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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5: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5: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5: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5: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5: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5: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5: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5:23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5:24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5:25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5: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5: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 주해
1. 엘리사는 여리고의 물 근원을 고쳐주고, 넘치는 기름으로 선지자의 제자의 가정을 돕고,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낸다. 독이 든 음식을 해독하고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이고도 남는 표적을 행한다.
1) 아람 사람에게 사로잡혀 노예로 팔린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는 엘리사가 행한 표적을 마음에 담고 있었고, 그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2) 그 소녀는 “그의 주인 나아만이 그 선지자를 만나면 병이 나을 것이라”며 하나님의 사람을 소개한다.
3) 노예로 전락한 어린 소녀는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과 엘리사를 믿고, 복음을 전한다.
2. 여종의 말을 받아들인 나아만은 왕의 친서와 군사행렬, 많은 선물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을 거처 엘리사를 찾아간다.
1) 모든 예의를 갖추고 엘리사를 찾아간 나아만의 생각과는 달리 엘리사는 사람을 보내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몸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말씀을 전한다.
2) 엘리사는 요단 강물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만의 겸손한 순종에 하나님이 치유로 응답한다는 뜻이었다.
3) 자기주장의지가 올라온 나아만은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4) 하지만 종들의 권면을 받아들인 겸손한 나아만은 말씀에 순종하였고 나병은 치유된다.
3. 나아만은 하나님이 행하신 표적을 표적으로 볼 줄 아는 겸손과 지혜가 있다.
1) 표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리켜서 하나님께로 가게 하는 기적이다.
2) 성경에는 표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표적 자체를 기뻐할 뿐,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나병이 나은 나아만은 아람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돌아온다.
4.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자 한다.
왕하 5: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 강대국 아람의 군대장관이 엘리사에게 “나는 당신의 종”이라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고백,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하여 예물을 드리겠다고 말한다.
2) 표적을 경험한 자의 완벽한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은 높이고, 자신은 낮추며, 은혜에 감사로 응답한다.
5. 엘리사는 하나님을 믿고, 자신을 낮추는 고백은 받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 나아만의 예물은 거절한다.
1) 엘리사의 거절의 의미를 알아챈 나아만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한다.
왕하 5: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2) 나아만은 “그러면”이라며 말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예물을 안 받으시면, 이 은혜에 감사를 표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러면” 하나님께만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만 섬김으로 이 은혜에 감사하겠다고 고백한다.
3) 엘리사가 원한 것도 예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라는 거였는데, 나아만은 그 뜻대로 이방 나라에서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응답한다.
4) 나아만은 엘리사가 표적을 베푼 목적대로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겠다고 응답한다.
6. 다만 나아만은 한 가지 용서를 구한다.
왕하 5: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 고대 시대에 군대장관이 국가와 왕이 섬기는 신을 섬기지 않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2) 나아만의 정직한 성품을 알 수 있다. 그는 불가피한 상황이어도 림몬 신당에서 몸을 굽히는 것에 대하여 용서를 구한다.
3) 엘리사는 그에게 ‘평안히 가라’고 한다. 하나님은 피치 못하는 상황을 이해하시고 평안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해 준다.
4) 나아만처럼, 아합 때의 오바댜 처럼(왕상18:4) 신앙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평안하라”고 하신다.
7.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하여 표적을 행하시고, 나아만은 그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아름다운 마무리에 탐욕을 가진 게하시가 끼어든다.
1) 가난한 선지자의 제자들에게 국을 끓여 먹게 하는 엘리사의 현실, 수넴 여인의 배려로 작은 방에서 쉬는 엘리사를 볼 때, 엘리사는 부유하지 않았고, 사환인 게하시는 그것이 불편하거나 불만이었던 것 같다.
2) 엘리사가 나병을 치유해 주었고, 나아만이 예물을 받으라고 강권하는데, 굳이 예물을 거절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반감이 든 것 같다.
3) 엘리사와 자신에게 필요한 것도 많고, 도울데도 많다는 핑계를 대면서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을 취하고자 한 것 같다. 그것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 취한다.
8. 게하시는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 엘리사의 부탁이라면서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구한다.
1) 나아만은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강권하여 주고 그의 종으로 하여금 지고 가게 한다
2) 게하시는 나아만이 준 예물을 자기 집에 감추고 그의 종들을 돌려보낸 후 엘리사 앞에 선다.
3) 엘리사가 그에게 어디를 다녀왔느냐고 묻자, 게하시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다고 속인다.
9.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마차에서 내려올 때 자기 영이 함께 있었다고 하면서 말한다.
왕하 5: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왕하 5: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1) 엘리사가 책망하는 이유는 “지금”은 감사를 표하는 예물을 받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10. 엘리사가 말하는 “지금”은 언약을 떠난 이스라엘의 총체적인 상황 때문일 것이다.
1) 오므리 왕조는 하나님을 떠나 반역하고 있고, 백성들은 왕을 따라 여로보암의 죄는 기본이고, 바알을 숭배한다.
2) 선지자의 제자들 공동체가 생기긴 했지만 그들의 삶은 어렵고, 흉년까지 겹쳐 있다.
3) 엘리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때,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야 할 때, 좁은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을 드러내어, 선지자들과 이스라엘을 깨워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 같다.
11.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다.
1) 엘리사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표적을 행하였으나, 자기가 했다고 함으로 하나님 노릇하거나 자기를 주장하거나 인정을 구하거나 보상을 원하지 않았다.
2) 이것은 나아만의 나병 치유에도 마찬가지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치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므로 이 치유로 인하여 어떤 보상이나 인정도 자신이 받기를 원치 않는다.
3) 엘리사는 모든 선한 일은 주님이 하신 것이라는 바울과 동일한 믿음으로 사역하고 있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2. 엘리사는 자기주장이 없이 오직 주님이 하셨다는 믿음으로 시종일관 사역하고 있다.
1) 나아만은 온갖 예의와 정중함으로 인하여 잠시 자기를 주장했다가, 다시 겸손히 말씀에 순종함으로 치유 받고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신앙의 길로 간다.
2) 게하시는 엘리사를 수종드는 사환에 불과하면서도 자기를 주장하고, 보상과 인정을 바란다. 엘리사를 수종드는 댓가로 보란듯한 대접과 보상을 받고 싶어 한다.
13. 안타까운 것은 엘리사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표적을 많이 듣고 본 사람이 게하시다. 게하시는 엘리사가 행하는 그 모든 사역, 즉 말씀과 표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것을 다 옆에서 지켜보았다.
1) 그러면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것 같은데, 탐심이 가득하여 자신은 물론 자식까지 나병에 걸리는 저주를 받고 만다.
2) 그런데 이런 일은 특이하지 하고 일반적이다. 예수님 시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하심을 늘 가까이하는 자들에게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14. 안 모태 보다는 모태신앙인들 중에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거나 예배 태도가 불손한 사람이 많다. 평신보다는 항존직이나 목회자들이 자기를 주장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는 사람이 많다.
1) 사람은 익숙해지면 경외감을 놓치기 쉽고, 반복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신선함이 사라진다.
2) 하나님의 역사도 오랜 세월 반복해서 경험하거나 지켜보면, 별로 새롭지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도 시큰둥해 진다.
3)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가 없이 오랫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게하시가 되고, 바리새인이 되고, 제사장들이 된다.
4) 그리하여 자기를 주장하여 자기 영혼은 사망에 처하고, 교회의 훼방자요, 성도들에게는 상처를 주는 자가 된다.
15. 정말 어려운 것은 게하시 같은 사람은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도 절대로 자신이 게하시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분명히 자신을 엘리사나 나아만이라고 여길 것이다.
1) 게하시는 분명히 엘리사가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탐심을 경계하고, 교만을 경계하라는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2) 그러나 게하시는 그런 경고는 다른 사람에게 해당한다고 여기고, 자신은 위대한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이니 자신은 틀림없이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오랜 세월을 살아 왔을 것이다.
16. 누가 게하시인지 어떻게 알까? 게하시는 게하시를 보고 자신이 절대 게하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하시에게 일어난 일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자가 바로 게하시다.
1) 어쩌면 게하시가 나병이라는 저주를 받은 것이 복이다. 이 나병을 통해 자신의 교만과 착각을 깨닫고 다윗처럼 심판을 받아들인다면, 게하시에게는 이 저주가 참된 복이 된다.
2) 게하시같은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게하시 같이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주의 놀라운 긍휼과 자비를 구한다.
◈ 나의 묵상
나아만의 겸손과 정직을 묵상하려고 했는데, 마음을 찌르는 말씀은 게하시다. 사역자로 말씀을 전한지 23년째다. 공통점이 있다. 교만하지 말 것을 설교하면 교만한 자는 듣지 않고, 상대적으로 겸손한 자들이 듣는다. 충성하라고 설교하면 나태한 자들은 듣지 않고 나름 충성하는 자들이 듣는다. 선한 일을 하여 자기주장의지로 사망에 처하는 말씀을 전하면 자기를 주장하는 자들은 듣지 않고 나름 주님의 은혜임을 아는 자들이 듣는다. 생명의 교제를 설교하면 생명의 교제를 하려는 자들이 듣지, 생명의 교제를 하지 않는 자들은 듣지 않는다. 즉 게하시를 살리는 말씀을 게하시는 절대 듣지 않는다. 충성된 사환처럼 보이는 게하시는 말씀을 듣지 않고, 이방나라의 군대장관이 말씀을 듣는다.
처음 본문을 보고 내가 게하시임을 몰랐다는 것에 ‘아차’했다. 게하시는 말씀을 보고도 자신이 게하시임을 모른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엘리사나 나아만보다는 게하시와 같음을 보게 하셔서 감사하다. 내가 게하시임이 보인다는 것은 그래도 심각한 게하시는 아니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게하시가 이해된다. 풀타임 사역을 하게 되면 엘리사가 되던 게하시가 되던 두 길 중에 하나의 길을 가게 된다. 풀타임 사역은 말씀이던, 표적이던 하나님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듣고 접하게 된다. 주안에서 생명의 교제 가운데 풀타임 사역을 하면 바울처럼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엘리사 같은 사역자로 자라간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험하면서도 생명의 교제 안에 있지 않으면 일과 스트레스, 그리고 익숙한 영적인 일들 속에서 게하시가 되어져 간다.
마음은 엘리사의 길을 가기를 원했으나, 내가 원하는 바 엘리사의 길은 가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게하시의 길을 걸었다. 대학 때의 순수함을 그대로 가진 친구나 후배 목사를 보면 참 부럽다. 다수의 사역자들이 게하시의 길을 간다. 그리고 나도 다수가 가는 신대원, 전도사, 부목사, 담임목사, 세미나와 제도의 길을 가면서 게하시가 되어져 왔다. “지금이 어찌...받겠느냐”는 말은 엘리사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당연하다. 그리고 게하시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사역과 역사로 인한 작은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게하시처럼 속여서 받지는 않겠지만, 내가 엘리사라면 나아만이 강권할 때, 어느 정도 받았을 것이다.
게하시가 어떻게 엘리사가 되는지, 그것은 외적인 사역과 신앙생활이 아니라, 내적인 신앙생활,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의 마음으로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져야만 한다. 내가 게하시임을 아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하나님이 나를 나병의 저주에 두지 않기 위하여, 게하시의 자리에서 십자가로 오라 하신다. 습관이 되고 자기를 주장하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신다.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 나를 낳으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 그 사랑으로 게하시의 교만과 탐심을 물리친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납하신 주님은 생명의 길, 엘리사의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 묵상 기도
주님, 게하시는 자신을 게하시로 여기지 못하고, 게하시의 저주가 자신의 것임을 보지 못하고 결국 게하시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제가 영적 착각과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풀타임 사역은 축복된 부르심이지만 정말 위험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직업이 되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지만 게하시가 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나도 모르게 게하시의 길을 가도록 유혹을 받고, 속임을 당하고, 그 길을 걸어 왔습니다. 누가 감히 내가 게하시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여 언제나 게하시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면 엘리사의 길, 좁은 길, 생명의 길, 겸손의 길을 가지 못합니다. 긍휼을 베푸사, 성령의 조명과 생명을 주는 복음으로 항상 옛사람과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선명하게 나타나게 하옵소서. 항상 제 안에 있는 게하시를 말씀으로 드러내시고 심판하실 때, 다윗처럼 심판을 받아들이는 제사를 드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교회 안에는 늘 게하시가 있습니다. 그 게하시는 자신이 절대 게하시임을 모르는 자입니다.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 게하시로 산다면 그 또한 큰 불행입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금요일에 수술하는 서형섭 목사님의 수술과 치유, 회복의 모든 과정을 선한 손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창조주의 손길로 만져 주십시오. 수술 후, 회복과 치유과정이 쉽지 않은 신정아 전도사님의 몸과 마음도 온전히 주장하여 주옵소서. 위로부터 부어지는 치유와 평안으로 함께 하옵소서. 이 기간에 사랑으로 동역하는 교사들에게 하늘의 기쁨과 성령충만함과 삶을 도와 주십시오. 다음 세대들이 영으로 하나님을 알도록 성령님 일하여 주옵소서. 비유도 사역 중에 있습니다. 수시 입시도 진행 중입니다. 모두 주님이 돌보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