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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은 軍 出身 大統領일때 發展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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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은 軍 出身 大統領일때 發展 했다 “대한민국은 군 출신 대통령 때 발전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대한민국은 군 출신 대통령 때 까지는 승승장구 했다. 이것을 문민대통령이라고 자처한 김영삼 대통령 때 IMF를 불러들이면서 국민소득 2만? 에서 3만? 고지를 17년째 못 넘어가고 있다. 군 출신 대통령들이 국가를 부강의 길로 이끌었으면 됐지, 문민출신의 대통령들이 국민을 고통스럽게 이끄는 것을,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이라고 논할 것인가?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금융 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하고 군대내의 ‘하나회’를 전격적으로 해체하면서 군 출신들이 정치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차단을 했는데 3김 씨 중의 김영삼, 김대중 이 김 씨들이 나라발전에 기여를 했는가? 나라를 후퇴시켰는가를 반드시 재평가해야 된다. 필자는 소위 정치 9단이라고 했던 3김 씨들의 나라발전의 기여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3김 씨 중 김종필은 혁명정부에서 여러 역할을 해 냈지만 2김은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김영삼은 “호랑이를 잡기위하여 호랑이굴로 들어갔다.” 라고 하면서 3당 합당을 하였는데 그는 뜻대로 호랑이를 잡는데 성공하여 대통령이 되었는데, 학자들 사회에서는 역대 대통령들 중에 가장 무식한 대통령이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김영삼은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못 빌린다.” 라고 자신의 무식함을 실토하였다. 그래서 야당의 김민석 의원이 “남의 머리를 빌려 쓸 수 있는 머리는 가지고 있는가?” 라고 비아 냥 대기도 하였다. 모자라는 김영삼은 싱가폴의 이광요 수상을 만나서도 기껏 아침달리기를 하는 자신을 자랑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아침달리기를 하였는데 경호실의 경호상의 어려움을 건의 받고 중단했다고 한다.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고나서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는 보복을 하였다. 죄목은 축재의 건인데 축재라면 자신의 아들 현철이도 감옥에 가지 않았는가? 또한 박철언이가 자신에게 엉겨 붙었다고 감옥에 보냈고, 이렇게 하고 나서 자신의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같은 당 후보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강직하고 대쪽이라고 정평이 나 있는 터라 후환이 두려워 이회창을 떨어트리기 위하여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를 등 떠밀어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하여 출마를 하도록 하였다. 이 대목은 국민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 당시의 대통령 선거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선거였는데 어떻게 이인제가 완주할 자금을 마련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에 앞서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던 때의 선거를 돌이켜 보자. 이때도 같은 당 민자당의 이종찬 의원이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하여 출마를 하였는데 선거자금 즉 실탄이 떨어지니까 막판에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와 단일화를 하였는데 그 단일화의 속내는 이종찬이 이미 지출한 비용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 정주영후보가 약속어음 50억 짜리를 써 주었는데 정주영 후보는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니까 그 약속어음을 부도를 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말하기를 “정주영이 생애 처음으로 부도를 냈다.” 고 하였고, 국민당에 가담하여 압구정동에서 국회의원을 딱 한번하고 정계와 발을 끊었던 김동길이 “정주영이 이종찬에게 50억을 주기는 주었으나, 안 준거나 진배없고, 이종찬은 50억을 받기는 받았으나, 안 받은 거나 진배없다.” 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니까 이종찬은 아야 소리 못하고 냉가슴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김영삼 후 김대중에게 붙어서 김대중의 국정인수위원장을 맡았었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국정원장을 하였는데 그가 퇴임 후 뒤가 깨끗하지 못하여 언론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 했는데 필자가 보는 그 당시 보도들은 아마 김대중 세력들의 공작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 본다. 어쨌든 이종찬은 그 다음선거에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에서 출마를 하였다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 걸려서 낙마하고 정계를 떠났다. 이렇게 실탄이 보족하여 완주를 못하고 훗날 불명예스럽게 퇴장을 하였다. 대선에 출마하였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한 사람을 더 소개하면 박찬종이다. 박찬종은 실탄도 없는 게 그의 인기만 믿고, 출마를 하여서 그 선거본부장이 선거자금을 마련하여 쓰고 나서 선거가 끝 난 다음에 그 돈을 갚아야 하는데 대책이 없으니까 박찬종의 방배동 집을 압류하여 경매처분 하였다. 이렇게 집도 없는 신세가 된 박찬종은 김영삼에게 붙어 알랑거려서 김영삼 대통령이 집을 사 주었다. ※ 김영삼 대통령이 박찬종의 집을 사 주었다는 것은 언론에 보도 되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러한데 이인제가 대선에 완주하고도 무사한 것은 그 선거자금을 김영삼이 대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당의 이회창을 낙마시키고 평생의 동지이고 경쟁자였던 김대중을 당선시켜 청와대에 들여보낸 다음에 김대중이 청와대를 떠날 때 까지 그를 비판과 욕을 해대었다. 김영삼은 자신의 인격을 저하시키면서 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욕을 했다. 그러나 그 욕을 먹는 김대중은 일언반구 응답이 없었다. 이것은 두 사람 다 국민을 향하여 연극을 한 것이다. 자- 독자여러분 이런 자들이 협잡꾼이 아니고 누가 협잡꾼인가? <!--[if !supportEmptyParas]--> <!--[endif]--> 지금부터 역적 김대중을 논한다. 김대중은 6,25때 목포에서 남로당 총책으로 잡혔는데 그 당시는 戰時전시라 군 지휘관이 재판 없이 즉결처분을 할 수 있었다. 지휘관이 김대중을 처형을 하려고 보니까 너무나 잘생겨서 그의 외모에 반해서 지휘관의 임의대로 그를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이승만 대통령치하에서 다시 질서를 잡아갈 무렵 김대중은 속내는 전향을 하지 않고 외형적으로만 전향을 하여 정계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을 하고 연이어 6,25동족상잔의 혼란기라 이게 가능하였을 것이다. 하여튼 김대중은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보다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를 더 선호하다 죽었다. 김대중은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고 살아서 대통령까지 했는데 이것을 필자는 대한민국의 운명이라고 보는 것이다. 김대중의 죽을 고비는... ①목포에서 즉결처분을 했으면 피어보지도 못하고 끝났을 것이고, ②이휴락이 일본에서 잡아와 현해탄에 수장을 하려다가 일본의 정 보기관의 개입으로 살아남고, ③박정희 대통령서거 후 광주사태 발발직전에 내란음모죄로 체포 되어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미국의 개입으로 전두환 대 통령이 사면을 하여서 살아남아 대통령까지 하였다. 로마제국도 초기에 인류사에 폭군의 대명사인 ‘네로’같은 폭군이 나왔어도 천년의 역사를 이룩하였듯이 우리도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보다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를 더 사랑한 김대중, 노무현 같은 자들이 집권하여 지금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데 우리 「한」민족에게는 로마 천년보다 더 긴 3,000년의 대운이 들어와 있다. 그래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민족은 번창 할 것이라는 것을 후술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 종북좌파들은 공산통일도 민족통일이라고 할지 모르나, 필자는 공산통일을 할 바엔 차라리 이대로가 났다고 보는 것이다. 왜? 공산주의는 이제 끝났기 때문이다. 또한 현 김정은 체제는 세 계에서 가장 악랄한 인권탄압국이다. 김정은은 그의 아버지 김정일 때 심복이었던 고위직 인사들을 수틀리면 무슨 죄목을 씌워 재판의 절차도 안 거치고 체포한지 2,3일 내에 화염방사기, 또는 고사포로 대중을 모아놓고 악랄하게 처형을 하고 있다. 김정은은 아마 로마시대의 ‘네로’의 사촌쯤 된다. 북한은 현 박 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표적지로 사격연습을 하고 있다. 이것을 저희들끼리만 해도 안 되는 일인데 TV에 공개를 한다. 이명박 대통령 때도 그랬단다. 아마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저희들에게 돈을 안 주니까 약이 오른 모양이다. 이런 체제로 우리가 통일을 한다면 「한」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 종북좌파들의 눈 에는 남한은 미국의 속국이고, 북한은 민족자주 국가라고 보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인민을 죽이는 국가이다. 김대중은 그야말로 희대의 사기꾼이다. 6,15회담을 하고 와서 “북한은 핵을 만들 의사도 없고, 만들 능력도 없다. 만약에 북한이 핵을 만들면 내가 책임진다.” “이런 북한을 핵개발 하고 있다고 선전하지 말라.” “앞으로 우리에게는 중동특수보다 더 큰 특수가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써비스를 하는 게 아니다.” 김대중은 이렇게 남한의 국민을 속이고 뒷구멍으로는 김정일에게 10억?을 대주어 핵개발을 시켰다. 김영삼 때까지는 북한을 그냥 놔두면 경제가 파탄이 나서 망할 것이다. 고 더 북한의 목을 조이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이 북한을 살려놓고 이제는 핵을 보유하여 우리가 떨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이래 놓고 노벨상 위원회를 속이고 노벨평화상을 탔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외투를 벗긴다고 해 놓고 정세는 더 악화되었다. 그때 김대중, 노무현이 북한에게 퍼주어 살리지 않았으면 김정은까지는 못가고 김정일 때 끝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 핵을 보유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김대중의 사기극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김대중의 뒤를 이은 노무현은 그야말로 함량미달의 대통령으로서 우리의 國格국격과 대통령의 격을 땅에 떨어트려 헌 신짝으로 만들었다. 이런 노무현의 추종세력들이 새민련을 장악하여 배타와 독선을 하니까 이 자들의 분당은 초읽기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황장엽 박사는 통일의 청사진을 가지고 가족을 버려?? 채로 귀순하였었다. 황장엽 박사는 “그때 김대중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김정일 때 북한은 무너지고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고 하였다. 이런 황장엽 박사를 미국에서 초청하여 그의 의견을 들어보려 하였으나 김대중은 끝내 보내지 않았다. 황장엽 박사는 김대중, 노무현 때 감금생활이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였다. 노무현의 어록... ①대통령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②내가 대통령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면 영어공부를 했을 것이다. ③태어나지(대한민국)말았어야 할 나라가 태어났다. ④대통령 임기 5년은 너무 길다. (무능하니까 길지 유능하면 짧다.) ⑤보안법은 이제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자. (이렇게 남한의 무장해제를 시키고 북한을 도와주려 했다. 이 밖 에도 그의 가벼운 입놀림은 헤아릴 수 없다) 이런 머저리 같은 인물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일등공신은 정몽준이다. 정몽준은 2002년 한일월드컵 대회를 우리가 4강 신화까지 이루어 국민들의 사기를 높였고, 그래서 그의 인기는 天井不知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래서 정몽준은 조급한 마음으로 그 좋은 기회를 놓일 수 없어서 대선에 도전을 하는데 당시 정몽준은 무소속으로 정치를 하였기 때문에 그의 세력이 없었다. 그래서 세력을 급조하여 출마를 하였어도 인기도는 노무현을 한참 앞서가고 있었다. 그래서 조급하고, 어리석고, 순진한 정몽준은 제 무덤을 판다. 즉, 노무현과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하자고 제안 한 것이다. 자- 그러나 물증이 있는 투표를 하여도 여러 방법으로 집계를 조작 할 수 있는데 물증이 없는 여론조사 정도야 얼마든지 집계를 조작 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였던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렇게 두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안보체제를 실질적으로 해체하고 무장해제 하고자 발버둥을 쳤다. 김대중은 안기부, 보안사, 기무사, 검찰, 경찰의 대공라인을 와해 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무사령관 송영근을 청와대로 불러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보안법을 폐지하는데 총대를 매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송영근은 현 새누리당 의원이다. 김대중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때 북한에 심어놓은 고정간첩의 고위급들의 명단을 북한에 넘겨주어 일망타진 하도록 했다. 이렇게 북한의 우리정보통로는 박살을 내고 남한의 대북정보라인을 해체하였는데, 현재 북한의 고정간첩은 남한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러니 우리가 북한과의 정보전에서 속수무책으로 지고 있다. 이런 역적 놈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했다. 김대중의 역적질은 또 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체결한 한일 어업협정은 독도가 한국어로수역으로 되어 있었는데 김대중이 새로 어업협정을 체결하면서 독도를 공동어로 수역으로 바꿔놓아 지금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물고 늘어지도록 하였다. 김영삼 때 까지만 하여도 김영삼은 일본을 향하여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라고 하였는데 일본이 감히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것을 앞글에서도 밝혔듯이 김대중이 일본에서 이휴락에게 잡혀오다가 일본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독도를 일본에 넘겨주려고 한 수작이다. 김대중은 이런 은혜는 잘 알면서 저를 낳아준 조국에 대한 남한의 은혜는 모르고 져버렸다. 이것은 그의 태어난 사생아의 근원을 찾아보면 이해가 된다. 김대중은 원래 김가의 자식이 아니고 서문가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의 비판은 여기까지 하고, 군 출신 대통령들의 나라발전을 논거 한다. (이명박은 아직 평가가 안 끝났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먼저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건국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자유와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살 수 있는가? 사람은 언제나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 는 속담을 실천하고 산다. 외교의 달인이었던 이승만 박사는 당시의 세계정세를 꿰뚫어 보았고,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이룩하여 「한」민족의 반쪽만이라도 여기까지 왔다. 이게 아니고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가 되었더라면 「한」민족의 미래는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승만 대통령의 3선이 이기붕의 부정선거에 의하여 4,19학생의거를 불러왔고, 이승만은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한다. 그의 노후는 그야말로 외롭고 고독한 생이었다. 그 후 들어선 허수아비 윤보선 대통령, 실권자 장면 내각수반은 그야말로 무능한 집권자들이라 하루도 나라가 조용할 수 없었고, 날이면 날마다 데모로 지샐 정도였다. 자유월남이 그 많은 미군의 무기와 물자를 지원받고, 용맹한 한국군의 지원까지도 모자라서 중놈(승려)들을 필두로 온 국민들이 시위에 가담하여 날을 지고 샘으로 월남의 위정자들은 통솔력을 상실하여 월맹에게 패하고 말았듯이 우리도 그 때 박 정희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남한까지 공산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5,16새벽에 허수아비 윤보선은 “올 것이 왔다.” 라고 하였고, 장면은 수녀원으로 피신하여 수녀들의 치마폭 속에 숨었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박정희는 혁명일성으로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하고 無무에서 有유를 창조하자!”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혁명세력은 세계의 최빈국을,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원조를 받던 나라가 자립경제의 기틀을 세운다. 박 정희의 지상명제는... ① 자립경제. ② 자주국방 이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는 3선 개헌의 담화에서... “이 한 몸 조국과 민족의 제단에 바치겠습니다.”라고 하였고, 자립경제는 이룩하였으나 자주국방은 이룩하지 못하였다. 그는 자주국방을 이루려다 시해를 당한 것이다. 미국은 피지배국들의 지도자를 제거하는 데는 절대로 미국인의 손으로가 아니고 그 나라 국민들의 손으로 해낸다는 것이다. 필자는 박 정희 대통령서거 후 전 두환 대통령 집권 시 대덕의 연구 단지를 영업상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그 때의 원자력연구소의 사람들에게서 들은 많은 말들은 여기서 생략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 민생고를 해결해준 박정희 대통령 두 분의 대통령이 우리를 여기까지 견인을 해 주었고,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광주에서는 5,18일 새벽에 잘 훈련된 북한특공대 600여명이 침투하여 일사분란하게 광주시민과 계엄군을 사살하여 군과 민을 이간질 시켜 반란을 일으킨다. 사건 후 광주시민은 이것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외쳤고, 5,18묘지를 4,19묘지처럼 성역화를 하였다. 아마 광주시민자체도 광주사태의 始시와 終종을 把握파악 못하고 附和雷同부화뇌동 한 것은 확실하다. 노태우 대통령 때 5공 청문회를 하면서 5,18때 신원미상의 시체들에 대해서는 규명을 못하고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이때 전두환의 국보위에서 그 정도의 선에서 진압을 하지 못하였다면 대한민국은 그때 공산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 광주의 반란에 김대중이 있었고, 그래서 김대중이 체포되어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게 아닌가? 이것을 미국의 개입으로 사형집행을 못하고 특사로 풀어주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김대중은 김영삼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되어서도 남한을 무장해제하여 북한에 넘겨주려 했으나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로마는 초기에 네로 같은 폭군이 등장하고도 천년의 역사를 이루었듯이 대한민국에는 지금 3,000년의 대운이 도래하여 이렇게 수난을 겪고도 발전하고 있다. 만약에 그 혼란기에 전두환 같은 애국자가 없었다면 이 나라는 누가 지켰겠는가? 그래서 최규하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위기관리 정부라고 선언하지 않았는가?」 전두환은 집권하고 나서 운이 따라주어 3저 好況호황을 맞이한다. 지도자가 지도력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좋은 기회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3저의 기회를 십분 살려서 박정희 대통령이 다져놓은 자립경제의 바탕위에 대한민국의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전두환 대통령 때 서민들의 삶이 가장 윤택하였고, 중산층은 튼튼하였다. 전두환의 비판세력들은 애써 이 대목은 외면하고 오로지 광주사태의 책임을 전두환에게 떠넘기고 그가 법정에서 “지금 나의 호주머니에 29만원 밖에 없다.” 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지도자들 중에 초대 이승만 대통령 말고는 나라를 투철한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이끈 것은 군 출신 대통령들이다. 군 출신은 군대시절에 몸에 익힌 것이 愛國愛族애국애족이기 때문에 애국정신이 투철하나 문민출신은 배운 것이 협잡질이라 애국심이 없다. 문민출신 대통령들은 협잡꾼 사기꾼 모리배에 지나지 않다. 하물며 노무현은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가 태어났다.” 라고 하면서 제 자신은 이 나라의 대통령을 해 먹고 나서 뒷일(가족들이 저질은)을 감당하기 힘들어 자살을 하고 말았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노태우 대통령의 업적은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치고나서 그 여세를 몰아 북방외교를 펼쳤다. 이때 우리 대한민국의 지평을 넓힌 것이다. 지금 우리의 경제활동은 중국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 중국과의 수교를 노태우 대통령이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외교대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나라들과 수교를 하였다. 또한 노태우는 무던한 인내력으로 군 출신 정부와 문민출신 정부 간의 가교역할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도 김영삼으로부터 보복을 당하였는데, 그가 감옥에 가는 마당에 기자들 앞에서 “모든 것은 다 가슴에 묻어두고 간다.” 라고 하였다. 아마 그런 恨한 맺힌 마음을 새기지 못하여 지금 그가 병고에 고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if !supportEmptyParas]--> <!--[endif]-->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지금까지를 돌이켜 보면 군 출신 대통령 때는 나라가 발전하였고, 문민출신 김영삼 이후로 나라는 그야말로 혼란에 빠지고 국민들은 삶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애국필진들은 “이 참에 군대가 다시나와 여의도 똥개들과 종북좌파들을 쓰러버리라!” 고 외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필자는 대통령을 하지 못하고 쓴잔을 마셨던 두 사람을 애석하게 생각한다. 하나는 이회창이다. 이회창은 첫 번째 출마 김대중과의 싸움에서는 김영삼의 방해공작으로 실패하였고, 두 번째 노무현과의 싸움에서는 자신의 자만심으로 패했다. 17대 대선이 다가 올 무렵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최구식 의원이 발언을 하였다. “이회창 전 총재는 지난 대선(16대) 때 막바지에 우리가 마지막 빅카드를 써먹자고 하니까.” “뭘 어차피 이긴 것인데 그렇게 할 것까지야.” 라고 “하더니 패배하여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고, 무슨 낯짝으로 다시 대선에 출마를 한다는 것인가?” 라고 비판을 하니까, 당시 한나라당의 원내대표 김무성이 “이제 그만 해.” 라고 제지를 시켰다고 한다. 이 대목을 해설을 하자면... 최구식 의원이 마지막 빅카드라고 한 것은, 노무현의 처 권양숙의 아버지 즉, 노무현의 장인의 행적을 말한 것일 것이다. 노무현의 장인은 8,15해방이 되고나서 일찍이 공산당에 가담하여 남로당원으로 봉화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니까,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양잿물을 뿌려서 눈을 실명하여 장님이 되었는데, 그래도 열성 남로당원으로 지리산에서 빨치산 생활을 할 적에 빨치산들이 양민들을 잡아다가 나무기둥에 묶어 놓고 그에게 죽창을 들려주고 찌르라고 시키니까, 장님이라 그들의 신분을 알 수 없어서 먼저 손을 만져보고 손에 못이 박히고 까칠한 사람은 노동자라 인식하고 안 찌르고 손이 매끌매끌하고 부드러운 사람은 지주라고 인식하여 지주들만 골라서 8명을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때 그 장인은 잡혀서 처형을 당하여 권양숙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권양숙의 어머니는 역시 남로당원으로 6,25 때 월북하여 북한에서 고위직까지 하였고, 이것이 바로 최구식 의원이 말하는 마지막 빅카드이다. 국민들은 이를 모르고 있으니까 막판에 이를 까발렸다면 이회창이 승리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은 자만심으로 뭐 그렇게까지 비열하게 공격을 안 해도 이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은 “고양이가 쥐 한 마리를 잡는데도 최선을 다한다.” 라는 격언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한테도 지고 나서 정계를 은퇴한다고 떠난 사람이 무슨 낯짝으로 다시 대선에 출마를 한다. 는 가? 라고 비판을 했던 것이고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금시초문이라 최구식 의원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제지를 시켰으나, 최구식의 말대로 이회창은 17대 대선에 3차로 출마를 하여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소리 없이 정계를 은퇴하였다. 이회창은 대선 막바지에 선거자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이 대목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만약에 이회창이 김대중과의 싸움에서 이인제만 출마를 하지 않았더라면 김대중을 이기고 대통령이 되어 자기 똥은 구리더라도, 남의 똥이 구린 것을 가차 없이 치웠더라면 어쨌든 우리사회는 지금 이지경이 안 되었을 것이다. 또한 김영삼도 감옥 밥을 맛보았을 것이고, 이인제는 이회창과의 경선에서 패함을 깨끗이 승복하고 이회창을 도와서 승리를 했더라면 그 다음은 이인제 자신의 차례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되었으면 이회창이 김영삼의 대북정책을 이어받아 북한의 목을 더 바짝 조였으면 이회창 때 아니면 이인제 때 김정일은 무너지고 황장엽 박사의 자문을 받아 통일을 이룩하였을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인제는 “영웅은 때를 만나야 영웅이 된다.” 라는 격언을 몰랐던 것이다. 당시 김영삼이 달콤한 말로 꼬여도 자신이 현명했더라면 아직 나의 차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자중했어야 되는데 그새를 못 참고 나대었다 실패한 정치꾼이 되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어쨌든 필자는 이회창, 이인제는 대한민국의 살림을 맡겨도 되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러나 대한민국의 운명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아 프로빨갱이 김대중과 아마추어빨갱이 노무현이 10년을 집권하는 동안 남한의 대북정보라인을 와해를 시켜놓아 북한과의 정보전에서 우리가 당해낼 수가 없다. 북한은 남한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중계방송을 하는데 남한은 북한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잘 모른다. 또한 남한은 지금 북한의 핵무기 앞에 떨고 있다. 이러니 남한은 더욱더 미국의 정보, 미국의 힘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놓고 종북좌파들은 「한」민족의 정통성을 북한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주체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한」사상이 아니다. 필자는 젊었을 때 송 호수 박사 밑에서 공부할 때 참으로 많은 민족의 학자들로부터 역사와 철학과 사상을 배웠는데 신 철균 박사로부터 김일성주체사상이라고 하는 것을 배웠다. 한마디로 김일성주체사상은 변형된 기독교사상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예수 자리에 김일성을 설정 해 놓은 것이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는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은 승천한 神인고 김정은은 살아있는 神일 뿐이다. 이러한데 철학이 부재한 종북좌파들은 「한」민족의 정통성을 북한에서 찾는 것이다. 북한의 主體思想주체사상은 世襲세습의 專制主義전제주의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한」민족의 주체사상은 弘益人間思想이다. 弘益人間思想은 ①神人合一思想이고, 신인합일 사상 ②敎政一致思想이고, 교정일치 사상 ③一元論思想이고, 일원론 사상 ④弘益和白主義思想이다. 홍익화백주의 사상 홍익인간사상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고, 민족이라는 단어는 半반글자도 없다. 오로지 人間인간만을 말 할 뿐이다. 그런데 필자가 「한」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홍익정신을 복원하는 일은 「한」민족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 지구촌의 인류는 소크라테스, 석가, 공자, 예수도 해결하지 못한 亂麻象난마상으로 얽히고설켜 있는데 이것을 풀 수 있는 해답이 홍익인간사상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사람은 교육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人格인격이 형성되는데 군 출신 대통령들은 교육에 의하여 애국심이 형성되고 또한 기본적으로 통솔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문민출신들의 대통령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사기와 협잡만 배워서 대한민국을 요지경으로 만들었다!!! (박근혜대통령만 빼고) <!--[if !supportEmptyParas]--> <!--[endif]--> 단기 4348년 8월 15일 檀君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