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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중리초등학교 '등굣길 잉글리시 존' 자투리시간 활용 독특한 프로그램…"영어 두렵지 않아요" | ||||||||||
14일 오전 8시 대구 중리초등학교 정문 앞. 이른 등교시간임에도 불구,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영어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등굣길이 갑자기 소란스럽다. 학생들은 정문에서 현관으로 이어진 등굣길 곳곳에 마련된 '잉글리시 존'(English Zone)에 옹기종기 모여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운동장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영어를 말하는 학생, 적당한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개구쟁이들로 '시장터'를 방불케 했다. 매일 아침 중리초등학교 등굣길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이 학교는 3월 초부터 영어 듣기·말하기 능력 신장 방안으로 '영어 한마디로 아침을 열어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오전 8시~8시 30분 교문과 학교 현관 사이에 마련된 잉글리시 존에서 전교생과 전 교직원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영어 교과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부터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까지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교문부터 현관까지 '잉글리시 존'을 5단계로 나누어 3학년 수준부터 자유회화 수준까지 자신에게 맞는 회화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단계는 3학년 학생, 2단계는 4학년, 3단계는 5학년, 4단계는 6학년 학생들을 위한 구역이다. 3~6학년 각 반에서 선발된 16명의 도우미들은 학년에 맞춰 4단계로 나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이 학교 5학년 이서민양은 "아침 일찍부터 큰 소리로 말했더니 목이 아프지만 친구들이랑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어 학원보다 더 재미있다"고 좋아했고 영어학원에 다녀본 적 없다는 박문영양도 "그동안 영어학원에 다니고 싶었는데 학원에 다니지 못해 속상했다. 이제는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5학년 도우미로 활동하는 조희정양은 "하루에 한 마디라도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고 도우미로 뽑히기 위해 영어시간에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 이은주양은 "많은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서 이 시간이 매우 즐겁다"고 했다.
이들 학생이 교실로 향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마지막 관문은 다문화 가정 홍수원(1학년)·홍정원(2학년) 자매의 어머니 마리아 에밀리 빌라룬씨가 운영하는 '자유회화존'. 학년별 단계를 통과한 학생들이 거쳐야 하는 최종 단계인 셈이다. 이곳에서는 교과과정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때로는 날씨가 주제가 되기도 하고 학생들이 입은 옷이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날은 에밀리씨의 볼록한 배가 화제가 됐다. 임신 4개월째인 에밀리씨의 모습이 신기했던지 개구쟁이들이 자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자유회화존은 학생들이 외국인과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친숙해질 수 있도록 만든 학교 측의 배려다. 이 학교는 또 학생들이 당황하지 않고 회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 단위로 미리 대화 내용을 알려주고, 성취욕을 북돋워 주기 위해 매일 프로그램 참가 인증서를 발급하고 있다. 인증서를 많이 받은 학생에게는 별도로 포상할 예정이다. 또 교사들이 직접 나서 학년에 맞는 맞춤식 교재를 제작해 무료로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김재진 교감은 "영어로 말할 기회가 부족한 환경에서 이 프로그램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영어 듣기·말하기 능력을 기르는 데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이 학교가 아침영어교육에 나서게 된 것은 이 학교를 둘러싼 열악한 교육환경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서다. 중리초등학교는 교육환경으로만 따지자면 도심 속 '외딴 섬'이다. 공단이 인접해 있는데다 학구 내 아파트가 한 곳도 없을 정도로 척박한 교육환경이다. 전교생 313명 중 30%에 해당하는 98명이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 한부모나 시설수용,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다. 또 상당수 학부모들이 일용직으로 근무하다 보니 자녀교육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곳 교사들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대구 전 지역의 초·중등학교에서 실시하는 '방과 후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대다수 학생들이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세방골'이나 '가르뱅이' 지역에 살고 있어 학부모들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뒤늦은 귀가를 달갑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고민을 거듭하던 교사들이 내놓은 묘안이 바로 '아침 공부법'. 등교시간을 30분 앞당기고 이를 활용해 지난해 독서교육에 나선 데 이어 올해부터는 영어교육에 나섰다. 또 수업 전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연산등급제, 담임 기초학력 책임제, 수업 전 기본학력 다지기 등 이 학교만의 독특한 학습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효과는 생각보다 빨랐다. 전교생의 학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 실제 지난해 6학년을 대상으로 치른 국가수준 학력평가에서 기초미달학생은 국어 2.6%, 수학 1.3%, 사회 1.3%, 과학 0%, 영어 2.6%에 불과할 정도로 학력미달 학생들이 줄었다. 이 같은 결과에도 불구, 김대훈 교장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차라리 기초학력이 낮아 기초학력 중점 지원학교에 선정됐으면 관계기관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아쉬움도 있습니다. 대구도심이라도 학교 간 교육여건에 많은 차이가 있는 만큼 이에 맞는 시교육청 등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합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2010년 04월 20일 - |
첫댓글

실정에 맞게 교육환경도 바꾸어가는 것이 중요하지요.


대안학교도 많이 생겨나는 즈음에..
주변 환경에 따라 자율적으로 바꿔가는 중리초교 선생님들의 노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