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9월의 꽉 찬 행사와 준비로 마음이 분주하지만
언제나 주님 안에서 생각하고 행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오늘도 아들의 이름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오니
아버지 품속의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님의 보혈만 의지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5.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17. 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7:1.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2.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3.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4.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본문 주해)
15~16절 :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들의 성벽 공사가 52일만에 끝난다.
유다 주변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 낙담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해했는데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되는 일은 인간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된 것임을 대적들도 인정하게 된 것이다.
17~19절 : 성벽 공사를 하는 동안, 내부와 외부의 세력이 결탁하여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내용이다.
특히 도비야는 유다의 귀족들과 통혼하면서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비야와 혼인을 맺은 유다의 아라 가문과 베레가 가문은 유력한 귀족들이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아라 가문은 775명에 이르렀고(스2:5), 베레가는 성벽 공사의 지도자 중의 하나였다.(느3:4, 30)
이들은 느헤미야에게 도비야를 좋게 말하여 그에 대한 느헤미야의 경계심을 풀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느헤미야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 또한 그들은 느헤미야의 동정을 빠짐없이 도비야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다.(19절)
대적자들과 결탁한 내부의 대적들이 더 큰 문제였다.
내부의 적들은 유다 귀족의 명분을 이용하여 대적자들과 권력과 이익을 나누며 힘을 행사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비록 성벽 공사에 참여했어도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리사욕에 눈먼 자들이었다.
7:1~4절 : “성벽을 다시 쌓고, 문들을 제자리에 단 다음에, 나는 성전 문지기와 노래하는 사람과 레위 사람을 세우고
나의 아우 하나니와 성채 지휘관 하나냐에게 예루살렘 경비를 맡겼다. 하나냐는 진실한 사람이고, 남다르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일렀다. "해가 떠서 환해지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들을 열지 말고, 해가 아직 높이 있을 때에, 성문들을 닫고 빗장을 지르도록 하시오. 예루살렘 성 사람들로 경비를 세우시오. 일부는 지정된 초소에서, 일부는 자기들의 집 가까이에서 경비를 서게 하십시오."
성읍은 크고 넓으나, 인구가 얼마 안 되고, 제대로 지은 집도 얼마 없었다.”(새번역)
느헤미야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대적들로 인해 성문을 여는 시간을 미루고, 주민들로 하여금 경계 태세를 늦추지 말라고 명한다.
(나의 묵상)
15~19절 : 믿음 생활에서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하다.
외부의 적이라면 세상이 주는 어려움-상황이나 환경 또는 믿지 않는 자들의 조롱이나 위협-일 것이다.
내부의 적은 자기사랑, 자기의 등 자기중심적인 사고이다.
그런데 내부의 적만 잘 처리되면 외부의 문제는 별 문제가 없다.
복음을 모르고, 생명의 교제를 하지 않았을 때도 나는 열심이 있었다.
그러나 내부의 적을 모르고, 항상 외부의 적만을 주시했다.
도비야가 유다 귀족들과 내통하며 느헤미야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모의를 나는 눈치 채지 못하고 번번히 당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나 환경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나처럼 열심을 내는 자를 하나님께서 돌봐주시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를 돌봐주시려는가 하면서 낙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나니 외부의 적과 내통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사랑, 자기자랑, 자기의, 자기주장의지....
나는 이런 것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죄인 줄을 몰랐다.
언제나 신앙의 이름으로 자아확장에만 마음이 있었던 자-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를 원하는 자-였으니, 이러한 것들이 내 안에 안착한, 내부의 적인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들이 외부의 적과 긴밀히 내통하니 나는 늘 패배하고 만다.
이제 복음을 통해 생명의 삶을 살게 되니, 매일의 말씀에서 성령께서 제시하시는 십자가로 달려가는 자가 되었다.
그 십자가에 자기사랑, 자기자랑, 자기의, 자기주장의지를 못 박는 자가 되었다.
성령께서 ‘자기 부인’의 그 쓰라림이, 결국 주님 주시는 소중한 은혜임을 알게 해 주셨다.
여전히 아플 때도 있지만, 자기부인이 되지 않고서는 주님께 은혜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로 내부의 적을 처리하니, 이제 외부의 적-상황, 환경, 관계 등-은 내게 종이 호랑이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내부의 적을 십자가로 처리하니 다람쥐 쳇바퀴 돌듯 패배하기만 했던 삶에 승리의 깃발이 꽂히게 된다.
7:1~4절 : 느헤미야가 성벽 문지기와 관리자를 세우며 경비를 하게 한다.
그런데 3절의 말씀에 의문이 간다.
“나는 그들에게 일렀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는 문을 열지 말고 해가 아직 높이 있을 때 문을 닫아걸도록 하여라. 예루살렘 성민으로 보초를 세워라. 사람마다 초소를 정해 주어 보초를 서게 할 뿐만 아니라, 집마다 제 집 앞에 보초를 서게 하여라."”(공동번역)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는 문을 열지 말고 해가 아직 높이 있을 때 문을 닫아걸도록 하라’니, 한마디로 말하면 ‘늦게 성문을 열고, 일찍 성문을 닫으라’는 것이다.
어둠을 틈타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 적들을 경계하기 위함이라 쳐도, 이 정도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피폐하고 초라한 환경인데 이렇게 게으르게 활동해서 언제 벌어 먹고 살 것인가 말이다.
문득 매일 하는 말씀 묵상을 생각한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말씀 묵상하는 시간이 없이는 나의 하루의 문을 열 수 없다.
처음 묵상을 시작했던 그 시절, 마다가스카르에서의 그 아침 햇살을 잊을 수 없다.
새벽에 컴컴한 거실에 홀로 나와 불을 켜고, 약간은 썰렁한 공기 속에 얇은 윗도리를 걸치고 묵상을 시작하면 언제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었는지 모른다.
창문이 많았던 우리집에 아침 햇살이 쫙 비쳐오고, 주황색의 이름 모를 그 작은 새가 어김없이 찾아와 늘 그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없는 창문을 톡톡톡 쪼아댔다.
어느 새 밝아진 거실, 빛이 가득해진 거실은, 주님께서 내 영혼에 비춰주신 빛과 같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내가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일상적인 일들, 급하고 바쁜 일들, 걱정과 염려가 되는 일들-이 쌓여 있어도 주님과 교제하는 이 시간이 가장 중요했다.
빨리 성문을 열고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내 영혼에 주님의 빛이 환하게 비취지 않고서는 성문을 열 수 없다.
그러면 해가 있을 때 성문을 닫는 것은 무엇인가?
따로 저녁 묵상은 하지 않지만, 그날의 묵상의 은혜를 수시로 생각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니 해가 있을 때 성문을 닫는 것과 같다.
그렇게 내 마음을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성문을 늦게 열고 또 일찍 닫게 하는 느헤미야의 성벽 경계는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말씀으로 하루를 닫는 은혜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나의 삶의 경계를 튼튼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아침이다.
(묵상 기도)
주님,
갑자기 마다가스카르가 그리워집니다.
그 아침 햇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로부터 제게 주님의 빛을 쉬지 않고 비추어 주시니
주님의 영광을 보고 노래하는 자가 됩니다.
주님의 빛으로 채워지지 않고서는 하루의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그 빛으로 저의 죄를 보게 하시고,
그 빛의 십자가로 달려가게 하옵소서.
제 안에 죄악 된 본성, 그 내부의 적을 십자가로 처리하게 하셔서
날마다 보혈로 정케 되는 은혜, 승리의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