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집 /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 온 환자처럼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4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있는 자리가
바람의 집이었던 것
* 수의(壽衣)
* 관(棺)
* 동백(冬柏)꽃
* 통풍(痛風)
* 비명(悲鳴)
이종형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삶창 2017-12-15
이종형, 1956년생,
제주에서 태어나 2004년 '제주작가', 늦깎이 시인으로서 60 나이를 지나 첫 번째 시집으로 등단,
[EBS다큐프라임] 바람의 집 2부
https://youtu.be/yf8xVRLLYUo
첫댓글 봄은 이래 저래 아픈 계절 인 거 같습니더...
오늘 맨치로 이런 비 오는 봄 밤엔 울 제주도 동상 성준이가 불러주는,
피 터지듯 절규하는 듯한 '잠들지 않는 남도' 가 듣고 잡네예...
제주 4.3사건의 잔통들이 절절히 느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