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무엇인가로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새가 되어야 하는 알과 같다. 그런데 우리는 알의 상태가 전부인줄 알고 거기에 안주하려 든다.
이 에너지가 상승하기 시작하면 그대는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살아남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그대는 카비르가 자신의 시에서 묘사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에 부닥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바다 깊이 헤엄쳐 들어간 자, 오직 그만이 그것을 발견했도다. 그러나 아아, 나는 어리석도다.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두려워 해변에 앉아 있었을 뿐이니.’
그것을 발견한 자들은 깊이 헤엄쳐 들어감으로써 목적을 달성했다. 물에 빠져 죽을 각오, 미련 없이 사라져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각오가 필수적이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목숨을 건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로써 살아남을 뿐, 결코 새가 되어 창공을 날지 못할 것이다. 그는 씨앗으로 목숨을 이어갈 뿐, 길손에게 편안한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가 되지 못할 것이다. 씨앗으로 생명을 부지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렇게 여기에는 커다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어제까지 존재했던 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에너지가 깨어나면 이 에너지는 그대를 완전히 변형시킬 것이다. 새로운 센터들이 깨어나고 새로운 인간이 출현할 것이다. 전혀 새로운 경험이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대는 용기를 내어 낡은 세계와 작별을 고해야 한다.
그러나 낡은 세계는 사방에서 우리를 강하게 움켜쥐고 있다. 그 낡은 세계가 우리를 너무나 강하게 결박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에너지가 위로 상승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을 향해 가는 길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것은 위험천만한 세계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삶의 꽃, 아름다움의 꽃은 오직 위험 속에서 피어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여행길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말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