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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3일 일요일 종종 비, 맑음. 해발 3600m의 라파스 국제공항에 내렸다. 겨울 복장 그대로 비행기에서 내리니 적당했다. 좀 춥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주섬주섬 가방에서 두꺼운 곳을 꺼내 입고 있었다. 반 팔 티셔츠 차림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볼리비아 도착 비자를 받기 위해 이미그레이션 직원에게 다가갔고, 그 직원은 내게 공항 밖에 있는 환전소를 알려주었다. 공항은 일반적으로 환전율이 좋지 않다고 들었지만 워낙 입국 비자비가 비싸서 200불을 환전했다. 그리고 다시 이미그레이션으로 가 도착비자를 무사히 받았다. 도착비자는 1인당 627볼이다. 6개월 전만 해도 360볼(55000원)이었다고 하는데 갑자기 배나 뛰어 배가 아팠다. 1인당 비자비가 10만원 정도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 한국에서 받아가지고 가면 공짜인데, 워낙 바빠서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나중에 볼리비아 대사관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기존 비자 수수료 미화 51~53불에서 현행 미화 90~95불로 인상했다고 공지하고 있다. 반드시 미화 지참 후 공항내에 있는 환전상에서 볼리비아 돈으로 환전 지불해야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5년 10월 17일 볼리비아 한국대사관에 공지된 내용이다. 더 웃기는 것은 이 비자 수수료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91불인데, 우리 뒤에 줄을 선 미국인은 146달러를 받고 있었다. 그것도 환전하지 않고 순수한 달러로 받고 있었다. 엄청 비싸다. 이 나라에 들어가려면 할 수 없이 달라는 대로 주어야한다. 반듯하게 영수증도 발급해 주고 있다. 남미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객들은 페루나 칠레를 통해서 볼리비아로 입국하기 때문에 보통 이 두 나라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신청하고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자 관련 서류만 구비하면 현지 대사관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내가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우리 같이 공항 도착 비자를 받으려면 필요한 것은 여권과 627볼의 돈 단 두 가지이다. 이 때문인지 볼리비아 입국 심사를 진행하는 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하물 찾을 것도 없어서인지 착륙 후 약 20분 후 처음으로 볼리비아의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라파스 국제 공항(EL ALTO)은 국제 공항이라고 하기에도 무색할 정도로 그 시설이 열악해 보였다. 우리나라 청주나 무안 공항과 비견할 수도 없을 정도이니, 남미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답다. 택시를 잡는 것은 비자 받는 것만큼 쉬웠다. 공항 밖에는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며, 우리는 택시를 하나 잡아타고 숙소를 찾아간다. 수첩에 적어 50볼에 한국에서 출발 전 예약했던 시내에 위치한 Hotel Castilla(Av. Iturralde No. 1239, Centro, La Paz, , Bolivia,1박 17불 약 2만원)데려가 주는 데 합의를 보았다. 드디어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간다. 공항이 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택시는 자꾸만 내려간다. 창밖에 펼쳐지는 도시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황토색으로 가득한 작은 집들이 산 정상까지 가득 했다. 양 옆으로 펼쳐진 산에는 나무 한그루도 보이지 않고 붉은 빛이 도는 다닥다닥 붙어 올라간 집들로 가득한데 처음 대하는 우리는 놀라고 말았다. 카메라를 꺼내 들어보니 고맙게도 택시 기사는 차를 세워준다. 이렇게도 사는구나. 첫 볼리비아의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20분쯤 달렸을까, 택시 기사는 우리를 호텔에 내려주었다. 우리가 라파즈 공항을 빠져 나온 시간이 오전 7시 20분 정도다. 숙소에 도착하니 7시 40분, 너무 일찍 도착을 했는데도 주인은 호텔 문을 열어주고 또 방을 준다. 고마웠다. 체크 인 시간이 안 되어 방을 주지 않으면 가방이라도 맡기려 했는데 504호 방 키를 준다. 5층이다. 가벼운 맘으로 올라가려하니 발이 무겁고 머리가 무겁다. 숨이 차서 도저히 빨리 올라갈 수가 없다. 딱 이 때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고산병 증세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별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힘들게 올라온 숙소는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뜨거운 물이 잘 나오고 창문이 커서 좋았다. 창문 밖으로는 주변의 건물들과 집들이 내려다 보여 좋다. 멀리 산 중턱에는 집들이 가득하다. 반대편에는 축구장도 보인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 한단다.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할 때, 자기 나라에서 경기를 하면 이웃나라 축구 최강 브라질도 이긴단다. 고층 빌딩들도 많이 보인다. 주변에 식당이 보이지 않고 이른 아침이다. 아침 식사를 마땅히 사먹기가 그래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여기도 전기가 110 볼트다. 포터에 전기를 이용하여 라면을 두 개 끓여서 아침으로 했다. 맛있다. 먹고 나서 포터를 씻어 누룽지를 한 주먹 넣고 물을 끓였다. 구수한 숭늉이 가득하니 흐뭇했다. 먹고 배가 부르고 밝은 대 낯이니 숙소에 있기가 답답하여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지도를 찾아서 숙소의 위치를 파악하고 주변에 볼거리를 찾아보았다. 제일 가까운 곳이 낄리낄리(kili kili Mirador) 전망대다 숙소에서 고개 들고 그냥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오후 5시 이후에 위험하니 절대 가지 말라는 곳이다. 오르는 길목의 마을이 위험하단다. 남미는 뭐든지 위험하다고 씌어있다. 작은 배낭을 하나 만들어 등에 매고 숙소를 나섰다. 다리가 무겁고 숨이 차고 머리가 띵하다. 약간 눈이 튀어 나올라고 한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아내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런대로 잘 걷는다. 좁은 골목의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정 힘들면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른다. 생각보다 경사가 급하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햇볕만 가득하다. 어렵게 정상에 올라섰다. 몸은 힘들어도 기분은 좋다. 시원한 바람도 분다. 눈 아래 펼쳐진 전경은 확 트여있어 좋다. 좁은 계곡에 만들어진 엄청 큰 도시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사는 개미집 같다. 큰 비가 오면 모두 쓸려 내려갈 것 같은 집들이 언덕에 가득하다. 우리가 지금 내려가면 찾아갈 방향을 유심히 보니 오래되 보이는 교회도 보이고 고층 빌딩도 보인다. 별로 나무가 없어 모두 드러난 건조해 보이는 도시다. 전망대는 공원처럼 가구어 놓았다. 꽃도 피어 있고 나무도 몇 그루 있다. 아주 오래되 보이는 비틀어진 고목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아래 벤치도 있다. 의자에 앉아 쉰다. 하늘은 손이 닿을 듯 선명하고 남들보다 먼저 받은 햇살은 어지러울 만큼 찡하다. 가을 날시 같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6402m 높이의 알리마니 산마저 동네처럼 가깝게 다가올 정도다. 한 층이 마치 3층처럼 느껴지고 미미한 경사도 고스란히 느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게 되는 곳이다. 그래서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낮은 곳에, 한 뼘이라도 높은 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동서남북을 돌아보니 낮은 곳으로 갈수록 고층빌딩이요 남쪽으로 낮아지는 곳이 부자들이 사는 곳이란다. 라파즈는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수도다. 3백년간 스페인의 통치로부터 남미를 해방시킨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서 만든 나라 볼리비아의 수도는 ‘평화’ 라는 뜻을 가진 라파즈 도시다. 차가 다니는 길 외에는 모든 길이 계단으로 된 느낌이다. 해발 3680m의 고산지대로 라파즈를 걷는 것만으로도 힘든 지역이지만 소금사막이 있는 우유니를 가기 위한 관문 중 하나로 이곳을 거쳐 가야 한다. 볼리비아에서는 동양인과 비슷한 피부색을 가진 원주민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며 남미에서 원주민 비율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수도 라파즈만 보더라도 이를 느낄 수 있다. 허름한 판자촌에 좁은 도로, 독한 매연을 뿜어대는 낡은 차들의 모습이 한 나라 수도의 모습이다. 칼리칼리 전망대 올라가서 바라보는 수도의 모습이 초라하지만 라파즈에는 문화유산이 등재된 파차마마 유적지도 볼 수 있으며, 하늘과 가장 가까운 호수 띠띠까까, 그리고 침식작용으로 모래바위가 형성된 달의 계곡들을 볼 수 있다. 이제 내려가야겠다. 택시를 타기에는 아직 체력이 있다. 내려가는 길은 좀 쉽다. 산 프란시스꼬 광장을 향해서 걷기로 했다. 정문으로 나가려니 입장료를 내라고 할 가봐 좀 걱정되어 옆길로 내려왔다. 입장료는 없다. 출입문에 사람도 없다. 아직 출근도 안했나보다. 좀 뻥을 치면 사람보다 개들이 많은 것 같다. 누렇게 맛있게 생긴 개들이 길에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다.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군침이 넘어 갈 잡견들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 같다. 개들은 대체적으로 순해 보인다. 먼지와 매연 그리고 차량 소리에 거리가 혼잡스럽다. 걷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무리요 광장에 들어섰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멋진 식민시대 풍 건물이 가득하다. 식민시대에는 여느 남미 국가들처럼 아르마스 광장이라고 불렸으나, 이후 첫 번째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이 광장에서 교수형을 당한 뻬드로 도밍고 무리요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광장 중앙의 무리요 동상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의사당, 박물관, 시립극장 성당 등 라 빠스를 대표하는 건물들이 둘러서 있다. 광장 남쪽에 있는 우아한 건물은 대성당과 대통령 궁으로 정문에는 19세기 복장을 한 군인이 지키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광장의 주인은 비둘기가 아닐까? 엄청 비둘기가 많다. 생각한 것보다 광장의 규모가 작았다. 비둘기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다 멋지지만 국회의사당 건물이 제일 무게가 있고 멋져 보인다. 국회의사당 건물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 시계로 유명하다. 자꾸 올려다 봐도 재미있다. 분홍색과 흰색으로 치장한 3층 건물의 대통령 궁은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헌병 둘과 붉은색 모자와 상의가 특이한 근위병 3명이 현관 앞을 지키고 있다. 동상을 중심으로 한 광장에는 커다란 성탄 트리가 세워져 있고 흰색 철 구조물로 만들어진 아기예수 탄 생 모습이 만들어져 있다.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동방박사 3사람이 만들어져 있다. 무뚝뚝해 보이는 흉상이 대통령궁 건너편에 있다. 대성당은 묵직하고 경건한 느낌을 준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웅장하고 높다. 예배중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흰색 옷을 걸친 신부님이 강론을 하고 있다. 꼬메르시오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걸어간다. 넓은 보행자 거리다. 식민시대 건물들이 길가에 늘어서 있는데 화려한 색상으로 칠해진 건물이 인상적이다. 현대적인 상점이 들어서 있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과 원주민 복장을 한 아낙네들이 어우러져 걷고 있어서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묘한 느낌을 준다. 이제 막 상점을 여는 가게도 있고 거리 중심에는 노점상이 펼쳐진다. 계속 걸어가니 육교가 나타난다. 육교 밑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센뜨로를 관통하는 마리스깔 산따 끄루스 대로다. 잘 가꾸어진 꽃밭이 가운데 있고 북쪽으로 가면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이다. 육교에서 바라보는 시내 풍경도 좋다. 북쪽으로는 언덕 위로 가득어우러진 집들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산 프란시스꼬 광장 앞에 바글바글한 사람들과 차량의 풍경이 보인다. 우리는 북쪽 버스터미널로 일단 발걸음을 옮겼다. 노란색 철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터미널이다. 들어서니 버스 회사들이 많다. 자기네 버스를 타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우리는 내일 가기로 맘먹은 우유니 버스를 알아보았다. 15번A 창구에는 Panamericana 버스가 있고, 18번 창구에는 Panasur 버스가 있다. 마침 한 국 아가씨 둘을 만났다. 스페인어를 아주 잘한다. 우유니를 간단다. 오늘밤에, 16번B에 있는 Omar 버스를 알아보았다. 아가씨들의 도움으로 내일 가는 표를 예약했다. 아내가 계속 머리가 아파 힘들어 하니 고산병 약을 적어준다. altitude 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말을 적어주었다. 터미널을 나와 약국을 찾기로 했다. 아내가 무척 힘들어한다. 걸어 내려오는 길은 매연과 크락션 소리, 먼지와 엔진 낡은 차량의 엔진 소리로 복잡하고 무질서하여 짜증이 난다. 산 프란시스꼬 광장을 향해 걷다가 약국을 발견했다. 반가웠다. 적어준 쪽지를 보이며 약을 샀다. 아가시들이 적어준 가격보다 비싸다. 페루가 더 저렴한 것 같다. 그래도 약을 5 알(1알 4볼) 정도 산 것 같다. 일단 가지고 있는 물과 함께 약을 먹었다. 산프란시스꼬 광장에 도착해서 성당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쉰다. 성당 앞에는 성탄 트리가 있고 아기 예수 탄생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녹슨 쇠조각을 이용해 아기에수, 마리아, 요셉 그리고 동방박사들, 당나귀, 닭, 양, 소, 그리고 리마도 만들어 놓았다. 날개를 펼치고 있는 천사의 날개는 좀 무거워 보인다. 옥수수 뻥 튀기를 하나 사서 먹었다. 아내는 먹기 싫다고 쭈그리고 앉아 있다. 광장 천막 아래는 체스판이 펼쳐져 있다. 커플 둘이 심각하게 체스를 두고 있다. 광장에는 원주민들이 더 많이 보인다. 아낙네들의 복장이 특이하다. 모자를 머리에 올려놓고, 통큰 화려한 치마와 곱게 딴 머리카락 그리고 대체적으로 뚱뚱한 체구에 둥그렇게 보인다. 어깨에 맨 보자기는 가방 겸, 아기 포대기 겸, 시장바구니 겸 다 용도다. 성당 골목길에는 달러를 비로산 환전소들이 줄지어 있다. 달러는 6.95, 유로화는 7.2볼리다. 공항보다는 환율이 좋다. 갑자기 아내가 토해버렸다. 여기에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아 서둘러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아내의 상태가 심각한다. 오후 1시경이다. 아내는 시차와 밤새 비행기 타기, 거기에 고산증세 까지 겹쳐 무리를 한 것 같다. 계속 헛구역질로 화장실을 뛰어다닌다. 무척 안쓰럽다. 호텔 카운터에 내려가 사정을 설명해 보니 약 두 알과 코카차 와 뜨거운 물을 마련해 준다. 코카차를 마시고 약을 먹어도 다 토해버리니 대책이 없다. 침대에 누워 오후 내내 씨름을 한다. 잠을 자지 못하고 기침과 구토로 밤을 맞이했지만 증세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밤새 잠을 못자고 두통과 구토로 허둥대다가 새벽에 아스피린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다. 나도 새벽 5시경에 누룽지를 끓여 먹고 다시 고산병 약을 먹었다. 머리도 개운해지고 눈도 아프지 않았다. 약 효과가 약 8시간을 간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누룽지를 계속 끓여 물을 마셨다. 이렇게 볼리비아에서의 첫날은 꼬박 밤을 샜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걱정이다 앞으로 우유니를 가야하는데 거기에서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대를 3일 동안 지내야 한다. 그때 걱정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