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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탄생하실 아기의 이름 두 가지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이름은 예수입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은 구원이시다.’ ‘하느님은 구원자시다.’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모세의 후계자로서 요르단 강 건너 약속된 구원의 땅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여호수아의 이름이었습니다.
또한 바빌론 유배생활에서 돌아온후 파괴된 이스라엘 성전과 의식을 재건하는데 앞장섰던 대사제 예수와의 이름이었습니다.
또한 엘르아잘과 시라의 아들로서 지혜교사이자 집회서의 저자 역시 이름이 예수였습니다.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구원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개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는 역사상 그 누구도 행하지 못했던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구원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두 번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3)
탄생하실 메시아께서는 이름부터 너무나 은혜롭고 감지덕지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이신데,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다 보니, 우리에게 점점 더 가까이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성탄을 준비하며 우리 내면 깊숙이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강렬한 임마누엘 주님 현존 의식을 지니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노년기를 살아가는 분들, 남은 날들이 외적으로 볼 때는 조금은 우울하고 슬플 것입니다. 여기저기 탈이 나고, 점점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했던 사람들도 한명 한명 떠나가고, 우리네 삶은 회색빛일 것입니다.
그럴수록 꼭 기억해야 할 대상이 임마누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꽃다운 이팔청춘 내 인생에도 함께하셨지만, 쪼그라든 노년기의 삶에도 굳건히 함께하십니다.
힘겨운 병고의 순간, 우리 인생을 총정리하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임마누엘 주님께서는 반드시 함께하실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내가 받는 은총의 수준은 내가 하는 사랑의 수준과 같다>
복음: 마태오 1,18-24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약혼자인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남몰래 파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리아는 버림받은 여자가 되고 요셉은 임신시켜놓고 약혼자를 버린 몹쓸 인간으로 낙인찍힙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이 결단의 순간에서 요셉은 자신을 배신한 마리아를 위해 자신이 죽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의로움입니다. 그리고 그 의로움이 은총을 얻어냅니다. 요셉은 성모님의 남편이 되고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사랑만이 은총을 얻어냅니다. 인간의 사랑을 지향하는 아기는 인간의 사랑을 받지만, 늑대 정도의 사랑을 지향하는 늑대 새끼는 늑대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랑을 받습니다. 사랑이 은총입니다. 요셉은 하늘의 은총을 원했던 것이고 하늘에 합당한 사람임을 증명해 내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죄인임을 자처했듯이, 자신도 자기를 배신한 마리아를 위해 죄인임을 자처한 것입니다. 은총은 내가 지향하는 사랑의 크기만큼 주어지는 것입니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중 하나인 ‘면죄부 판매원 이야기(The Pardoner’s Tale)’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사람이 왜 은총을 잃는지 잘 표현됩니다.
이 이야기는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며 방탕한 삶을 살던 세 젊은이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원인을 ‘죽음’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합니다. 이들은 오만하게도 죽음을 찾아내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길을 가던 중 이들은 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노인은 그들에게 존중과 축복을 요청하지만, 이들은 그를 조롱하며 약하고 초라하다고 비웃습니다. 또한 죽음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무례하게 묻습니다. 노인은 상징적으로 한 나무를 가리키며 거기서 죽음을 찾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 나무 아래서 죽음 대신 이들은 많은 금화를 발견합니다. 탐욕에 사로잡힌 이들은 처음의 목적을 잊고 그 금화를 자기들 것으로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기심은 서로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며, 각자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죽이려 합니다.
가장 어린 이는 도시로 가서 음식을 사 오면서 두 사람을 독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반면 나머지 두 사람은 돌아온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젊은이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그를 죽입니다. 이후 두 사람은 축하하며 독이 든 포도주를 마시고 결국 모두 죽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죽음을 찾으러 갔다가 서로의 탐욕과 배신으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타인을 가혹하게 판단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세 젊은이는 탐욕과 오만으로 서로를 적으로 보았고, 그 결과 행복과 구원의 기회를 모두 잃었습니다. 어떤 형이 큰 공을 세워 살인죄로 갇힌 동생을 위해 사면권을 받아 감옥을 찾은 형과 같습니다. 형은 동생을 떠보기 위해 풀려나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습니다. 동생은 자기를 신고한 사람과 판사를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형은 사면권을 동생에게 줄 수 없음을 깨닫고 사면권을 찢어버립니다.
은총은 더 높은 수준의 사랑의 단계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주어집니다. 낮은 단계의 사랑 수준에 있는 사람은 그만큼 적은 은총이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총이나 칼이 주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은총을 주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가 잘못된 사회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큰 은총을 받는 예언을 받은 사람 중 하나는 유다입니다. 유다는 요셉이 막내 베냐민을 가둔다고 하자 동생 대신 자신이 갇히겠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이런 유다에게서 메시아가 태어나리라고 예언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당신이 그 죄를 다 뒤집어쓰십니다. 우리도 하느님 나라에서 받는 은총을 받으려면 타인의 잘못을 나의 것으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쉽지 않습니다. 투르의 성 마르티노는 서기 316년, 현재의 헝가리 지역에서 태어나 로마 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춥고 가난한 거지에게 자기 외투의 반을 찢어서 주었습니다. 그날 밤, 마르티노는 꿈속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마르티노가 거지에게 준 외투의 절반을 입고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곁에 있는 천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티노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입혀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마르티노는 경외심과 새롭게 다가온 믿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거지에게 베푼 친절이 곧 그리스도께 드린 사랑의 행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결국 투르의 주교가 되었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은총은 바로 누군가의 헐벗음을 자기 탓임을 느끼고 자기 옷을 그에게 입혀주는 일과 같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도 막상 내가 피해 볼 상황이 되면 나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의 죄를 벗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자신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작은 덮음을 실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연습이 필수입니다. 그렇게 타인의 잘못을 덮어주는 일로 나에게 크게 잘못한 이를 덮어준다면 요셉처럼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1,18-24: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18절)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나셨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일어날 새로운 태어남에 대한 암시가 있다. 우리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약혼한 동정 교회에서 태어나며 마리아는 그래서 교회의 어머니이시다. 동정 교회는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시고 낳으신 마리아의 표상이다. 우리는 여기서 의로운 요셉을 볼 수 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를 모르고 있던 요셉에게는 난감한 일이었다. 마리아를 자기 집에 받아들이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었고, 마리아의 일을 드러내는 것은 마리아를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었다. 요셉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19절) 이때 꿈에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20절) 요셉이 마리아의 순결을 의심하지 않도록 그 신비를 알려주셨다. 요셉은 자신이 의심이라는 악을 떨치고 신비라는 선을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게 된다.
천사는 또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21절)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이는 하느님께 어울리는 이름이다. “하느님이요 구원자는 나밖에 없다.”(참조: 이사 43,3; 호세 13,4).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23절)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고, 그분은 하느님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을 보게 되리라는 뜻이다. 이렇게 요셉은 기쁘게 천사의 말을 따름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을 따른다. 우리도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협력하는 자세를 갖도록 하여야겠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아기는 주먹을 꽉 쥔 채 태어납니다. 온몸에 힘이 꽉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주먹을 풀며 힘을 뺍니다. 그 뒤 계속 힘 뺀 모습을 보여줍니다. 잘 웃고 잘 웁니다. 긴장된 모습으로 계속 있지 않습니다. 또 얼마나 유연한지 다리를 180도로도 쉽게 찢을 수 있고, 발바닥 박수가 손바닥 박수만큼 편합니다. 수월하게 물에 뜨고, 빠르게 언어를 익힙니다. 모두 힘을 빼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세상 사는 것도 이렇게 힘을 빼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힘이 계속 들어가고 있습니다. 힘이 들어갈수록 사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수영 배울 때를 떠올려 봅니다. 처음 배울 때 강사는 계속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 빼요~~~”
이 말을 듣는다고 힘이 빠졌을까요? 힘을 빼야 한다고 머리에서는 알지만, 몸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반복된 연습을 통해 힘을 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수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물 위에 잘 뜨게 되었고, 앞으로도 쭉쭉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힘을 주고 빼는 것의 반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진정한 성장은 힘을 뺐을 때 이루어 지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힘만 주고 있습니다. 낑낑대면서 어렵고 힘들다고만 외치면서, 그 안에서 기쁨을 갖지 못합니다. 계속된 힘에 쉽게 지치는 것은 물론이고, 걱정과 불안만을 간직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커다란 힘을 갖게 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주님 안에서만 힘을 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주 주님 곁에 머물지 않고 떠나려고 합니다. 계속 힘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요셉 성인이 꿈에 천사의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성모님의 잉태 소식에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했을 때였습니다. 사랑하는 배우자의 잉태 소식에 얼마나 힘이 들어갔을까요? 그래서 주님의 천사가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였으므로 하느님의 뜻이 요셉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요셉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굳은 믿음을 안 가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모든 것이 편하고 가볍기 때문입니다. 힘을 쭉 빼는 삶, 그래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힘 들어갈 일이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그럴수록 주님 안에서 힘을 쭉 빼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만이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또 더 발전하는 삶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기를, 죽어 있을 시간은 아주 기니까(스코틀랜드 속담).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잠에서 때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마태 1,24)
꿈속에서
천사들이 일러 준
요셉의 사명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거처하실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었다네.
그는
그리스도의 첫 보금자리를
마리아의 뱃속에
마련해 주었고
이집트로 피신시키고
성전에 봉헌하면서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에게
든든한 거처가 되어준
우리 모두의 영원한 양부라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요셉처럼 의로움의 대명사가 되기 위해
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해 봅니다.
저는 구유에 먼저 눕기를 자처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내 안에 깊이 들어오도록
저는 구유에 먼저 눕기를 자처합니다.
모든 시간과 힘 모든 삶 전체를
복음을 위해 바칠 수 있도록
저는 구유에 먼저 눕기를 자처합니다.
모든 이웃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나누기 위해
올해도 저는 한마음에
아주 특별하게(?) 오실 아기 예수님을 위해
비루하고 누추한 제 삶의 구유에
먼저 눕겠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요셉 성인처럼
의롭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