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부대변인과 여당 국회의원들에 이어 이번엔 용산구청장의 망발이 터져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박장규 구청장은 용산참사가 난 날 "(이 사람들은) 세입자들이 아니에요. 전국을 쫓아다니면서 개발하는 데마다 돈을 내놓으라고…. 그래서 떼잡이들이에요"라고 비하했다. 또 참사의 원인도 "이 사람들이 데모를 해가지고 오늘 무슨 사고가 났다 그럽니다"라며 세입자들에게 떠넘겼다 한다.
그렇지 않아도 박 구청장은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용산구청"이라는 전대미문의 현수막을 구청 앞에 걸어놓고 철거민들의 하소연을 내쳤던 것으로 물의를 빚어온 터였다.
고위 공직자인 구청장의 말과 행동이라 도지히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현수막 사진은 물론 박 구청장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녹취록까지 인터넷에 공개됐으니 사실로 보인다.
건설업체 출신, 부동산 재산만 36억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런 엽기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걸까. 용산구청 홈페이지에 실린 이력을 보면 ㅇ토건, ㄷ개발 등 건설업체 출신으로, 구의원을 거쳐 구청장이 된 이력이었다.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 중 상당수가 건설업체 출신인데 박 구청장도 비슷한 경우다.
다시 인터넷 전자관보(gwanbo.korea.go.kr)로 들어가 2008년 3월 28일자 정부 관보를 보면 박 구청장이 신고한 부동산 재산은 모두 36억원에 달했다. 본인 명의로 18억원대 건물 한 채, 차녀 명의의 8억원대 건물 한 채 등 건물만 두 채고 3억짜리 단독주택 등 건물재산이 28억원에 달한다. 또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강원, 경기, 경북, 충북 등 4개 도에 걸쳐 11건의 토지 8억원 어치도 소유하고 있다.
해당일자 관보에 공개된 구청장 재산은 서울시내 25개구 중 강서구와 강동구를 제외한 23명의 목록인데, 박 구청장은 4번째로 부동산 재산이 많았다.
70대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
다음은 며칠 전 한 신문에 실린 기사내용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남일당 빌딩 맞은편 건물에서 27년간 식당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호프집으로 바꿔 새 출발을 했던 이상림(71)씨.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자 막내아들 충연(36)씨를 따라 망루에 올랐다.
그러나 20일 오전 망루가 불길에 휩싸였고 미처 망루를 빠져나오지 못한 이씨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충연씨는 간신히 빠져 나왔지만 유독가스를 마시고 입원해 있어 아직 아버지 소식을 듣지 못했다. 충격받을 것을 우려해 가족들이 비밀로 하고 있는 것.
충연씨의 부인 정영신(36) 씨는 "남편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버지는 괜찮으시냐'고 물어보는데 뭐라고 답할지 모르겠다"며 흐느꼈다. (<동아일보> 1월 22일자 '사망자 유족의 애끓는 사연들' 기사중에서)
너무나 억울해 편안히 잠들지도 못하고 있을 고 이상림 씨의 영혼은 박 구청장이 자신을 '세입자가 아니라 떼잡이'라고 한데 대해 어떤 심정일까. 이상림 씨와 박 구청장은 같은 70대다. 다만 박 구청장이 36억원대 부동산 부자인 데 비해, 이씨는 일흔이 넘도록 남의 건물에 세 들어 식당과 호프집을 하며 버거운 삶을 산 게 다르다.
만약 박 구청장처럼 수십억원대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전 재산을 다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재개발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씨에게 죄가 있다면 부동산 재산이 적다는 것 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런 망발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청장이 구민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보도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세입자들과 협의가 되지도 않은 관리인가처분을 내주고, 세입자 임대주택 대상자도 줄이고, 심지어 집주인들이 세입자들의 이전비를 주지 않는 것도 눈 감아 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왔다고 한다. 관련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세입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집주인들과 건설업체에 유리한 행정을 펴온 것이다.
이 대목은 주목된다. 박 구청장이 용산 4구역 재개발과 관련된 일 처리만 제대로 하고, 세입자들의 절규를 '생떼쓰지 말라'는 현수막을 내걸면서까지 내치지 않았더라도 일이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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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민 참사가 발생하기 전날인 19일 오후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 용산구 한강로 2가 5층 건물 바로옆 1층에 철거용역들이 붉은 색 스프레이로 '이사가라' '철거' 등 위협적인 낙서와 해골 그림을 그려 놓았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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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민 열 중 여섯이 세입자인데…
서울시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7년 말 기준으로 용산시 주택 보급률은 102.3%로 용산구민 전체가 가구당 한 채씩 내집을 갖고도 집이 남아도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러나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말 기준으로 용산구민의 40%만 자기 집이 있고, 58%는 셋방에 살고, 2.4%는 무상주택 등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용산구 거주자 중 가구기준으로 4618명은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하고 있으며, 이 중 1143명은 세 채 이상 소유한 집부자로 나타났다. 세 채 가진 사람은 530명, 네 채는 240명, 다섯 채는 113명에 달한다. 6~10채 가진 집부자도 190명이나 되고 11채 이상 가진 집부자도 70명에 달한다.
셋방 사는 4만4000여 가구 중 36%는 전세에 19%는 보증금 있는 월세방에, 3.2%는 보증금 없는 월세나 사글세에 살고 있다. 전세가구의 평균 보증금은 2005년말 기준으로 7614만 원이고, 월세가구의 평균 보증금은 1490만원이며 평균 월세는 36만원이다. 보증금 없는 월세가구의 평균 월세는 49만원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인구수로 10만 명이 넘는다.
더구나 용산거주 가구의 10%인 7357만 가구 1만8000명이 지하방에 살고 있지만, 용산구 안에 있는 공공임대주택은 재개발과정에서 지은 50년 임대주택 897채가 전부다. 영구임대, 국민임대, 다가구매입주택은 한 채도 없다(2005년 기준). 또 2006년 9월 사업계획 승인 기준으로 앞으로 5년간 공급예정인 공공임대주택은 한 채도 없다.
세입자 외면한 구청장, 참사 책임 느껴야
이런 상황에서 구민을 대표하는 구청장이라면 집 가진 사람 특히 집을 여러 채씩 가진 사람만을 대변할 게 아니고, 그 보다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하는 58%의 셋방사는 구민들을 돌보고 대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박 구청장이 재개발 과정에서 취한 태도는 셋방사는 세입자들을 용산구 밖으로 내쫓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그것도 제대로 보상도 해주지 않고 말이다.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박 구청장은 '용산이 전국 230개 자치구 중 제일 으뜸이 됐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박 구청장처럼 부동산 재산이 많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셋방 사는 사람은 구민으로 여기지 않고 내쳐온 박 구청장이야 말로 용산 참사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다. 돌아가신 분들과 유가족, 용산구민 나아가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공직자 이전에 인간으로서 이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세입자 가슴에 대못 박는 망발을 일삼는 공직자 대부분이 수십억원대 부동산 부자들이다. 이들이 집 없고 땅 없고 건물도 없는 부동산 서민의 서러움을 알기나 할까. 망발을 일삼은 고위 공직자들도 가족과 함께 설 명절을 쇨 터인데, 영안실에서 가슴을 쥐어뜯고 있을 유가족들을 한 번 쯤 생각하면 어떨까. 그래서 설 뒤에는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게 하는 망발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죄가 있다면 부동산 재산이 없어 가난하다는 것밖에 없는 고 이상림씨와 세입자들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며, 설 명절이 더 비통할 유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
첫댓글 부자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