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 1
*음악의 용도
주 용도는 의례나 행사에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했다.
(그때는 녹음 된 곡이나 방송곡을 사용하는기술이 없었다.)
음악을 직접 듣는 방법 뿐이다.(집의 실내에서, 교회에서, 장터의 약장수에게)
민요나, 민속악기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세속 음악 — 무도회에서 사용하는 음악이다.
오페라 —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갔다.(입장료가 지금보다는 비쌌다.)
*연주곡보다는 가사가 있는 노래가 더 인기 있었다.(인기 가수가 있었다)
연주곡이 나오면서, 음악의 해설이 있었고, 제목을 붙이는 것은 해설의 방법이었다.
음악은 원래 거래하는 상품이 아니었다.(교회용, 무도회, 장터 약장수 등)
**음악의 상업화가 나타나다.(음악의 판매)
음악 생산자(작곡가, 연주자, 가수), 음악 소비자(돈을 주고 음악을 듣는 사람), 음악 유통업자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사람. 기획사. 오페라 극장 주인 등)이 필요했다.
그렇더래도 음악 생산자가 약자의 입장인 수가 많았다.
* 궁정 귀족은 음악의 상업화로 음악의 질이 낮아진다면서 곱지 않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음악의 품평과 관계없이 계속하여 연주되는 곡과, 한 번도 연주되지 않는 곡이 나왔다. 음악이
상품화되면서 곡의 선호도와 평가가 달라진다.
*음악 교육은 공기관에서 담당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하였다. 음악인은 신분이 낮아서(귀족도 지식인도 음악은 멀리했다.) 스스로 장인이라면서 세습 직업 정도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음악계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직업의 보호 차원에서)
곡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곡을 부르는 가수가 중심이었다.
오페라 공연을 하면서 가수가 그 오페라의 곡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멋대로 불렀다.
작품권이 없어서 여러 곡을 여기저기서 발체하여 공연하기도 했다. - 성공만 하면 만사OK
---> 청중이 좋아하면 그것이 답이다.
*러시아나 일부 지역에서는 돈 많은 귀족이나 사장님이 개인 연주단, 오레라 단을 꾸며서 사적으로 즐겼다.
*작곡가는 자기 작품을 아무리 자주 공연해도, 돈을 더 받는 것이 아니고
한 마디로 작곡가는 작곡으로 도늘 벌 수 없었다.
궁정 작곡가가 되어서 월급을 받는 것이 최고의 수입이고,최고의 좋은 직책이었다.
(궁정 작곡가 되기 위하여 암투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음악 이야기 2
악보 발명 — 악보 판매 가게가 생겼다.
악보의 발명으로, 악기가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음악연주를 할 수 있었다.
악보 판매상이 나타나고 영국 런던에서 악보 판매 가게 수는 1750년에 12곳에서 1824년에는 124곳으로 늘어났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영국의 중산층은 식탁만큼이나 피아노를 가지고 있었다.
(피아노는 1709년에 이태리의 크리스토포리가 발명했다. 유럽으로 퍼져나가면서 다양한 피아노가 태어났고, 유명한 제조사도 나타났다.
피아노는 작곡가도, 연주자도 선호하는 악기가 되었다.
이후 다양한 악기가 나오면서 어떤 악기는 누구에게(여자에게. 소녀에게 ) 좋다는 등, 또 행진곡에는, 장송곡에는 어떤 악기가 좋다는 등의 ------.
낭만주의가 유행하면서 — 민요, 민속악기가 인기를 얻는다.
(낭만주의의 시작은 민요를 수집하여 시집으로 출판하면서 시작하였다.)
춤곡 — 부르주아지 들이 사교춤으로 춤곡을 선호했다. 그 중에도 왈츠는
19세기에 대단한 인기를 누리면서 대 유행을 했다.
점잖은 귀족 계층 사람은 남녀가 몸을 너무 밀착하여 어저구어쩌구 하면서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