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열어 주님을 보게 하소서.
열왕기하 6.15-23
시 작 기 도
혼돈과 어두움으로 삼키려하는 죄악과 죽음의 세력에 경계를 세우시사 넘치지 못하게 하소서. 주님이 엄히 붙잡고 계심을 보게 하소서. 과거에 있었고 다 지나간 것들을 붙잡고 나 자신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죄책감과 후회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소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을 온전히 보게 하소서.
본 문 요 약
하나님의 사람의 시종이 아침에 밖을 보니 강한 군대가 성읍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두려워 말라 저들 편에 있는 사람보다 우리 편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그러자 그 시종의 눈이 열려서 온 산에 불 말과 불 수레가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루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시리아 군대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엘리사가 기도했습니다. “ 주님 이 백성을 치사 눈을 멀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엘리사의 기도대로 그들을 쳐서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들에게 그들이 찾고 있는 길과 성읍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기를 따라오면 그들이 찾는 그 사람에게로 데려다주겠다고 하면서, 그들을 사마리아로 데려갔습니다.
사마리아에 들어서자마자 엘리야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눈을 열어주셔서 보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마리아의 한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이것을 보고 엘리사에게 그들을 쳐서 쓰러뜨려 버릴 것이냐고 재촉하며 물었습니다. 엘리사는 왕이 손수 칼과 화살로 잡은 포로들도 죽이지 않을 것이면서 이들은 왜 죽이냐고 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대접하여 먹게하고 그 상전에게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큰 잔치를 베풀어 그들을 먹고 마시게 한 뒤에 그들을 그들의 상전에게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 뒤로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본 문 의 뜻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대하여 그 언약안에 거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받은 소명인 거룩한 나라, 제사장 나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그 백성을 소중한 보물로 간직하시는 것입니다(출19.5-6).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과 성경의 주제로서 베드로전서 2.9절 같은 곳에서 명확히 재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택함을 받은 민족으로서, 왕,제사장,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모세와 그 후임자는 바다와 강의 장벽을 건너고 생명샘물을 내고 공급하고 생명의 말씀을 받고 실천하여 마침내 주님의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그 소명, 주제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강물을 가르고 나아가며 물을 고치고 공급하고 생명을 살리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최종적으로는 예수님과 사도 및 제자들이 생명샘을 내고 공급하고 생명을 살리는 사역으로 모든 민족에게 사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도와 제자들의 후예들입니다.
이스라엘의 남북 왕국이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 사명에 함께 참여하는 동시대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바알신앙이라는 우상을 버리고 온전한 언약백성이 먼저 되고 주님의 영광을 주변 모든 민족에게 드러내어 그들을 주님께 몰려오도록 하는 소명이 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는 그 소명을 위한 도구로써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명과 사명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눈이 열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사랑의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죽음도 불사하고 신실하신 주님이신 인격체이신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볼 수 있어야 신앙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대적하는 영적인 세력이 있으며, 그 대적보다 주님의 능력과 보호하심이 비교할 수 없이 큰 것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주님의 이름‘을 아는 것 입니다. 주님의 성품, 뜻과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신실은 얼마나 큰지, 그리고 얼마나 넓은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의 사랑의 대상이 어디까지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온 세상과 온 우주를 향한 구원을 품고 계시며 그 핵심에 모든 민족들을 구원하고 회복하시는 뜻을 품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로잡은 시리아 군대를 살려서 잘 먹이고 보내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습니다.
이방백성들이 주님의 눈이 멀게 하여 주님을 찾지 못하지만 엘리사의 인도로 주님께로 인도되어서 주님이 계시는 나라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먹고 마시고 살게 됩니다. 여기서 엘리사는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였고 그들을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엘리사와 같은 사람이 되고 그런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눈을 열어서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도 눈을 떠서 하나님을 찾아 올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선택한 자들이 성령에 의해서 눈이 뜨게 되어야 주님께로 올 수 있습니다. 모든 민족을 주님께로 이끄는 일은 그들의 눈을 열어 주는 기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참 하나님이 계시고 그 대적 악마와 그를 따르는 영과 사람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라고 모든 민족을 향해 기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눈이 열려 보아야 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주님을 보고 주님의 법을 보고 주님과의 관계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노래하는 시119편 18에서,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눈을 열어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보는 눈으로 땅끝의 모든 민족들의 눈이 열려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쪽만 보면서 그들을 위해 사역하면 그들도 한 쪽만 보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나 의 묵 상
(비참함)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잘 못보고 대적과 그 세력도 잘 알지 못하니 영적인 길에 잦은 실패가 있었습니다. 신앙의 출발점에서 열려야 하는 데 나는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한 것은 신앙생활을 오래한 뒤입니다. 주님을 못보고 그분의 이름을 못 보고 주님의 임재를 못보는 사람이 어떻게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고 갈 길을 가겠습니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리고 양쪽 눈이 다 열려 보아야 하는 데 한 쪽만 보기도 했습니다. 치우친, 왜곡된, 불완전한 신앙형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나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내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라고 하시며 초점을 맞추어 주셨고, 부활생명을 주실 때 내 눈을 새롭게 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는 주님과 함께 죽었고 장사되어 무덤에 내려갔습니다. 나의 어두움은 깊이 장사되었습니다. 이제 부활의 영광이 나를 비추고 계십니다. 거기서 무엇이 죄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보게 하시고 새롭게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이제 주님을 온전히 바라봅니다.
(아버지품) 주님이 생명 주셔서 내 눈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품으로 인도하십니다. 나는 그 길을 보며 아버지의 품으로 나아갑니다.
기 도
내 눈을 열어주셔서 주님을 보게 하소서. 십자가 아래에서 내 눈의 초점을 맞추어 주님을 보게 하소서. 주님 자신과 주님의 임재를 보게 하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이 눈이 열려 주님을 보고, 모든 민족들을 주님께로 이끌고 그들의 눈을 열어 주님을 보게 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인도하고 눈을 뜨게 만드는 사역을 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주님께 인도되도록 그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그들의 눈을 가리는 것들을 제거 하소서.
생 명 일 기 (9월 12일 목)
불만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주님이 있고 저들에게는 주님이 없는 데, 세상에서 불평할 일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정답을 붙잡고 완전하신 주님을 예배하는 노래를 했습니다.
일이 끝나고 밤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혼돈과 어둠의 죽음 같은 바다를 달빛이 위에서 고요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며칠 더 바라보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