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사키2 - 일본 최대 규모 벚꽃을 자랑하는 히로사키성을 보고 네부타촌으로!
7월 3일 혼슈 서북부 아키타 秋田(추전) 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혼슈 최북단에
자리한 아오모리 시로 가기 위해 08시 54분에 아오모리青森(청삼) 행
기차를 타고는 동북쪽으로 달려서 11시에 히로사키 弘前(홍전) 역에 내립니다.
히로사키 弘前(홍전) 역 구내 코인로까에 배낭을 넣고는 관광안내소에 들르니
여직원은 마치 친정 오라비라도 만난듯 반색을 하는데 지도를 받아
루프 버스 를 타고 히로사키 공원 앞에 내려 해자 를 건너서 성 으로 들어갑니다.
강 처럼 넓은 해자 를 건너 히로사키 성의 정문인 추수문 을 지나 성안으로 들어서니
광장이 나오고... 얼마 걷지 않아 두번째 해자가 나타나는데 일본의 성들은
적군의 침공을 방지하기 위해 해자를 이중 으로 두르고 갈지자 로 올라가게 만듭니다.
해자를 건너니 니노마루 뜰인데 다리를 건너니 또 세번째 해자가 보이는지라 하승교
라고 불리는 다리를 건너서 성주가 거처하는 혼마루와 천수각 을 보러 들어갑니다.
천수각 은 공사중이서 들어갈수는 없는지라 나무로 망대를 만들어 거기에 올라서서
외관만 바라보는데..... 성주 가문의 문장 이 참 특이하며 숲이 울울창창 합니다.
히로사키번 초대 번주 쓰가루 타메노부 津軽為信(진경위신) 는 오우라 가문 에
양자로 가서는 여기 히로사키의 쓰가루 津軽(진경) 에 눈독을 들이게 됩니다.
1571년 5월 5일 다메노부 는 난부 가문의 다카노부를 기습해 승리하고 그후 나미오카성 을 함락시키는
등 전과를 거두고는...... 1588년 쓰가루와 소토가하마 정복 에 성공하는데, 1467년 부터 10년간
교토에서 시가전을 벌인 오닌의난 이래 일본은 200개 나라로 갈라져 전쟁으로 날을 지샜던 시절 입니다.
이후 1590년에는 히데요시 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앞세워 호죠씨 의 거성 오다와라
정벌전쟁을 일으키자....... 아키타(구보다) 의 사타케 가문과 더불어 참전합니다.
그후 다메노부는 성씨를 오우라씨 에서 다시 쓰가루(津軽) 로 바꾸었으며.... 쿠노헤
마사자네의 반란(1591년) 을 진압하고는 1592년에는 임진왜란 에 참전합니다.
주로 일본 서부와 규슈 병사들이 참전한데 비하면 이토록 머나먼 곳이니 놀랍네요?
히데요시 사후 일본의 주인 자리를 놓고 20만 대군이 교토 동쪽에서 격돌한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에서 다메노부 는 도쿠가와측 동군으로 참전하였으나....
반면에 적자인 노부타케 는 오사카 성에서 도요토미 히데요리 휘하에 있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의 서군이 도쿠가와의 동군에 궤멸당하자 아들 노부타케 는
이시다 미쓰나리의 아들 시게나리 를 데리고 돌아오니.... 다메노부 는 과거
영지 획득에 있어서 미쓰나리가 중재해 준 은혜 를 갚고자 이시다의 아들을 보호합니다.
이시다 미쓰나리의 아들 시게나리는 스기야마 하치베 라고 이름을 고쳐 신분을 감추고
히로사키번에서 벼슬을 하게 되고..... 시게나리의 여동생인 다쓰히메 는
다메노부의 삼남 노부히라의 측실이 되어 차기번주 노부요시 를 낳으니 중신이 됩니다.
도쿠가와씨에게 맞선 적의 대장 이시다 미쓰나리의 아들 을 보호하다니 간큰 짓 이네요?
1600년 전투의 논공행상에서는 고즈케국에 2천석 영지를 받는데 그쳤으며
또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질 때 번내에서 가신들이 반란 을 일으켰으나..... 토벌합니다.
그 뒤에도 쓰가루(津軽) 가문에서는 후계자 자리를 놓고 내분이 일어나 성이
함락되는 등 분란 이 이어지자.... 옛 성을 버리고는 1603년 다카오카
(高岡 고강) 에 새로운 성을 쌓으니 훗날 히로사키성 으로 이름을 고치게 됩니다.
1607년 후계자로 교토에 머물고 있던 장남 노부타케 가 병으로 쓰러지자.... 다메노부 는
자신도 병중 임에도 불구하고 삼남 노부히라 와 함께 교토에 병문안차 방문합니다.
일본 면적은 남한의 4배지만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지라 실제로는 훨씬 더 먼 거리 입니다.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걱정되어 길을 나섰으니 먼 거리 여정에 무리했던 것일까요?
부자가 교토에서 함께 사망 하니 셋째 아들 노부히라가 번주 자리 를 잇게되자...
이듬해인 1608년 노부타케의 측근 들이 장남 노부타케의 맏아들 구마치요 를 추대합니다.
그러고는 막부에 재정(裁定) 을 요청하며 쓰가루 소동 을 일으키나.... 에도 막부측은 1609년 노부히라
가 적자 임을 승인하여 이후 메이지유신후 폐번치현 때 까지 12대가 이어지는데 에도막부가 장손
보다는 삼촌의 손을 들어준 것인데 여기는 변방이라 나이가 어리면 다스리는데 어렵다고 본 것일까요?
고쿠다카(쌀) 는 4만 7천석 이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 참전으로 2천석이 추가되었고
1808년에 에도 막부 가 에조치(홋카이도) 를 막부 직할지 로 결정하는데 일본에서
쇼군은 정이대장군의 약자로 이민족인 에미시(아이누) 들을 쫓아내고 북진해 왔습니다.
쓰가루번 은 바다를 건너서 에조치(홋카이도) 의 경비 를 맡게 됨으로써 그 공로로 9대 야쓰지카
는 10만석 을 받았으며 1871년 12대 쓰구아키라 까지 이어지는 것이니 사실 이때는
홋카이도 주민은 일본인이 아니고 이민족 아이누족 이었으니 막부는 중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성의 천수각 을 구경하고자 했더니 하필 오늘은 히로사키성 혼마루 돌담 수리 공사로
인해 천수각 내부는 보지 못하고 천수각 외부만 구경하고는 되돌아 나옵니다.
마눌이 보트 타는 곳인 니시보리 승선장 이 어딘지 물어 보라기에 다시 되돌아서서
매표소에 가니..... 요즘은 해자를 도는 보트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일본에는 특히 평지에 위치한 성 마다 방어를 위해 해자 를 파서 강물을 둘렀으니,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오사카성 이지만 유람선으로 유명한건 마쓰에성 松江城(송강성) 입니다.
일본의 자랑 5대 국보성은 히메지성, 히코네성, 이누야마성, 마쓰모토성에 마쓰에성 이지요?
성의 크기야 오사카성에다가 구마모토성과 나고야성 및 도쿄성이지만 숭례문 처럼 불타서
새로 지었으니 문화재적 가치는 없다는 것인데..... 동해(일본해) 바다에 면한 시마네현의
주도 마쓰에(松江 송강) 시내에 자리한 마쓰에성 해자는 호리카와 堀川(굴천) 강 으로 불립니다.
성벽을 둘러싸고 흐르는 강으로 세곳의 승선장이 있으니, 대표적인 곳이
오테마에 승선장 堀川遊覽船乘船場 (굴천유람선 승선장) 입니다!
성벽 을 한바퀴 도는데 50분 정도가 걸리는데, 신지 호수와 이어지는
호리카와 유람선 은 오래된 나무와 새들이 지저귀는 운하이자....
뱃전에서 덤으로 뱃사공의 옛노래 를 듣는 운치와 호사 를 누리는 곳인데 예전에 저 배를
타 본지라..... 오늘 그런 유람선 을 상상해온 울 마눌은 실망이 매우 큰가 봅니다?
그러고는 다시 중호 라고 불리는 해자 를 끼고 천천히 걷는데, 벚꽃이 핀 성 을 배경
으로 안내문이 있으니..... 일본어, 영어, 한자, 한국어에 프랑스어 인가요?
오늘 우린 여름에 온지라 게시된 사진을 통해 일본 최대 규모 라는 벚꽃을 봅니다.
여기 히로사키성 은 1611년에 완성된 세겹 해자 와 보루에 6개 성곽을 갖춘 성 으로
2,600 그루 벚꽃 이 심어져 있어 만개하면 일본 제일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나요?
일본 최대 규모 를 자랑한다는 히로사키 공원의 벚꽃 은 1715년 쓰가루번 무사 가 교토의 아라시야마 에서
25그루의 벚꽃 나무를 가지고 돌아와 서쪽 성곽에 심었다는데 교토가 먼거리이긴 하지만 임진왜란 때
센다이번의 다테 마사무네는 창덕궁 선정전(宣政殿) 에 있던 "매화 나무" 를 뽑아 전리품으로 가져왔습니다.
1998년 센다이의 다이린지(大林寺) 에서 개최된 안중근 의사 추도 법회 에 참석한 즈이간지 주지
히라노소죠는 한일친선 간담회에서 와룡매 를 한국에 보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1999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추도식 에 맞춰 즈이간지 측이 400여년 만에 "사죄의 뜻" 을 담아
와룡매 자목 을 한국에 보냄으로써 남산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 식재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왕벚나무 (ソメイヨシノ 소메이요시노) 와 수양벚나무 (しだれざくら 시다레자쿠라) 에
천엽벚나무(八重桜 야에자쿠라)등 50여종 2600 여 벚꽃 나무 가 늘어서 있으니
벚꽃 축제 는 물론이고 꽃잎들이 떨어질 무렵 서쪽 해자에 있는 벚꽃 터널 안을
거닐거나 해자의 수면에 비친 벚꽃 을 바라 보는 것은..... 참으로 운치 가 있다고 합니다.
*** 일부 사진은 히로사키시 관광국 사이트에서 가져 왔습니다. ***
공원 한켠에서 정구 를 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는 잔디광장을 가로지르는데 중간에
흙길 이 나 있어 잔디를 밟지 않고도 지나갈수 있도록 해놓은게 특이하네요?
일본에서 한국에 들어온 정구는 연식(軟式) 정구 라 했는데, 19세기에 서양문명이 들어오니 중국인과 일본인
들은 영어 단어를 한자어로 번역 내지 조어했으니 Train 은 중국은 화차 일본은 기차 로, Car 는 중국은
기차 일본은 자동차 등인데...... 구기 운동에서 일본인들이 만든 말은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당구 등 입니다.
그런데 테니스 는 서양인에 비해 키가 작고 힘이 약한 일본인들에게는 무리라 여겨서
일본은 테니스공을 고무공 으로 바꾸는등 용구를 바꾸어 만들었기 때문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정구를 연식 정구 대신에 소프트 테니스 (Soft Tennis) 라고 합니다.
또 Company 는 일본은 주식회사와 사장 으로 번역하고 중국은 유한공사와 총경리 로 번역했는데, 이런
식으로 일본인들이 만든 말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 철학, 빵,
동물 식물, 낭만, 국회, 의사, 내과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 지하철 비행기, 전기 전자, 전화 수도가 있습니다.
그외에 대통령, 판사, 검사, 부장, 과장, 간첩, 출판사, 파출소, 미술, 문학에 만세삼창, 후천성 면역결핍증등
으로.... 고려대 이한섭 교수는 일본인들이 만들어 한국에 전해진 말이 3,634 단어 나 된다니 구락부를
동아리로 바꾸기도 했고, 민주주의 라는 일본말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에 민주 라는 말이 나온다지만 그건
민의 주인, 왕을 칭하는 말이니 관련이 없는지라 민주주의를 차라리 민주정 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외에도 일본인들이 만든 말에는 개인과 자유에 민족과 국민 이 있는데, 국민은 황국신민 의 준말이니 해방
후에도 수십년간 쓰던 국민학교는 초등학교 로 바꾸었지만..... 일본말 고쿠민기레인 국민의례 는 아직도
쓰는데, 먼저 번역을 시작한건 중국이니 대수, 기하, 천주교, 경찰등은 일본이 중국 번역을 받아 들였습니다.
19세기 서구문명의 도래에 중국과 일본은 번역 경쟁을 했고 한국은 일본인이 만든 말을 받아 들였는 데....
후쿠자와 유기치는 Freedom 이란 영어 단어를 놓고 우리 동양에는 저런 개념이 없는지라 몇년을 고민
하다가 불교 경전에서 차용해 자유 라 했으며, individual 은 일개인으로 번역했다가 개인 으로 정착됩니다.
일본인들이 번역(조어) 한 4천개 단어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겠지만 ロマン(로망)
을 생각하자면 우리나라 말로는 “낭만” 인데.... 오래된 꿈이나 공상의 대상
이란 뜻이니 외래어로 프랑스어 로망 Roman 은 "중세의 소설 장르" 를 뜻하니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공상적인 요소가 많은 통속소설, 애정담에 무용담 이라고 합니다.
뿌리가 같은 영어 로맨스 Romance 는 12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통속소설 이라는
뜻 외에도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 또는 자유로운 형식에 아름다운
선율을 주로한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소곡 등.... 그 뜻이 세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영어 로맨스 Romance 가 일본에 들어오니 “로망” 인데..... 그럼 돈까스, 카레 라이스에
함박스테이크, 짬뽕, 라멘, 고로케, 샤브샤브, 우동, 마이카, 포볼, 데드볼 처럼 일본어 니
일본어 사전에 로망 ロマン 은 “꿈이나 공상을 불러 일으키는 것”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원래 통속 소설 이란 뜻의 프랑스어 로망 Roman 이 독일로 건너가서는 낭만주의 Romantik
의 어원 이 되고.... 영미권에서는 달콤한 연애 가 되었으며, 이후 일본으로 건너와서는
“오래된 꿈이나 공상의 대상” 으로 변신한 것인데 한국인들은 일본의 번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히로사키성이 수리중이라 북노곽 은 못보고 욘노마루 뜰 만 잠시 보고는 되돌아
내려와서는 좌회전하여 해자 에 놓인 붉은색 아치교를 건너서는
식물원 을 먼발치로 구경하고는 계속 걸어서 동문 에 이르러 주변을 살펴봅니다.
동문인 성문 을 나서 해자 에 놓인 다리를 건너니...... 자그만 광장이 나오는데
도로 건너편에 큰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 일본 무장 이 서 있는데
히로사키성을 세운 초대 성주인 쓰가루 타메노부 津軽為信 (경진위신) 일러나?
포장마차 에서 아이스크림 을 하나 사서 손에 들고는 성벽 해자를 왼쪽에 끼고는
걸어 올라가는데... 10분도 안되어 나카초 전통 건축물 과 무사촌 을 발견합니다.
일본에서는 우메다가, 아와타가, 이시바가 및 아토가등 오래된 옛날 무사들의
저택을 부케야시키 武家屋敦 (무가옥돈) 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동북 일본 최대의 여름 마쓰리 라는 아오모리 네푸타촌 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