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약속』(誓約)
이 책은 야쿠마루 가쿠의 추리소설로 그는 1969년생으로 2005년 『천사의 나이프』로 제5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고, 이어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등을 휩쓸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년범 문제를 다룬 『천사의 나이프』에서는 사회 구조적으로 범죄를 통해서 심화 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의문을 던졌고,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수많은 복선이 깔려 있고, 단서가 회수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장면 하나하나를 허투루 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소설은 그를 추리작가로서 새롭게 한 걸음 더 딛게 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시체가 발견되고 5일 후 범인은 체포되었다. 근처에 살던 가도쿠라 도시미츠와 이이야마 겐지라는 스무 살의 무직 청년들이었다. 가도쿠라와 이이야마는 초등학교 동기로 동네에서도 품행이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두 사람은 차로 피해자 우키코를 납치해 가도쿠라가 이전에 근무했던 창고로 데려갔다. 둘은 창고의 주인인 회사가 1년 전에 부도가 나 당분간 그곳에 출입할 사람이 없을 거라 예상했다고 진술했다.
창고에 감금한 열흘 동안 두 사람은 유키코에게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능욕을 가한 뒤 자신들의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유키코를 목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사체를 절단해 슈트케이스에 넣어 인기척이 없는 잡목림에 유기했다. 둘은 지금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있다.’소설의 시작이다.
“그놈들이 사회로 나오면ⵈ 나 대신 유키코의 복수를 해 줘요”
나는 노부코의 말을 듣고 숨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 의미를 반추하면서 노부코를 쳐다보았다. 노부코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놈들이 교도소에서 나오면 복수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그 일을 하겠다고 약속해 준다면 당신을 도와줄께요.”
노부코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나를 도와주겠다는 말에 당장이라도 매달리고 싶었지만 나는 끄떡이기를 주저했다.
“유키코를 죽인 그놈들이 지금도 살아서 내가 마시는 공기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다고요! 하지만ⵈ, 지금 나는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그놈들을 죽일 수가 없잖아요!”
“그 남자들이 교도소에서 나오면 나더러 그들을 죽이라는 거야?”
내가 묻자 노부코는 주저하면서 끄덕였다. 그러면서 사실은 노부코 자신이 이 일을 하고 싶지만 자신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했다.
“시간이 없다?”
의미를 몰라 내가 되묻자 노부코는 얼굴을 들고 말했다.
“사실은 3개월 전에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어요.”
그리고는 죽는 건 조금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쓸데없이 오래 살았다고 생각될 정도다. 남편은 20대 후반에 죽고, 외동딸인 유키코는 17살에 그렇게 살해됐다. 그런데 나 혼자 왜 이렇게 살아있는 걸까 하고 스스로 탓하기도 한다고 했다.
유키코는 자신을 빨리 죽여달라고 말했다고 범인들은 법정에서 말했다. 그것은 유키코가 얼마나 큰 절망감을 끌어안고 죽어갔을까 생각되는 대목이아닐 수 없다. 나는 억제할 수 없도록 가슴의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은 유키코의 원통함과 그녀에 대한 연민을 생각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 자신도 그리 멀지 않은 시일 내 그녀와 같은 절망을 품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온몸을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이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노부코가 만들었다는 유키코 사건 관련 신문 파일들을 덮고 필사적으로 내가 탈출할 방법을 궁리했다. 나는 호적을 바꾸고 성형을 위해 500만 엔이 필요하고 노부코는 은행에 그쯤의 잔고가 있다고 했다. 노부코를 결박하고 빼앗을 수도 있겠지만 힘으로 그 돈을 빼앗는다는 것은 그녀를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은 비열한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노부코가 말한 원한을 갚아주기로 약속하고 돈을 받아서 호적을 바꾸고 얼굴 성형도 했다.
“그런데 그 약속이라는 게 뭐야?”
“야쿠자에게서 영원히 도망치기 위해, 난 돈이 필요했어. 새 호적을 손에 넣고 얼굴까지 성형하기 위한 돈이ⵈ, 노부코라는 여성이 증오하는 인물을 죽이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는 그 사람에게서 돈을 받았어.”
“노부코는 왜 그 남자들을?”
“노부코의 딸인 17살의 유키코가 가도쿠라와 또 다른 한 명의 남자에게 살해당했어. 두 사람은 경찰에 붙잡혀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지. 하지만 노부코는 그 판결을 납득하지 못했어. 두 사람이 출소하면 자기 손으로 죽여버리고 싶다고 할 만큼 증오했지만, 노부코는 말기 암을 앓아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었어. 자신은 도저히 남자들이 출소할 때까지 살아있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그 남자들을 죽여주면 좋겠다고ⵈ”
“그래서 당신은 그 약속을 받아들였다는 거야?”
“그래 정말이지 바보 같은 약속이었지. 하지만 그 무렵 내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어. 그대로 있다간 야쿠자에게 발견되어 살해당했겠지. 출소한다고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먼 훗날의 애기잖아. 게다가 그런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노부코의 이름을 사칭한 편지가 왔어. 그때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 딸을 해치겠다고.”
과연 나를 옥죄어 오는 인물은 노부코의 사주를 받은 인물일까? 아니면 다른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