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왜 산이고 물이 왜 물인지/ 이건청
-조정권 시인을 보내며
이 나라 산하를 뒤덮었던 낙엽들이 지고
열매들도 떨어져 흙으로 가고 나니
산이 보이고 물이 보인다.
산이 상수리나무나 떡갈나무나
더덕이나 느타리버섯의 것들만이 아니라
흙의 것이고, 돌의 것이며
흙과 돌의 결집으로 까마득한 높이를 이루면서
중심을 잡고 서 있는 푸른 정신의 것인 게 보인다
물이 피라미나 비들치나 꺽지같은 것들이나
물속의 물이끼나 물풀같은 것들의 것만이 아니라
출렁임의 것들만이 아니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근원인 게 보인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따뜻한 물이
산골짜기를 흐르고 흘러 대양을 이룬 것이 보인다.
시인 조정권, 자네 필생으로 이룬 이 산과 물들이
한국시문학사의 우뚝한 산등성이가 되어
서 있는 게 보인다. 확연히 보인다.
독락당도 산정묘지도 품어 안은 시인 하나가
진짜 산이 되고 물이 되어
돌아와 제 자리에 앉는 것이 보인다.
산이 왜 산이고 물이 왜 물인지
이 땅의 산과 물 곁에 세세연년 태어나는 사람들은 알리라
시인 조정권 필생의 시편들이
산의 자리에서 물의 자리에서 누 만년
푸른 정신이 되고 빛나고 있는 것임을.
이 나라 산하를 뒤덮었던 낙엽들이 지고
열매들도 떨어져 흙으로 가고 나니
산의 높이가 보이고 물의 깊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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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나서 동료 시인으로부터 이런 헌시를 받는다는 것은
참 영광된 일인 것 같습니다.
관심이 없었는데, 조정권 시인의 시집을 찾아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