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양귀비
마이크를 잡는 순간, 문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흰옷을 입고 머리에 천을 두른 채 무대에 섰다. 손에는 원고가 들려 있었고 눈앞에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뒤편의 커다란 화면에는 내가 쓴 문장이 펼쳐졌다. ‘나도 양귀비.’ 제목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한쪽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여자가 슬며시 눈을 떴다. 오늘만큼은 평범한 일상 속의 내가 아니라 사랑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했던 한 여자의 마음으로 서보고 싶었다.
양귀비라는 이름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한 시대를 흔든 아름다움이며 수많은 이야기를 남긴 여인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화려한 얼굴보다 한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을 먼저 떠올린다. 역사 속 이름은 거대하지만 사랑 앞에 선 한 인간의 마음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렸을 것이고, 사랑받고 싶었을 것이며, 때로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운명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렸을 것이다.
“나도 양귀비입니다.”
첫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낭독은 글을 눈으로 읽는 것과 달랐다. 종이에 머물던 문장이 목소리를 얻는 순간, 글은 내 몸을 통과했다. 어떤 문장은 가슴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나왔고 어떤 문장은 목 끝에서 떨렸다. 객석은 조용했다. 그 침묵 속으로 내 목소리가 한 걸음씩 걸어갔다. 마치 오래전 서안으로 향하던 길처럼 문장마다 낯선 풍경이 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여행길에서 양귀비를 떠올렸던 순간을 읽었다. 낯선 공항과 기다림, 불편했던 자리와 스쳐 지나간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문득 찾아온 생각들. 여행은 언제나 장소만 바꾸어놓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마음속 풍경도 달라진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작은 장면 하나가 여행지에서는 오래 마음에 남는다. 낯선 사람의 표정 하나에도 이야기가 생기고 오래전 읽었던 역사 속 인물이 갑자기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처럼 가까워지기도 한다.
양귀비도 처음부터 전설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한 사람의 여인이었으며 어느 날 사랑을 만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한 여자의 삶에 수많은 이름을 붙였다. 절세가인, 황제의 여인, 나라를 기울게 한 미인. 세월이 흘러도 아름다운 여자에게 세상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덧붙인다. 정작 그 여자가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쉽게 잊는다.
나는 그 대목에서 잠시 원고에서 눈을 들었다. 객석의 얼굴들이 보였다. 문득 웃음이 났다. 내가 양귀비라니. 역사 속 절세미인과 나를 나란히 놓는다는 것부터 조금은 엉뚱하고 유쾌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나이를 먹는다고 상상까지 늙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하루쯤 내가 양귀비가 되면 어떠랴. 머리에 천 하나 두르고 흰옷을 입고, 오래전 중국의 어느 궁궐을 거닐었다고 상상하면 또 어떠랴. 문학은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생을 잠시 살아보게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젊은 날에는 아름다움이 얼굴에 있다고 생각했다. 고운 피부와 반듯한 이목구비, 날씬한 몸과 세련된 옷차림이 아름다움을 결정한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을 지나오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가 살아온 시간이 함께 앉아 있다. 많이 웃은 사람에게는 웃음의 결이 남고, 많이 울어본 사람에게는 타인의 슬픔을 알아보는 눈빛이 생긴다. 오래 견딘 사람에게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단단함이 느껴진다.
그러니 아름다움에도 나이가 있다. 스무 살의 아름다움과 예순의 아름다움은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봄꽃과 가을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아름답냐고 묻는 것과 같다. 봄에는 봄의 빛이 있고 가을에는 가을의 깊이가 있다. 젊은 날의 나는 아직 피어나지 않은 가능성으로 아름다웠다면 지금의 나는 지나온 시간까지 품고 있어서 아름답다. 웃다가 울었고, 사랑하다 아팠으며, 넘어졌다 다시 일어선 시간들이 지금의 얼굴을 만들었다.
무대 위에서 나는 그 시간을 입고 있었다. 흰옷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양귀비를 흉내 내기 위한 옷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옷처럼 느껴졌다. 목소리가 조금 떨려도 괜찮았다. 원고를 보는 눈이 예전처럼 밝지 않아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읽는 일이 아니라 내가 쓴 문장을 내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의 수많은 나를 만나는 일이다. 길 위를 걷는 여자도 나이고, 꽃 앞에 오래 서 있는 여자도 나다. 때로는 고추잠자리를 따라 뛰는 아이가 되기도 하고, 낯선 도시에서 사랑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은 양귀비가 되었다. 그렇게 글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다른 생을 산다.
생각하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현실의 삶은 하나뿐이지만 문학 속에서는 수많은 삶을 살아볼 수 있다. 왕비도 되고 소녀도 되고 길 위의 여행자도 된다. 이미 지나간 청춘을 다시 불러낼 수도 있고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먼저 걸어볼 수도 있다. 나이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쩌면 끊임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낭독이 이어질수록 처음의 긴장은 조금씩 풀렸다. 목소리에 온기가 생기고 문장 사이의 숨도 편안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원고를 읽는다는 생각보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양귀비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랑을 말하고 여행을 말하고, 나이 들어서도 설렐 수 있는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말해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사랑할 때 비로소 깊어진다. 거울 속 주름을 지우는 일보다 그 주름 사이에 담긴 이야기를 아끼는 일이 더 중요하다. 오늘의 나를 어제보다 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아직 내게 남아 있는 설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가는 여자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낭독이 끝나갈 무렵 마음속 양귀비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역사책 속의 먼 여인이 아니었다. 사랑 앞에서 설레고, 세월 앞에서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빛을 잃지 않으려 했던 모든 여자들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마이크를 천천히 내렸다. 박수가 들려왔다. 나는 웃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머리에 두른 천도 풀고 흰옷도 벗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만난 양귀비까지 벗어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 안에는 아직 꽃 한 송이를 보고 가슴이 뛰는 소녀가 있고, 낯선 길 앞에서 설레는 여행자가 있으며,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붉어지는 여자가 살아 있다. 세월은 내게서 젊음을 조금씩 가져갔지만 대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 그래, 나도 양귀비다. 누구의 눈에 비친 절세미인이 아니라, 내 인생을 내 빛깔로 피워낸 오늘의 양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