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4일 묵상 본문 : 느헤미야 8장 1절 - 12절 - 복음에 연합되어 슬픔이 기쁨으로, 비참함이 온전함으로 바뀌는 은혜를 누리며 나누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연휴의 첫날 주말 아침을 시작하며 주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께로 향하는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고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특별히 오늘은 서목사님의 안과진료를 위한 일정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특별한 안정이 필요한 모든 일정 가운데 함께 해 주시고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연약한 자들을 기억해 주시고 온전함으로 친히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주일을 준비함에 있어 함께 해 주시고 거룩한 은혜로 각 성도들의 심령을 붙들어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B.C.444년 성벽재건공사가 끝난 후 약 5일이 지나고 7월이 되자 백성들은 모두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로부터 율법책에 대한 강해를 듣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유는 참석자들이 많아 성전 안에서는 모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7장까지의 내용은 성벽재건의 과정을 통해 외부적인 회복을 가지게 되었다면 이제 8장부터는 내부적인 연합과 회복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에스라가 성벽재건공사 사건에 등장하지 않다가 본장에서 등장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당시 에스라가 잠시 바벨론에서 머물다가 성벽재건이 끝난 시점에 돌아왔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에스라는 2차 귀환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개혁운동(에스라 9,10장)을 주도했으며 본문에서는 언약의 갱신과 개혁을 이끌었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7월 1일은 유대 민간력으로 보면 1월을 의미했기에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의 의미가 담겨져 있고 이때 나팔절과 초막절 절기도 있었다.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당시 수문 앞 광장에는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새벽부터 정오까지 6시간을 모든 백성이 율법책 낭독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4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제사장이요 학사였던 에스라는 나무강단에 서 있었고 오른쪽에 6명 왼쪽에 7명이 서 있었다.
이들은 백성들의 지도자였을 것으로 추측하며 당시 성회를 준비한 사람들로 볼 수 있다.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백성들이 일어서게 된 것은 말씀에 대한 복종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에스라의 선포와 그에 대한 백성의 반응은 신뢰와 복종, 경배의 자세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느헤미야는 13명의 레위인과 다수의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닫도록 가르쳤으며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 뜻을 깨닫도록 도와주었음을 이야기한다.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당시 백성들은 바벨론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냈기에 히브리어를 알지 못했고 에스라가 히브리어로 구약의 말씀을 읽으면 그에 대한 번역과 해석을 백성들에게 말해주었음을 보여준다.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레위인들이 백성들에게 율법의 말씀에 대한 번역과 해석을 알려주자 백성들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게 되었는데 이는 말씀을 통해 회개하는 마음이 생겼음을 의미했다.
특별히 백성들의 범죄와 타락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과 비참한 현실을 가져오게 된 원인이었음을 깨닫고 회개의 마음이 생겼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느헤미야와 에스라, 레위 사람들은 그날은 성일이니 슬퍼하거나 울지 말 것을 명령한다.
성일의 의미는 하나님께 속한 날로써 새해 첫 날을 하나님께 바치고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하는 날이었기에 나팔절(7월1일)은 말씀을 따라 즐거운 축제일이 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기쁨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을 것을 권면하고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나누어줄 것을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하나 된 몸이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특별히 성일, 구별된 날로써 백성이 마땅히 따라야 할 모습이며 슬픔에 빠진 유다 귀환민들이 진정한 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마땅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레위 사람들도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권면을 따라 슬픔을 거두고 기쁨을 나누도록 지도한다.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백성들은 지도자들의 권면을 따라 자기들의 처소로 가서 함께 먹고 마시며 나누어주면서 크게 즐거워했는데 그 이유는 말씀을 듣고 회개한 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이러한 백성들의 반응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셨던(막1:15) 예수님의 말씀처럼 복음을 통해 생명의 은혜를 누리고 그것을 나누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성벽재건공사가 끝난 시점은 새로운 한 해를 의미하는 7월을 5일 앞둔 시기였다.
7월 1일은 나팔절로써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절기였고 하나님은 성벽재건을 마무리하고 나팔절을 맞이하게 만드심으로써 백성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특별히 백성들은 성벽재건을 끝내고 기쁨의 마음과 기대하는 마음으로 7월 1일 나팔절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고 학사 에스라고 낭독하는 율법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들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6시간을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백성들의 모습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그 가운데 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육신의 한계와 연약함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별히 당시 학사 에스라의 강해는 히브리어로 된 율법의 말씀을 읽으며 주변에 있던 레위인들이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번역해주고 해석까지 해주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바벨론의 땅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잘 모르고 율법도 잘 듣지 못했던 백성들이었기에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율법의 말씀을 듣던 백성들은 자신들의 현실이 모두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과 자신들의 무지 때문임을 알게 되었고 이에 그들의 마음 가운데 회개하는 심령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의 열매가 심판과 죽음, 비참함과 무능력함의 모습임을 처절하게 자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이 되었음을 인식한 것이다.
이는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결되며 회개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분명한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복음은 인생의 죄와 허물을 드러내고 그것을 씻도록 만들며 그 결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함으로써 기쁨과 감사함으로 반응하는 자가 됨을 가르쳐준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온전히 성취하신 후 성령의 강림을 통해 베드로를 통해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 나타난 사람들의 반응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36~42)
복음의 말씀은 늘 죄와 허물로 인한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죄사함의 기쁨과 관계 회복의 즐거움을 얻게 하며 그것을 나누는 모습으로 확대된다.
본문의 사건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죄로 인한 비통함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 힘과 능력과 피난처가 되시는 은혜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성벽의 재건을 마무리하고 이어서 내적 성전의 정결함과 온전함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본문의 사건을 통해 선명하게 증거 되고 있다.
이러한 사건의 의미는 오늘날 복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누리는 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언약의 사건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함도 보여준다.
언약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현실의 비참함만 보이기 때문에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약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세우는 일이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약의 의미를 알았던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이것을 가르쳤고 언약을 따라 기쁨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온전히 경험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언약의 핵심인 복음을 아는 것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며 비참함에 머물지 않고 존귀함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능력이 된다.
오늘도 나의 모습은 말씀 앞에서 여전히 부족한 자요 무지하며 무능한 자로 드러나지만 또한 복음의 능력은 나를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요 풍요한 자이며 승리하는 자로 이끌어 주신다.
그 은혜를 오늘도 누리고 주의 지체들도 함께 누리며 온전한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인생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은 늘 비통함과 슬픔을 가져오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주의 복음의 능력은 인생의 허무와 무지함을 벗어나게 하며 생명의 은혜를 따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사는 인생이 되게 만듭니다.
땅의 것으로 만족을 누리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만족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누리며 사는 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고 그것을 나누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백성들이 주의 은혜를 누리며 그것을 나눔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기쁨으로 반응했습니다.
그 모습이 교회를 통해 드러나게 하시고 주와 교제하는 자들을 통해 선포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일을 위해 수고하는 자들을 기억해 주시고 그들의 온전한 수고와 헌신과 섬김을 통해 많은 이들이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