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호외판(...)으로 내 놓았던 `구이소 창고`가,두달간의 휴업을 접고 얼마 전에 다시 `창고 43`이란 이름으로 여의도에 개업을 했습니다.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지요.
좋은 고기를 손님들에게 내놓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하셨다가 그리되니 마음이 아팠었습니다.부끄러웠었지요.
쇠고기는 조금만 질이 떨어져도 돼지고기보다 훨씬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품질관리에 철저하시던 모습이 참 기억에 남았었는데.
소식을 듣자마자 찾아갔습니다.
이전개업을 하셨더군요.전보다야 위치가 훨씬 좋아졌습니다만,여전히 조금 구석진 것도 사실.
위치는 KBS별관 옆,인도네시아 대사관 옆에 있는 `영창빌딩` 지하 1층입니다.5호선 여의도역에서 내려서 찾아가시던가,용산 또는 여의도에서 버스로 KBS별관에서 내리시면 될 듯합니다.
여전히 꽁지머리 주인장님께서 잘 맞아주시더군요.얼마나 반갑던지.
(참,최근에 꽁지 자르셨습니다)
반찬은 여전히 단촐합니다.특유의 파무침,깍두기,날양파,날고추,감자.정말 거기서 끝입니다.그 흔한 기름소금조차도 `고기맛 버린다`고 안 내놓는 고집이라니,정말.
최근 추가된 메뉴인 육사시미를 권하시길래 한번 불러 보았습니다.
살짝 얼린 다리쪽 부위를 얇게 저며서 내주시더군요.우리 요리인 `육회`랑은 분명히 다른,정말 `사시미`쪽에 가까운 음식이었습니다.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먹거나,기름된장과 마늘 반쪽과 같이 먹으면 좋습니다.
원체 고기,특히 쇠고기는 재료의 질이 90%니까,그날그날 맛이 조금씩은 다르지만,전반적인 감상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흔해터진 표현밖에 안 나오더군요.다만 이것이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입에서 녹는다는,그런 차이일지.
먹고 있으면 무슨 자신이 요리만화에서 요리대회 심사위원이나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는,입안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면서 사르르 녹아내린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정말 재료맛이 아니고서 나올 수 없는 극상의 맛이더라는.
이어 이집의 간판메뉴인 `창고 스페셜`을 시켰습니다.안심,제비추리,꽃살,치마살 등등 등심부분과 소의 특별한 부위만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전에는 22000원이었는데 올라서 26000원이더군요.솔직히 그래도 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고기 질을 생각하면요.
특유의 두터운 무쇠철판을 한참 달구어 놓고는 소 지방덩이를 가져다 녹였습니다.치이 하는 소리와 냄새가 참 기분이 좋습니다.
이어 부위별로 나온 고기를 사람 수만큼 얹습니다.
이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 절대 원칙은 `속도전`입니다.절대 사람 수 이상 얹지 말고 머릿수대로만 얹어서,10초 굽고,다시 뒤집어서 10초 굽고.그리고 먹으면 됩니다.
주인장께서는 파무침에 싸서 먹으라고 하시지만,제가 봤을 때는 고기의 맛을 그대로 느끼려면 그냥 아무것도 곁들이지 말고 먹는 게 제일 좋습니다.그 볼륨 넘치는 고기를 한입에 쏙 넣으면 그만인 것이지요.
쇠고기구이가 가장 맛있을 때의 두께가 1~1.5cm란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이집은 그 원칙에는 초 충실합니다.10초-10초 씩 잘 구우면,정말 미디엄 레어로 구워진 스테이크를 먹는 기분입니다.
(여기서 고기 먹고부터는 웬만한 스테이크는 입에 차지 않게 되어버렸지요)
추천하는 것은 가장 안쪽의 등심살과 안심.문자 그대로 살살 녹는 편이지요.나머지도 나름껏 씹는 맛이 특별하고,볼륨감이 넘칩니다.입안에서 넘쳐나는 육즙을 음미하고 있으면 그대로 행복하지요.
벽에도 주인장께서 자신있게 써붙여 놓으셨지만,정량 200그램을 넘었으면 넘었지 부족하지 않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듯,웬만하면 1인당 1인분만 시키셔도 절대로 배가 부릅니다.여자분들은 1인분이면 남습니다.채산성이 나쁜 게 아닌 거지요.`1그램이라도 모자라면 돈을 한푼도 안 받겠다`고 호언장담하고 계시니,도리어 걱정이 될 지경입니다.
사이드로 내놓은 생양파와 얇게 썬 감자를 중간중간에 같이 구워먹으면 좋습니다.쇠기름에 튀겨지다시피한 감자는 기름이 스며들어 프렌치 프라이 따위는 저리가라 하게 풍부한 맛을 냅니다.
차돌박이도 있습니다.손으로 썰었다는데 손칼질은 아닌 것 같지만,얇게 썰어놓은 차돌박이는 웬만한 돈까스 사이즈입니다.이쪽을 굽는 것은 등심보다 더한 속도전으로서,올려놓자마자 치익 하고 그대로 익어버리기 때문에 그야말로 번개같이 구워내야 합니다.얇은 고기의 살코기 부분이 하얀 핑크가 되었을 때가 제일 맛있고 부드럽더군요.
맛은 뭐랄까,졸깃한 맛과 느끼한 지방의 맛이 서로 극점을 달리는 듯한 느낌입니다.두점 이상은 먹기가 힘들어요,솔직히.아주 맛있고,쫄깃하고,입안에서 육즙이 넘쳐납니다만,약간은 과유불급이라고나 할까.이건 그저 1인분 시켜서 한두점씩 나누어 먹으면 꼭 맞을 것 같습니다.
반찬은 위에 적었지만 파무침과 깍두기지요.이집 파무침은 한때 `엑스터시`를 넣었냐는 소문으로 유명했는데,저야 엑스터시는 잘 모르겠지만서도,조미료나 설탕 등을 전혀 넣지 않기 때문에,순수하게 파맛이 나는 이 파무침은 고기랑 참 잘 어울립니다.파의 진액이 스며나와 무진장 미끈미끈한 게 특징이지요.고기의 느끼한 맛을 잘 지워줍니다.깍두기도 달지 않으면서 아주 적당한 맛이 좋습니다.자꾸 입에 넣게 되지요.소박합니다.
식사류로는 깍두기볶음밥과 동치미국수가 있습니다.고기를 구운 무쇠철판을 식빵으로 닦아내고(이 닦아낸 식빵이 의외로 맛있습니다.버터로 구운 토스트 같아요!!!) 참기름과 잘게 썬 깍두기와 국물을 넣고 끓이다가 밥을 넣어 볶습니다.맛은 평이하면서도 싸하니 개운해서,뒷음식으론 아주 그만이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치미국수를 더 좋아합니다.이집 동치미는 시골에서 담아온다고 하는데,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라 고기에 지친 입안을 그대로 싹하고 씻어내려주는 맛이 있지요.대단한 별미입니다.이 동치미에 소면을 말아 주는데,인원수에 따라 나눠 주기도 하기 때문에 적당히 시키면 됩니다.살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국물과 차게 식어 쫄깃해진 소면의 조화는,웬만한 냉면을 가볍게 능가할 정도지요.
이렇게 먹고 나면 그야말로 행복해집니다.입구에 걸린 낙서판은 그전 점포에서 가져온 건데,고기맛에 대한 감동으로 가득차 있지요.제일 걸작으로 꼽는 것은 `고기맛 때문에 집에 못 가겠다.`입니다.
가격은 스페셜 26,000원,육사시미 22,000원,차돌 15,000원,볶음밥 1공기 2,000원,동치미국수 1그릇 3,000원입니다.재료가 원체 재료이니 서민 살림에 비싼 것도 사실이지만,양과 질로 대비하면 결코 나쁜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인테리어는 보통 고깃집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지만 평이합니다.전반적으로 모던할 저도는 아니라도 꽤 깔끔하달 정도는 되지요.지하로서는 썩 괜찮은 편입니다.
구석진 곳이라 찾기 힘들다는 점과,주인장분이 너무 철학이 굳건하시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심각한 단점이지요.아직까지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 아주 걱정이라,없는 사정에도 지인들을 많이 끌어들이고 있습니다.다들 먹고 나오면 한다는 소리는 `입맛 버렸다.이제 다른데선 고기 못먹겠다`라서 만족스럽기도 합니다(笑).
8월말까지는 주말 가족단위 손님들께는 스페셜을 1인당 22,000까지 할인해주신다고 합니다.주말에 들러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고기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들어오니 참고하시고요.육사시미를 먹으려면 이날이 좋습니다.저번엔 한번 일요일에 갔었는데 확실히 약간이지만 못한 것도 사실이더군요.
또 휴업이라도 하면 한명 식도락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럽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이 글 보시는 회원분들도,한번정도 들르신다면,후회되실 일은 없다고 봅니다.
부끄러운 세번째 글이었습니다.다음번에는 좀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복숭아 먹고 싶어요......엉엉)
첫댓글 여의도에는 정말 맛집이 많죠~~
아 창고! 여기서 보게 되니 정말 반갑네요! 전 창고 처음 생길 때부터 들락거렸던 창고 매니아!! 여의도에 다시 오픈 했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