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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온 현주는 의상실을 정리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지낼 수 있었다.
이덕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도
며칠을 망설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곳은 그들이 맨처음 만나기로
했었던, 현주가 바람을 맞았던 그
레스토랑이었다.
이덕주는 긴장한 채 더욱 수척해진
현주를 바라보았고 현주는 애써 그 시선을
조금씩 피하려 했다.
"떠나기로 했어요."
"떠나다뇨?"
"그냥 쉬고 싶어요. 이제 딱히 갈 곳은
없지만 떠날 때가 되었어요."
"현주!"
"그냥 들어 주세요. 그 동안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어요. 어떤 방법으로든
사죄를 드리고 싶었는데......"
"......"
이덕주는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주욱
들이마셨다. 현주의 맑은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결국 그 어느 것도 못 하니까 떠나는
거예요."
"후우."
"......"
"노 이사님...... 참 이번에 승진하셨죠.
한번 만나봤습니까?"
"떠나기 전에 뵈올 생각이에요."
"현주 씨!"
이덕주는 다시 한번 파랗게 지친 현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고 가련해 보이는 현주, 이덕주의
눈에 연민이 어렸다.
"왜 꼭 떠나야 하죠?"
"......"
"누구 기다리는 분이 있습니까?"
"......"
"후."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민지섭?
현주는 도리질을 했다.
살기를 품고 신타로에게 권총을 겨누었을
때 민지섭의 모습이 떠 올랐었다. 탕! 한
방의 총소리에 묻혀 영원히 간 듯한 사람,
그리고 몇 달이 흘렀는가. 그동안 그도
그녀도 소식을 주고 받은 적이 없었다.
아니 뉴욕에 도착하면서 그와의 모든게
끝난 건지도 몰랐다.
"민지섭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7년
전에, 하지만 이젠 가까이 느낄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
현주의 술잔에 불투명한 별이 하나
떨어졌다.
"아, 방해해도 되나 모르겠군."
"네?"
어느 사이엔가 노용악이 옆에 서 있었다.
"노 이사님!"
"현주 씨가 여기 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와 봤어. 오랫동안 못 만났잖아."
? "안녕하세요?"
"실은 부탁이 있어서 찾아다녔어요."
노용악이 빈자리에 앉으며 현주에게
말했다.
"......?"
"기억이 날지 모르겠군요."
"......"
"3년 전에 우리 여기서 처음 만났었죠.
바로 이 자리에서."
"아 그래요, 노 이사님."
"자네가 현주 씨 바람맞히던 날 말야."
현주가 보일 듯 말 듯하게 미소했다.
"그땐 추 마담의 마수로 계획적인
접근이었지만, 물론 우리가 감쪽같이 속고
한 정숙한 규수를 만났지만."
"......"
"어때요? 현주 씨."
"네?"
"우리 다시 그때로 돌아가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하는 거."
"노 이사님."
"덕주 자네도 이젠 노총각 신세 면해야
될테구, 어떻습니까, 현주 씨?"
현주는 대답없이 천천히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추 마담에게 접근해
볼 생각입니다."
"네?"
현주가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추 마담처럼 속이고 속는 것이 아니라,
아예 털어놓고 그녀를 우리편으로 끌어들여
볼 생각이에요."
"아니 노 이사님!"
"불가능할 것 같애요, 현주 씨?"
"지금 제 정신이세요?"
"추 마담도 그렇게 반문하더군."
"이미 만나셨군요."
"음, 우리 회사에서 같이 일해 보자고
제의했어."
"뭐라던가요?"
"그게 될 것 같느냐고 묻더군. 그래서
그랬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은 동지가 될 수도 있다
했지."
"재미있는 발상이군요."
조용히 듣고만 있던 현주가 한마디
거들었다.
"현주 씨, 우리 추 마담에게 새사람 될
기회를 한번 만들어 줍시다."
"......"
"추 마담은 해보겠다고 했어요. 실은
실리콘 밸리에 헤드 헌터사를 설립하는데
경험이 많은 추 마담이 우리 회사 정식
사원으로서 그곳 책임자가 되는 거지요."
"추 언니를 믿으시나요?"
"적이라면 못 믿겠지만 한 편이 되면
믿습니다."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추 마담도 현주 씨를 만나고 싶어해요."
"알았습니다."
현주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녀의 웃음이
유난히 하ㅇ다.
"현주 씨."
이덕주가 그런 현주를 불렀다.
"잘 된 일이에요. 그 언니도 불쌍한
사람이니까요."
"고마와요, 현주 씨."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래요."
현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듭이 나지
안타깝게 현주를 올려 보았다.
1981년을 불과 두 달 남긴 어느 날,
이경지는 6개월간 계속된 지지부진한
공채발행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상금리가
가라앉고 공채 원매자가 나타날 것인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경비절감을 위해
사무실도 뉴욕의 호텔에서 헌츠빌
공장사무소로 옮겼다. 그리고 GSEI의 공채
변호사 등과 실무 면담을 시작했다.
따르르르릉.
이경지가 전화를 받았다.
"헬로우?"
"말씀하세요."
"여기는 투자전문은행 메릴린치입니다."
"그런데요?"
"금성사의 공채 3백 50만 불을
프라임레이트 65%에 연동시켜 사겠습디다.
"네?"
이경지는 앉아서 전화를 받다가 벌떡
일어났다.
국제전화를 받은 강길원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뭐야? 오퍼가 날아들었어?"
"네. 시티뱅크 자료에서 82년의 프라임
레이트를 14%로 추정하고 있는데 65%를
연동시키면 9.1%의 아주 좋은 조건입니다."
"좋아, 2백만 달러짜리와 3백 50만
달러짜리를 동시에 집행시키도록 해."
"알겠습니다."
곤욕의 6개월, 실무 3인조에겐 정말
곤욕의 6개월이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1981년 11월 4일. 공채발행은 드디어
끝이 났다.
리스계약 근저당 및 수락계약, 신용장 및
상환계약, 공채상환계약 등을 끝낸 후의
서류 높이는 1미터를 훨씬 넘었고, 발행
주체 헌츠빌 공항당국의 원리금 지급보증
뉴욕시티뱅크 3년 거치 5년분할 상환
조건의 공채발행 서명식은 시티뱅크
변호사실에서 거행됐는데, 도장찍는 데만
상오 8시 30분에 시작해서 하오 4시까지
7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대작업이었다.
마지막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서평원은
그제서야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함을
느꼈다.
청해왔다.
헌츠빌 공항 이사장 에밀톤카터
퍼스트내셔널 은행장 로버트 브랙웰도 손을
내밀었다. 세 사람은 7시간 30분 동안의
작업을 마무리하는 손들을 힘차게 잡았다.
"됐습니다. 오늘 날짜로 5백 50만 달러는
앨라배마 헌츠빌 퍼스트 내셔널 은행
금성사 구좌에 입금되었습니다."
좌우에서 박수가 터졌다. 기업
다국적화의 첫 포문을 연 아메리카
특급작전은 이렇게 해서 3년여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공장건설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건설현장의 모습은
장엄하기조차 했다.
금성사 헌츠빌 공장건설은 국내외
시작했다.
국내 언론들의 반응보다는 차라리 미국
신문들이 당황할 정도로 설쳐대며 앞다투어
취재경쟁을 했다.
그들은 미국땅에 세워지는 최초의 한국인
소유공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지배 아래, 한국
사람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쇼킹하게 받아들이는 측도 많았다. 영원한
아메리카, 위대한 미국, 그들의 우월성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순간이 아닌가. 그런
여론을 배경으로 미국 신문들은 앞다투어
와이드 특집으로 보도를 했다.
'저기 한국인이 오고 있다.'
새로운 위협을 가하고 있다.
편견과 엄살도 많았다. 어쨌든 미국이
정작 당사국인 한국보다 더욱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비즈니스위크', '포춘',
'화이낸셜타임즈', 'JEI', 'TV다이제스트',
'머친다이싱', '뉴욕타임즈' 등 세계
유력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취재 보도를
한 것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일간지 뉴욕 타임즈는
한국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 공장을
세우게 된 금성사의 소개와 더불어 헌츠빌
공장의 생산 규모, 종업원 규모, 확장 계획
등을 상세히 다룬 리딩카피(前文)에 이어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가진
허신구와의 회견 내용을 문답식으로
-미국에서의 노동 임금이 한국에 비해
얼마나 차이가 나며 이곳에 공장을
설립함으로써 갖는 여타 이점들이 그
차이를 상쇄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려는
이유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제품을
미국까지 운송하는 데는 40일 이상이
소요됩니다. 이로 인하여 결국은 애프터
서비스와 같은 판매 후 비용에 상당한
금액을 지출하여야 합니다. 제 판단에
의하면 미국의 노동 임금은 한국의 4.2배
가량 됩니다. 이것은 매우 높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운송비나 판매
후 비용이 절감됨으로써 그 차이를 메꿀 수
-공장 경영은 한국인이 하게 됩니까,
아니면 미국인이 하게 됩니까?
"초기의 공장 최고 경영층 5~6명은
한국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장장, 기술책임자 그리고 재정책임자를
제외하면,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유리한
점은 결코 없습니다. 결국엔 전 종업원이
미국인으로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우선은
한국으로부터 50명 정도가 파견되어 특히
QC(품질관리)를 위주로 미국인 종업원들을
훈련시킬 계획입니다."
-헌츠빌 공장에서 생산하는 TV는 외국
수출도 합니까, 아니면 미국 내에만 판매할
계획입니까?
"우리가 헌츠빌시에 자리잡은 뚜렷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북미나 남미 등지로
-귀사의 VDP와 VTR에 관한 계획은
어떻습니까?
"VDP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RCA의
바늘식과 필립스의 레이저 방식입니다,
어느 방식이 우수한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나는 필립스의 레이저 방식이
RCA식보다는 음질에 있어 우수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RCA와 필립스식 둘 다
특허 사용권을 취득해 놓고 있습니다.
VTR은 일본이 기술제휴를 하지 않고
자기들만이 그 기술을 고수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그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바로 지금도 일본
회사들은 VTR기술을 일본만이 간직하겠다는
이유로 우리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자적인 방식으로
걸어올 것으로 믿습니다. VDP나 VTR은 바로
다음 단계의 주종 생산품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일본 기업들의 전례처럼, 다른 한국
기업들도 귀사를 뒤따라 미국에 진출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다른 기업들의 행동 여하에 대해선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이 우리의
전철을 따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타 기업의 경우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5년 전에
GSEI(Gold Star Eledtronics
International)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는
당장이라도 우리 상품을 판매할 조직을
갖추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
-미국에서 생산되는 TV세트 수량은
"초기에는 샤시를 한국에 있는 우리
구미공장에서 헌츠빌로 공급될 것입니다.
우리의 샤시 생산 능력은 현재 연간 80만
세트에 달하는데 최종에는 이중 절반
가량을 헌츠빌 공장으로 옮길 계획입니다.
우리는 생산능력을 그 이상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볼 때 앞으로
한국에서 생산될 샤시는 50% 정도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한편 우리는 미국 내에서 조달
가능한 부품들에 따라 미국 내 외주업체도
확보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확실한
상황에 따라, 우리는 미국 내에서 가격
경쟁력이 보다 강화될 것으로 압니다."
1982년 10월 7일.
인구 15만의 비교적 작은 도시
마치 축제일처럼 들뜬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구자경 회장 내외와 허준구 부회장,
금성사 허신구 사장 등 각사 사장단과
금진호 상공부차관을 비롯한 국내 인사,
그리고 폴 제임스 앨러버머 주지사,
조데이비스 헌츠빌 시장을 비롯한 미국
현지의 각계 인사 및 주미 한국대사관 관리
등 3백 50명의 한 .미 관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준공식장은 성황을 이루었다.
230명으로 구성된 헌츠빌 하이스쿨
밴드가 아리랑과 오 스잔나를 번갈아
연주하여 경축 분위기를 한껏 돋구었다.
구자경이 축사를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저희 금성사 헌츠빌 공장의 준공을
함께 나누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오늘의 이자리가 있게끔 여러
가지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내빈
여러분들과 오늘의 이 행사를 가장
감격적으로 맞고 있을 금성사 임직원에게
이 감격,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르르. 우뢰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 허신구가 연단에 올라왔다. 허신구는
벅찬 가슴을 억누르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오늘 준공되는 이 공장이
지금까지의 어느 공장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멀리
한국의 금성사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이곳
앨라배마 헌츠빌의 여러분과 손을 맞잡고
우리는 오늘 이곳 앨라배마에 우리
금성사의 첫발자욱을 찍었습니다. 이
발자욱은 금성사는 물론 한국인의 의지이며
한국의 긍지를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또한 건설, 그것을 통한 지구촌의
건설을 의미하며 인류에의 복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물론 한미 양국과 함께 건설한
것이지만 앞으로는 이곳 앨라배마의
헌츠빌에 뿌리를 내리고 종합 가전제품
공장으로 성장하여 앨라배마와 한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공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변함없는 지원을 부탁드리며 여러분과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허신구가 목례하자 식장은 떠나갈 듯한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높고 푸르른
하늘도 이 경축행사를 함께 축하하는 듯
했다.
1982년을 불과 한 달 앞둔 11월의 어느
날은 유난히 하늘이 파랬다.
파란물이 뚝뚝 떨어질 듯이 투명했다.
초겨울답지 않게 추색이 완연한 기후였다.
금성사의 초청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폴
제임스 앨러배마 주지사 내외, 버나이
브레드의 프랭클린 내외, 그리고 의장 비서
쥬디는 서울의 아름다운 가을 하늘에
원더풀을 연발하고 있었다.
귀빈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노용악이
저만치서 오는 쥬디를 발견하고 손을 높이
들며 외쳤다.
"미스터 노!"
"주지사님, 의장님,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미스터 노."
"한국의 첫인상이 어떻습니까?"
"첫인상? 처음부터 아주 좋았습니다."
제임스가 귀빈실을 나서며 말했다.
"네?"
"헌츠빌 공장 건설 때의 한국 인상,
그보다 더 좋은 인상이 어디 있습니까?"
"하하하......"
그들은 유쾌하게 웃으며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올랐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김포가도의 쭉 뻗은 선이 눈에 들어오자
제임스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오우, 한국 아주 좋습니다. 하늘도 맑고
아주 평화롭습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정말 놀랐어요. 많이 발전했습니다.
과연 명불허전이란 느낌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헌츠빌에 공장 건설했다는 거 여기
와서 실감납니다."
"주지사님."
"네."
"헌츠빌 공장의 전망에 대해선
어떻습니까?"
"물론 좋습니다."
"확신하실 수 있는 거죠?"
"물론이오. 2,3년 내에 미국 경제가
회복기에 들어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으니까요. 경제활성화에 대비하여 해외
기업의 대미 진출을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득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금성사의 헌츠빌
공장은 성공이 명약관화합니다."
노용악은 미소를 지었다.
"근데 미스터 노?"
"네?"
쥬디가 눈을 깜박이며 노용악을 불렀다.
그녀의 눈이 장난스레 웃고 있었다.
"나 정말 깜짝 놀랐어요."
"왜요?"
"마담 추 말예요."
"마담 추?"
"네, 마담 추가 금성사 사람이 되어서
다시 나타날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이건
정말 기습을 당한 것 같애요."
"하하......"
"과연 미스터 노다운 용병술이라
생각했어요."
"하하하...... 마담 추는 그냥 썩히긴
아까운 인물이니까요."
"어머 그래요?"
"그 비상한 두뇌하며, 그렇지 않아요?"
"호호, 그럼 저는요? 저는 그냥 썩혀도
되는 그런 사람인가요?"
"네? 아, 그건 절대 안 되죠."
"어머 진심이에요?"
"그럼요. 더 썩기 전에 시집가서 노처녀
신세부터 면하셔야죠."
"네?"
"노처녀로 그냥 썩기엔 미스 쥬디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어머."
쥬디는 까르르 웃었다. 제임스도
프랭클린도 함께 웃었다. 승용차는
성산대교를 통과하여 중심가를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미스터 노."
"네?"
"현주 씨는 어떻게 됐어요? 마음의
상처며 모든 게 아물려면 시간도 걸릴 텐데
어디서 지내요?"
"떠났어요."
"떠나다뇨?"
"원래 디자이너였는데 애인도 파리에
있고 그쪽으로 더 공부를 한다고 떠났어요.
이제 내년 이맘 때가 되면 저 파란 하늘이
보고 싶어 다시 오겠죠."
"그럼 이덕주 씨는?"
"글쎄요, 그게 골칩니다. 미스 쥬디처럼
그냥 썩히긴 아까운데 말예요."
"네?"
그들은 다시 한번 소리내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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