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천황봉 :841m)은 민족의 영산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어서,
삼국시대에는 계람(鷄람,옹산 중악),
통일신라시대에는 서악(계룡,묘향,지리,태백, 팔공산),
조선시대에는 중악(계룡산, 묘향산,지리산)으로 불리웠고,
현재에도 계룡산의 서편에 위치한 신원사에는 중악단이 보존되고 있다.
산태극 (양기) 수태극(음기)이 합쳐지는 이른바 生氣地의 금계 포란형 또는 비룡승천형의 大吉地에 이성계가 개성에서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려 했다가 하륜의 두가지 의견을 따라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궁궐터의 주초석이 있다. 그 두가지 반대 이론은 첫번째 국토의 중앙이 아니고, 두번째로 세금을 거두면 쉽게 전국에서 운반해 오는 큰 수로가 없다는 것이라 한다.
여기는 행정수도를 건설하려고 했다가 그 행정수도는 공주 땅에 세종시가 생기고, 이곳은 여의도의 7배에 이르는 면적에 국군의 별들이 꽉 찬 국방도시로 바뀐 곳이다. 2003년에 계룡시청이 문을 열었고, 인구는 4만을 조금 넘고 60평방킬로미터의 면적에 천하의 대길지, 예학의 고을, 나라사랑 도시로 우뚝 서고 있다.
삼다 : 무궁화, 독립운동가, 장군
삼소 : 가재, 뱀, 칡(계룡산이 바위산)
삼미 : 팥죽, 냉면, 물엿
삼천(三川) : 용추천, 두계천, 사계천을 자랑한다.
2016년 4월 7일의 행로는 신도안면(계룡대, 숫용추,신털이봉) - 병영식사 - 엄사면 - 금암동 - 두마면 (예학의 태두 사계 김장생)을 돌아보면서 역사를 배우며 찍어온 사진들.
1. 1930년대에는 140여개의 신앙단체(종교단체아 아님)가 군집하여 있으면서도 서로 견원시 했을 것 같지만, 의외로 화합하고 애국심 불탓던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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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립지사가 마시고 은거했던 우물이다 감로천이라고 새겨졌다.
4.국군이 근무하는 8각형 건물내의 전시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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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런 궁궐터?
7. 궁궐의 주초석 115개
8. 무학대사 필적 : 불종불박(국교는 불교가 될 것이고, 불교계의 큰 스님은 박씨가 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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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계룡대 영내에는 1993년에 방목한 28마리의 꽃 사슴이 200여마리의 대 식구로 번성하여 자유롭게 살고 있으며, 그증에는 행운의 흰색의 꽃 사슴이 5 마리나 있다고 한다. 사슴은 못 보았지만 주초석 주변에 널린 꽃사슴의 분변이다.
12. 이 벚꽃길 주변에는 신털이봉 이라는 이름의 낮은 산이 있었다 한다. 궁궐의 기초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이 일과후에 신(짚새기)을 털어서 모인 흙이 산을 이루었다는 곳이라 한다.
13. 우리의 아들과 손자가 먹고 국가를 지키는 점심밥.
14. 사계 김장생 선생의 산소나 돈암서원은 논산시 연산면에 위치해 있고, 기거했던 곳이 바로 여기이다.
15. 영산홍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계저택의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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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도에 지리산에 이어서 두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산자락에서 광복단 단장 한훈선생이 은거했다는 것, 그리고 50여명의 독립투사가 은거했다는 독립의 요람이라는 새로운 사실과, 한훈선생의 생가 아래로 한길가에 세워진 광복단 결사대기념탑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곳에 건립되었다는 것이 꾀 큰 자랑거리인데도 십여년 가까이 거주하면서 전혀 알지 못 햇다는 부끄러움을 감출수 없다. 역사를 도외시 하고 한세상 헛살지 말아야 하는데 ...
첫댓글 30 수년전 에 계룡산 에 가본적 이 있는데
사진으로 보니 처음 보는 느낌 입니다
일간 가 봐야 겠군요 덕분 에 구경 잘했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