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제국의 붕괴 이후 중앙아시아, 즉 현재의 트란스옥시아나 지역 및 신강 지역에는 칭기즈칸의 차남인 차가타이 칸의 후예들의 나라인 차가타이 칸국이 들어섰습니다. 다만 이 차가타이 칸국은 오고타이의 후손과 원나라와의 전쟁 등 중국에서의 분쟁에 밀려 영 힘을 못쓰다가 잠깐 반짝 하고는 곧 티무르라는 무시무시한 상대를 만나서 자빠지고 말았죠.
차가타이 칸국이 티무르에게 유린당하고 난 뒤, 서부의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은 우즈베크인들이 장악하게 됩니다. 차가타이 왕가의 후손들은 동부의 동투르키스탄-현재의 신강지역-에 세력을 구축하였죠.

<좌측에 보이는 지역이 트란스옥시아나 지역, 중앙 및 우측이 이번 글의 무대가 될 신강. 또는 동투르키스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세워진 차가타이 칸국의 후신 칸국-모굴 칸국- 역시 그닥 기반잡힌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세워진지 얼마 안 돼 카쉬가리아 지역(모굴칸국의 영토인 동투르키스탄의 일부. 텐샨 산맥 남부를 말합니다)은 칸이 아닌 이슬람 수피 종파인 낙쉬반디 교단의 우두머리-호자라고 불리는-들이 장악하게 되죠. 16~17세기 들어 칸의 권위가 약해지자 그 빈 자리를 이들 호자들이 채우게 됩니다. 한술 더 떠서 이 호자들과 그들을 따루는 무리도 둘로 나뉘어 흑산당(黑山黨 Qara Taghliq)과 백산당(白山黨 Aq Taghliq)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카쉬가리아는 이 두 호자 집단의 분쟁의 무대가 되죠.
이 와중에 칸의 힘을 얻은 흑산당이 우세를 점하자, 백산당의 우두머리였던 하즈라티 아팍(Hazrat-i-Apak)은 1677년, 다름 아닌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라마 불교의 열렬한 신도였던 몽골초원의 준가르의 칸, 갈단 칸으로 하여금 카쉬가리아를 침공하게 하죠. 이렇게 해서 1678년 카쉬가리아는 몽골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고, 백산당이 다시 세력을 잡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이웃나라였던 청나라에는 강희제가 있었다는 거죠.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 재위 1661∼1722>
1696년 강희제의 청나라 군이 준가르부를 무너뜨리고 갈단 칸을 패퇴시킵니다. 이에 준독립상태가 된 카쉬가리아 지역은 다시금 백산당과 흑산당의 전장이 되지요. 갈단의 뒤를 이은 체왕 랍탄이 백산당이 세운 백산당계 칸인 아흐마드를 잡아가버리자 카쉬가리아의 패권은 흑산당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18세기 갈단의 뒤를 이은 체왕 랍탄이 죽자, 다시 혼란에 빠진 준가르를 이제는 최종 점령하기 위해 청나라의 새 황제 건륭제는 군대를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흑산당의 카쉬가리아를 점령하기 위해 백산당을 끌여들이죠.
백산당의 우두머리인 부르한 웃 딘(Burhan Ud din)과 호자 자한(Khwaja-i Jahan)은 청나라에서 풀려나 카쉬가리아로 진군, 흑산당 세력을 토벌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후에 청에게도 다시 반기를 들었지요.
결국 건륭제는 1758년 카쉬가리아를 공격, 1759년 점령하기에 이르렀죠. 그리고 이 지역은 새로운 영토라는 뜻의 신강(新疆)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 재위 1735~1795>
한편 서투르키스탄, 즉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서는 티무르 제국의 붕괴 이후 우즈벡계인 샤이바니 왕조가 약 100여년간 들어섰다가 1599년 멸망하고, 17세기 초반 부하라를 중심으로 우즈벡계의 국가가 들어섭니다. 청조의 신강 지역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었던 페르가나 지역에는 밍(Ming) 부족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들은 부하라에 세워진 우즈벡 국가의 지배를 받다가, 18세기 중반 아프가니스탄의 나디르 샤의 침공으로 부하라 칸국의 힘이 약해지자 1740년경부터 독자적 세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국가를 코칸드 칸국(Khoqand) 이라고 합니다.
청과 코칸드 칸국의 관계는 청과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와 비슷했습니다. 즉 코칸드 칸국은 표면적으로는 복속을 표방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과는 다르게, 그 복속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청의 신강지역을 공격했죠. 특히 청과의 무역관계가 청-코칸드간의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에 종교적 차이-즉 청은 카쉬가리아의 무슬림을 점령한 이교도 세력이라는 인식-과 코칸드 칸국 지배자들의 유목민족적 자존심도 갈등의 원인 중 하나였죠. 1762년 코칸드와 청과의 국경분쟁 당시 코칸드의 칸 이르다나 칸은 스스로를 '칸'이라고 칭했습니다. 청나라의 군주도 몽골의 칸을 칭한것을 볼 때, 이는 자존심의 대결이었던 거죠.
아무튼 청의 신강 지배 및 주위에 면한 코칸드와의 관계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글에는 청의 신강지배와 코칸드와의 관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아보려고 합니다.
참고문헌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고마츠 히사오 외 지음. 이평래 옮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르네 그루씨 지음. 김호동 외 옮김.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 김호동 지음.
15-16세기 중앙아시아 신유목집단들의 동향-전기 모굴한국의 붕괴와 관련하여. 김호동.
모굴한국의 초기 무슬림 성자들. 김호동.
전기 모굴한국의 계승분쟁을 통해 본 유목적 부족정치의 특징. 김호동.
첫댓글 호오 잘 보고 갑니다 ~~ 강희제의 포스란 ㄷㄷㄷㄷ
오오 기대하겠습니다!!
칸들이 뭐 좀 할라치면 청나라가 판을 엎어버리는군요.
오옷 기대합니다...^^
이 시기의 역사를 다시 읽으니.......음.. 대체적으로 백산당이 좀 (너무 단정적인 단어라 쓰신 싫지만) 매국적이었군요. 아...그리고 사실 제가 부하라, 히바등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역사에 관심있는데...... 20세기 까지 우즈베키스탄지역에도 칸국이 존재했었던것으로 압니다...근데..이상하게 우즈베키스탄칸국은..... 왕조 정리가 쉽지가 안더라고요..
뭔가 왕조 계보도를 정리할려면 영토등 이전의 나라나 후대의 정권등과의 어떤 영토적적 일치성이 있어야 하는데...예를 들어 고려-조선 이나 원-명-청 처럼..... 우즈베키스탄은 우선 칸국의 이름인 부하라 부터.....이것이 왕조에서 이름을 딴것인지..지역에서 이름을 딴것인지.....당시에 우즈베키스탄 혹은 우즈베키라는 종족 혹은 영토가 존재했었느지...의문이며...당시 우즈베키스탄 지역에는 부하라 외에도 적어도 두어개 이상의 칸국이 공존했었는데...칸국들이 하나의 왕족들이 통치하는 형식의 국가였는지...또 하나의 칸국이 망하면
다른 칸국이 이어받아 통치를 이어갔는지....등이 궁금합니다..마치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같이 보이기도 하고(삼국정립....) 아무튼 hyhn217님의 글 기대 하겠습니다.....
티무르 제국 이후 트란스옥시아나(현재의 우즈벡 지역)에 16세기 샤이바니의 우즈벡계 왕조가 최초로 들어섭니다. 이 샤이바니 왕조가 100년을 못채우고(98년) 무너지고 역시 우즈벡계이자 칭기즈칸의 후예인 아스트라한 '왕조'가 '부하라 지역'을 중심으로 '부하라 칸국'을 세웁니다. 이후 아스트라한 '왕조'가 끊어지자 밍기트 부족이 세력을 잡아 부하라 칸국을 다스리는데, 이들 밍기트 부족은 칭기즈칸의 후예가 아니었기에 '칸국'을 칭하지 못하고 '아미르국'이라고 스스로를 칭합니다.
즉 정리하자면 부하라 칸국(18세기부터는 부하라 아미르국)이라는 나라는 부하라시에서 이름을 딴 나라구요, 두개의 왕조(아스트라한조, 망기트조)가 나누어져 다스렸던 나라입니다. 우즈벡족은 이미 16세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고요.
다른 지역에 있던 국가는 히바와 코칸드가 있습니다. 히바 칸국은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지역에 있던 나라로, 샤이바니계의 우즈벡계열 왕조였습니다. 16세기부터 세워진 국가였는데, 부하라 칸국과는 별개의 국가로 보시면 됩니다. 코칸드 칸국은 18세기 초반에 지금의 페르가나 계곡 지역을 중심으로 생겨난 국가인데, 토착 부족인 밍 족이 세운 국가이죠. 역시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과는 별개의 국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