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조윤수
1943년 경남 진주 출생, 2003년 <수필과비평> 등단, 저서 <발길을 붙드는 백제탑이여!> <나의 차마고도(茶馬孤道)> <명창정궤(明窓淨?)를 위하여> <나도 샤갈처럼 미친(及) 글을 쓰고 싶다> <바람의 커튼>
구운 김 넉 장을 부스러기 나지 않게 가위로 자른다. 옛날에는 이렇게 주방에서 가위를 쓰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가위는 이처럼 주방에서 칼과 함께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주방가위도 최소한 두 종류는 있어야 한다. 음식물을 잘게 자를 때나 끝을 자를 때는 짧고 끝이 뾰족한 것이 편리하다. 포기김치를 자를 때는 큰 가위가 필요하다. 밥 먹다가도 가위는 등장한다. 고기 전을 먹기 좋게 작은 가위로 자른다. 음식점에 가도 메뉴에 따라서 가위와 집게가 식탁 위에 등장하기 마련이다.
음식 재료의 포장지를 뜯기는 어찌나 어렵고 힘든지 칼보다 가위가 편리하다. 손의 힘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포장지를 자르는데 가위가 항상 옆에 있게 마련이다. 어쩜 요리는 포장지를 자르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우리 집에도 가위가 종류마다 많다. 주방가위 두 개, 안방 경대 서랍 안에도 가위가 큰 거, 작은 거, 거실의 문방사우 중에도 여러 가위가 있다. 먹과 벼루 쓸 일은 별로 없어도 가위는 자주 사용한다. 아이들 방을 보면 공작가위도 여러 종류다. 물론 내 집에도 의료용 가위와 바느질가위가 있긴 하다. 가장 작은 것은 뜨개실을 자르는 금 가위다.
집안에서 뭔가를 들고 주위를 둘러볼 때마다 여기저기서 가위들이 ‘저요, 저요’ 하는 것 같다. 마치 조선 시대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 같다. 바느질에 필요한 일 곱 가지 기구가 서로 제가 제일이라고 논쟁을 벌였듯이…. 현대의 아낙들은 바느질할 일이 별로 없다. 결국, 규중칠우 중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은 교두각시라 이른 가위인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안 살림하는 데 등장하는 기구 중에서 가위가 제일인가 싶다. 남편 없이는 살아도 가위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새삼스럽게 가위가 이렇게 편리하고 고마운 존재로 진화된 세상이 되었는가 싶다. 진안에 들어선 세계 최초 가위박물관을 관람했다. 가위박물관이라니 좀 의아스러웠고, 생경했다. 우리의 예상을 뒤엎은 가위박물관은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가위를 통해서 세계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 사람이 평생 수집해온 놀라운 가위의 역사였다. 진안에 가위박물관이 생긴 것은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가위의 손 구멍 같다고 한 데에 있다는 것도 자못 흥미로웠다.
더욱이나 진안 용담댐 수몰 지역에서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가위가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야릇한 신비로움을 더해 주었다. 요리뿐 아니라 재단이나 의료가위 등도 예술품으로 변천해온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도자기를 통해서 세계 미술사를 꿰뚫어 볼 수 있듯이 가위도 그러한 미술의 사조에 맞춤한 것처럼 발전해왔다.
가위와 인물도 흥미롭다. 조지4세 가위, 한나 가위, 올가 가위 등 인물을 통한 이야기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고대 왕들의 권위를 상징한 보검의 장식처럼 가위 양다리에 각종 문양을 아름답게 조각했다. 가위의 예술이었다. 화려한 조각의 빅토리아 가위, 프랑스에서 나타난 근대의 아르누보 가위, 예술적 사조까지 아우른다. 의료용 가위로는 의술의 역사까지 거슬러 알 수 있다. 부엉이 앞에 가위를 세우면 가위는 부엉이의 안경이 되고, 인형 앞에 세우면 귀여운 인형의 안경이 된다. 자르는 일보다 악서사리 역할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전위예술로 표현되기도 한다.
월계수양복점 간판 가운데는 가위 문양이 있다. 양복점의 훌륭한 재단사가 되는 것이 꿈이란 여자 재단사는 남자 친구로부터 아주 잘 생긴 재단가위를 선물 받았다. 그녀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할 아주 귀한 선물이었다. 안데스 고원 지방의 야산에는 비쿠냐라는 낙타과 사슴 같은 동물이 있다. 이 동물 털은 아주 보드라워서 그 지방 사람들의 좋은 수입원이란다. 털을 깎는 가위라고 하는데 내가 본 가위 중에 가장 큰 사이즈였다. 머리 구멍은 하나뿐이다. 가위 다리를 껴안고 털을 깎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재단가위다. 나도 작은 가위 하나를 선물 받아 휴대용으로 가방에 넣고 다닌다. 바깥나들이 할 때 애용할 셈이다. 옛날 여인들의 은장도를 대신할 요량으로.
우리는 매일 자르며 산다. 자르는 일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한번 실수하면 본래의 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뜨개실을 자르면서 생각했다. 자르는 일을 많이 하면서 정말 잘라서는 안 될 그 무엇을 생각한다. 잘라서 다시 이으며 흠집 내지 않을 것. 꼭 잘라서 더 좋은 관계가 될 것이라면 아픔과 상처를 남기더라도 과감히 자를 일. 만나서 관계 맺고 헤어지며 사는 일이 가위로 자르듯이 되는 일은 아니다. 한번 맺은 인연은 뒤돌아서더라도 어딘가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마련이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인생이 결국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라도 가위로 끈 자르듯 토막 낼 일이 아니다. 재단부터 잘 해서 마무리까지 정성을 들여야 한다.
완성이 없는 인생이지만, 관계로 시작되는 인간 사회에는 아무리 자르려 해도 잘리지 않는 마음의 세계가 있다. 어떤 생명도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 것이 생명력이지 않은가. 마치 가위의 사북처럼 두 다리가 움직일 수 있어야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련 없이 잘라야 할 것이 있다면, 내 원고의 내용일 것이다. 문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나 군더더기를 잘 골라서 자를 일이다. 아니면 문장을 잘 고르는 성능 좋은 족집게를 개발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예술작품처럼 잘 생긴 기구가 아니래도 원고 내용만은 예술품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도구라면 더더욱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