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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믿음으로 열매 맺는 달☜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순종하면 축복*
잠언1:10-33절) 인간의 본성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을 보면 아프리카 초원에서 많은 초식동물들과 육식동물들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자나 표범 같은 육식동물들이 초식동물들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언제나 초식동물들이 불쌍하고 육식동물들이 잔인한 것 같은 생각이듭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정하다고 해서 먹지 못하게 한 짐승들은 거의 육식이거나 잡식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런 짐승들은 성격 자체가 고약하고 고기도 질기기 때문에 맛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바로 이런 야생의 세계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으면서 성공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한 자가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강해지든지, 아니면 악한 자에게 순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하나의 생존방식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런 동물적인 생존방식을 버리고 식물적인 생존방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동물적인 생존방식이라는 것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으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식물적인 생존방식이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잡아먹지 않고 오히려 신앙적인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존방식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대단한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살기 위해서 남을 공격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산다고 하지만 처음에는 세상의 방식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도 오지 않아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아주 어려운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우리가 식물적으로 살아남게 되면 그때는 야생동물들의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야생동물들의 공격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제로 하고 가르친 내용입니다. 잠언을 보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흔하고 풍성한지, 길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두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지혜의 길이요, 또 하나는 악하고 미련한 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길은 다 같은 것 같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잠언은 절대로 하나님을 믿는다 해서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지혜의 길이 있는가 하면, 망하는 길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자기가 듣기 싫어하고. 자기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한 한 가지 비유(比喩)를 들어보면 요즘 컴퓨터나 노트북. 그리고 아이폰이나 디지털 카메라 같은 것은 그 안에 굉장히 많은 기능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다양한 기능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그 제품을 살 때, 주는 제품설명서를 인내심을 갖고 꼼꼼하게 읽으면서 그 제품의 기능들을 익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그런 제품설명서를 꼼꼼하게 읽는 것을 아주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런 물건을 두고서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처박아 둡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마어마한 하나님 생명의 말씀의 세계가 주어져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등한히 말씀을 읽고 또 연습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게을리 한다면 아무리 엄청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아무 소용 없을 뿐 아니라, 아무리 믿는 자라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악한 자의 꾐
성경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얼마든지 악한 자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10-12절)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스올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
여기서 *아들*이란 원래는 아직 인격적으로 가치관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모든 믿는 사람들을 다 포함해서 하는 말이고, 특히 예수 믿은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 나이 상관 없이 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들*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악한 자들*은 숨어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덤벼들어서 때리고 물건을 빼앗는 폭력배 같은 사람들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악한 자가 너를 꾄다*고 할 때, 이것은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이런 폭력적 길로 가자고 유인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경우 누구든지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웬만한 아이들이 아니면 그런 꾐에 잘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시각을 갖고 세상을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자체가 힘이 지배하는 사회요,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자들을 누르면서 살아가는 구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힘이 있는 것이 실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 이런 길을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길은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유혹한다기보다는 사회적 현실이 그런데다가 우리 자신이 더 이런 길을 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길로 가려는 것은 사회 자체가 우리를 그런 길로 이끌고 있고, 또 우리 자신이 그 길을 가려고 하는 본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한 자들은 맹수들이 하는 것처럼 가만히 엎드려서 전혀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고 있다가 갑자기 덤벼들어서 물어 죽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상대방이 사정거리 안에 걸려들면 덤벼들어서 물어 죽이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고 하고 있습니다. 육식동물들이 사슴이나 노루를 잡아먹는 것을 보면 아직 목숨이 붙어 있고 의식이 있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여럿이 둘러서서 물어뜯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약한 짐승들은 살려고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지만, 육식동물들은 더 악착같이 달려가서 목을 물어뜯어서 죽입니다.
이런 짐승들이 실컷 먹고 남은 것이 있으면 그때는 또 다른 육식동물들이 와서 남은 것을 뜯어 먹습니다. 즉 사자가 먹고 남은 것을 하이에나나 들개들이 뜯어먹고 또 나머지는 독수리들이 뜯어먹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는 힘이 있고 똑똑한 자들이 거의 대부분의 좋은 것들을 다 차지합니다. 특히 옛날에 질서가 문란했을 때는 권력이 있고 힘이 센 자들이 돈이나 좋은 자리나 심지어는 마음에 드는 여자들까지도 빼앗아서 자기들이 다 차지하고 나머지를 다음 사람들이 차지하는 형편이었습니다.
또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도 힘이 센 아이들은 약한 아이들에게 자기 가방을 들고 가게 하거나 혹은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차지하고 남은 것들은 자기 밑에 있는 아이들에게 줍니다. 세상에서는 머리가 좋고 똑똑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의 좋은 것을 차지합니다.
예를 들어서 정부의 좋은 자리도 고시출신이나 엘리트 출신들이 차지하고, 돈을 많이 버는 자리도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이 차지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얼굴이 예쁜 미인들까지도 성공한 사람들이 다 차지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다 차지하지 못하고 남은 것을 가지고 그 다음 사람들이 경쟁을 벌이는 것이 어두운 이 악한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마음씨가 좋다든지, 혹은 인격이 훌륭하다는 것은 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마음씨가 좀 나쁘고 인격적으로 형편이 없어도 실력이 있고 성공한 사람들이 좋은 것을 차지합니다.
1:13절)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리니”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목적은 자기 집을 돈으로 채우고 물건으로 채우는 이것입니다. 그 대신 그들은 자기 자신이 변해야 한다거나 혹은 하나님의 다른 축복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일단 이 세상에서 힘이 있고 똑똑한 사람은 성공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 대신에 이런 세상적인 능력은 없고 마음씨만 좋거나 혹은 인격만 훌륭하다면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스올같은 존재이지만 자기 자신도 스올같이 만족이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벌면 만족하겠느냐?고 물어보면 그런 것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스올=음부(무저갱 지옥)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길을 가자고 해도 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길은 야생동물의 길이요, 맹수의 길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자가 사슴이나 노루를 잡아먹는 것을 보면 강한 맹수가 부러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슴이나 노루가 없어지면 사자는 굶어 죽게 됩니다. 어떤 사자는 죽은 짐승의 사체를 뜯어 먹다가 병에 걸려서 몸이 썩어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맹수도 사람들이 와서 사냥을 하게 되면 총 앞에서는 아무 맥도 못 추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강한 자들은 이렇게 유혹을 하면서 사람들을 꾈 것입니다.
1:14절)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여기서 제비를 뽑고 공동의 전대를 둔다는 것은 돈을 네 것이나 내 것 구별 없이 같이 쓰자는 것입니다. 강한 자는 그만큼 우리를 믿는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것은 자신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들입니다. 강한 자는 절대로 약한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지 않습니다.
이들은 말로는 공평하게 한다고 하지만 자기들의 계산 방식의 공평인 것입니다. 당연히 강한 자가 모든 좋은 것을 모두 갖고, 그리고 남은 별 볼일 없는 것을 다음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그들 방식의 공평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길을 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5-16절)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
우리가 쉽게 이해하면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단정하지 못하고 껄렁한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고 집에서 공부나 부지런히 해서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훨씬 근원적이요, 심각한 말씀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 전체가 동물적인 세계여서 이런 길로 가지 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란 머리가 똑똑하고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모든 좋은 것을 다 차지하는 곳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달려서 좋은 것을 차지하며,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공격해서 승리를 쟁취합니다. 이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자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현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보니까 세상에서 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성공의 목표가 있었는데,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고 나니까 전력을 기울여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변하여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이아니라 식물이 된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우리는 늑대나 이리 같은 맹수가 아니라, 목자의 인도를 받는 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경쟁으로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목자가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가서 우리는 식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달아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과 싸우지도 못하면서 그곳에 말뚝을 박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나무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나무가 아니라,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된 것입니다.
1:17-19절)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이익를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여기에 보면 *새의 비유*가 나오는데, 새는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물이 보이면 거기에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바보 같은 사슴이나 노루 같은 초식동물도 사자나 맹수가 엎드리고 있는 것을 보면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맹수들은 더욱더 다른 짐승들을 속여야 하고 더욱 더 사나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맹수들도 초식동물들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자기들끼리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동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어떤 지역에 표범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는데,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다른 짐승들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멧돼지가 천적이 없어서 무한정으로 개체수가 늘어나서 민가(民家)에 많은 피해를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시 한 가운데 뛰어 들어와서 사람을 물었다가 총에 맞아 죽기도 합니다. 이것은 멧돼지 사냥을 법으로 금지해서 그렇지, 만일 사냥이 허용되기만 하면 멧돼지는 멸종하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 욕심대로 살면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부자라도 비참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새가 그물을 보듯이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하는 짓을 다 보고 계신 것입니다. 인간들이 계속적으로 욕심을 위해서 살 때, 하나님은 복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러면 온 세상에 다시 한 번 난리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때 부자는 자기 생명을 잃게 되고, 모두 망하게 됩니다.
Ⅱ.지혜의 갈등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은 하나님의 지혜가 그들의 생활 가운데 너무나도 흔하다는 사실입니다.
1:20-21절)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들을 수 없고 배울 수도 없습니다. 세상 나라는 모두 맹수처럼 힘 있는 자를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정말 놀라운 점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지천(地天)에 널려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어디에 가더라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지혜의 초청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가 길에서 사람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나 역전 같은 곳을 가보면 리어카에 싸구려 옷이나 물건들을 많이 올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르면서 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마치 싸구려 옷이나 물건처럼 흔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은 사람들을 다른 물건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입니다.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는 것*도 사람들에게 어떤 사실을 알리는 것인데,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잠깐 쳐다보기만 하고 바삐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이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무슨 행사 같은 것을 하는데 그때도 빠지지 않고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희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정말 흔한 것이었고, 누구든지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너무 흔하면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별것도 아닌데, 어떤 물건이 아주 흔치않고 좋은 것이라고 하면 머리가 터지라고 덤벼들지만, 비싸지도 않고 흔하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은 아주 흔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지 않고 편식하고 무관심합니다.
1:22-23절)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여기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이 책망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보면 *나의 책망을 듣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자꾸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정말 많은 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것, 어느 것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 잘난 체하고 싶고. 똑똑한 체하고 싶고. 성공해서 나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것을 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너무나 좋고 세상 성공이 정말 좋은데, 세상 성공의 길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국 이 세상에서 바보가 되고 무능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바보가 되고 무능한 자가 되고 심지어는 세상에 대하여 죽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을까? 즉 우리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은 세상에 다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성공의 길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어리석음을 좋아합니다. 왜냐면 세상 성공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좋기 때문입니다. 거만한 자들은 자기 거만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도 성공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세상의 길로 잘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또 여기서 *거만한 자*란 자기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즉 거만한 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자기를 바꿀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어떻게 됩니까? 세상적으로는 성공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당연한 이유는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전력 질주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즉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靈)을 부어주십니다. 즉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들어오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안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흥의 놀라운 점은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를 너무나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돈이나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키워보면 부모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주어도 자녀들은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靈)이 와야만 우리가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좋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 세상 좋은 것의 특징은 빨리 부패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면 좋을 것일수록 더욱 빨리 썩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靈)이 부어지는 곳에는 부패가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새롭고 우리가 죄를 이기고 부패를 이깁니다.
그뿐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의 복이 부어지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은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내 말을 보여 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살아 있는 것을 보여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이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 때, 세상에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살게 됩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심령 부흥이 일어나며 축복 가운데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부흥이 일어날 때, 천국의 잔치가 벌어 지게 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잔치하는 곳에 맹수들은 불이 무서워 오지도 못합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고 평화가 있고 기적이 있습니다. 다음절을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얼마나 심한 갈등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24절)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어느 집에서 어린아이가 위험한 찻길을 향해 비틀거리면서 가고 있다면, 엄마는 아이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아이는 들은 체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 아이의 마음은 꼭 찻길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잡아 주려고 손을 뻗어도 아이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 아이는 고집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찻길로 가는데 너무나도 쏜살 같이 달리고, 엄마가 부르면 더 빨리 달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럴 때, 엄마가 할 수 있는 길은 아이에게 덤벼들어 낚아 챌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무리 말씀을 주시고 바른길로 인도하셔도 우리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지만 실패했을 그때입니다.
1:25-26절)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을까? 그것은 세상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만 우리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좋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세상은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습니까?그런데 그것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자꾸만 우리가 *변해야 한다*고 하니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적당하게 믿음과 세상을 섞어서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처음에는 좋은 것 같지만 나중에는 결국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엉터리 지혜에 비웃을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도 속이 상할 대로 상하셔서 *그래, 한번 해보고 싶은 대로 해봐라*시면서 내버려두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Ⅲ.세상을 따라간 결과
우리가 세상의 길을 따라가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은 세상길로 가다가 쫄딱 망해서 도로 붙들려 와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도 처음에는 엄청 어려움을 겪습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이미 세상 방법은 통하지 않게 되어버렸고, 하나님의 능력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이 방법도 안 통하고, 저 방법도 안 통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이때 가능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먹는 이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자들에게는 곧 하늘의 복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세상으로 간 자의 결과는 무엇일까? 일단 당장은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적인 본성에 따라 마음껏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고 경쟁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물적인 삶의 특징은 적어도 자기가 물어뜯은 만큼은 먹을 것이 생기고 일단 자기 삶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떳떳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예측할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결국 인간의 성공과 실패는 여기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1:27절)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이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 얼마든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극복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도저히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들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정욕의 길로 간 사람들은 모두 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광풍(狂風)과 폭풍(暴風)이 나옵니다. 광풍과 폭풍은 전혀 사람의 힘으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에‘꽝’하면서 터지는데, 그때는 수습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즉 어느 때는 예측 못한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그 동안 쌓아두었던 것이 모두 날아가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전쟁이나 지진이 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오래 숨겨진 비리(非理)가 터지는 바람에 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돌아보시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1:28절)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우리가 생각하기를, 어려운 일을 당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 같은데, 하나님은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이유는 이들의 신앙이 이 위기만 면하려고 하는 위선적(僞善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고범죄(故犯罪)라고 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즉 세상에서 바보 취급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뿌린 자는 말씀의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붙드는 자를 위기에서 건져주십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가 없다면 세상길을 모두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이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꼭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일종의 보험의 성격과 같은 면이 있습니다. 즉 보험에 가입하면 사고가 터졌을 때,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이 나오게 됩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운명은 뒤 바뀌게 됩니다. 즉 지금까지 바보같이 살아온 사람이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가 하면, 지금까지 자기 꾀만 믿고 살아온 사람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1:29-30절)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왜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하나님의 지식(知識)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교훈(敎訓)받기를 싫어했을까?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복(福)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뿌린 대로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1:31절)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여기서 완전히 식물적인 개념이 나타나게 됩니다. 맹수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맹수들은 잡아먹을 다른 짐승들이 없어지면 자기가 굶어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엄청난 대기업은 가만히 보니까 약한 기업들을 모두 잡아먹고 합병으로 부자가 된 기업들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잡아먹을 기업이 없어지니까 기업 전체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인생 밑바닥에서부터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열매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열매를 만드는 나무는 다른 동물들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이 열매를 만들어 냅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먹고 배 부르게 될 것입니다.
1:32절)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어리석은 자는 절대로 자기 자신이 퇴보(退步)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빨리 달려간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퇴보(退步)인 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더 복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것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참으로 가난한자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내놓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자의 안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미련한 이유는 얼마든지 자신의 길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과거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계속‘세상길을 버리고 자신의 태도를 바꾸라’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고집과 생각을 전혀 바꾸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 사람은 쓸데없는 것만 잔뜩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보물을 원하셨는데, 세상길을 간 사람들은 녹슨 고철만 잔뜩 모아가지고 보물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진정한 보물은 말씀을 가지고 고난을 통과한 이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보물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 것이 보물입니다.
1:33절)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내 말을 듣는 자*란 길거리에서 부르고 광장에서 부르는 싸구려 같이 보이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소홀히 하지 아니하고 듣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사람은 놀랍게도 사람에게 들었는데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물론 처음에는 잠시도 평안할 때가 없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지만, 어느 단계를 지나면 그때부터는 시험이 없어지게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계속 복(福)을 주시고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재앙(災殃)의 두려움을 피하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길 안에 세상의 길이 있는가 하면 말씀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동물적인 욕구대로 사는 길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만 붙들고 살아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 해서 모든 것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최고의 복인 하나님의 말씀이 지천(地天)에 널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널려 있다 해서 모두 말씀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널려 있기 때문에 더 무가치하게 생각하고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길은 마치 순풍에 돛 단 것처럼 세상을 미끄러지며 성공의 길을 달릴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런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은 돈과 명예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보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靈)을 부어주십니다. 이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곧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부흥(復興)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는데 마귀의 세력은 감히 접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믿음으로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롬1:17절)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즉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단순히 예수 믿는 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셀(cell)공동체는 성경에서 생명의 말씀의 보물(寶物)을 계속 캐내어 풍성한 심령 부흥을 일으키고 하늘의 축복이 임하게 하는 공동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아-멘
찬송가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오늘의 묵상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매일 새벽 4-5시 말씀 묵상과 도움의 기도를* *저녁엔 반성과 감사기도하는 습관을*
오늘의 기도제목
▣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주님! 셀(cell)공동체, 예배공동체, 선교공동체로 부흥.성장케 하옵소서.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신 주님! 내게 맡겨주신 재물과 나의 생명 주님께 드려 사용되기를 원합니다.아-멘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교갱원의 엄격한 규칙을 지켜 낙오자 없이 모두 성숙한 복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 癸卯年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 세워 성장하는 해*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작성제출해야 교갱원소속 A급셀(cell)로 자립 새출발 할 수 있습니다.(정착완료. 양식보존. 새벽기도. 교갱원설립후원. 춘추심방. 실명으로 소통)
교갱원은 1단계 묵상, 생명의 양식과 필수과목(26과). 2단계 생명의 양식과 선택과목 전도학교(13과).3단계 생명의 양식과 청지기 대학(17과)으로 정예부대가 됩니다. 누구든지 전화신청받습니다(유료 : 각 교재 1과당=1만원, 방법 : 교갱원 설립 때까지 임시 카톡영상으로)
*교갱원카페.카톡.천국백성이 은혜받고 감사하며, 기도로 화답하는 것은 믿음의 열매*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후원계좌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내용)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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