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막이 자켓이 펄럭인다. 햇순처럼 따사롭기만 한 바람은 산 정상에 서자 찬기를 품었다. 꽃들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날 무작정 떠난 바람의 언덕에서 여자는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만진다. 함께 하지만 잡히지 않는 바람이, 가슴에 소용돌이치던 많은 의문을 제 날개 안으로 끌어들인다. 좀은 가벼워지는가, 드디어 하늘을 향한 거대한 기둥이 보이고 바람개비 날개의 울음이 들린다. 제 아픔을 삼키는 소리, 접신의 응답처럼 해석이 난해하다.
너의 첫날은 참 분부셨다. 긴 땅속 집에서 막 깨어난 매미 같았다. 아빠의 구두를 신고 와이셔츠를 입고 졸업식 날 산 양복을 입고 집을 나서는 너의 뒷모습. 이제 막 껍질을 벗고 나온 촉촉한 매미의 날개가 너에게서 보여 황홀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넌 뒤돌아 손을 흔들었지. 마치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그게 참 고마웠다. 문득 누군가가 돌아봤을 때 언제나 난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출근 전날 너의 날개 죽지는 솜털처럼 반응했다. 기대와 설렘으로 한껏 부풀어 오른 너는 세상에서 스스로 벌어먹는 밥의 의미를 아직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사 자격증을 몇 개나 훈장처럼 쟁여두고 이른 나이에 첫 번째 응시한 직장에 덜컥 붙으며 행운아라는 생각을 했갰지. 타향을 향해 가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며 엄마는 너를 보내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지하철 계단 아래를 바라보면서 질주하듯 달려갈 네가 자랑스럽기도 일찍 시작하는 사회생활이 안쓰럽기도 했다.
봄에 떠난 너는 잠을 줄여가며 일을 했다. 신재생 에너지의 선봉에 선 풍력발전. 산 위에서 바다에서 돌아가는 날개들은 사진 찍기 좋은 풍경이 아니었다. 그저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몇 톤의 쇳덩어들 위에서 너는 점검을 해야 했고 외국의 기술자들이 오면 마중을 가고 집을 얻어주고 세간들을 사줘야 했다. 잠시의 짬도 없이 돌아가는 네게 주5일은 꿈같은 남의 나라 얘기들이었다. 설은 잠 깨고 새벽에 일어나 자정이 다 된 시간까지 업무에 매달렸다. 한 번씩 집으로 내려오면 휴일 하루를 아끼며 달게 쓰는 걸 느꼈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지나고 철판을 달구는 땡볕이 지났다. 그을린 얼굴만큼 타들어 갔던 속을 왜 몰랐을까마는 그래도 두 해는 채우겠노라는 말이 고맙기도 했다. 몇 달에 한 번 새로운 사람들이 회사로 들어왔지만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너는 계속 막내로 지내야 했다. 여전히 업무는 과중했고 잠은 부족했었지. 서서히 돌아가는 날개는 가벼운 비상의 몸짓이 아닌 무거운 삶의 고뇌라는 것을 잉잉대는 날개의 울음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산등성이 풍경과 어우러진 커다란 발전기의 날개를 보며 여전히 사진을 찍어 올리고 있다. 엄마도 한때는 그랬다. 마음이 답답할 때 산에 올라 불어오는 바람에 제 팔을 내뻗어 몸을 맡기며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웠다. 제주의 해안가에 늘어선 해상 풍력기를 보면서 이국적인 모습에 황홀했다.
엄청난 터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밤낮 소리 없이 일해야 하는지를 너는 말했지. 블레이드 검수를 하다 보면 좁아졌다가 넓어지는 삼각뿔 위에서 인체는 균형을 잡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 그러다 보면 골반이나 척추가 뒤틀리는 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는 것을.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밤낮없이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쪼개어 살아간다며 열정페이의 부당함을 토로하곤 했다. 그것은 결국 피와 땀으로 일구어진 청춘의 에너지라는 것을 말이다.
부동산의 고공행진과 공정하지 못한 기회에 대한 너희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바늘구멍을 통과한 직장인은 포괄임금제의 덫에 신음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강한 사람을 철인이라 부른다. 세상의 많은 재료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철이지만 값어치를 잊고 사는 것처럼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청춘의 노고를 잊고 열정페이만을 강요한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도 최소한의 안전마저 위협받는 허구를 외면하고 요즘 젊은 것들, 혹은 직장이 넘쳐나도 힘든 일은 안 하려는 게으른 자들이라며 떠들었던 사람 가운데 엄마는 없었을까. 사전도 알지 못하고 섣불리 젊은 너희를 평가했던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네가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해보겠다고 집으로 돌아온 지 한해가 넘어간다. 일한 만큼의 대가를 보장받고 안전이 보장되는 직장, 그게 너의 유일한 욕심이라면 욕심일 테다. 그동안 세상도 바뀌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여전히 열악한 노동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지 각종 사고가 뉴스에서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너의 선택이 옳았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인체의 시계는 가을에 다다랐는데 자리 잡아야 할 자식들은 아직 품 안을 떠날 줄 모른다고 푸념했었다. 어미의 밥벌이가 끝이 없듯 자식의 밥벌이 무게도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김훈 작가의 말처럼 밥에는 대책이 없다. 누구나 다 먹어야 하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 있다. 부모의 숟가락을 네 것에 얹지 않기 위해, 자식의 소진되지 않는 에너지가 되기 위해 팔다리를 바람개비처럼 오늘도 버둥거린다.
너 역시 그렇다. 요즘 너는 계절을 잊고 지낸다. 작년 가을에 시작된 이직을 위한 공부는 지금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운동복에 삼색 슬리퍼를 끌며 집을 나서는 너는 영락없는 고시생이다. 안쓰러운 마음과 든든한 믿음이 교차하는 날, 해줄 수 있는 것은 묵묵한 응원의 눈길과 기다림뿐이다. 긴 터널 끝 보이는 한 줌 햇살처럼 좁은 문을 통과하는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겠지 믿어본다.
가슴에 묵직한 삶의 의문이 이는 날 커다란 날개가 돌아가는 산에 올랐다. 블레이드가 끙끙대면서도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낸다. 잉잉대는 소리가 쉼 없이 가자가자 외치는 다짐의 소리로 들린다. 젊은이의 열정과 노동의 단내가 녹아 만들어진 바람꽃. 바람개비 꽃. 산다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쉼 없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멈추지 않는 바람꽃이 말해주는 듯하다.
(남태희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