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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오 / 성동기계공고, 전국과학교사지원센터 대표
Ⅰ. 서론
이공계 위기현상에 관한 보도가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는 때마다 관련 뉴스를 제작 방송해 어려움에 빠진 과학기술계의 위기 극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
먼저 이공계 위기현상이 나타난 것은 먼저 이공계 대학이나 대학원 지원율의 급감이었다. 이공계 인재 이탈현상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장기적인 고급 과학기술 인력 수급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고등학교 학생들의 이과 기피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 입시에서도 이공계 특히 공과대에 대한 지원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그 대신 돈 많이 벌고 안정적인 의대 쪽으로 우수 인력이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나타난 취업에 대한 불안과 연구․기술 인력에 대한 상대적 박대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자꾸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각종 언론 매체들은 지금까지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문제제기 뿐만 아니라 해결책까지 나름대로 제시해주고 있다.
과학자가 되면 스타로 뜨고 부자도 되는 시대.
이공계 인력 이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을 함축한 말이다. 대접을 잘해주면 이공계로 오지 말라고 해도 줄을 설텐데, 이공계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J일보 기사)
정말 대접만 잘해주면 과학을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까? 하지만 이렇게 하면 이공계 기피현상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심각해서 그런지 의외로 이렇게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도 많다.
이공계 기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만난 한 관료는 이런 말을 했다.
어디 행정고시, 사법고시를 좋아서 공부하나요? 인센티브만 주면 다 짐 싸들고 절에 들어갑니다. 다 머리를 싸고 하게 돼 있어요.
과학교육발전위원회 청소년 분과에서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 이공계 기피 문제의 해결책을 너무 대증요법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감기와 독감은 그 치료법이 다르다. 감기는 우리 몸의 저항력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되므로 대증요법만 쓰고 며칠 쉬면 잘 낫는다. 그러나 독감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원인균에 대한 처방을 받지 않으면 자칫 큰 병으로 발전할 수가 있다.
지금 이공계 기피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감기가 아닌 독감에 걸린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공계 출신들의 관계 진출을 돕고 연봉을 높여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이공계 기피현상의 해결책에 대한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Ⅱ. 이공계 기피 원인에 대한 여러가지 시각
이공계 기피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에 대한 분석도 백인백색이어서 여러가지 이견이 많지만, 크게 다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을 우선 하나씩 점검해 보기로 하자.
첫째는 대입 응시생들의 학업요인으로 학생들이 수학이나 과학과목을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능 점수를 높이기 위해 인문․사회계열 과목을 선호하게 됐다.
정말 입시에서 인문사회계열 과목을 선택한 경우 유리한지를 알아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입시에서 성공의 핵심은 입학정원 안에 들었느냐가 문제이고, 커트라인 안에 들려면 경쟁률이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더욱 유리할 것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할 때 이공계 쪽을 지원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조건은 이공계 기피현상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수학, 과학 공부가 인문사회 과목에 비해 어렵다고 불평하는 것은 지금의 입시체제처럼 단편적 지식을 물을 수밖에 없는 체제에서는 유리할 수도 있으나 인문사회 과목의 본질상 수학, 과학보다 쉽다는 이야기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이야기는 보통 과정적인 생각을 묻지 않고 암기만 하기가 더 쉽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이과를 좋아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무조건 외우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둘째로는 환경요인으로 학생들이 가정에서 과잉보호로 인해 인내심이나 끈기가 점차 약해져 가고 있으며,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 이후 갖게 되는 취업의 불투명성이나 취직 후의 불이익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인내심이나 끈기 부족이 이공계 기피현상의 원인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현재 교육 전반적인 문제로 지금보다 더 참으면서 공부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에 시달리는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학생들이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즉 문제의 핵심은 극히 공부하는 체제가 비효율적․타율적으로 됐다는 것이다.
학원은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학원공부를 주공부로 삼고 학교는 쉼터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것만 보아도 학생들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한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공부의 비효율성 때문에 어른들이 보기에는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은 동기유발만 되면 얼마든지 자기세계에 빠져들기도 해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찾으며 밤을 새우기도 한다. 다만 옛날 학생들과 다른 점은 하기 싫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참는 정도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우리 학생들이야말로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엄청난 끈기와 인내심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또한 학생들이 취직의 불투명성이나 취직 후 불이익 때문에 이공계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공계 진출자 부족을 겪는 산업계의 요구와 배치된다. 정보통신기술(IT) 쪽 사람들은 모자라고 다른 쪽은 남는 현상은 인력수급 구조가 탄력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공계 대학이나 산업계에서 산학연계에 의한 시스템이 잘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아직까지 학생들과 학부모님을 대상으로 한 진로 홍보 등이 미흡하기 때문인 것이다.
셋째로는 가치요인으로서 대학 졸업 후 전문관리직에 진출 할 때 이공계보다는 인문․사회계가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으며, 과거에 비해 연예, 오락, 레저 분야의 관심이 증가돼 가는 추세에서 한가지만 잘하면 된다는 가치관이 팽배해 가고 있다는 점을 든다.
사실 이 문제는 인문사회계와 이공계 사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공계 중에서도 의사, 인문사회학 중에서도 법관 등의 특별 직종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문관리직의 진출 비율은 그냥 어느 출신이 얼마나 진출했는가를 비교할 것이 아니라, 관리직에게 필요한 능력을 어느 과정의 사람이 잘 갖추었는지도 비교해 보아야 한다.
만일 이공계 출신들이 관리직에 그만큼 진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곳에 필요한 능력을 잘 갖추지 못해서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공계에 그런 관련학과를 만든다든가 관련 코스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인력 수급의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3가지 문제에 대한 제안에서 볼 수 있듯이 각 해결책들은 이런 일들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도외시하고 자꾸 밥그릇 싸움에 연연해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제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언급된 내용에 과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Ⅲ.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여러 대책
지금까지 이공계를 기피하게 된 원인보다 더 많은 의견들이 대책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대책 속에는 큰 시각으로 본 해결책도 있고 단기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동안 억눌려져왔던 이공계인들의 한(?)이 포함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흥분된 해결책들이 오히려 문제를 정확히 보는 데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여러 대책을 살펴해 보면서 진정한 대책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1. 과학기술인들에게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한다는 의견에 대한 분석
당연히 취약한 곳은 부양책을 써야 진흥이 된다지만, 이런 방법의 단점은 일시적이라는 데 있다. 자체 경쟁력을 갖고 인센티브가 아닌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보수를 받게 돼야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
다음은 이공계 기피에 관한 인터넷 글모음에서 얻은 글이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의 핵심은 과학적 두뇌이며, 과거에는 30만명의 국민이 1명의 왕을 섬겼지만 지금은 1명의 과학자가 30만명을 부양시키는 시대에 와있는 것이다. 고약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외국의 한 과학자는 이공대생의 10% 증가는 경제성장을 연 0.5% 성장시킬 수 있지만, 법대생의 10% 증가는 경제성장을 오히려 연 0.3%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의미있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깊이 새겨보아야 할 어구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정말 이공대생을 증가시켜 경제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할까? 이런 글을 읽는 이공계 이외의 사람들은 아마 이공계 사람들의 단순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다. 너무나 많은 비약이 글 속에 있어 이 글은 모든 이공계인들이여 단결하라라는 메시지 이외에는 전달되는 것이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잘 못하다가는 이공계 이외의 사람들에게 공격받을 가능성만 높이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인센티브는 말 그대로 인센티브로 끝난다. 이공계는 누가 마련해준 인센티브를 기다리고 있다가는 언제나 수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공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에 정당한 투자가 뒤따라야 될 것이다.
2. 과학영재를 뽑아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분석
과학영재들을 모아 기르겠다던 과학고등학교들이 입시학교로 전락했고 과학영재센터 또한 학부모들의 등살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학영재를 선발하는 기준조차 일반 대학 입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학영재를 기른다고 여름캠프까지 열어 가르쳐서 국제 올림피아드대회에 입상시켜 놓으면 특례 입학하게 돼 좋다고 하면서 의예과에 진학한다. 어려서부터 꿈을 품고 자라 대한민국 출신의 세계적인 과학자가 돼겠다고,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자연계에 입학한 수재들은 1학년을 다니다 말고 다시 수능시험을 쳐서 의대를 가거나 학부를 마치고 의대에 편입한다. 또 기를 쓰고 영어공부를 해서 GRE 시험을 맞추는 기계가 돼 외국으로 간 뒤 세계적인 기업의 인재가 돼 남의 나라에 돈을 열심히도 벌어주고 있다
이처럼 국가적인 지원 하에 만들어진 과학영재교육기관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과학영재의 확실한 기준을 마련하고 지금처럼 성적 위주의 선발이 아닌 과학영재를 위해 제대로 된 기준을 마련해 선발해야 할 것이다.
과학영재란 과학이 좋아 과학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으며, 과학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고 문제의식이 강하며 문제해결 과정에서 만난 어려움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과학영재들이 많이 길러져도 의도한 바대로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중국에는 자국 출신의 해외 유학파 과학전공자들이 속속 귀국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국가에서 마련한 창업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별 어려움 없이 자기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영재의 발굴 육성은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한껏 펼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돼야 가능할 것이다.
3. 과학을 영어, 수학, 국어와 같은 주요과목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분석
이공계 기피현상을 치유하는 방법으로는 중등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과학수업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과학을 주요과목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의해서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에는 별로 찬성하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입시의 주요과목이 되면 더욱 입시 중심의 교육이 될 것이고, 이는 과학교육 정상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학과 같은 경우 입시의 주요과목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하고 수학전공자가 나날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시 비중이 커질수록 학교현장에서는 주입식 강화 훈련 이외의 수업방법을 택할 경우 학생과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기 쉽다. 그렇다고 7차 교육과정에서처럼 입시에서조차 밀려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과목이 된다고 훌륭한 교수학습이 이뤄진다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자유선택과 학습량을 줄이기 위해서 마련된 7차 교육과정의 정신이 제대로 반영되려면 우선 교과목 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과학이 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과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보통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과목이 12-13개나 되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과학의 비중을 높이려고 해봐야 교과목간의 다툼만 커질 뿐이다.
가장 기본적인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그리고 예체능을 제외한 다른 과목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두고 선택과 전문화된 과목으로 제시돼야 할 것이다. 물론 교사 수급 문제 등 커다랗고 넘어가야 할 산은 많지만 올바른 방향을 잡아 차츰 체제를 갖춰가면 언젠가는 이뤄지지 않을까?
교사 수급 문제 때문에 학생들을 많은 과목의 볼모로 잡아두는 일은 이제 그만 둬야 할 때가 됐다. 교사들의 자발적인 재교육과 연수기회 확대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교육계의 오랜 관행인 교과목 이기주의와 과목들 간의 밥그릇 싸움이 계속 진행된다면 이런 해결은 요원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학생들에게 과학시간을 많이 주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분석
이 경우도 위의 주요 과목화와 비슷한 문제가 있다. 앞으로 교육과정의 체제는 점점 학생들의 선택권이 넓어지는 쪽으로 정리돼 갈 것이다. 그러나 7차 교육과정이후에도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보다는 학교 선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학교 현장의 여건을 생각하지 못한 채 밀어붙이기식 교육과정 개편으로 학교현장은 혼란에 빠져 있다.
대학 식 수강신청과 건물, 그리고 충분한 교과연구실, 대형강의실 등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이 넓어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이런 조건에서 과학시간이 일방적으로 많아진다면 학생들이나 다른 교과의 반발을 살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7차 교육과정에서 과학교과서의 양을 줄인다고 했지만, 활동 중심 수업이 강조되다 보니 가르쳐야할 양은 그대로이고 시간만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어버린 셈이 됐다. 이런 배경에서 과학시간을 늘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주장이다.
그러나 재량시간을 과학으로 선택한 학교에서도 과학수업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현장교사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교과서에 나온 활동을 모두 하려고 하는 교사들에게는 시간이 2배로 주어져도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실험 준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실험실 여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동을 적당히 줄여 몇가지만 한다든지 아예 결과 중심의 주입식으로 하는 교사들에게는 일주일에 3시간도 그렇게 부족한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즉 문제의 핵심은 과학시간 수에 있다기보다는 과학수업의 질적 확보가 문제가 된다. 어떻게 보면 과학시간 수를 줄이면 과학수업은 저절로 주입식의 딱딱한 수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교사들의 시간과의 적절한 타협 속에 과학수업의 질이 떨어질 것은 명백한 일이다.
5. 수능시험에서 과학 배점을 많이 주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분석
대입 관리에서 대학의 자율적인 권한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수능은 학생 선발의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대학, 고등학교, 학부모, 입시 학생들 사이의 불신이 기본으로 전제돼 있기 때문에, 그나마 국가가 관리해주는 수능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평가기준이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능을 맡고 있는 교육과정평가원이 매년 곤혹을 치르는 이유는 수능의 기준이 안정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변별력을 찾자니 평균이 낮아지고, 평균을 높이자니 변별력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 배점을 높여주는 것이 과학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물론 과학이 입시 과목에서 약화된다면 입시에 쫓기고 있는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입시 정책 입안자들 중에는 입시에서 자신의 과목 점수를 높이는 것을 지상목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입시 점수를 높인다고 해서 과학교육이 정상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학교 과학수업이 주입식 강훈련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학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공부는 진짜 실력을 기르는 공부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과학에 대한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점수 이외의 동기 없이 외우기만 하는 시험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사라질 뿐 아니라 대학에서 일반과정의 과학을 공부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공부가 될지도 모른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공부라면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이공계 기피현상의 원인과 대책에 관한 또 다른 해석과 비판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진정한 이공계 기피현상을 잠재울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
Ⅳ.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바람직한 대책 모색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대책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현장 교사 입장에서 보면 그 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교육의 내실화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라기보다는 가장 핵심적인 일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과학교육 내실화라는 말만 듣고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분명히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럼 현행 과학교육이 그 참맛을 보여주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과학교육의 참 맛을 알아가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로 초․중․고 과학교육의 내실화가 요망된다. 청소년들에게 과학 진로의 비전을 제시하고 과학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초․중․고의 수학 및 과학교육을 강화해야 하며 과학영재교육의 체계적인 발전을 위한 과학교육의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즉, 청소년의 과학 활동을 지원하는 육성법, 과학 과목의 교육시간 확대 배정, 교사 지망생들의 자연과학 배경 강화, 올해의 과학교사상 제정, 과학실험실 확충, 실험실습 보조원 확충, 과학영재 진학제도 개선, 과학올림피아드의 활성화, 과학교육진흥법의 활성화, 과학교육 행정 체제의 강화 등의 시안이 강력하게 추진돼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 이대로 고치면 이공계 기피현상을 잠재울 수 있을까? 과학교육 내실화가 이뤄지면 학교는 어떤 상태가 돼야 할까?
아,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 우리 아이가 요즘 과학시간에 흥미가 없어 하는 것 같아서요.
아, 그러세요.
그럼 과학흥미도 테스트를 받아보시죠.
<테스트 후>
아, 귀댁의 자녀는 과학 흥미도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요즘 운동량 보존에 관한 기초개념 부족으로 학습의 어려움을 겪고 있군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희 학교 과학 클리닉에서 준비한 MM202 프로그램을 받아 보시죠. 학습 흥미도 유지될 뿐 아니라 운동량 보존에 관한 확실한 개념을 갖게 될 것입니다.
미래 학교에서는 이런 대화들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학교 과학선생님들이 지금 종합병원 의사처럼 전문성을 인정받고 학생들의 과학학습에 관한 전문가가 되고, 그에 따른 진단과 치료방법까지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이런 세상이 온다면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정확한 방법에 의해 진단을 받아서 과학을 즐겁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30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인지가속 과학교육 프로그램 CASE(Cognitive Acceleration through Science Education)를 개발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CASE는 학습자에게 인지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을 제시하고 교사나 유능한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인지발달의 가속화를 도모하려는 프로그램이다. CASE 적용 결과 인지수준 향상 뿐 아니라 과학, 영어, 수학 성취 수준의 향상까지 가져와 원전이 효과와 장기적인 효과가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CASE 프로그램을 통해 인지수준 하위수준 집단보다는 상위수준 집단이 인지가속 효과가 좋고, 다른 학생들보다 큰 이득을 본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과학교육 내실화를 기하는 첫 단추는 가르칠 과학의 내용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과학 교육과정은 아직도 학교나 국민들로부터 신뢰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학 교육과정의 제정을 너무 짧은 시간에 하고 연구 인원 역시 너무 적다는 것이다.
과학교육 부실의 원인은 과학교육이 잘 됐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납득할만한 기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데 있다. 국가 수준의 연구소를 마련해 과학 교육과정을 충분한 시간과 인력을 마련해 연구․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5-7년에 한번씩 바뀌는 과학 교육과정과 그에 따른 과학 교과서는 현장교사들과 학생들을 괴롭힐 뿐이다.
가르칠 과학교육의 틀이 잘 마련됐다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남는다.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탐구학습 방법, 열린교육 방법, STS 교육 방법 등이 쏟아져 나온다. 정말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 헷갈리고 이젠 현장 선생님들 중에는 아무리 바꿔봐야 난 내 식으로 가르치겠다는 분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정말 과학적으로 확실한 교수학습 방법이 있다면 이렇게 자주 바뀔 수가 있을까?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과학 교수학습 이론을 연구개발 한다는 것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학교육의 내실화가 구호성 문구의 한항목으로만 제시됐다면 이제부터는 그 내용을 차근차근 채워나가야 할 차례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도 이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면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뚫고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Ⅴ. 결론
이 글에서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바라보는 현장교사의 입장을 정리해 보았다. 그 결과 지금까지 나왔던 여러가지 원인들과 해결책들이 너무 교육현장을 도외시한 현상적인 치료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지금까지 나왔던 방법들을 평가해서 선후를 가리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찾아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공계 위기 상황이 초래된 가장 큰 원인은 학교현장에서 이뤄진 과학교육 부실에 있다. 이렇게 부실화된 과학교육 현장을 바로 잡으려면 먼저 과학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학교육의 내용을 찾는다는 것은 유치원부터 대학일반 수준까지의 과학 교육과정을 지금처럼 졸속으로 만들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상세히 연구 개발하는 것이다. 또한 과학교육의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과학 교수학습 이론을 세우고 실천하는 일을 말한다.
이러한 조건이 갖춰진 과학교육이 완성된다면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많아질 것이고 이공계의 훌륭한 인재들이 길러지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과학교육의 하드웨어적인 준비 또한 대단히 중요한데, 다른 글 속에서 많이 취급됐으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 각계에서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해결책들을 제시했던 분들은 다시 한번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 문제 해결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