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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의 두 번째 침략
왕하 6:24-33
24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
26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외쳐 이르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27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28 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31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32 그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33 무리와 말을 할 때에 그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왕하 6:24-33 / [아람군에게 포위된 사마리아]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아람의 벤하닷왕이 전군대를 이끌고 올라와 사마리아 도성을 포위하였다. 25) 포위 기간이 길어지자 성중에서는 식량이 떨어져서 마침내 나귀 머리 하나의 값이 은 80세겔, 비둘기똥이라는 들콩 반되 값이 은 5세겔이나 하였다. 26) 그러던 중에 하루는 이스라엘 왕이 성벽 위를 거닐면서 주민들을 둘러보는데, 어떤 부인이 왕에게 `임금님, 저를 좀 도와주세요!' 하고 부르짖었다. 27) 그러나 왕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께서 도와주지 아니하시면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겠소? 이제는 창고에 곡식도, 술통에 포도주도 다 떨어졌소. 28) 그러나 혹시 다른 문제로 묻는 것이라면 또 모르겠소' 그러자 부인이 다른 여인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하루는 이 여인이 저에게 `오늘은 우리가 네 아기를 함께 잡아먹고, 내일은 내 아기를 함께 잡아 먹자'고 말하였습니다. 29) 그래서 우리는 제 아기를 먼저 삶아 먹었습니다. 다음날 제가 `이제는 네 아기를 함께 잡아먹자'고 말하였더니 그 여인이 자기 아기를 감춰 버렸습니다.' 30) 여호람왕은 그 말을 듣고 슬피 뉘우치며 옷을 찢었다. 그는 하나님의 벌을 받아 도성이 포위된 것으로 알고 맨살에 베옷을 입었다. 그가 높이 성벽 위를 거닐었기 때문에 베옷만 입은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보였다. 31) 성벽 위에서 왕이 외쳤다. `아람의 벤하닷이 이 도성을 포위한 것은 엘리사 한 사람을 붙잡아 가기 위한 것인데 엘리사는 이런 환난을 막기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내가 오늘 당장 그의 목을 잘라 버리고 말겠다!' 32) [자객 방문에 대비하는 엘리사] 여호람왕은 거기서 즉각 성중에 있는 엘리사의 집으로 자객을 보냈고, 왕도 직접 그 뒤를 따랐다. 그때 엘리사는 사마리아의 자기 집에 앉아 있었고, 그 도성의 장로들도 그곳에 모여 있었다. 자객이 도착하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말하였다. `저 살인자의 자식인 왕이 방금 내 목을 자르도록 자객을 보냈습니다. 모두 알고 계십니까? 그가 오면 대문을 잠그고 들여보내지 마십시오! 그 뒤에는 왕도 따라옵니다.' 33) 엘리사가 말을 마치자마자 왕이 자객과 함께 들이닥치며 소리 질렀다. `이번 재앙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것인데, 내가 어떻게 더 여호와의 도우심을 기다리고만 있겠소?'
엘리사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체험했던 요람과 이스라엘이었지만,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에는 실패하여 더욱 극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포위당한 사마리아 성(24-25) 아람 왕이 그의 온 군대를 동원하여 다시 사마리아를 공격하여 성을 포위하였고, 결국 성중에 있는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의 연속이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기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나귀 머리가 은 팔십 세겔(1세겔은 11.4g)에, 합분태(개혁성경)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에 매매가 되었습니다. 합분태는 일반적으로 동물의 사료로 사용하는 것으로, 비둘기 똥이나 여물지 않은 콩과 같이 영양가가 거의 없는 음식물 찌꺼기를 의미합니다. 또한 한 갑의 사분의 일(대략 0.5~1ℓ)에 은 다섯 세겔이라고 하는데, 이는 물가의 통제가 없는 전시상황에서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인의 절규(26-30) 이스라엘 왕이 성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라고 외칩니다. 이때 요람 왕은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27)는 대답 속에서 현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의 좌절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작마당으로”(27)라는 고백을 통해 현재 기근의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람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되도록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레 26:27-33; 신 28:53-57). 그리고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그이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는 여인의 부르짖음을 들은 요람 왕은 기가 막혀 깊은 비탄과 슬픔의 표현으로 자신의 겉옷을 찢고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
요담 왕과 엘리사(31-33) 검은 염소의 털로 만든 거친 재료의 베옷은 회개와 자기 학대의 상징으로 입는 옷인데, 요람 왕은 자신의 배교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은 생각지 않고 현재 당하는 어려움을 엘리사에게로 책임을 전가하며 그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람 군대를 사로잡아 사마리아까지 끌고 왔었는데 그냥 돌려보내줌으로써 그 약점이 노출되게 한 책임(14-19)과, 아람의 침공이 시작될 때마다 미리 알려주어 대비하게 했는데(10)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요람 왕에게 아람 왕 벳하단에게 항복하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는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기다릴 수 있겠느냐”(33)고 반문합니다.
적용: 지혜로운 사람은 고난 중에서 오히려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삼하16:9-12).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있습니까?
‘흉년을 탓하지 말라’[不罪歲부죄세] 실패를 하면 이러쿵저러쿵 남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결코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정치가가 정치가 잘 되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는 천재지변 탓으로 돌리거나, 경영자가 경영이 잘 안 되는 것을 오랜 경기불황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책임을 회피한다면 누구라도 정치와 경영을 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치가와 경영자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생각할 수 없었던 극한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를 원망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 설 교 >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 김남수 목사
왕하 6:24 ~ 7:4
순복음교회를 다시 방문하게 되어 기쁘고, 따듯하게 맞이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친구인 김 남수 목사와 같이 있는 것은 제게는 늘 즐거움입니다.
여러분! 어떤 친구는 우리에게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나고 재충전을 받게 되는데, 김 목사님도 제게 그런 친구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고 역사하는데 , 제가 오늘 이 강단에 서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가 구원 받은 것에 감사하고, 제가 큰 죄인이었는데, 주님은 큰 구주시므로 저를 구원 하신 것입니다. 저를 구원 하셨을 뿐 아니라, 이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사용하시는 것에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특권을 주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우리의 주님이시고, 구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함께 수고할 동역자들 입니다. 우리가 일한다는 것은 주님과 같이 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수행할 사역을 주셨는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위급함을 느끼며 일을 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 곧 내 아버지의 일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사역에 대해 긴박함과 시급함을 인식하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은 속히 오실 것이며, 어느 순간에 주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천지 진동 할 때에 찬송을 아침에 부르면서, 아무도 그 시간과 날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나고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한 것처럼 주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므로 그 일을 감당해 드리자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주님의 돌보심으로 인하여,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세상의 모든 수고가 끝나고, 주님의 나팔 소리가 날 때에 우리가 주님의 잔치에 참여 하겠다는 찬송인 것입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속히 오실 것인데, 내 영이 진정 주님이 오실 그 날을 시급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세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12년 동안50번이나 아프리카를 다녀 왔습니다. 김 목사님 또한 남미를 자주 다녀 오십니다. 이 소망과 위로를 주는 말씀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을 갖고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아주 많은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말씀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일할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왕기 하 6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왕하 6:24) 이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왕하 6: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 이라. 왕하 7: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왕하 7:2)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왕하 7:3)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왕하 7:4)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 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제가 이미 말씀 드린 대로 12년 동안에 아프리카를 50번이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첫 번째 아프리카 여행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저는 미조리에 있는 스프링 필드 대학 총장과 같이 여행을 했습니다. 그 분은 16~17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계시던 분이었는데, 저를 아프리카 대륙을 보여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탄자니아의 빅토리아에 있는 교회 헌당을 위해 갔었습니다. 그 곳에 있는 선교사님들이 저희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도착하니까, 여러분들이 곧 새 성전을 봉헌하는 것처럼, 그들도 내일 봉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헌당식을 마치고 큰 잔치를 베푸니,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그 사람들을 먹일 음식이 필요했습니다. 쌀은 있지만 고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우리를 위해 특별한 준비를 했는데, 사막에 들어가서 사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희들이 사냥을 위해 사막에 들어가 버팔로라는 큰 소를 잡기로 했습니다. 버팔로의 무게는 2,000 파운드나 되는 큰 소입니다. 그것을 잡아 밥과 같이 먹으면 맛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숲 속에 가서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면서 같은 선교사님이 우리에게 전에 선교사가 버팔로를 사냥하다가 죽은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버팔로를 사냥하면서 총을 쐈는데, 잘 못 조준을 하여 죽은 줄 알고 버팔로에 다가섰다가, 소의 뿔로 공격을 받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4마리의 버팔로가 앞에 나타났습니다. 한 시간을 버팔로를 좇아갔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숲으로 숨었는데 제가 몹시 지쳐 있었기 때문에 소들도 지쳐 있으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자세히 버팔로를 들여다 보니 버팔로의 검은 부분이 보여 물었더니, 그것은 버팔로의 코라고 했습니다. 코 조금 위의 부분을 조준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총을 들었지만, 너무 가슴이 뛰기 시작하며 총을 든 손도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단히 어려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있었습니다. 그냥 교회로 돌아가서 버팔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하던지, 버팔로가 우리 앞에 나타날 때까지 그 곳에 있던지, 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성경의 문둥병자도 같은 처지였을 것입니다. 오늘 교회의 입장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현실적인 상황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적들에게 포위되어 있었으며, 도시는 기근과 죽음과 질병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열왕기 하 6장에는, 너무 흉측하고 어려워서 읽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어미가 자식을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테러리즘이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으며, 매일 수 천명이 에이즈 같은 질병에 죽어 가는 질병이 만연해 있으며, 지금 매일 같이 3만명씩이나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어 죽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수 많은 어린이들을 임신 중절로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환란과 문제의 시대에서 과연 누구를 바라 보며, 어디로 향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환란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붙잡아야 될 줄 믿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왕은 환란 동안에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돌렸으며, 그 때 하나님은 선지자로 엘리사를 보내셨으며 저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엘리사를 통해 백성들에게 전해 졌는데, 음식이 넉넉할 것이며, 값이 싸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창을 낼 지언정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한 장관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교회가 환란과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예언의 메시지를 받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환란 때에 하나님이 구원하는 엘리사를 통해서 역사하시듯이, 우리도 들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시고, 환란 날에 부를 위대한 이름이라고 선포해야 될 것입니다. 이 성문밖에 네 사람의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저들은 그들이 모여 있은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기근과 죽음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그런 결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 나와, 어떤 사람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만, 문제가 생기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세상을 여러분들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데도,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을 지키십시오. 그는 우리의 좋으신 목자시며, 위대한 능력자입니다. 그는 우리의 산성이시며, 우리가 기댈 바위 이십니다. 내가 결코 돌아 서지 아니하고, 주님께서 구원하셨으므로,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 가겠다고 하십시오. 이 문둥 병자들이 뒤로 돌아 갈 생각을 하지만, 그들이 돌아 가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구원은 여러분에게로 오시며, 도움은 주님께로 오심을 믿습니다.
두 번째 선택은 그 문에 그냥 앉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아실 겁니다. 뒤로 돌아 가도 죽을 것이요, 여기 있어도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현재 자기가 앉아 있는 곳에 머무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그 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소망과 기대를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들이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항상 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바빠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있는 그 곳에 안주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밀어 내고, 계속 해서 힘쓰고, 훈련 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인으로서 안주하고 정착한다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물이 고여 있으면 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지 아니하고, 머물러 있으면 그 신앙은 침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 드리는 것은 위험성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위험을 동반하지 않고는 큰일을 이루어 본 적이 없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좋은 기회를 두려움 때문에 병에 걸린 듯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처할 사람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사람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두려우면 이런 일들이 일어 날 수 있습니다. 내 눈으로 볼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위대한 기적을 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소망이 없는 어린 심령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 많은 여자와 남자들을 구원 시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가 뒤로 돌아서서는 안될 것이며, 교회가 그 자리에 정주해서는 안 될 것이며, 믿음으로 교회가 발걸음을 옮길 때, 우리의 위대하신 주님을 섬기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신뢰하고, 말씀을 선포했을 때, 히브리서의 말씀에서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요, 믿음은 바라 보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분 마다 그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고 했고,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해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겨 졌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의롭게 선포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배를 만들어 그의 집을 구원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성을 설계하는 아름다운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아들이라는 칭함을 거절하고, 그의 백성들과 믿음으로 고난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전부 위험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그런 위험을 무릎 쓰고 달려 간다면, 무슨 일이 일어 나겠습니까?
이것이 제 이야기의 세 번째 요점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 간 사람들 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열왕기 하의 이야기로 돌아 가서, 네 문둥 병자들은 결심하고 성문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들 가는 곳에 동행하시고, 앞서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이 이기기 전에 먼저 승리해 주셨습니다.
열왕기 하 6장 7절을 보면, (왕하 7:6) 이는 주께서 아람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왕하 7:7)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여러분! 이 네 명의 문둥병자가 위험을 무릎 쓰고 믿음의 발걸음을 걸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람 진을 향해 네 사람이 행진해 갑니다. 너무 빨리 갈 수도 없어 천천히 갔었을 겁니다. 그런데, 적들은 그들의 걸음 소리가 달리 들렸는데,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군대 소리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네 사람이 걸어 가는 소리가 마치 거대한 군대가 지나 가는 소리로 저들의 귀에는 들렸다는 것입니다. 아람의 진영에 도착 해 보니, 모두 떠나가 버렸습니다. 저들이 옷과 금, 은의 재물과 음식도 남겨 둔 재 도망을 갔습니다. 그들은 너무 배가 고프고 지쳐 있어, 열심히 먼저 배불리 먹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 했습니다. 도대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옳지 않다.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있는데, 이렇게 앉아만 있는 것인가? 해가 지기 전까지 이 소식을 전하지 않는 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왕에게 가서 이 소식을 전하자고 했습니다. 네 사람은 좋은 소식을 갖고 있지만, 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성령의 책망과 감동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날 교회는 좋은 소식, 복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과 도움과 소망의 메시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이 세상의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줘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 행함을 말씀을 증거하고 전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상급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놀라운 메시지입니다.
네 문둥 병자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다면, 여러분과 저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여러분! 이 뉴욕에 있는 순복음 뉴욕 교회를 통해서 미국 교회와 세계를 축복으로 이끌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걸어 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상을 주실 줄 믿습니다.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끝맺겠습니다.
버팔로의 코 부분의 검은 점을 겨냥하라고 선교사님이 알려 주었습니다. 다시 총을 겨냥하고, 겨누었습니다. 퍽 하는 소리가 나고 선교사님이 잡았다고 했습니다. 버팔로가 살아 날 수 있을 경우를 대비해 칼로 수풀을 베어 가며 옆으로 다가 갔습니다. 일어 날려고 버둥대는 버팔로를 향해 다시 한 번 총을 쏘고, 우리는 트럭에 싣고 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기다리는 여자분들에게 소를 건네 주었으며 우리는 모두 행복해 했습니다. 밤새도록 쌀과 고기로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다음 날 헌당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보면서, 요리를 넉넉히 즐겼습니다.
여러분! 위험을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네 문둥 병자를 사용하셨다면 여러분과 저를 사용 하게 될 줄 믿습니다.
제가 영국의 버킹 햄이라는 부부를 소개 하면서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아내는 간호사이고, 남편은 사업가인데, 케냐의 나이로비에 갔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집의 이 층에서 내려다 보니 누군가 쓰레기 통에 쓰레기 봉지를 버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봉투가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열어 보니, 그 안에는 갓난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 아기는 에이즈로 감염된 상태에서 태어나, 그 부모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부인이 간호사니까, 집으로 데려 와서 간호를 했습니다. 그 아이를 가능하면 같이 안아 주고 잘 키웠습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나 그 아기의 면역이 되살아나 병에서 낫게 되었습니다. 오늘 날까지 그 아기는 살아 있고 더 이상 HIV바이러스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이 부부가 150명의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시간이 되면 김 목사님도 한 번 방문해 주십시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믿음만 필요합니다. 위험을 무릎 쓰고 발을 내딛는 믿음만이 역사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려움에 처해있습니까?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 화목이 필요 합니까? 우리 마음에 오늘 믿음을 부어 주셨는데, 믿음으로 여러분이 먼저 전화를 걸어 화해를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으로 움직이시며, 성령으로 그 마음속에 용서와 사랑의 영으로 여러분을 용서하고, 화목한 제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피곤하고 병들었습니까? 치료가 필요하십니까? 마치 혈루병처럼 고생하는 여인은 생각만 하지 아니하고, 발걸음을 옮겨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믿음의 행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발걸음인 것입니다. 그녀는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치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기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위험을 결심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행동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승리하게 하시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십니다. 한 사람, 하나님을 믿지 못한 사람만 밟혀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사람만 죽었습니다.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라고 한 사람만 밟혀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시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와서 역사 하실 수 있는 준비가 되신 분입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 마음속에 믿음과 격려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통해서 용기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마치 네 문둥병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처럼, 이 장소에 도움에 필요한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숙이고 눈을 감은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분은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심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으로 그 분에게 나아가기 전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서 역사하고 있고,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위해 그 분이 죽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에 있지 않아도 됩니다. 생명과 소망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애를 구원 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마음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고쳐 주시옵소서. 저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이 우리의 허물 때문에 죽으시고, 우리의 죄로 상처를 입으시고,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주님! 이 아침에 치료해 주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저들을 위해 축복해 주시고, 저들의 믿음을 더해 주시고, 놀라운 능력으로 저들을 계속 사용해 주시고, 땅과 모든 민족을 축복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 / 이수영 목사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하여 참으로 크게 들어 쓰신 선지자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행하신 각가지 놀라운 일들을 이미 알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도 그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람과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아람은 요새로 말하면 시리아입니다. 아람 왕은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아무 데 아무 데 진을 치리라” 했습니다(왕하6:8). 군대가 진을 칠 때에는 아무데나 치는 것이 아닙니다. 적군을 공격하거나 압박하거나 혹은 적을 유인하거나 적의 허를 찌르기에 유리한 곳에 진을 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미리 그것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사람을 보내 “왕은 삼가 어디 어디로는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말하게 했습니다(왕하6:9). 그래서 이스라엘 왕이 아람군의 움직임에 잘 대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왕하6:10). 이렇게 자기의 작전이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자 마음이 불안해진 아람 왕은 그의 신복들을 불러 누군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왕하6:11). 그때 그의 신복 중의 한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했습니다(왕하6:12). 그 말을 들은 아람 왕이 신하들에게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하자 그들은 왕에게 아뢰기를 “그가 도단에 있다” 한다고 보고했고(왕하6:13), 이에 아람 왕은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 밤에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읍을 에워쌌습니다(왕하6:14).
다음날 아침 일찍이 엘리사의 사환이 일어나 나갔다가 아람의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싼 것을 보고는 그 사실을 엘리사에게 알리며 말하기를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했습니다(왕하6:15). 그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는(왕하6:16)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셔서 그로 하여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서 있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왕하6:17).
드디어 아람 군대가 엘리사에게 내려오기 시작했을 때 엘리사는 아람 군사들의 눈을 어둡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셨습니다(왕하6:18). 아람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지자 엘리사는 그들에게 나아가 말했습니다: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왕하6:19). 아람 군대가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성읍에 왔으며 그들이 찾는 엘리사가 있는 성읍으로 안내해줄 터이니 따라오라 한 것입니다. 눈이 어두워진 아람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 찾는 엘리사인지도 모르고 그를 따라갔는데 그들이 간 곳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였습니다. 말하자면 아람의 군대는 호랑이 굴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들이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 엘리사가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왕하6:20).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여셨고 그들은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한 복판에 들어와 있는 아람 군대를 본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에게 물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왕하6:21) 그때 엘리사는 대답하기를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왕하6:22). 왕은 엘리사의 말대로 아람 군사들을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자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도록 놓아 보냈습니다(왕하6:23). 그러자 그때부터 얼마간 아람 군은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다시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쌌습니다(왕하6:24). 아람 군대의 포위가 계속되자 성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굶주리게 되었고 물가는 하늘 높이 치솟았습니다.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나 주고 사고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나 줘야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왕하6:25). “갑”이라는 것은 구약성경에서는 여기서만 나오는 말인데 훗날 용량을 측정하는 단위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갑은 6분의1스아로서 약 2리터에 해당되었다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4분의1갑은 2분의1리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 리터의 비둘기 똥값이 은 다섯 세겔이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이 비싼 것이고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비둘기 똥은 연료로 사용되었거나 아니면 식량으로 사용되었음을 여러 문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훗날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유다 사람들은 자기의 대변을 먹고 자기의 소변을 마셔야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왕하18:27). 아무튼 비둘기 똥 반 리터를 은 다섯 세겔씩이나 주고 사 먹어야 했다는 것은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보겠지만 고운 밀가루를 살 돈으로 그 120분의1 분량의 비둘기 똥밖에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아람 군대의 포위로 인해 사마리아 성안의 형편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뒤따르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의 왕이 성 위로 지나가는데 한 여인이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하고 소리쳤습니다(왕하6:26). 왕이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왕하6:27) 하며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다른 한 여인을 가리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네 아들을 잡아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여 우리가 먼저 내 아들을 삶아 먹었는데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말하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은 그를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자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왕하6:28-29). 그 말을 들은 왕이 자기 옷을 찢고 맨살에 굵은 베를 걸쳐 입고는(왕하6:30) 한 말이 오늘 본문 첫 절의 말입니다: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왕은 엘리사가 사마리아 한 복판에 들어온 아람 군대를 진멸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잘 먹여 돌려보낸 것이 오늘의 이런 후환과 참극을 불러왔다는 생각했을 것이고 그 책임을 물어 엘리사를 가만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 때에 엘리사는 장로들과 함께 그의 집에 앉아 있다가 왕이 보낸 사자가 오는 것을 미리 알아보고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했습니다(본문 6:32). 엘리사의 말대로 왕의 사자가 당도하여 전한 말은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왕하6:32) 한 것입니다. 엘리사 때문에 아람 왕이 또 쳐들어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다 굶겨죽이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되었는데 엘리사는 하나님의 선지자이므로 결국 이 재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고 하나님께서 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해결해주시기를 기다릴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대답한 말이 본문 7:1에서 보는 대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것입니다. 비둘기 똥 반 리터를 은 다섯 세겔이나 줘야 살 수 있는 상황이 고운 밀가루 한 스아 즉 12리터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 즉 24리터를 한 세겔로 매매하게 될 만큼 생필품값이 폭락하며 경제사정이 급호전되리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달리 환산해서 말하자면 비둘기 똥 1리터 살 돈으로 120리터의 고운 밀가루를 살 수 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매우 신임하는 한 장관이 나서서 엘리사에게 빈정거리며 대꾸하기를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했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본문 7:2).
그러는 동안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성문입구에 머물던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왜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겠는가? 우리가 성읍으로 가봐야 거기서는 굶어죽을 것이고, 여기서 머물러있어도 역시 죽을 것이라면 차라리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고 죽이면 죽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왕하7:3-4) 하고는 아람 진영으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보니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왕하7:5).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로 하여금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고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돈을 주고 그 군대들이 함께 우리를 공격해오게 한 것이라 믿고는 다 일어나 도망쳤는데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둔 채 목숨만 건지기 위해 도망쳤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왕하7:6-7). 그래서 그 나병환자들은 진영 끝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어 놓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노략질을 했습니다(왕하7:8). 그러다가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인데 우리가 침묵하고 있지 않느냐? 만일 우리가 아침이 밝기까지 우리끼리만 이러고 있으면 벌을 받을 것이니 이제 왕궁에 가서 아람의 진영이 비어있음을 알리자” 한 것입니다(왕하7:9). 그래서 그들은 성읍으로 돌아가서 문지기를 불러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람 진영에 가보니 거기에는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었소”(왕하7:10). 이 말은 곧바로 왕궁에 전달되었고 왕은 밤에 일어나 그의 신복들을 불러 모았지만 그들에게 말하기를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들이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진영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성읍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읍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라”(왕하7:11-12) 하며 아람 군이 도망친 사실을 믿지 않고 아람 진영이 비어있는 것을 그들의 계략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자 신하 중 한 사람이 진언하기를 어차피 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진데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자고 했고 왕은 그 진언을 받아들여 정탐꾼을 보냈습니다(왕하7:13-14). 정탐꾼들은 가서 아람 군대가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한 것을 보고는 돌아와서 왕에게 알렸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진영을 노략했습니다. 그 때문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 값이 한 세겔로 급락하고 보리 두 스아 값이 한 세겔로 떨어져 엘리사가 예언한 그대로 되었습니다(왕하7:15-16). 그리고 왕이 매우 신임하여 성문을 지키게 한 장관은 백성들에 의해 성문에서 밟혀 죽었습니다(왕하7:17). 그는 엘리사가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예언할 때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며 빈정거렸고 엘리사로부터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는 말을 들었던 바로 그 자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엘리사의 모든 예언은 그대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왕하7:18-20).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람과의 이 전쟁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비록 북왕국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서 악한 왕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사 같은 뛰어난 선지자를 세워주셨고 그를 통해 외국군대의 침략을 받아 멸망할 뻔 했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루 빨리 모든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렸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백성이 되어야 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이 쳐들어왔을 때 그들이 어디 어디에 진을 쳤는지를 엘리사를 통해 다 알려주셔서 이스라엘이 아람의 기습이나 포위를 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람의 군사와 말과 병거가 엘리사를 잡기 위해 도단의 성읍을 에워쌌을 때는 산을 가득 메운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둘러싸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에게 다가올 때는 아람 군사들의 눈을 어둡게 하시고 엘리사에게 이끌려 그들의 적진인 사마리아 깊숙이 들어와 독 안에 든 쥐처럼 되게도 하셨습니다. 아람의 온 군대가 다시 올라와 사마리아를 에워쌌을 때는 그들로 하여금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셔서 이스라엘과 헷과 애굽의 연합군이 공격해오는 줄로 착각하고 일어나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둔 채 목숨만 건지기 위해 도망치게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온 백성의 아사 직전의 경제파탄 상황에서 풍족한 삶으로 급변시켜 놓으시기도 하셨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이런 것이었다면 마땅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와 그의 말씀을 듣는 백성이 되고 멸망을 면하며 행복하고 번영하는 나라를 만들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열왕기하 6-7장의 역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열강에 의해 포위상태와 전쟁의 비극과 기아선상의 경제위기 같은 일들은 우리에게도 과거사인 동시에 언제나 재발이 가능한 현재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한의 상황은 너무나 북왕국 이스라엘이 상황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처한 문제상황의 해결의 길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엘리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본문 7:1) 한 말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 던지시는 말씀으로 들려지고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본문 6:33) 한 왕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등 돌리는 어리석은 길로 나아가는 이 나라 이 백성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닥쳐오는 그 어떤 위기와 위험과 위협으로부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은 하나님께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열왕기하 6:24-7:20
1. 기적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
성경은 기적의 책이며 성경의 내용을 믿는 사람들은 지금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개입하심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특히 신자들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간섭하시고 도우시며 인도하십니다. 때문에 신자의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불신자에게 믿음을 갖게 하시기 위해서
② 신자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③ 신자를 깨우치기 위해서 등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아람군대에 포위 당한 사마리아 성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식을 잡아먹는 비참한 상황에 처합니다. 이 때 엘리사는 당시 사람들로서는 믿을 수 없는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져서 하나님이 아람 군대를 처리하시고 경제가 회복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우상숭배로 타락한 북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적입니다. 기적이라고 다 같은 기적이 아닙니다. 내가 믿음과 상관없이 사는데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셨다면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신호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체험한 기적이 어떤 기적인가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2. 은혜를 악으로 갚는 아람(6:24)
왕하 5장에서는 아람군대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엘리사가 고쳐주었습니다. 왕하 6장에서는 도단성을 공격한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고 사마리아 성으로 데리고 들어가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위하고 사로잡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아람 군대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엘리사의 권고를 듣고 이스라엘 왕이 살려서 보냈습니다. 원수와 같은 아람에게 이스라엘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아람 군대가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사마리아 성을 포위합니다.
아람군대의 모습은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치셨을 때 감사하기 위하여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은혜를 악으로 갚지 않으니 말입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자신을 만드시고 생명의 공급자가 되시는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해서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반역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당할 때 대부분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쳤습니다. 그래도 도망친 제자들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먹었으니 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예외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다는 말이 되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기회가 있어도 보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상을 기대하면 반드시 상처를 입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배신당할 것이라면 아예 사랑을 베풀지 말자'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내가 베푼 사랑에 대한 보상이 없어도 사랑하는 것이 예수 생명 가진 사람들의 본능이 되어야 합니다.
3.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원망(6:25-33)
하나님의 징계를 무섭습니다. 아람이 사마리아를 포위하니 나귀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 됩니다. 나귀머리는 레 11:4 말씀에 의하면 식용이 금지된 짐승입니다. 그런데 은 팔십 세겔 즉 노동자 한 사람의 320일 품삯입니다. 그리고 합분태 즉 비둘기 똥 사분 일갑(0.3ℓ)에 은 다섯 세겔(노동자 20일의 품삯)이 됩니다. 그러니 먹을 것이 없어서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는 지경이 됩니다. 분명히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인한 징계로 고난을 받는데 왕은 하나님과 엘리사에게 원망을 합니다.
여호람 왕은 믿음 없이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교인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30절에 보면 그는 속살에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회개를 상징합니다. 그는 자신들의 잘못으로 벌을 받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옷을 입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과 엘리사를 원망합니다. 그의 모습은 신자들 가운데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고난 중에 기도는 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나 다른 사람을 향한 원망을 쉬지 않습니다. 그의 기도는 모순된 기도입니다. 물론 그렇게 라도 기도하는 것이 기도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 식의 기도라도 계속하면 하나님이 만나 주시고 그것을 변화시켜 주시고 결국 삶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더 바람직한 것이 있다면 원망 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통회하며 회개하는 심정으로 기도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4. 엘리사의 예언(7:1)
여호람 왕이 사자를 엘리사에게 보냅니다. 사자가 오자 엘리사는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서 예언합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경청하면 사람이나 환경이라는 창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엘리사는 성령의 감동이 무엇인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본문에 보면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임할 때 우레 소리가 발하거나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경험한 수많은 경험들이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확신케 했을 것입니다. 신자들은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감동으로 인한 음성을 듣는 일에 익숙해야 합니다. 요일 2:27의 말씀처럼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으면 모든 일을 가르쳐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엘리사의 예언은 환경적으로 보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예언입니다. 고운 가루 한 스아(7.32ℓ)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입에서 나간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에 성취되고야 말았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환경은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이 하신다면 하실 수 있습니다. 5병2어를 5천명에게 나누어주라는 예수님 말씀은 터무니없는 말씀이었지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신앙생활은 말씀에 의지한 생활입니다. 고기잡이에 실패한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졌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5. 불신앙의 결과(7:2)
엘리사의 예언을 들은 한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의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엘리사가 다시 예언합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로 하여금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 소리를 듣게 하셔서 도망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람 군대의 진영에 양식을 취하러 갑니다. 이 때 그 장관은 왕의 명령에 의해서 성문을 지키는데 백성들이 성문에서 그 장관을 밟아 죽게 됩니다. 그는 보기는 보지만 먹지는 못하리라는 엘리사의 예언대로 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부자는 낙원을 보지만 낙원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불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만 동참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주인공이 아니라 구경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요구하실 때가 잇습니다. 이 때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그 영광에 참예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신앙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는 하지만 동참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영적 진리도 동일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면 그 영광을 보고 영광에 동참하지만 불신앙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실제를 보지만 자신은 그 실제를 구경만 할 뿐 동참할 수 없습니다.
6.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7:3∼10)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갈 때 성문어귀에는 문둥이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시의 정황을 볼 때 결국 그대로 있다가는 굶어 죽고 말 것이라는 판단이 서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차피 그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인데 차라리 아람 군대에 항복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기서 죽으나 거기서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그들은 항복하기 위하여 아람 진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이 큰 군대의 소리로 아름 군대를 겁먹게 하였고 겁먹은 아람 군대를 도망을 쳤던 것입니다. 배가 고팠던 네 명의 문둥이는 아람 군대의 진영에 들어가서 실컷 먹고 배가 부르게 되었습니다. 배가 고플 때는 배고픔에 정신 없이 먹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배가 부르니 그들의 양심이 찔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실컷 배부르게 먹었지만 굶어 죽어 가는 백성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다가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고하자"
신자들은 네 명의 문둥병자와 같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소식인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적인 기근을 면하여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영적인 굶주림으로 고통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잠잠히 있는 다면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구명튜브가 가득한 베 안에서 낚시질이나 하면서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면 그 사람의 소위가 어찌 선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지체하지 말고 복음의 구명튜브를 던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