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사람(人)이 온다는 건 이현숙대표
대구에서 23년간 두 개의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해온 이현숙 대표를 방문했다. 딸의 결혼식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것이 얼른 떠올랐다. 비혼과 미혼의 비율이 높아지며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결혼은 여전히 우리네 삶에서 집안의 가장 큰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결혼은 등가교환방식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맞선을 통해서 외모와 배경 같은 외향적인 조건을 먼저 알고 들어간다는 점에서 다소 편리한 점도 있을 것 같다. 이현숙 대표는 남녀가 만나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육 개월 길게는 일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여러 번의 만남으로 간 시간을 갖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을 거치며 다른 문화와 다른 가정에서 자란 낯설음을 극복하는 마음의 준비기간이랄 수도 있겠다. 마침내 마음이 통해서 성혼이 되고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게 되면 얼마나 기쁘고 보람이 있을까.
이현숙 대표는 결혼 상담하는 과정을 자세히 일러준다. 우선 서로가 이상형을 피력하고 어떤 공통분모가 형성되면 만남을 주선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이, 학력, 직업, 경제력, 가족관계, 키, 몸무게, 취미 등의 정보를 상대에게 제공함으로서 서로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취향이나 이상으로 상대에 대한 신뢰감과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대표님, 언제부터 이 일을 하셨어요?”
서른아홉 살 무렵에, 오너가 되어서 돈도 벌고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신문에서 우연히 결혼정보회사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미국인 커플 매니저가 바쁜 사람들을 위해서 화상 채팅으로 만남을 주선하고 결혼이 성사되는 기사를 읽으며 머리에 전류가 이는 충동을 느꼈다. 저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이는 결혼정보 회사를 찾아갔다. 큰 회사에 들어가서 두 달 동안 일을 배운 다음 독립을 했는데 고향 구미에서 40평 넓이의 사무실을 열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 1998년이었다.
‘결혼정보회사’라는 광고를 띄우고 전산으로 관리를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사무실을 연 곳이 공단 지역이어서 남녀 성비율이 맞지 않았다. 돌파구를 찾다 눈을 돌리게 된 것이 국제결혼이었는데, 언어문제, 위장결혼 등의 국제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오래도록 일을 피했다. 그러다 베트남 현지인을 통해서 한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그가 착하고 온순한 베트남 여인을 만나고 왔다. 그가 너무나 좋은 인상을 갖고 온 터라 이현숙 대표도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이후부터 농촌이나 공단지역 지역 청년들의 결혼이 늦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내결혼과 함께 국제결혼도 주선하게 되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다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차례대로 밟으며 제대로 된 커플 매니저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 역시 직업에 대한 강한 자의식 때문이기도 하고 자기 일을 더 잘해보겠다는 강한 욕망이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어서 예전에 가난 때문에 국제결혼을 하던 외국여성들도 이제는 조건을 따지게 되고 사랑을 바탕으로 결혼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남성이 여성을 선택하던 시대에서 지금은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난달에는 결혼이 세 건이나 성사되었다.
일은 돈을 버는 것보다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감이나 사회적인 참여로 보람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여성들이 결혼을 회피하고 아기를 낳지 않으니 사회의 미래가 염려스러운 이즈음 커플 매니저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 되고 있다. 만혼의 경우 부모에게 떠밀려서 맞선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들이 마음을 열고 상대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것 또한 커플 매니저의 능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잠시만 소개를 해볼게요.”
이현숙 대표가 잠깐 말을 멈추고 시를 읽는다. 대학에서 다문화와 결혼문화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청강생들에게 읽어주는 시라고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그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위대한 인연」)
시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긴장을 풀어주는 힘. 낯선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며 이현숙 대표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읊조렸을 것 같다. 두 사람의 일생이 마침내 한 자리에 모였다고. 자신을 온통 맡긴다는 의식으로 결혼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고학력과 매스미디어의 발전으로 남녀가 모두 사회적으로 일을 갖고 있는 것이 다반사이고 사회적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할 말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처럼 할 말을 참고 견디는 시대가 아녀서 서로가 존중하고 따뜻하게 어려움을 견뎌 나가기 위한 지혜가 그 만큼 더 필요해졌다고 할까. 설령 서로 의견이 부딪친다고 해서 예전처럼 여성들이 더 참고 견디란 법도 없고 할 말을 다 하는 그녀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현숙 대표는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필요한 것이 유튜브 강의나 따뜻하고 훈훈한 프로그램으로 마음의 벽을 넘어서서 서로 어려움을 헤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지각 있는 기성세대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자라서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어른도 좋은 부모가 되는 공부가 필요하다. 단과대학에서 결혼대학이란 코스를 만들면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강의를 들으며 어른이 되는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결혼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고 서툴고 미숙해서 저지르게 되는 오류를 그만큼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현숙 대표가 활짝 웃는다. 내가 보기엔 금방 급하게 자아낸 생각이라기보다 서툰 어른들을 보며 느낀 진심 어린 마음으로 진다. 공감이 가는 말이고말고. 어른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공부가 필요하다는 그 중요한 사실이. 지나고 난 후에야 무지로 저지른 과오를 깨닫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특히 육아문제에 한해서. 육체적으로 성숙하고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이 아녀서 가정 폭력이 벌어지고 아이를 버리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 아닌지. 실은 어른이 되는 공부가 밥상머리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부모들이 너무나 바쁜 시대가 되었다.
“저는 프로가 아름답다는 말을 참 좋아해요.”
일하랴, 강의하랴, 글 쓰랴 일 분 일 초도 버릴 것 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 그이. 이현숙 대표는 자기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는 개념의 프로가 아니다. 일을 하는 도중에 석사 박사 과정을 밟으며 논문을 쓰고 짬짬이 신문에 짧은 글도 발표하고, 결혼행복정보 채널 리스토리 TV 유튜브 방송 진행자로 사회지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결혼을 장려하기도 하는 그 모든 에너지가 모두 자신의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거나 인정하고 싶다기보다 그이는 자신의 일을 그 만큼 사랑하며 달려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한다. 온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대했는데 상대가 단순한 이해타산으로 대하거나 성혼이 되었는데도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직업인으로 봐 넘길 때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아기를 낳았다거나 돌잔치를 한다는 연락을 받으면 그 모든 회의를 다 잊는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생각이세요?”
한 번도 일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건강이 허락하면 90세가 되어도 경영을 할 수도 있다며 그이는 바쁘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이는 신문에 결혼칼럼 연재한 글을 모아 책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현장 사례를 담은 글이어서 은근히 기다려진다. 그 에너지와 열정은 그이의 숨은 저력이기도 하지만 자아실현의 모토이기도 하다.
그이는 하루도 잊은 적 없다. 자신이 온 청춘을 바쳐 이 일을 하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음을. 외로운 청년들을 결혼이라는 성스러운 궁전으로 이끌고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해주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글 장정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