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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님
-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
https://youtu.be/fMGQ9WX4JsY?si=GuozPjwUsKwEZ9Vr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님
-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
말 씀:요한계시록3:14~22
부 르 심: 시편 121:1~2
교 독 문:1번, 시편 1편
찬 송:91(91),542(340),259(193),80(101)
기 도:
1)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길 수 있는 믿음
2)북한의 38000개의 김일성 김정일 우상을 무너뜨려 주옵소서
3)부지런하여 게으르지말고 열심을 내어 주를 섬기게 하옵소서
4)예수한국, 복음통일, 주사파척결, 3.1국민대회, 총선200석
1.지금 있는 일의 일곱 교회에게 나타내신 예수님의 모습
다니엘의 칠십 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는 7년 환난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의 마지막 때 한 이레가 있습니다.
한 이레가 있기 전 지금 있는 일은 일곱 교회시대로 일곱 교회의 유형을 가지고
있음을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을 통하여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밧모섬에 머물게 하시어
주일 날 성령의 감동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후 첫 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오늘날 주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감동하여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여 각 교회에게 나타내신
예수님의 모습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있는 일의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여 예수께서 나타내신 모습을
상고하여 은혜받는 귀한 시간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1)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계2:1)”
2)죽도록 충성하는 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계2:8)”
3)혼합주의의 버가모 교회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계2:12)”
4)세속주의의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계2:18)”
5)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교회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6)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계3:7)”
7)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 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계3:14)”
이 시간에는 “더웁지고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내신 예수님은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이십니다.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예수님은 아멘이십니다.
아멘은 히브리어로 진실로, 확실히,참으로, 그리 되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의 뜻을 나타내는 소리내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을 부르고 나서 아멘으로 소리를 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나 말씀을 가르치는 자나 다 함께 “진실로 그렇다”는
의미의 소리로 아멘이라 소리를 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로 끝내면
그 마지막 대답은 “아멘”이라 소리냅니다.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여 운을 떼시는데 “진실로”가 바로 아멘인 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 그 말씀에 대하여 믿는다는 소리로 “아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입에서 “아멘”소리가 크게 나는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십니까?
기도가 내게 확신 있고 기도의 향연이 하늘의 금단에 드려져
내게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다음에 사인과 같은 것이 아멘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끝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이
되어야할겠습니다 . 아멘.
2.예수님은 충성되시다.
1> 충성이란
“충성”이란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이 사전적 의미입니다.
충성의 반대가 배신, 배도, 반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브리서10:7)”
“두루마리 책”이란 성경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예수님을 가리켜 충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미 그리스도를 본받아 본이 된 교회가 바로 서머나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죽도록 충성한 교회”입니다.
“네가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2> 사드락과 아벳느고와 메삭이 충성한 것은?
/ 다니엘서 3:1~30
충성은 죽도록 최선을 다하여 정한 뜻을 지키어 목숨이라도 불사할 수 있은 것입니다.
십계중 제 2계명은 “우상숭배하지 말라”입니다.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십계명의 제2계명“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킬려면
제 1계명을 지킬려는 충성이 있어야겠습니다.
“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충성하는 것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주의적으로 나라가 신격화로 강요하는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유일하게 김일성, 김정일 동상의 38000개나 세워 놓고
절하라고 강요하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김일성 우상숭배의 영이 들어가 자유대한민국을
적화하려는 세력을 “주사파”라 부르고 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진 우상숭배하는 종교이단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은 기독교입국론으로 세운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 교회가 있습니다.
기독교 교회가 변질되지 않고 배도하지 않은 것은
십계명의 제 1계명 “나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과
제2계명 “우상숭배하지 말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을 진실로 받아들여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줄을 믿습니다.
바베론의 느부갓네살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거대한 신상이었습니다.
왕은 전국적으로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라는 시행 명령이었습니다.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그 조치로 “극렬히 타는 용광로”에
던져 넣겠다는 행정명령 법이었습니다.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하매(다니엘3:5~6)”
왕의 명령은 “금신상에게 절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인이 목숨을 건 결단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라”는 사람의 명령이 먼저입니까?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먼저입니까?
성령의 열매 중 “충성”의 열매를 거두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먼저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에 충성하여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단호한 결단”임을 믿습니다.
유다 사람들 즉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모든 악기소리가 나도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갈데아 사람들이 절하지 않은 유다 사람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고발하였습니다.
왕은 붙잡혀 온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디 있겠느냐(다니엘3:15)”
“우상에게 절하라”는 사람의 명령에 충성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충성하는 믿는 자는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는 자로
충성의 열매를 거둘 것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다니엘3:17~18)”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충성된 자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일사각오입니다.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향한 충성된 소리에 분하여
용광로를 칠 배나 뜨겁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의 죽음이 헛되지 말아야 할 것은 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죽어도 살아나는 생명이 부활이 있음을 믿는 믿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예수님의 나타나심
- 다니엘3:19~30
사람이 만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이유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평일보다 칠배나 뜨거운 용광로에 던져졌습니다.
이 세 사람이 결박된 채 극렬히 타는 용광로 가운데 떨어졌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분명 타죽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용광로 가운데로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용광로에 던져진 사람은 분명 세 사람이었은데
용광로 속에는 네 사람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다니엘3:25)”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현현은 베들레헴에 나시고 자라신 나사렛 예수님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구약에서도 예수께서 그 모습을 드러내시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믿음으로 충성된 자에게 나타내시어
능히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읍시다.
용광로 속에는 던져진 세 사람 외에 세 사람을 지키는
네 번째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은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위협에도 사람이 만든 우상에게 절하라고 위협하여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을 본받아 충성될 때에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예수님은 참된 증인이시다.
1> 예수님은 참된 증인으로 창조주이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1:3)”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1:1)
3> 예수님은 참빛이시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1:9)”
참빛이신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시어 치료하시고 어두움의 영을 물리치셨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께서 영접하는 자를 빛의 자녀가 되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함으로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심으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는 그리스도의 신부되게 하심을 믿습니다.
4.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1)”
예수님은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께서 나타내신 모습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께서 교회가 창조론에 있지 아니하고
인본주의로 변질되어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유일하게 칭찬이 없고 책망만 있는 교회입니다.
책망을 받는 것은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고
게을러 인본주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요한계시록3:16)”
예수께서 원하는 교회는 차든지 더웁든지 하는 부지런함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3:15)”
예수님은 게을러 인본주를 따르는 교회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은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경건의 연습도 없어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경고하십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3:19)”
주를 위하여 열심을 내어 예수님과 함께 먹는
최고의 밥상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