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文香을 따라 나선 마음의 여정
- 제 42차 정기답사 < 전남 장흥 - 문학과 친환경 체험여행을 마치고 >
삶이라는 것도
언제나 타동사는 아닐 것이다.
가끔 이렇게 걸음을 멈추고 자동사로 흘러가게도
해주어야 하는 걸 게다.
어쩌면 사랑, 어쩌면 변혁도 그러하겠지.
거리를 두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아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삶이든 사랑이든 혹은 변혁이든
한번 시작되어진 것은 가끔 우리를 버려두고
제 길을 홀로 가고 싶어하기도 하니까.
- 공지영의 <길> 중에서 -
한 해가 간다.
막 달도 저물어 가고 있다.
마음은 멈추어 서 있는데 세월만 간다.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무엇을 잃은듯한 멍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는 듯
집앞 화단.
조용히 바람에 실려 배웅하는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이파리 하나를 뒤로 한 채
못다한 미련을 가득 안고 또 다른 길을 나선다.
이른아침.
서로 교차하는 자동차의 불빛을 헤치고 짧은 시간의 이동을 끝내고 다다르니
넓은 광장 한 귀퉁이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화사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것도 잠시,
서로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 부산함을 뒤로한 채
얼어붙은 겨울 강을 지치듯 버스가 미끄러진다.
가는 길.
차창 틈 사이로 겨울바람이 기웃거린다.
뿌옇게 성에가 서려 있는 차창 위에 손가락으로 '길' 자를 써본다.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시대와 사람들을 생각하며
또 다른 길 위에 선 '나'
비우러 갔다가 채우고 오는 것이 길떠남이라지만
오늘은 무얼 채우려 함일까?
오늘, 그 길 위에 내 흔적들이 얼마만큼이나 묻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한해가 떠나감에 지난 시간들을 한꺼번에 보여 주기나 하듯이
수많은 無와 有가 교차하는 차창 밖 풍경들은 아스라이 스쳐 지나간다.
이 땅의 산과 들은 옷을 벗은 지 오래고 수북이 쌓인 메마른 낙엽 속에서
우리는 바람을 시켜 지난 추억을 꺼낼 것이다.
그러고 나면 첩첩 산골 어디쯤서 눈 소식에 숨을 죽일 테고
길고 긴 겨울은 깊어만 갈 것이다.
노루꼬리처럼 짧기만 한 겨울.
겨울의 정취를 生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을 향해 떠나는 길은 어떨까?
모놀님들이 자아내는 훈훈한 이야기꽃에 떠밀려
나는 잠시 전날 설친 잠을 보상이라도 받을 듯이
차창에 기대어 눈을 감고 몽상(夢想)에 잠겨본다.
책 한권 펼쳐들고 눈 덮인 골짜기를 향한 기차에 몸을 싣고
옆자리 낯선 동행인과 삶의 흔적을 나누는 그런 여행도 괜찮을 테고,
이름 모를 조그마한 포구(浦口).
따뜻한 연탄난로가 있는 허름한 식당에 들려
희미한 백열전구 아래에서 한 잔술에 마음을 담아
옆자리 주객과 옛 이야기하며 입맛을 느끼고 오는 여행도 좋을 테고,
때로는 터벅터벅 길을 따라 걷다 양지바른 돌담 아래
혼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촌노와 정담(情談)을 나누는 여행도 좋을 것이다.
.
.
.
.
.
장흥.
거센 눈보라를 헤치고 해풍이 다가온다.
그리고
속삭인다.
봄빛 쪽빛 바다가 아닌 삭풍(朔風)의 바다일지라도
비릿한 냄새를 동반한 바다일지라도
그 냄새는 남도인의 훈훈한 정으로 내게 떠밀려온다.
푸른 파도가 하얗게 부서져 메인 가슴을 휑하게 뚫는 겨울바다도 아닐지라도.....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백사장 위를 다소곳한 파도가 어루만지는
낭만적인 겨울바다도 아닐지라도.....
잔잔한 물 위로 초록빛이 선명한 오밀조밀한 섬들로 채색된
소박한 겨울바다를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의 남도 장흥. 찰진 그 바다가 아닌가.
모놀에 익숙하기 전.
작년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내 나라 여행 박람회장을 찾았었다.
그중 좀 특이한 부스(Booth)를 지나쳤다.
'건강 휴양촌 정남진 장흥'
내 마음은 작은 미동(微動)이 일었다.
'정남진(正南津)'.....!!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경도상 정남 쪽에 있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지도를 펼쳐보니 전라남도 장흥 바닷가와 맞닿는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동진'은 많이 알아도 '정남진'은 쉬이 알지 못한다.
강릉 정동진이 해돋이 명소로 이름나면서 유명해진 것에 착안,
전남 장흥군에서 단순 명료하면서도 강렬한 지역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착안한 것이 바로 '정남진'이라 들었다.
보통 서울사람들은 휴가를 얻는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도'를 꼽는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을 쉽게 들르는 것도 아니고,
가보고자 하는 바람이 적은 것 역시 아니지만
집을 떠나 먼 곳으로 향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리적 거리가 멀수록 나의 바람도 간절해지는 모양이다.
그로부터 나는 얼마나 많은 길을 떠났었던가?
보성과 강진에 밀려 장흥을 스치듯 지나친 채 수많은 전라도 땅을 디디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길떠남이 아니었다.
눈으로 만 보고 그냥 스쳐 지나치는 흔적이었을 뿐.
여태 살아온 내 삶 한 부분의 보상이었을 뿐이다.
얼만치 갔을까.
서해안 고속도의 거센 눈발을 헤치고 목포를 빠져나와
언제인가 옴직한 강진을 지나니 널찍한 4차선 도로가 휑하니 뚫려있다.
차창 밖 저 멀리에 월출산이 눈발 사이로 마중을 나온다.
대장님 전화가 분주함을 보니 목적지 장흥이 가까워졌음을 알리고
눈보라를 헤치고 몇 시간의 여정 끝에 다다르니 시장기를 느낀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아무리 빼어난 경치가 있다 해도 일단 배를 채워야 하는 법.
미리 연락이 닿은 군청 직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안내한 조그마한 식당에 자리를 잡는다.
장흥 삼합중 하나인 키조개와 조선시대부터 임금님 진상품이었던 장흥의 또 다른 특산물인 표고버섯.
그리고 별미인 홍탁과 석화(굴),쭈구미가 어우러진 쌈밥은
시장기를 메우기에 충분한 그런 맛난 식사이었다.
여행을 통해 얻는 즐거움 중 하나가 그 지역의 특산물이 들어간
한 끼의 일용한 식사가 아니던가.
먼저 '정선' 답사중 들렸던 '아라리촌'에서의 식사도 그러했지만
이번 장흥 답사 역시도 미식가인 내 입맛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한 그런 자리였다.
청정남도 다도해산 해산물인 키조개와 바지락회 등
남도 특유의 정성어린 손맛이 어우러진 상차림.
그리고 약간의 술과 함께 채워진 네 끼의 식사 자리는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을 정도의 제대로 된 여행중의 한 부분임을 지울 수가 없다.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쓴 장흥군청의 따스한 배려와
그런 안목을 지닌 우리 대장님의 탁월한 선택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식사 후, 바로 옆에 위치한 '귀족호두 박물관'으로 향한다.
속이 차지 않아 천덕꾸러기 취급 받기 십상인 어쩌다 사먹는 호두나무가 귀족이라니.....
그러나 나무 팔자도 진득하게 두고 볼 일 인가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그 열매가 현재는 가장 비싼 나무 열매로 기네스북에까지 올라 있고
귀족 호두란 이름에도 특허가 달렸으니 말이다.
참 별난 세상이다.
나무 대접도 옛날과는 달리 천지 차이이니 말이다.
귀족호두 한 벌 가격이 최소 10만 원에서 최대 500만 원 정도이고 명품은 부르는 게 값이라 한다.
귀족 호두는 큰 주름의 개수에 따라 양각과 3각, 4각으로 나뉜다 한다.
명품은 모두 돌연변이인 3각과 4각에서 나오는데 나무 한 그루에 10개 이하가 열리기 때문에
색상과 크기 모양이 모두 일치하는 한 벌의 명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의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희소가치도 가치이지만 일반인들이 지나치기 쉬운 호두나무를 '귀족호두'란 호칭을 붙여
우수한 품종을 지키고 묘목 보급에도 앞장서는 김재원 관장의 정성어린 실천과
'나눔과 어우러짐이 있을 때 진정한 생명을 얻는다'라는 그의 깊은 마음에,
가는 길 이만치 나와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에 무한한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잠시의 공간 이동을 하여 장터에 다다르니 어디서 신명난 노랫가락이 들린다.
야트막한 남산과 유유히 흐르는 탐진강 사이에 자리를 잡은
'정남진 토요풍물 재래시장'
이곳은 과거 전남 3대 시장(市場)으로 명성을 날렸던 장흥읍 5일장 터이다.
장흥군이 주 5일 근무제에 맞아 도시인들의 웰빙체험형 관광명소로 만들려는
자구책의 일환으로 60~70년대 풍물시장의 모습을 재현했다고 한다.
2005년 부산 벡스코에서 전국 재래시장 박람회에서 호평 속에
한국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으로 뽑혔으리만큼 명물 재래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한다.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 그런지 알려진 바와 같이 장흥 버꾸농악과 풍물놀이,
그리고 전통 놀이를 재현하는것을 엿보지는 못하였지만 타임머쉰을 타고
60-70년대 속으로 들어온 듯한 소박한 장터 분위기는
오랜 여정 끝에 점심을 한 뒤 찾아오는 노곤함을 달래나 주려는 듯
모놀 가족들에게도 주어진 흥겨운 여흥시간과 함께
훈훈한 남도 인심을 엿볼 수 있었던 흥겨운 자리였다.
옛 정취를 재현한 시장 풍경의 모습 한쪽에서 이 추운 날에도 불구하고
쭈그리고 앉아 남도 특산물을 파는 주름진 할머니의 모습에 시선이 멈춘다.
전남 장흥.
수도 서울의 정남진.
남쪽끝...
그러나 나는 끝이란 말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언제인가 해남의 땅끝마을을 찾았을 때 땅끝 표지판을 보고 땅끝이란 말을
나는 이해를 못 했다.
땅끝이 아닌 땅의 시작이란 말을 쓰고 싶었다.
아직도 되찾지 못한 우리의 땅.
저 발해(渤海) 가 있지 않은가?
고구려의 장수 대조영(大祚榮)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허허로운 저 만주벌판 끝자락이
정녕 우리의 땅끝이 아니던가.....
전라도 땅은 우리땅의 끝이 아닌 시작의 땅. 희망의 땅으로 부르고 싶다.
한평생 한을 묻고 거친 삶을 일구며 그리운 것에 목놓아 정을 주는 남도사람들.
그들이 거친 삶을 헤쳐나가기 위한 몸부림이 보인다.
비단 농어촌 사람들만의 몫이 아닌 우리 모두의 현실 아니던가.
쌀 관세화 유예비준 동의안이 가결되고,
몇몇 의원들의 외로운 절규만 의사당 건물 안에서 메아리만 쳤을뿐,
현실성 없는 무대책의 지나온 시간들이 무심하기만 하다.
아직도 나라 안팎에서 살아 남기 위한 농민들의 저항의 외침 소리가 들리는 시점에서
전라도 장흥.
황토빛 척박한 땅에서 방울 토마토,파프리카 등 친환경 농업시책 개발및
값싼 외국 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고품질의 우수 농산물 소개 시간은
소중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울러 경쟁력 있는 관광자원 개발이 시급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흥군에서 보여주는 그 열성과 노력은 가히 높게 평가할 만하다.
정남진이란 지리적 특수성을 이용하여 건립한 신동리 사금마을의 '정남진 조형 탑'.
'문학공원 조성'. '탑산사 돌탑쌓기'.'토요풍물 재래시장 개장' 등 다양한 볼거리 제공과
그리고 생태체험 관광마을로 지정된 진목마을의 '못생긴 호박축제' 와 한재 공원의
'동백꽃과 할미꽃 군락지 생태체험 나들이'와 늦가을 '천관산 억새 축제'
내년에 처음 개최 할 탐진강을 끼고 도는'전국 마라톤 대회'등 체험여행과 다체로운 행사.
또한 문향(文鄕) 고장답게 '제2 문학공원 건립'과 '장흥문예회관 건립' .
'천관문학상 제정' 등으로 문학기행을 테마로 한 관광자원 개발과
기존 우리 문화유산 답사와 연계하여
서울에서 KTX를 이용한 장흥을 관광하는 1박2일 여행상품도 운영 한다는
최예숙 장흥 문화해설사님의 덧 설명에
장흥도 얼마든지 꿈을 일 구워 나갈 수 있는 희망의 고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고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생각이 든다.
방울 토마토와 파프리카등 우수농산물 소개 시간을 끝내고
장흥 사람들의 자긍심이 배어있는 '정남진 조형탑' 으로 향한다.
엄청난 눈보라이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눈보라에도 이곳이 정남진이란 표지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고
거기서 조금 더 이동을 하니 세개의 원형으로 이루어진 '정남진 조형탑'이 눈앞에 들어온다.
'정남진 조형탑'은 중앙대 한국화과 교수이신 김선두 선생의 작품으로 작품 이름은 "둥근바다"이다.
이 작품은 둥근 바다, 둥근 땅, 둥근 하늘을 의미하는 세 개의 원형화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곡선의 가장 완성된 형태는 원이라 하여.
원에는 하늘, 태양, 우주, 관용, 완전, 회귀, 빙 둘러서 처음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등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즉, 정남진의 바다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기에 아버지의 바다라기보다는 어머니의 바다요.
모든 만물을 품어 기르는 생명력의 바다요, 지친 영혼들을 위무하는 평안의 바다요,
세상의 갈등들을 치유하는 관용의 바다다하여 소설가 이청준 선생은
“해질 녘 이 바다에 들면 나를 에워싼 땅과 섬들이 나누는 정다운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린다”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청준선생의 많은 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모든 근원적인 힘은
그의 '어머니와 고향 장흥' 에 있다고 한다.
어머니와 고향 !
모두가 품고만 싶고 따스하고 그리운 말들 아닌가.
방조제에 올라보니 눈보라가 뿌옇게 시야를 가린 채 사금 앞바다가 펼쳐진다.
조석간만의 차가 큰 바닷가의 갯벌 위에 그물을 쳐 놓은 후 밀물 때 조류를 따라
들어온 물고기 떼를 썰물 때 그물에 갇히도록 하여 잡는 전래 고기잡이 방법의 하나인
개 매기도 보인다.
그 너머 영화 '축제'의 촬영지 소박한 포구 '남포마을'이 있는데
행여 눈보라 사이로 보일까 작은 눈을 더 크게 떠본다.
그림 같은 해안선을 따라 고즈넉하게 펼쳐진 다도해.
마을 앞바다에 두둥실 떠있는 소등섬.
바위가 마치 누워있는 소의 등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소등섬.
이른 아침 소등섬을 끼고 바라보는 일출은 어느 일출 명소만큼이나 장관이라 하는데
그것을 보지 못함에 눈을 잠시 감고 시간의 태엽을 풀어본다.
아지랑이 피는 따스한 봄날 오후.
소등섬 쪽빛 앞바다에 남포마을의 울긋불긋 진달래꽃이며 할미꽃.
그리고 청보리 사이로 날아다니는 종달새의 환영(幻影)이 보인다.
한 마리 종달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나는 나를 바라본다.
아~~ 자유롭다.
아~~ 평화롭기만 하다.....
고만고만한 섬들이 떠있는 다도해의 봄볕 가득한 금빛바다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살랑살랑 봄바람 불고, 봄볕 완연할 때 다시오리라 다짐해본다.
정남진 조형 탑을 한참 맴돌다 숙소로 향한다.
눈길에 차들이 뒤엉켜 엉거주춤한다.
엄청난 눈보라로 가보고 싶었던 방촌마을 향하지 못하고 지나치니
이내 섭섭한 마음이 든다.
방촌마을은 장흥 위 씨 집성촌 이라 한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LPGA 천재 프로 골퍼 미셸 위(한국명 위성미)의 고향이라고 안 것은
약 한 달 전 미셸 위의 친척이라며 투자자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사업에 투자할 경우
'미셸 위 골프장' 운영 수익금을 받을 수 있다고 속여
투자금을 편취한 사람이 구속하였다는 뉴스 보도를 접하고 난 이후부터였다.
미셸 위의 할아버지가 지금도 장흥 부산면에 계신단다.
또한 아기자기한 유물을 한데 모아 유물박물관을 건립한 것은
그만큼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크기에 그러지 않나 생각해 본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자라 도시 문명의 이기속에 고향이 없는 내 자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옛것이 그립고 지난날들이 아쉬운 것은 비단 나뿐만 아닌데
서로 부딪히며 옛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그들의 애향정신이 부럽기만 하다.
두 번째날.
장흥 안양면 숙소 발코니에서 아침을 연다.
멀리 고흥반도를 끼고 있는 보성만 수문포구 앞바다에서 등불이 흐느적 거린다.
산 그림자가 겹겹이 명암을 드리운다.
바다하우스에서 아침을 마치고 저 멀리 떠있는 작은 어선 너머로
때마침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하니 올 한해 지난 일들이 만감이 교차한 채 마음을 추스려본다.
그 옛날.
탐라국의 배가 신라에 조공하러 강진 구강포로 드나들었다고 해서
탐라의 '탐'과 강진의 '진'을 합쳐 붙여진 '탐진강'
장흥댐으로 향하는 아침녘.
눈앞에 펼쳐지는 한가로운 탐진강의 풍경을 접하니 분주하게 이동하는 차량으로 넘치는
서울 한강의 모습과는 달리 고즈넉하고 포근하기만 하다.
물길을 좇아가다 보니 장흥댐에 다다른다.
물길을 거슬러 온 아침 강바람이 매섭기만 하다.
피어 오르는 물안개가 그야말로 장관이다.
움츠렸던 마음을 녹이려 함일까.....
아님 불우했던 우리의 지난 역사에 대한 절규일까.....
장흥댐 저 너머 유치산을 향해 분단의 아픔을 토해 내는듯 모놀가족들의 함성이 메아리 친다.
보림사 들어가는 길.
친숙함이 느껴진다.
하얀눈을 밟으며 나즈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동(東)부도밭에 이른다.
최예숙님의 해박한 장흥사랑에 푸욱 빠졌던 시간이었다.
인도, 중국과 더불어 동양 3보림이라고 하여
언제 찾아도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질 선종 종찰인 가지산 보림사.
일주문을 거쳐 사천문에 들어서니 입구에서부터 경건한 마음이 앞선다.
또한, 가지산 자락에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와 옛 물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앞마당의 약수는
속세 사람들의 찌든 때 까지도 깨끗이 씻어주리만큼 아름답고 깊은맛을 지니고 있다 한다.
전국 10대 명수 중에 하나 인데 한 번 마시고 보니 다슬기 몇 마리가 보인다.
보림사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을 비롯한
많은 국보와 보물이 엄청 많은 절이었다.
대적광전 외벽에 그려진 벽화에 고맙게도 설명이 적혀 있어 관심 깊게
한바퀴 죽 둘러 보았다.
대적광전에 매달린 풍경소리도 무척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보림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살아생전에 지은 죄값에 따라
처해지는 각종 지옥그림이었다.
명부전 외벽에 지옥그림이 설명과 함께 잘 표현되어 있었다.
한 생을 살면서 욕심 없이 살아가야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 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하여 당장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가고 있어
안타깝고 무서웠다.
나는 죽어서 어느 지옥으로 갈까.....?
예쁘게 이어지는 대웅보전 뒤편으로 동부도 숲길을 올라 가는중 한 보살님을 뵙는다.
전에 인연이 닿았던 진우스님의 안부를 물으니 기도순례를 마치시고
이미 제주도에 있는 본인의 도량으로 가셨다 하신다.
짧은 한말씀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마음을 씻어보려 하였지만
하루 차이로 뵙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다시 동부도 뒤 숲길 산책로를 걷는다.
비자나무 숲아래 대나무와 어우러져 야생차밭이 펼쳐져있다.
천년전 스님들이 중국에서 들여와 심은것이 이렇게 자생하여
큰 군락을 이루었다 한다.
하얀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어린잎을 하나 따 잎에문다.
그야말로 설록차(雪綠茶)이다.
순간 입안이 시원함과 싸한 맛을 느끼며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마음의 쉼을 얻기에 충분한 그런 시간이었다.
'모든것을 마음은 다스리고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법구경의 가르침처럼
앞서 대장님의 답사 공짓글에서도 소개되었듯이
김영남 시인은 보림사의 범종 소리를 듣고 ‘참빗’이라는 시를 썼다고한다.
먼 보림사 범종 소리 속에
가지산 계곡 예쁜 솔새가 살고 있고
그 계곡 대숲의 적막함이 있다.
저녁 햇살도 비스듬하게 세운
난 이 범종 소리를 만날 때마다
이곳에서 참빗을 꺼내
엉클어진 내 생각을 빗곤 한다.
참 간결하면서도 감추어진 정갈한 마음을 잘도 표현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비주류의 시인임에도 내적 아름다움을 표현함이 참 곱다.
아낙네들이 흩트러진 머리카락을 동백기름을 발라 곱게 빗어 내리며
머리를 정갈하게 다듬을 때의 그 마음처럼 가지산 자락에서 보림사 범종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그런 詩心을 가꾸었나보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바빠 범종소리는 듣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지만
탐진강 버들개지가 봄물이 오를 무렵.
진달래, 할미꽃길 따라 천관산 연대봉 봉화대에 올라
神이 깍아 놓은듯한 바위 절경 마주하며
득량만 앞바다. 한눈에 들어오는 올망졸망한 그림같은 다도해,
봄빛 쪽빛바다속 깊이 나만의 詩心도 느껴보고 싶고, 文香도 맡고싶다.
또한 탐진강변 동백정에 걸터앉아 선인들의 풍류도 느긋하게 느끼면서
눈보다는 마음으로 전해지는 보림사 범종소리에
마음을 투명하게 담군채 '선학동 나그네'가 되어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버스가 강진으로 공간 이동을 한다.
향토색 물씬 풍기는 영롱한 순수 서정시로 이름을 얻었던 시인 영랑 김윤식.
영랑생가 올라 가는 길에서 만난 '모란 빌라', '영랑세탁소'
김영랑 시인을 기리는 마음에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
낡고 칙칙한 간판이 '모란이 피기 까지는' 이란 그의 시처럼
시간의 흐름에 퇴색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영랑 生家는 강진군청 뒷동산 야트막한 중턱에 소담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삼 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 같다.
한철이라 모란꽃은 졌지만 인위적으로 심어 놓은 말라붙은 모란꽃과
안채 뒷뜰 동백숲과 대나무 숲이 어우러져 이곳이 김영랑시인의 생가라고 말할 뿐,
육중한 자태로 뽐내고 있는 영랑詩碑가 아직도 세월의 무던함을 안은 채 여직 자리 잡고있다.
영랑생가 초가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훤히 내려다보이는 읍내를 바라본다.
햇볕이 따사롭다.
하늘이 참 파랗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은유적 표현으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노래했던 아름다운 그의 詩.
그 시절에도 지금의 파란 저 하늘처럼 파랗을까? 생각해 본다.
식민지 현실 속에 만연한 인간적 상실과 좌절을 뼛속 깊이 느꼈을
영랑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다.....
이제는 모든 마음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문림의향(文林義鄕) 장흥을 거쳐 강진을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함일까?
버스에 오르기 전,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코끝을 감싸는 담배 연기 탓일까?
아님 갑자기 내리는 소담스러운 눈이 내눈으로 들어간 탓일까?
이내 내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쉽지 않은 짧은 1박의 여정이었지만 바라던 그 소망을 이룸에 마음이 꽉 찬 그런 느낌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무언가 텅 빈 그 마음은 무얼까?
'文香을 따라 나선 마음의 여정'
비록 초청 행사로 이루어진 답사라 장흥의 걸쭉한 문인들의 그 향기를 맡지는 못하였지만
마음으로 본다는 것.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였다.
느낀다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라 하였거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므로 느끼고, 들리는 것에 의해 마음속에 담아둘 수만 있다면
이러한 것이 무엇보다 더 진실하고 소중하게 다가오기에
이 세상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올라오는 길.
고속도 휴게소에서
길가는 한 나그네가 묻는다.
여행은 왜 하냐고......?
아마 내 살아있는 동안에 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는
나에게 주어진 영원한 삶의 旅程이기에......
.
.
.
.
.
다시 일상의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텔레비전의 많은 이야기가 오늘도 아침부터 거실을 가득히 채우고,
여기저기서 묻어온 휴일의 이야기들은
옷과 함께 세탁기속에서 분주히 돌고 있다.
어지럽고 나약하기만 하였던 올 한 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바라본다.
다사다난했던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보내며
차분히 마음을 추스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두 번째 답사.
언제나 이맘때는 늘 그러하듯이
저무는 한 해 끝자락에서
앞으로 또다시 다가올 시간의 긴 여행과 아름다운 여정을 위하여
이제는 가는 해를 바라보며 그동안 더럽혀진 마음을 버리고 비워야 할 시간이다.
또 다른 길 위에 서 있을 자신을 생각하며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
자신을 되 돌아보는 그런 시간을 조용히 가져 보아야겠다......
인연!
인연이란
서리처럼 겨울담장을 조용히 넘어오기에
한겨울에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고 누군가가 그랬듯이
모놀가족과의 인연.
장흥과의 인연.
참으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차곡차곡 고이 접어 소중하게 가슴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좋은 답사를 마련해 주신 장흥군청과
휴일도 반납한 채 늘 함께 해주신 장흥군청의 친환경 농정과의 노옥기 계장님,
이영상님, 전남도청의 김영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어느 누구보다도 장흥을 사랑하시는 '문화유산해설사' 최예숙님
부족함 많이 채워 주심에 진정 고맙습니다.
남도 장흥의 멋과 美. 그리고 情과 맛에 푹 빠졌던 뜻깊은 답사에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종달새 날고 할미꽃 피는 따스한 봄날 다시 한번 꼭 찾아 가보고 싶단 생각 듭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십시오.
2005. 12. 20. WOOD™
Song Of The Reed ( 갈대의 노래) / Tim Mac Brian 의 앨범中 "Emerald Forest"
첫댓글 캬~
꺄옥~~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오빠!
14년전의 우드님이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