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내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다른 지역에 상륙하였다.
오전에 본 펭귄은 “젠투펭귄”이라고 하며, 오후에 다른 지역에서 본 펭귄은 특이하게도 목주위에
나비넥타이를 맨듯한 “턱끈펭귄”이다.
펭귄의 종류는 모두 21종으로 크기에 따라 황제펭귄(115cm), 킹펭귄(95cm), 젠투펭귄(80cm),
턱끈펭귄(75cm) 등이 있다. 가장 큰 황제펭귄이나 킹펭귄은 보기가 쉽지 않고 대신 3번째로 큰
젠투펭귄과 4번째의 턱끈펭귄은 흔히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간혹 남아공, 뉴질랜드, 칠레, 아르헨티나, 페루 등지의 해안가에서도 펭귄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오리지날 남극 펭귄과 비교하여 크기부터 왜소하고 종자가 다르다
나비넥타이를 멘 신사처럼 보이는 턱끈펭귄 한쌍의 우아한 모습
턱끈펭귄 한쌍이 냄새지독한 똥밭에서 목을 높이 쳐들고 서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집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는 강아지, 고양이를 빼고는 아마도
펭귄일 것이다. 펭귄은 우선 생김새부터 귀엽고, 특히 두발로 서서 짝은 날개를 흔들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재미있다. 그리고 펭귄의 깃털은 오로지 검은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가만히 서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영국신사이다. 특히 까만 줄의 나비넥타이를 맨듯한 턱끈펭귄의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다만 현지에서 보니 붉은색의 똥밭에 엎드리거나 넘어져 앞가슴의 하얀 털이
붉게 오염되어 지저분하게 보이는 펭귄들이 상당수 눈에 띄어 안타깝다.
새끼 두 마리와 나란히 서있는 펭귄 가족. 아주 정겹게 보이지 않는가?
앞에는 아빠펭귄.
날씨 때문에 선명하지는 못하지만 빙하가 장관이다.
빙하를 배경으로 색소폰 연주 포즈를 잡다.
턱끈펭귄 앞에서도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날도 아침식사를 마치고 새로운 지역을 찾아 세 번째로 상륙하였다.
이 지역은 빙하와 빙산이 일품인 지역인데 유감스럽게도 전날과 달리 날씨가 좋지 않다.
눈보라가 치고 바람이 많이 분다. 출발할 때 색소폰 짐이 하나 더 있어 방한복과 털목도리를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다행히 남극 상공에 크게 뚫린 오존층 구멍은 워낙 잘 알려져서
썬크림과 썬글라스는 챙겼다. 그러나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날씨 때문에 상륙을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 이 지역에서 펭귄무리가 제일 많이 서식하고 있다.
그동안 싱가포르 등지의 동물원에서 몇 마리의 양식산 펭귄은 더러 보았지만, 이렇게 순수한 자연산
펭귄 몇 천 마리가 무리지어 서식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물론 TV 프로그램에서 간혹 보지만
실제로 와서 체험하는 것과 감히 비교가 될 것인가?
아마도 평생 아니 3대가 보아야 할 펭귄은 여기서 다 본 것 같다.
다시 조디악을 타고 선내에 돌아오자 가이드들이 기발한 제안을 한다.
우리들 중에 남극해 바다에 다이빙 도전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으냐고?
어느 누가 감히 차거운 얼음바다에 심장마비를 각오하고 뛰어들 것인가?
드디어 내가 손을 들었다. 일행들 모두 호기심 내지 근심스런 마음으로 나를 쳐다본다.
눈을 딱 감고 차가운 남극해 얼음바다에 풍덩하고 뛰어들었다.
약 10분간 수영하고 나오니 그제사 온몸이 후덜후덜 떨린다.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하면서, 수건으로 내몸을 감싸준다.
어찌보면 무모하거나 미친 짓이겠지만 나는 도전에 성공하였다.
이제 나는 어느 누구 앞에서도 자랑할 수 있다.
남극에 가는 것도 보통일이 아닌데 남극에서 펭귄 앞에서 색소폰 불고,
차가운 얼음바다에 다이빙까지 하지 않았는가?
나는 오지여행 다니면서 간혹 생명을 거는 위험한 도전을 하고 있다.
60세에 뉴질란드 남섬 여행시에는 저만치 발밑에 시퍼런 계곡급류가 휘감는 다리위에서 번지점프
(번지점프의 원조)를 시도하였는가 하면, 폭포와 급류는 물론 바이칼 호수 같은 차가운 물에 준비운동
없이 다이빙은 부지기수이고, 최근에는 그린란드 탐험시 무모하게 혼자서 트레킹 나섰다가 북극곰과
에스키모 사냥개에 물려 죽을 뻔한 일 등, 그래도 운이 좋아 살아 있다.
“깡생깡사”라고, 어차피 인생은 모험과 도전이 아닌가?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 당시에 무슨 깡다구로 겁없이 덤벼들었는지,
이제 다시 해보라면 No, Thank you!
나이가 들수록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
나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내 인생에서 할 짓 다하고 살았다.
학교 다닐 때는 쌍코피 터지게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일반 직장에서 중간 간부로 있을 때는 상사를
절대적으로 받들고 부하들을 후려쳐가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였으며, 여유가 생기자 사교댄스에
몰입하여 덕분에 수많은 로맨스도 가져보았다.
안전공단에서 고급간부로 있을 때는 업무와 권력에 대한 관심보다는 색소폰 취미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세계일주 여행을 결심하고 정년퇴직 3년 전부터는 핵심보직을 포기한 대신 색소폰과 여행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다행히도 공단 재직시 내가 관여하고 창시한 PSM제도가 산업안전의 핵심 화두가 되어 정년퇴직 후에도
프리랜서로 계속 일을 할 수 있으니, 여행경비 조달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월급쟁이로 퇴직한
사람이 여행경비로 생활비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돈만 많이 벌 량이라면 언제라도 회사를 차리고 사람을 쓰면 되지만, 퇴직 후 나의 인생 목적은 돈이
아니고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렇기에 용돈이 떨어지고 여행경비가 필요할 때만 프리랜서로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색소폰 연주와 여행, 특히 세계오지여행이 바로 내 인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은 내 스스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차가운 남극해 얼음바다에 대표로 다이빙하여 뛰어들다
남극해 다이빙에 성공한 후 얼음바다에서 기어나와 만세를 부르다.
오후에 마지막으로 킹조지섬에 들렸다.
킹조지섬에는 7개국의 기지가 있는데 한국의 세종기지도 그곳에 있다. 러시아 기지가 제일 크고
그 다음이 칠레, 중국이다. 한국기지는 킹조지섬 깊숙한 곳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국력의 차이라 어쩔 수 없다. 한국기지에 찾아가서 위문공연이라도 하려했지만 주위사람이 말린다.
한국기지에서 원하지도 않을 뿐더러 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집단 성추행 사건이 있어 분위기가 매우
안 좋다고들 한다.
법조계, 정치계, 문화계, 체육계는 물론 과학기술계, 심지어 여기까지 성추문 사건이 있다니,
나쁜 넘들!
나도 상당히 밝히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고상한(?) 춤솜씨(사교댄스)와 감미로운 음악(색소폰)으로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시간이 흘러 로맨스가 다하면 상대에 대한 마무리도 비교적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대신 가정불화로 곤욕을 크게 치렀지만---)
성추문이 있었다는 부끄러운 현장의 방문 및 위문공연은 결국 자의반 타의반 취소하기로 하였다.
킹조지섬에서 최고의 명당에 자리한 대규모의 러시아 기지
귀로는 지루하였지만 선내에서 색소폰을 연주하여 사람들의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역시 어느 크루즈여행에서나 최고의 인기곡이자 앵콜송은 영화 타이타닉 주제가인 셀린디옹의
“My Heart will Go On”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10일간의 남극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갈라파고스
제도로 향하였다.
남극여행의 전체적인 소감을 말하라면, 일반사람들에게는 굳이 추천을 하고 싶지 않다.1000만원
이상의 고비용과 2일간의 남극상륙을 위하여 편도 25시간의 비행시간과 왕복 8일간 아무 할 일도
없이 5m 파도와 배멀미에 개고생을 해야 하므로, 가성비로 따진다면 최저이다.
본인이야 워낙 오지여행을 좋아하고 북극권 그린란드까지 다녀왔는데, 마지막 남은 남극을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
남극에 여행갈 시간과 돈이면 세상에 가볼만한 곳이 즐비하고, 같은 오지라도 좋은 곳도 많다. 장엄한
빙산과 빙하를 실제로 보려면 차라리 남극여행 비용의 반값으로 갈수 있는 북극권 그린란드를 추천하고
싶다.
광어 우럭도 양식산이 아닌 자연산, 여자도 성형빨 화장빨이 아닌 자연미인이 최고인데, 다만 동물을
너무나 좋아하여 양식산이 아닌 순수 자연산의 펭귄 무리들을 꼭 보고 싶은 사람은 예외.
북극, 남극까지 다녀왔는데, 다음 오지 여행지는 어디일까?
오지여행지 중에서 내 생애 죽기 전에, 몸이 불편하면 지게에 업혀서라도 꼭 가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
있다. 바로 서부 티벳 접경지역의 카일라스산 오체투지 순례길이다.
카일라스산은 불교에서 일명 수미산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사바세계의 배꼽, 중심지역으로 산꼭대기에
부처님이 계신 곳이다.
카일라스산을 한 바퀴 돌면 많던 적던 현생에서 지은 죄가 씻어지고, 세 바퀴를 돌면 삼대의 죄가
씻어진다는 곳이다. 착실한(?) 불교신자인 나로서는 삼대는 아니라도 반드시 죽기 전에 현생의 죄를
씻어야 한다.
내가 비록 강도 살인 폭행은 하지 않았지만, 불효죄와 도둑의 죄가 있다.
특히 유부남으로서 새것은 물론 남의 것을 탐한 죄가 크다.
부처님께 나의 모든 죄를 이실직고 하고 고행의 방법으로 카일라스 산을 한 바퀴 돌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고민이 생긴다.
카일라스 산 순례를 하고 모든 죄의 사함을 받는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다.
마음을 다스려도 몸이 따르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사. 그렇다고 매번 카일라스 산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왕 한번 순례가는 것, 마지막까지 죄를 더 짓고, 더 이상 죄를 지을 심신의 여력이 없을 때 비로소
순례길에 나서면 되지 않겠는가?
우리 나이 70이 넘어 주변에서 동창 친구 지인들이 수시로 죽거나 식물인간 상태로 되고 있는 상태에서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지 않는가?
아무리 100세 시대라도 눈만 떠있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닐진데, 내 체력도 서서히 쇠잔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남극에서 만난 룸메이트는 5년 후인 2024년을 추천하며, 그동안 자기와 함께 산악자전거로 세계일주
여행을 하자고 하면서 당장 산악자전거 구입하라고 재촉하고 있다.
(산악자전거 타다가 넘어져 고관절, 아니 무릎이라도 다치면 그것은 더 큰 골치)
그러나 5년 후까지는 너무 멀고, 내년 2020년에는 괴롭고 힘들더라도 모든 마음을 비우고, 카일라스산
순례길에 나서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
2019년 2월 6일
유 철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