해왔음을. 그 사실을 알려준 것은 다름 아닌 첫째 언니 카르멘의 아들 마테오였다. 투병 끝에 할아버지 알프레도가 죽자 마테오는 광신도 어머니로부터 도망쳐 유언이 담긴 편지를 전하고자 리아를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가 투병 중이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던 리아는 조카 마테오와 함께 편지를 열어본다. 그곳에는 30년간 알프레도가 걸어온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알프레도는 어둠속에서 홀로 진실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사건 당일 아나와 함께 있었지만 사건 이후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마르셀라, 당시 수사관 중 유일하게 다른 의견을 냈던 엘메르, 지금은 카르멘의 남편이 된 전직 신부 훌리안, 그리고 두 동생에게는 물론이고 때론 아버지에게조차 공포심을 심어주었던 카르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는 사건의 전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에 숨통이 옥죄여온다. 하지만 제아무리 투명한 진실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녜이로는 알프레도의 입을 빌려 말한다. “나는 우리가 각자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진실까지만 도달한다고 믿는단다.” 과연 독자는 이 사건의 진실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각자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진실까지만 도달한다고 믿는다.”
《신을 죽인 여자들》은 그해 최고의 범죄 소설에 주어지는 대실해밋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단은 “훌륭한 문학성, 다양한 문체, 그리고 인간의 조건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피녜이로는 현실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회색 영역에 수를 놓았다”는 평을 내놓았다. 이렇듯 피녜이로의 범죄 소설에는 늘 ‘문학성’이라는 단서가 따라붙는다. 문학비평가 후안 카를로스 갈린도가 “올해의 범죄 소설”이라 평하면서도 “일반적인 대실해밋상 수상은 아니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문학적 헌신, 사회 비판, 탁월한 주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듯 클라우디아 피녜이로를 그저 장르적 재미만을 추구하는 범죄 소설 작가로 분류하기는 불충분하다. 그가 범죄 소설에 몰두하는 것은 바로 그곳에 사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피녜이로의 범죄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그의 작품이 범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죽였는지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끝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물어서다. 이런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는 피녜이로의 소설이 “빠르게 쇠퇴하고 있는 사회를 향한 무자비한 분석이다”라고 평했다. 피녜이로가 다만 범죄 소설 영역에 그치지 않고 가장 뛰어난 아르헨티나 작가에게 수여되는 클라란상을 받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는 범죄를 통해 사회의 모순을 밝혀내는 작가다.
보르헤스 이후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세계가 신작을 기다리는 작가
아르헨티나의 국민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인기는 자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번에 HBO 드라마화가 확정된 《신을 죽인 여자들》을 비롯해, 그의 작품 대부분이 영상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유력한 상을 받았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작품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모두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그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현실과 부딪히면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는 대실해밋상을 수상하며 다음과 같은 소감을 전했다. “나는 이것이 투쟁의 결과라고 느꼈다. 책과 나,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오랫동안 싸워온 것에 대한 상이다. 나는 항상 이 투쟁에서 이기고 싶었다. 나의 꿈이다. 이 작품이 긴급한 문제 다루고 있는 상황에서 수상의 의미가 더욱 크다.” 실제 그는 지금 아르헨티나 내 거의 유일한 참여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소설로서 범죄의 사회적 원인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비록 범죄의 한가운데에 서 있지만 그의 작품에서 언제나 희망을 향한 열망이 꿈틀대는 이유다.
P.418
어릴 적 너희 둘은 우리 가족의 강요에 의해 종교라는 사슬에 묶인 채 살았어. 하지만 그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버린 너희가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른단다. 이런 세상에서 아무것도 믿지 않고 살아가려면 용기가 필요해. 그런 너희가 너무 자랑스럽구나. 아니, 존경스럽기까지 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