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괜히 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가가 손해 보는 형국으로 세상이 쉽게 굴러간다면 그게 어디 자본주의인가? 반-자본주의가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빨갱이 세상이지. 오, 멋져라! 국가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지 이미 오래 되었구, 자본의 정치권력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작금의 신자유주의 환경에서 자본가의 주머니를 턴다는 말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그냥 호수의 물이 빠지면 뭇 못속 짐승들이 괴로운 것이고, 누가 더 괴로운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는 국가가 국민을 턴다고 한다. 어디 국민이라는 족속이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단일체였던 적이 있었던가? 암튼 과소비의 거품경제가 붕괴되면 이에 따른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때 정부라는 경제참여자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시장개입도 필연적인 것이다. 그래서 수정자본주의라고 하겠지.
이 구조조정 과정에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뭐 그냥 가만히 놓아둬도 시장이 자연스럽게 치유하게 된다만, 이 꼴을 그냥 두고볼 강단있는 좌빨도 수꼴도 없다. 구조조정의 방향과 속도도 조절해야 하구, 사회안정화 측면에서 불만도 줄여야 하구, 암튼 정부는 돈을 지를 곳만 늘어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냥 시장에 100% 맡겨버려도, 정부가 사회주의처럼 완벽한 계획경제를 취해도 된다. 각기 비용과 효용이 발생하는 것이고, 어느 경우든 최종적으로 대차대조표가 똔똔을 보이는 것은 같다. 다만 그 과정상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무서운 것이고, 이 부수적인 효과에 대해 인간과 정부가 개입을 하는 것이겠지. 뭐, 사람이 사는 것이 '결과가 아닌 과정'임을 생각하면, 이 '과정에 대한 개입'이 곧 삶이구 정책인 것이지만서두.
보통 거품이 붕괴되고 산업전반적인 구조조정이 지속되면, 당근 정부는 돈 쓸 곳은 많아지는 데 반해 돈이 들어올 곳은 줄어들거나 쉽게 늘어나지 않게 된다. 괜히 경기가 위축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세수기반이 그만큼 줄거나 확대를 못하는 것이어서 세입은 정체/감소하는데, 구조조정자금이라는 세출요인은 증가하게 된다. 당연한 것 아니가? 그간 우리가 계속 경험해오고 있는 것이기도 하구.
이때 정부가 얼마만큼 시장에 개입을 하는가 하는 '정도'의 문제는 항상 논란거리가 된다. 아예 시장의 자율조정에 맡겨버릴까? 대부분의 산업을 국유화해버려서 계획경제로 옮겨가 볼까? 다시 선택의 문제가 된다.
이런 구조조정과정에서 과거 보통의 국가는 왕성한 재정지출을 통해 그 비용을 정부가 감당했다. 물론 요즘은 정부의 누적재정적자가 심해져서 해괴망측한 양적완화란 금융메카니즘을 이용하고 있다. 암튼 어떤 경우나 정부나 공공기관이 지른다는 점은 같다만, 엄밀하게는 정부재정지출은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라는 것이 있어서 생각만큼 효과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게 통화정책을 손을 들어주는 근거가 되기도 하지 싶다.
세상에 경제의 수축이나 급격한 조정을 바라는 공동체는 없다. 어떤 공동체의 정부, 위정자, 관료라도 항상 구조조정의 방향과 속도에 개입하고자 하며, 바로 이것이 그들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시장이 거품축소와 디레버리징으로 방향을 잡으면, 정부는 '성장'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거품붕괴는 그냥 놓아두어도 시장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반면, 디레버리징은 두 가지 측면에서 가능하다. 첫째는 빚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쪽으로는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다. 정부는 보통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
이렇게 경제가 위축되면 정부는 당근 '성장'에 방향을 두고, 재정팽창과 통화.신용팽창에 나서게 된다. 이걸 갱제학에서는 '리플레이션(replation)'이라고 한다. 우리 말로는 '다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두고 무식한 넘들은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유발시켜서 실질소득을 줄이니 빚쟁이를 살 판 나게 하느니 주둥아리질을 일삼는다.
경제학에 또한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이란 개념이 있다. 쉽게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 사이에 '역의 관계'가,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에 '정의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정부가 재정확장과 신용팽창정책을 취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부수적인 효과로 높은 인플레이션율이 나타나게 된다는 뜻이다. 이 통계를 분석해서 발견하게된 필립스곡선이란 경험칙이 말하는 바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개입을 해서 성장을 추구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높은 인플레이션이란 '비용'이 수반된다는 뜻이다. 정부가 사악하게시리 국민의 주머니를 강탈하려고 인플레이션율 높이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 필립스곡선은 한때 신의 요술지팡이쯤의 역할을 수행했다. 수정자본주의 아래에서, 정부가 적당한 수준으로 개입을 하면, 적당한 성장률과 적당한 인플레이션 상태로 경제를 통제.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케인즈는 앞으로 자본주의는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망발을 하기도 했지비. 물론 이게 망상임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고약한 스테그플레이션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필립스곡선은 살아서 경제학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 경험칙이 적용받지 않는 상태라는 말은, 다시 말해 인간의 개입이 무력화되는 상태임을 뜻하는 것이고, 인간이 더 이상 경제세계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 된다. 세상이 이리 개망나니처럼 놀아나는 경우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자연계를 세상사를 통제.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곧 '근대성(modernity)'의 시작이고 보면, 이 믿음이 깨진 세상은 얼마나 대책없고 절망적인 것이 될까.
이 글이 버냉키나 김중수나 쥐박이를 옹호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근거 없이 누가 누구의 주머니를 터니, 자본가넘들만 살 판 나는 세상이 되니 하는 따위의 수준 낮은 소리를 줄이고자 할 뿐이다. 그래 그렇다면 너는 누구의 주머니를 털고 싶은 것이냐? 그릇된 것일망정 정책담당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진정성이란 건 있지 않겠는가. 그릇됨을 논박하는 데는 또 그만한 타당성이 있어야 할 테구, 악다구니 써봤자 소음으로 끝나는 게 또한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부자가 다 같은 부자가 아니다. 분명 존경받을 만한 부자가 많고, 밟아죽여도 시원찮을 부자들도 많다. 서민이라고 다 같은 서민이 아니다. 겁없는 투기질에 죽어야 마땅한 서민새끼들도 있고, 앞으로 살 길이 더 길게 남은 불쌍한 서민들도 있다.
뒈져야할 서민새끼들은 뒈지고, 살아야 할 서민은 사는 세상. 존경받을 수 있는 부자가 더 많아지는 세상. 이런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이게 곧 발전이 아니겠는가 싶다.
상식을 벗어난 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역시 궤변에 가깝다.
첫댓글 인본사상 위에 세워진 상식^^
퍼가요~~~
에효~~. 상식선에서 돌아가길. 아니 상식으로 돌아오기를 법도 상식에서 법어남 더이상 법이 아닐진데.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