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3일 묵상 본문 : 느헤미야 7장 61절 - 73절 - 복음의 참된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함으로 주의 일에 동참하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지난밤은 습한 기운 때문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늦은 시간 주께로 나아갑니다.
흐트러진 몸과 땅의 것으로 채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 앞에 설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육신의 회복을 허락해 주시고 주의 보혈로 마음과 영혼을 정결하게 씻어 주옵소서.
새 영과 마음을 가지고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주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마음과 주의 생각을 가지게 하시고 모든 일에 신중함으로 반응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은 서목사님의 망막박리 수술이 있는 날입니다.
은혜로 이끌어 주시고 모든 수술이 온전하게 진행되어 눈이 회복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방사모님 어머니의 상황도 기억해 주시고 지키시는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긍휼과 자비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61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종족이나 계보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 할 수 없으니
1차 포로 귀환자들 중에 이스라엘 지파나 가문에 속했는지 불분명한 자들의 명단으로 그들이 귀환한 5개의 지역을 밝히고 있는데 그곳은 모두 바벨론에 속한 곳으로 추측하며 642명이었다.
62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가 육백사십이 명이요
63 제사장 중에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불린 자라
1차 포로 귀환자들 중에 자신들이 제사장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시만 이것을 입증하지 못한 자들을 언급하면서 호바야, 학고스, 바르실래 자손들을 언급한다.
64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찾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은 제사장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기에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없었다.
65 총독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총독은 1차포로 귀환 당시의 총독인 스룹바벨을 의미한다.
66 온 회중의 합계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7 그 외에 노비가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그들에게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사십오 명이 있었고
노래하는 남녀는 당시 이스라엘의 부유층 사람들이 여흥이나 장례시에 기쁨이나 슬픔을 드러내기 위해 노래하는 자들을 고용한 것으로 추측한다.
68 말이 칠백삼십육 마리요 노새가 이백사십오 마리요
69 낙타가 사백삼십오 마리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 마리였느니라
70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총독은 금 천 드라크마와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1차포로 귀환 당시 이 일을 위해 기부한 족장들을 소개하고 있고 총독은 스룹바벨을 말한다.
당시 1드라크마는 8.4g정도로 천 드라크마는 8.4kg이었다.
71 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2만 드라크마는 168kg이었으며 마네는 570g으로 2200마네는 1,254kg이었다.
72 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느니라
73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
7장에서 1차포로 귀환자의 명단에 언급되었던 자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느헤미야가 찾게 된 1차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에서 귀환자들의 총 합은 42,360명이었다.
유다 백성들 가운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적어도 2-30만 명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4만 명의 사람은 그다지 많은 사람이 아니었음을 볼 수 있다.
포로로 간 사람들 가운데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정착하여 편안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폐허가 된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꺼려했을 것이다.
육신의 이익과 편안함을 생각한다면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무익한 일이며 불편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의 귀한은 언약의 성취를 바라고 소망하는 일이었으며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었다.
이 일의 가치를 아는 자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물질적, 육체적 희생을 기꺼이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제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씀하셨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눅14:31~35)
참된 가치에 대한 희생은 그 가치를 알 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의 가치를 알 때 그것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마음을 가지게 됨을 의미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제자로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알 때 가능한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성도의 가치와 의미를 알기 때문에 성도로 살아갈 수 있다.
그 가치를 알게 해주는 것이 복음이며 성도가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과 자비, 인내와 긍휼 등 감당할 수 없는 희생과 사랑의 가치가 담겨 있음을 알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려고 힘쓰는 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포로 귀환자들 가운데는 계속되는 이방민족의 침입과 거주할 조건이 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다시 느헤미야를 통해 다른 곳에 있던 사람들도 돌아오게 만드시고 예루살렘이 온전한 도시로 회복되도록 이끄시는 손길을 보여주신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주의 은혜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다가 주어지는 현실의 고통과 믿음의 흔들림으로 잠시 방황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회복되도록 만드신다.
그리고 참 된 가치를 알고 깨달은 자들은 다시 주께로 나아가는 은혜를 경험하면서 더욱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며 백성들이 함께 연합하여 온전함이 이르기를 기대하는 자가 된다.
성도의 삶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향해 나아가는 백성들의 모습과 같음을 느낀다.
그 과정에는 많은 희생과 자기부인의 과정이 필요하며 언약의 가치를 알고 그 언약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고난과 핍박을 각오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복음의 가치를 아는 것, 언약의 내용과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것을 세상의 복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나오려는 자들은 모두 실망하여 믿음에서 떠나는 자가 된다.
그래서 언약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하며 복음을 통해 생명을 얻는 일이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에 있지 않고 성벽을 세워 대적들과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의 일임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도 그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참된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사명임을 기억하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가는 자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고난과 핍박을 피하고자 쉽게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는 모습이 저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도로 살아가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백성들의 모습과 같음을 고백합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무너진 성벽과 이방민족들의 약탈, 그리고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모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러한 삶의 가치를 배워야 함을 고백합니다.
쉽게 지치고 벗어나며 참 된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환경에서 찾지 않고 주의 언약에서 찾는 자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그 길을 가기 위해 힘쓰는 자 되게 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날마다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