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성인(海東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도 동이족(東夷族)이요, 주역과 역법(曆法)을 창안했다는 희화자(羲和子)는 물론, 농사법과 의학을 발전시켰다는 염제 신농씨와 황제 헌원씨도 동이족이다.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성군(聖君)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도 동이족이요, 갑골문자, 상형문자, 표의문자, 한문자(漢文字)를 만든이도 동이족이며 백이(伯夷)와 숙제(叔弟)까지도 동이족이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위키백과의 설명을 싣습니다 (2016년 8월19일 기준 업데이트).
동이(東夷)는 중국 역사에서 동쪽에 사는 이민족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다. 동이는 특정 민족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중국의 동쪽에 존재한 여러 이(異)민족들을 '동쪽 오랑캐'라고 얕잡아 부르는 말이었다. 동이라는 말은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하였다. 한나라 이전의 동이는 현재 중국의 산둥성, 장쑤성, 허베이성 일대에 살던 이민족을 구분 없이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 이민족은 춘추 전국 시대를 거치며 대부분 한족으로 흡수되었다. 한나라 이후 중국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동이라는 용어는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만주, 한반도, 일본 등지에 거주하는 이민족을 부르는 말로 변화되었다. 오늘날 한민족(韓民族) 원류를 형성하는 부여, 고구려, 백제, 예맥, 삼한 등이 동이로 불리었으며, 말갈, 선비, 오환, 왜 등도 동이로 불리었다. 한국의 일부 재야사학 인사들은 동이 전체를 한민족으로 간주하고 추앙하기도 하나, 동이 전체를 한민족(韓民族)과 동일시하는 시각은 타당하지 않으며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동이는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에 거주하는 이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이(四夷)'와 같이 이(夷)는 오랑캐 전체를 일컫는 대명사로도 사용되었으나, 일반적으로 동서남북 각 방위에 따라 오랑캐를 구분하여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으로 불렀다.
동이(東夷)가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은(殷)시대의 갑골문자로, 이(夷)에 해당하는 갑골문자는 尸(주검 시)와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이(夷)의 어원을 '큰 활을 가진 사람'이라 해석하였으며, '이(夷)'라는 글자가 '대(大)'와 '궁(弓)'이 합쳐서 만들어졌다는 추측이 전통적인 관점이었으나, 갑골문자의 발굴 결과와 다르기 때문에 현재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은(銀) 시기 및 그 이전 시대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에서 등장하는 동이는 주로 산둥성, 허베이성, 장시성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종족으로, 중국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여러 제왕들을 비롯하여 은나라까지 동이 출신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당시의 동이를 9개의 종족으로 구분하여 구이(九夷)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후한서》〈동이전〉에서는 이들 구이를 견이(畎夷)·우이(于夷)·방이(方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玄夷)·풍이(風夷)·양이(陽夷)로 구분하고 있으나 그 외에도 다양한 구분법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九라는 글자가 단순히 많다는 의미를 가져 구이는 동이의 수많은 종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 용법이다.
주나라 이후 동이(東夷)는 중국에 정복되고 흡수되기 시작하여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면 산둥반도의 래이(萊夷)나 장시성의 회이(淮夷) 등의 작은 세력으로 축소되었다. 한나라가 건국된 이후 동이는 모두 중국에 흡수되어 소멸되었으며, 이후의 동이는 만주·한반도·일본 열도의 종족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한나라 이후의 동이는 이전의 동이와 문화적·혈연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나라 이후의 동이(東夷)는 특별한 문화적·혈연적인 관계를 구분하지 않고 방위의 개념으로써 동쪽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오랑캐들을 한꺼번에 서술하였다. 그로 인해 문화적·혈연적인 계통상 차이가 큰 예맥족·한족(韓)·말갈족·왜족(倭) 등이 모두 동이로 서술되었다. 또한 말갈을 당나라 이후 동이에서 북적으로 바꿔 부르는 등, 방위를 제외하면 해당 종족들을 특별하게 구분하여 부르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나라 이후의 중국 역사서에서는 대체로 한민족의 기록은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이가 한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당나라 이후 중국의 역대 정사(正史)들은 주변 국가를 오랑캐로 취급하는 인식에서 발전하여 주변 국가들을 외국(外國)으로서 열전에 편성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