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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목 오전 비 2.5mm 음4월 초7일.
기침은 7시반경.
오랜 가뭄 끝에 어제 밤부터 내린 비는 30mm가 넘는다.
조반을 한 후 TV를 보며 반야심경을 필기하고 친우 기숙께는 편지를 다시 쓴 후 졸음이 와서 휴식을 취한 후.
태익조모 해동사 가시는 길에 들려 막내 화영양이 아들을 낳아 업고 왔다 갔다고 하였다.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친구가 자주 넘어오면서 들렸다 가면 임명장을 주려 했더니 오지 않아서 못주고 있다.
숙모도 가는 길에 들려서 함께 점심을 먹고 등표를 써가지고 12시반차로 가신 후 나는 대구 오상원께 교통사고를 하루 속히 완쾌하기를 빌고 있다는 안부 편지를 썼다.
가친 전화료 마구로 가신 길에 편지 3통을 부치고 소주 1승 농협에서 사가지고 오셨다.
이발도 하시고 쓰레기도 갖다 버리셨다.
제수씨 가실 때 양초 한통과 시부한테 여비 오천원을 얻어가지고 가셨다고 했다.
이번달 전화료는 아버지 돈으로 모두 전기세는 아우가 모두 주었다.
아버지 통 고등어 사 오셔서 끊여서 저녁 반찬을 하였다.
일기를 쓰고 있으니 KBS방송이 마감될 때 좋은 문구를 소개하여 이상에 적었다.
서양속담 “사람에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실뿐이다”
석가모니 불 석가모니 불.
오늘밤 자정이 넘으면 내일 밤 자정까지 석가모니 불 불을 끄시다.
나는 마음으로 경건히 자정이 넘어 석가모니 부처님 미련하고 어리석은 이 불쌍한 중생에게 부처님 가피력을 내려주시옵길 간절히 빌면서 오늘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을 위하여 취침을 합니다.
오후 성심상회 전화로 문하니 아직 안가셨다 하여 선례한테 등표를 보내주고 해동사 전화하여 예안분회 등은 몰아서 달도록 장소를 정해달라고 부탁 전회장님이 그렇게 일러주겠다고 하셨으며 정산 이동락 분회장댁에 전화했더니 따님이 받아서 오빠라 원일이도 히히하면서 여동생이 오빠께 어리광부리는 소리 어쩌면 김실이 목소리와 비슷하며 똑같이 그러니 누구나 다 그런 모양이다.
나는 전화번호가 잘못 눌렸나 싶어 잘못 걸린 모양인데 저 반장댁 아닙니까?하니 그재야 오빠가 아닌 줄 알고 맞아요. 바꿔 드릴께요. 하면서 바궈주었다.
회장님 안가십니까? 하니 오늘은 바빠 못가시고 내일 나가셔서 제등 행렬에 참석하신다고 했다.
구룡 권만네 집에 전화하니까 아지매 받으셔서 자부가 병원에 입원한 얘기하여 주시고 만이 절에 들였다 올 것이라고 했다.
가정에 모두 탈없이 잘되어야 할텐데 젊은 분들이 몸이 아파 남의 운 애기 가진 몸으로 고생이 많으시다.
듣고 보니 부처님 하루 빨리 완쾌되고 이번에 아들을 낳아 순산하여 마음 편하게 하여 주옵소서.
모두가 근심과 걱정이 끊일세 없이 살아가는데 괴롬과 고통이 끝이 업구나.
이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무관세음.
5월 12일 금 흐림.
부처님 오신 날.
오늘의 명상.
교만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이는 등불을 들어 남을 비춰주나 자신은 밝히지 못하는 자신과 같다.
“불경”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 부처님오신날 온 누리에 광명으로 갈등과 대립이 없고 화합과 단결로 우리 모두 진실한 삶을 살아가자고 하는데 이 좋은 경축일 날 나에게는 오히려 평일보다 더 괴로움과 비애 로운 날이였다.
아버지가 조반을 하여 잡수고 싸 가시고 땅콩도 심고 깨도 심고 안골에 첫차로 넘어 가신 후 내 밥도 떠 놓으셨으나 생각이 없어 아니 먹고 그냥 누웠더니 8시10분경 안마 병철 조모와 함께 오셔 문을 열어보고 내실로 들어가신 후 옷을 입고 아침이 끝난 후에 내실에 가니까 4종숙모 계시므로 얘기하다 10시경 넘어가신 후 나와 의논 있다고 내실로 다시 불러 나가니까 경운기 중고 6마력짜리 있는데 쓸 수 있도록 손봐주고 25만원. 십만원 선금주고 15만원 나중에 주면 된다고 하면서 사달라고 한다.
25만원에 사가지고 아부지 태워서 들에 다니며 적과도 하고 농사를 돌본다 하시는데 제수씨 운전한다고 사 달라 하니 사는 것도 좋은데 중고 수리비와 기름값 또 다치기라도 하면 어찌 한다? 나중일이 염려된다니까.
동생은 그런 걱정하면 언제나 뭐 할 수 있냐고 반문하고 제수씨는 리어카 2만5천원 주고 사가지고 수리 3번 바람 넣으러 넘나 든 이야기 하신다.
그 리어카 2만5천원 주고 산 것은 왜 또 말하는지 시목이네 것과 바꿔서 요즘 쓰레기 너무 잘 갖다버리고 쓰는데 왜 뒤말이 그렇게 많나 하니까,
품값 주고도 사람이 없어 적과도 못하고 아버지는 평생 따라다니면서 시키고 해도 일할 줄 모른다. 삼촌은 혼자도 잘하시는데 하신다.
경운기 사가지고 가뭄때 물도 싣고 농사 지어 실어 오기도 하고 하면 좋은 줄은 알지만 명년에 또 농사를 지을지 안 지을지 모르니까 자꾸 연장만 사다 볼일 다 본다.
경운기 사고 또 분무기 대형사고 이렇게 하다보면 남은 돈도 없어 맘먹고 투자비만 자꾸 든다니까
밤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해줄 필요도 없다고 동생이 말할 때,
오냐. 해달라는 데로 안 해주고 밥 해주고 하는 것이 그렇게도 억울하나?
그렇게 따지려면 모두 먹고 썩고 병나도 그냥 두어라. 해줄 필요 없다.
여기 사람 없으면 안동사람이 사서 하던지 일체 손을 떼버리면 돈이 더 들던지 말던지 남에게 시킨다니까.
안동사람 오면 누가 밥해주고 어디 자고 또 강실네 집에 부탁하지요? 하며 제수씨 비꼬면서 말하고 동생한테 모두 맡기란다.
1년에 6,7십만원 받고 아예 동생과 제수씨 한태 과수원을 도지로 넘겨주면 알아서 한다고 했다.
시설비 전지 비료 등등 집어넌 돈 다 제하고 삼분의일 달라면 몰라도 무조건 과일 판매액 3분일 달라하면 말이 되냐니까. 다 제하면 몇 푼 남는다고 하신다.
아무려면 품값이야 안 되겠냐. 한달하면 한달품값 두 달 하면 두 달 품값 드리면 되지. 하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영근 돈이니 그렇게 한다고 동생이 제수씨께 그런다.
그러다 아우 과수원에 물 생긴 것 푸러 간다고 갔다 왔다.
얼마나 생겼다하니 한 50말 두통 펐다며 내일 가서 조금 더 퍼 올리면 될 거라고 했다.
하늘이 사람사는데 돈 8천원 안 들고 남에게 사정하지 않고 되었으니 다행한 일 아니나. 부처님 비를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익이 조모 해동사에서 오시다 양산 찾으러 오셔서 친구 총무임명장 받아다 둔 것 모친께 보냈다.
오후 제수씨 오토바이로 깨도 심고 안골 갔다가 3시 넘어서 오시어 설거지 하면서 밥솥 태웠다고 잔소리, 고기 냉장고에 그냥 넣었다고 잔소리, 이놈 집구석 하루만 없으면 매란 천지도 없다는 등등 내 듣는데 왜 그렇게 지껄이는지...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았으나 못 들은 척 하고 참았다.
날보고 그러나 아침은 라면 끊여 갖다 주어도 싫다.
아침은 땅콩 한줌 떡 한쪽 먹고 라면 조금 먹다 넘어가지 않아 안 먹었다.
그래도 왜 점심 아니 잡수시니껴 하여 좀 먹었다 하고 저녁에는 돼지고기 한근 사다 내일 약 치러 간다고 구워서 저녁 먹었다.
오늘은 기분이 울적하여 아무것도 귀찮다.
TV보고 일기를 그날그날 했는 말 들은 말 그대로 옮겨 적는다.
나중에 보면 이것이 교훈이 될까?
내가 얼마나 잘 참고 살았는지 그리고 잘 도우면 서로가 좋을 것이 아닌가?
모두 제각이 알아서 함께 노력하여 잘되면 저도 보람 있고 돈도 더 많이 나와 집을 지켜 오늘에 이르기까지 날 위해 살아 왔다기 보다 가정을 위해 살아온 것을 감사하게 생각 할 텐데 요즘은 진작 나가서 내발로 다닐 때 빌어 먹더라도 나가서 세상구경이나 실컷 하였으면 견문이나 넓히지 않았을까?
내가 애쓰고 노력한 보람은 간 곳 없이 모두 저희들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 얼마나 괘씸한지 내 스스로 때가 되면 다 버리고 갈 것인데 내 것이 어디이냐 쓰다가 버리고 간다는데 조사님 법어처럼 자존심도 버리고 모두 버리자. 버리고 끊자. 지관수행을 하자.
말하기도 싫고 듣는 것도 모든게 싫어졌다.
기도실도 신도회도 모두 비판으로 나오니 아무것도 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
관세음보살.
그래도 부처님 믿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5월 13일 토 비 3m
어제 그제 오늘까지 조금씩 내린 비는 40m 정도 된다고 뉴스에 나오고 오늘 일어나니 흐리고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 조반을 하고 본산 교육부장 김국성스님께 저의 소견을 상의 드리는 편지를 4장이나 장서를 오전에 쓰고 있으니 하얀 능금이란 창간지 어느 교인이 발간한 것을 우송해 왔다.
우리 잔디회지를 본 모양이다.
주소를 알게 된 것은 중식을 한후 읽어본 후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서 내일은 푸른하늘을 듣고 책을 독서하고 TV를 시청하고 대지에 바라바 끝부분을 독서하고 일지를 기하고 제수씨 고사리 꺾으러 서당골 갔다 오시고 부친께서 집에서 그냥 휴식을 취하고 하루 보내었다.
나는 요즘 나의 앞날에 대하여 심각하다.
이대로 죽은 것 같은 삶을 살기는 싫다.
살아있으면서 죽은 사람처럼 살기란 매우 어려운 사실 아우나 제수씨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고 압력 모든 가정 대소사 넘겨 달라 그러니 안 그래도 말도 안하고 내가 있는데서 담배도 아니 피우니 다른 친구들과 바둑을 두고 놀아도 함께 구경도 할 수 없고 나와 버린다. 본시 함께 놀지 않아 노는 좌석에 끼기는 싫다.
신앙생활도 자유롭지 않고 여러 가지 마음으로 제약을 받으며 생활한다.
이 정도쯤은 참고 살 수 있지만 나중 나중에 어떻게 될는지 걱정이 안될수 없다.
눈치나 보며 살아야 하다니 죄는 많이 지은 모양이다.
나무관세음보살
5월 14일 일 비 3m
장날인데 비가 가끔 뿌리고 있어 들에 가시지 않고 아버지 집앞에서 배영한 외가 종친어른을 만나 모시고 오셔 소주 대접을 하면서 대화를 하고 삼촌 장에 오셔 들렸다.
농협돈 한 2십만원 낼 수 없나하여 아직은 안 된다하고 모두 가시고 TV보며 편지 쓰던 것 다시 쓰고 반야심경을 쓰고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오후 2시 넘어 중식을 한후 책을 읽으니 박실이 난주와 끝남이 함께 집에 왔다.
가는 길에 차시간이 있어 들렸다면서 잠깐 얘기하다 간 후 휴식을 취하고 내일은 푸른 하늘 방송을 듣고 석식을 하고 오늘 아침에 아우 누운 모양이다.
저녁 구인사 교육부장 스님께 편지를 다시 쓰고 일기를 쓰고 나니 1시가 넘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항상 굽어 살펴 주옵소서.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5월 15일 월 맑음
스승의 날이며 성년의 날이기도 한 오늘 기침을 한 후 조반부터 한 술 뜨고 날씨는 화창한데 오늘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아버지와 모두 들에 갈 준비를 하지 않더니 아우 농약을 사와서 약 치러 간다 하여 부 점심 싸들고 먼저 가신 후 동생도 곧 뒤따라 간 후 제수씨 침울 하게 하여 있다.
꽃을 만들고 오락실을 봤으며 집앞에 나가서 모두 들로 오고 가는 것을 보고 “행복이란 자신의 마음속에 행복의 그릇을 준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명상 -알랭-
집 앞 논 학균 친구 논 로타리 치는 것을 구경 곧 모심기를 하려는 모양이다.
이상하게 가슴이 울적하고 눈시울이 뜨겁다.
남들같이 일하지 못하고 활동을 못하니까 이렇게 서러울 줄 왜 몰랐을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 살길 찾아 나설 용기가 왜 생기지 않을까?
어제 밤에 써둔 편지를 봉하고 오후 반장 딸 심부름 시켰다.
예하고 갖다 넣어주었다.
기성이 선례 백원만 달라고 졸라 주고 선례는 볼펜을 사오고 기성이는 친구 두 명과 휠체어를 밀고 재생약방까지 함께 가서 얼음 한개씩 또 사주었다.
오전에 반야심경을 쓰고 라디오 듣고 휴식을 취하고 중식을 하고 세수한 후 대영식당 앞에서 해동사에 알게 된 김광섭 교감 선생님을 만나 반갑게 악수를 하고 함께 계시던 월곡국민 학교 교감선생님도 악수를 청하시며 학교 놀러 오세요. 했다.
몸이 불편하여 이렇습니다.
이쪽 오락실에 살고 있습니다. 한번 찾아 온다. 하시고
불심이 두터운 분이라며 김교감님이 얘기 하신 후 헤어졌다.
정말 황송하였다.
오늘 스승의 날이라고 풍년상회, 장춘이발 아줌마 선생님 대접을 하신 모양이다.
국제오토바이 센터 친구한테 갔다.
애들과 영명이도 만나고 술 한잔 할까 하는 것 아니 사양하고 재생약방 인사나 할까하고 다시 올라가는데 이놈 기성이 휠체어 밀고 세명이 함께 있다.
버스가 태곡서 넘어와 내려오는데 확 앞으로 뛰어가서 차와 2미터 거리도 안 되었다.
운전수 급정거하여 세워놓고 죽으려고 환장했나 하며 욕을 하고 내려갔다.
어제 밤 꿈 때문인가 했더니 아우 분무기 고장으로 약을 못치고 그냥 왔다고 했다.
빼는 몽키 얻어가지고 다시가고 가슴이 아찔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만약 차 속에 들어갔다면 어찌 됐을까?
이 녀석 겁도 없이 막 쫓아다닌다.
장난치고 친구랑 얘기하고 있으니 병동이 영명이 내 뒤쪽에 누가 오는 모양이다.
인사를 하는 것 보니까 그런데 누가 내 등을 툭툭 두들이며 나왔어요? 하면서 얼핏 보고 지나시는데 나는 엉겁결에 아 예 하고 보니 면장님이 아니 신가?
이런 실언이 아닌가 아 예 하여서...
그냥 예 안녕하십니까? 했으면 좋았을텐데 엉겁결에 누군지도 모르고 아 예 하고 보니 면장님 이여서 대답 인사가 좀 잘못된 것 같다.
이해하시겠지 그리고 오전에 병탁이 오토바이로 어른을 태워 집앞을 지나 인사하고 오후 유경석모 대구 갔다 오신다며 만나고 인사하고 5시반경 아우는 다시 과원으로 가고 태곡 정미소집 학생이 내 휠체어 밀어준다 하여 지소 앞으로 해서 정류소를 지나 잠업사육장까지 갔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고 고추랑 담배랑 생생하게 자란 모습을 보고 들어와서 내일은 푸른 하늘 방송을 듣고 김태현 교무님께 안부 겸 오늘 김교감선생님 만난 얘기 등을 한후 대구 아우 방 옮겼는지 전화하니 아직 방을 얻지 않았다 하여 그럼 살고 있는 집에서 남쪽 방향으로 얻어서 25일 29일 31일 세 날 가운데 편리한 날 이사하면 되고 생일 때는 제수씨 가실지 못가실지 모른다니까 애들 생일 안와도 된다고 못 오게 했다.
석식은 어제부터 우리 방에서 먹는데 식사 끝나고 모두 놀러갔는지 전화를 안 받아서 받으니까 미산 아지매 전화였다.
안동 박실이가 제수씨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놀러갔다 오시는 것 얘기해 드리고 무슨 일로 그럴까 바로 집으로 해도 될 텐데 보일러 솥이 터진 모양이다.
연탄재가 덤벙 다 젖었다고 보여 주신다. 벌써 몇 번째 보여주셨다.
아마도 수리를 해야 될 것 같다.
매부 생일 선물로 사준 일기공책이 오늘도 다 쓴 것 같다.
그날그날 있는 그대로 기록한 일지다.
글씨 공부도 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쓴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내용이야 못썼지만 지난 일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내놓고 날짜만 찾으면 그날 일을 소상히 알수 있으니까 오늘 큰 불행이 생길 뻔하였으나 부처님 위신력으로 면한 것 같습니다.
자비하신 부처님 무지하고 어리석은 이 중생을 어여삐 살피시고 항상 가피력 내리소서.
관세음보살
불기 2533년 단기 4322년 서기 1989년 5월 16일 맑음.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신비로움과 비밀스런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지식인이면 누구나 똑같은 느낌을 갖을 것이다.
그런 고로 나역시 글씨 연습을 하면서 그날그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남기려고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있는 그대로 기록하며 만 2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늘에 이르러 또 새로운 일지를 쓰게 될 공책에 즐거운 일 보람된 삶이 많이많이 기재됐으면 하는 염원으로 시작해서 기록하며 오전에는 깨자금 타러 종형님 미나무 할배 함께 오셔서 우리하고 서로 보증서 주고 타내고 아우와 농협에 가서 소관을 봤으며 연탄 2백장을 2만원씩 내주고 함께 사고 부 제수 오전 안골 깨를 심으시고 오후 아우 분무기 압축 터진 것 수리하여 과원 약을 두 번째 치고 왔으며 나는 분회 부회장님 내외분과 앞으로 발전을 위해 집앞에서 잠깐 토론 한 후 가시고 중식을 하고 반야심경을 오늘도 쓴 후 기성이와 선례 큰아버지 돈 100원만 줘하면서 조른다.
미나무 할배한테 라쏘 한병 빌려준 것 1400원 받아둔 것 각각 100원씩 주고 휴식을 취하고 5시경 안동종숙 강신건조모상 조문하고 가시는 길에 잠깐 차시간이 있어서 들렸다.
가고 난뒤 들에서 모두 왔다.
석식이 끝나고 깨 자금 대출금 부 갖다 드린다.
십만원 연탄 백장 값 2만원 소석회 15포 12750원 요소 다섯 포 살돈 3만원 받아 두었다.
부 이렇게 돈이 금방 나와서 기계수리비와 7만원이 쓰여 버리고 3만원이 남았다.
나보고 돈이 헤프다고 소리 쳤다.
그러면 농사하지 말았으면 안들텐데 밑천이 너무 많이 든다.
TV를 보면서 종 매제한테 소석회 35포 값 함께 갚자고 전화해 주고 미산 숙모한테 내일 안동 갈 때 나물 보내려면 시목이한테 보내라고 전화하니까 숙모 직접 간다고 했다.
이렇게 오늘 하루를 보내고 일기라고 할까 이렇게 적어봤다.
불님 감사하옵니다.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89년5월17일 수요일 맑음.
장애인행사가 63빌딩에서..
아침이 밝아오면 햇살은 산하대지에 따사롭게 내리고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허나 나는 언제나 같은 나날이다.
어제 밤에 3시가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저녁에 커피 한잔 했더니 그 때문인지 수면을 취하려고 했더니 깊은 잠은 오지 않았다.
6시반에 기침을 하여 조반 후 부 비닐 깔러 버스로 가신 후 다시 10시 반까지 휴식을 취한 후에 이종환 여성시대지 온 것을 읽고 있으니 제수씨 안동 가셨다 오신다.
점심 잡수고 오토바이타고 비닐 펴로 가신 후 내가 오락실을 봤다.
오늘의 명상 “가정의 평화란 부부간의 화합에 있다”
명상 -서양속담- 아우는 보건소 바둑 두러 가서 3시 넘어 왔으므로 전국 장애인 모임이 서울 63빌딩에서 6월11일에 있다는 홍보지가 온 것을 읽고 점심은 아침에 세 숟가락 먹고 두었던 공기 밥으로 때우고 돈 한 4천원 바꿔주었다.
아우 점심 먹은후 어제 밭에 돈 얘기 제수씨 아직 한 5만원 남았으리 한다는 것 보니 제수씨 손으로 들어간 돈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저번달 연탄값 제수씨 드렸는데 얘기하다 하니까 제수씨 번 돈으로 주었다 하더란다.
어제 밤에도 2만원 드렸는데 어제 밤에는 2만원 얻었다 하더라 했고 초팔일 가실 때 부께 오천원 얻어 가시고 분식 차릴 때 만원 4월 말경 오뎅 사고 뭐한다고 만원 등 우리 등값 만 오천원등 이렇게 쓰였으므로 어제 깨자금 십만원 단번에 연탄값으로 2만원 분무기 수리비 5천원 비료살돈 4만5천원 지출하니 3만원밖에 안 남았다 하니 뭐 그런 돈 자꾸 줄 필요 없다고 했다.
제수한테 그런 줄이나 알고 얘기하지 마라하고 머리 감고 이호재 면장 사모님께 15일날 저한테 해준 것을 얘기했더니 전화로 물질적으로 돕지는 못해도 마음은 항상 돕고자 하신다며 전화해줘 고맙다며 고려상회 안부를 물으셨다.
기성이가 밀고 휠체어타고 국제까지 갔다 왔으며 오늘은 전 조합장님 권태일 할배를 만나 인사드리니 어디 와 있냐하여 여기 오락실 한다니까 참 잘했다 하시고 권부장님 오셔서 비료값 인하된 것 주신다며 도장 달라하시는 것 동생한테 있다고 하고 놀러갔다 왔다.
저녁 비료값 주시는 것 5천원 큰집 상망에 뭐 과일이나 좀 사 드리라고 하고 TV보다 일기를 쓴후 한시가 가까울 무렵 취침을 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89년5월18일목요일 맑음.
제수씨 적과하러 가시고..
밝은 햇살이 비춰오고 아카시아 향 내음이 불어오는 오늘에 기성이 도움으로 국제센터 성심상회까지 돌아온 한나절 동창 놀러 와서 아우와 함께 바둑을 두다 가고 인천 조족께서 권씨 종보를 보내주셨다.
오후 독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박경진 군이 물먹으러 왔다.
가고 어제 잊어버리고 필기하지 못한 반야심경을 오전 오후 각각 두 번을 필기 한후 선례는 학교 같다 와서 혼자 놀러가고 기성이는 나와 많이 놀았다.
휠체어를 집안에 끌고 들어왔는데 제수씨 큰아버지 태워서 밀어 드려라 하시며 기성이께 말씀하는 소리 정말 듣기만 해도 눈물겹도록 감사하고 고마웠다.
내일 아침이 큰엄마 상망이 이제 두 번밖에 없으므로 아버지 참석하시라고 옷과 콩씨 3가지 팥씨까지 챙겨서 첫차로 가신 후 재종형수 상명조모 오셨다 가시는 소리 난후 9시경 제수씨 오토바이로 사과 적과하시러 가셨다.
저녁때 오셔서 옆집 송창선 엄마와 얘기하시는 소리에 적과 하시다 나무에서 떨어져서 그만 오셨다고 했다.
많이 다치지 않아 다행스럽다.
많이 다쳐서 아프다고 누웠으면 그런 낭패가 없을텐데..
권부장님께 비료 인하 포당 얼만지 여쭈니까 480원이였다 하여 삼촌 것과 함께였다.
일기를 대강 적었으며 항상 부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나무관세음보살 자정이 좀 넘어 취침했다.
89년5월19일 금요일 맑음.
효행과 우애는 누구나 어려서부터 환경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끝없는 집념으로 노력한다면 자기 욕망을 성취하리라.
내 어린시절은 참담하기 이를 때 없었으니 지금 와서 회상하면 용케도 잘 살아왔다.
나는 요즘 아우집에서 제수씨 도움으로 무의도식하고 있다.
이걸 행복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의 운명이 야속할 따름이다.
노력없이 그 무엇이 얻어질까 마는 육체적 노동은 못할망정 앞으로 삶을 위하여 나름대로 연구하고 사고에 잠겨보지만 뚜렷한 묘안이 없다.
KBS 오늘의 명상 “효행과 우애는 정치의 출발점이다” -공자-
내가 10여년 전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할 때 신심의 체험을 느낀 것은 많았다.
해서 신앙수기를 써보려고 했으나 배움이 적어 글을 쓸 소질이 없어 표현을 잘 못한다.
시도해 보았으나 잘 써지지 않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허망한 세월만 보내고 있다.
먹고 자고 TV나 보고 라디오나 듣고 편지나 쓰고 기성이 도움으로 휠체어타고 바깥바람 쏘이는 것으로 반야심경 1회씩 한자로 쓰는 것 일기는 아무 한일이 없지만 꼭 쓴다.
저녁 안동 매제한테 전화 한통하고 장날이라 숙모와 형수 다녀가시고 오후 오태 휴가 오는 길에 들려서 갔다.
부께서 오늘밤 큰집 기제사 있으므로 오시지 않으시고 오전엔 집 앞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이나 하고 송홍식 한태 국민주 어떻게 신청했냐니까 자기 하려고 신청했다 하여 그럼 잘됐다하고 종 매제 소석회 비료 대 갚으러 왔다.
들릴 줄 알았더니 들리지 않고 바로 간 모양이며 오후 3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후 석식이 끝나고 집앞에 나갔다 들어와서 조께 편지 회신 서두를 쓰다 취침.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89년5월20일 토요일 맑음.
조카애들과 놀았다.
아카시아 꽃 만발한 이때 그윽한 향기 코끝을 스치며 불어오는 이때 소질이 있다면 시 한편을 쓰던지 단편을 쓰고도 남을 푸르른 5월 라일락 꽃 목련꽃 피고 지는 아름다운 이 계절 어디로 훨훨 날아가고픈 마음.
오전에는 휴식을 취하고 바깥에 나갔다 들어와서 오락실을 보고 기성이와 놀았다.
중식을 두시 넘어 한후 라디오를 청취했으며 오전에 선례 기성이 배준수 어린이 조규상 어린이랑 함께 농협 창고 경노회관에 있는데 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다 하드 한개 씩 사주고 성심상회 아줌마 전화가 왔다.
어제만 상의 전화를 드렸더니 안 계시더니 문하여 종보를 보내달라고 종보사에 편지를 하여 한 30부 보내 달라하여 보내주면 홍보도 할 겸 배부할 수 없느냐니까 있다고 하여 저녁에 종보사에 편지를 쓰고 인천 조족님께 종보 보내주심을 감사하다는 편지를 쓰고 제수씨 적과하러 가셨다.
오실 때 오토바이 타이어 펑크로 끌고 오느라 고생하셨다.
가친께서도 오늘 3일 만에 집에 오셨다.
기성이 선례 돈 백원만 조르는 것을 주지 않았더니 눈물을 글썽인다.
애들이 돈을 하루 3, 4백원 이상씩 쓰고 달라할 때 마다 주면 돈 감당을 못하게 된다.
돈 씀씀이가 애초부터 이렇게 낭비가 심하면 커 갈수록 더할테니 염려스럽다.
가정교육이 먼저 우선돼야만 하는데 어린것들이 교육이 잘못될까?
어떻게 해야 할지 조심스럽다.
몸이 이상스럽게 건질 따끔따끔 찌르르 한 것이 굼실굼실 하는 것이 기분이 나쁠 정도다. 얼굴과 목에 무엇이 나고 연고를 발라 없애고 나면 또 나고 거북스럽다.
참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도 닦을 기도실이 어떻게 하면 이곳 가까이 마련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오늘을 마무리하고 일기를 쓰고 취침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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