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이민희망자모임

외국인노동자들을 허름한 농가에 가두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무임금으로 혹사한 ‘캐나다 노예무역’의 실상이 드러나 충격을 던지고 있다. 필리핀 기술노동자 11명이 인력회사의 감언이설에 속아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6주일간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니며 갖은 중노동에 시달리다 겨우 구출됐으나 이 사건으로 혐의를 받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어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현대판 노예 사기로 흐지부지되고 있다.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5시간 떨어진 샌 칼로스에 거주하는 용접공 에드윈 캐니랭(32)은 지난해 캐나다 북극의 쇄빙선 2척을 건조하는 회사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신청서를 접수했다. 마닐라의 인력모집회사 ‘시트 밀레니엄(Cete Millenium)’과 ‘샌리(Sanlee)’는 외국노동자들에게 캐나다행 골드카드로 불리는 LMO(Labour Market Opinion)을 미끼로 노동자들을 모집했다. LMO는 연방인력자원기구 ‘서비스 캐나다(Service Canada)’가 발행하는 것으로 이를 소지한 외국노동자는 캐나다에서 일할 수 있는 임시노동허가증을 받는다. 옥빌의 인력공급회사 ‘컴팩(ComFact)’이 2년 전 연방정부와 쇄빙선 2척 건조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미리 예상하고 서비스 캐나다에 100명 이상의 외국노동자 LMO를 신청, 승인을 받았고, 이를 마닐라 인력회사에 전달한 것. 캐니랭과 다른 동료 10명은 시트 밀레니엄의 합격 통보를 받은 후 직장을 그만두고 소유물을 팔고 사채까지 빌려 인력회사에 지불할 수수료와 항공권 1만2000달러를 마련했다. 6월29일 노동자 8명이 먼저 토론토에 도착했다. 이들을 마중 나온 사람은 ‘컴팩’ 직원이 아니라 시트 밀레니엄에 소속된 대만 출신의 수잔 탱이었다. 택시 두 대로 퍼시픽 몰 인근의 스카보로 주택 지하실에 8명을 밀어 넣은 탱은 여권과 노동허가증을 압수하고, 전화기를 없앴다. 며칠 후 나머지 3명이 스카보로 지하실에 합류했다. 1주일 후 탱과 자신을 변호사로 소개한 임타저 라흐만은 ‘컴팩’이 채용계약을 무효화했다며 11명을 밴에 싣고 두 시간을 달려 엘름베일(Elmvale)의 밥 디 로사에게 넘겼다. 새 보스는 11명을 버려진 농가에 가두고 새벽 5시부터 한밤중까지 베리, 오릴리아 등으로 끌고 다니며 공장과 식당에서 부려먹거나 로사 가족의 사업체 주변을 청소하거나 구덩이를 파는 등의 일을 시켰다. ‘엘름베일 11’으로 불리는 필리핀 노동자들은 진흙으로 엉망인 농가의 다락방과 거실에서 잠을 잤고,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아야 했다. 노동자들이 밀린 임금을 요구하자 로사는 “너희를 데려오는 대가로 한 사람당 4000달러를 지불했다”며 고함을 지른 후 “다시 임금을 요구하면 강제추방 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노예와 같은 비참한 생활을 한 지 6주째인 8월23일 농가를 탈출한 용접공 에릭 마티네즈가 필리핀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고, 대사관 직원과 연방경찰(RCMP)이 아직 농가에 남아있던 10명을 구출했다. ‘엘름베일 11’ 사건에 연루된 캐나다 사업가 6명은 잘못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렸다. 탱과 로사는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고, 가짜 변호사로 확인된 라흐만은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로사에게 연결시켜준 것이다. 그들을 위해 성심을 다했다”고 변명했다. 컴팩의 소유주 로버트 맥엘리스터는 “연방계약이 무위로 돌아간 후 직접 마닐라 인력회사를 방문해 LMO 사용중지를 요구했다. LMO를 판 것은 넬마 디 셀리스다”고 지명했다. 에드먼턴에 거주하는 디 셀리스는 “마닐라 회사로부터 받은 1만2000달러는 업무비용이다. LMO 판매는 불법이다. 그런 주장은 얼토당토하지 않다”고 부인했다. 현대판 노예무역에 희생됐던 필리핀 노동자 11명은 현재 사스캐처완과 알버타, 브리티시콜롬비아(BC)주 등에서 합법적인 고용관계를 맺고 일하고 있다. 로사와 그 형 빈스는 지난 2003년 베리의 주택 두 채에서 적발된 1억2000만달러 마리화나 재배 사건으로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한 바 있다. 이 사건으로 7명이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집주인인 로사 형제는 단순 주택 임대자로 혐의를 모면했다. RCMP와 연방국경수비대(CBSA)는 ‘엘름베일 11’ 사건과 관련 수개월간 수사를 진행했으나 연루자들에게 아직까지 단 한건의 혐의도 부과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 캐니랭은 “로사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시간당 18달러~23달러 계약을 맺었다. 노예 11명에게도 권리는 있다”고 항변했다. RCMP에 따르면 매년 최소 800명이 인신매매로 캐나다에 팔려오고, 또 다른 1000명이 캐나다를 경유해 미국에 팔리고 있다. 연방정부가 LMO 규정을 2년 전 크게 완화하면서 2007년 임시외국인노동자는 20만1057명으로 2006년(162,046명)과 2005년(142,705)보다 월등히 증가했다. 미 국무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캐나다는 노동을 착취당하는 외국인 피해자들의 목적지로 전락하고 있다”며 “인신매매 조직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토론토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