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 큐티
빌립보서 1:1 ~ 7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간구
※ 빌립보서
하나님의 성령은 바울이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가려는 것을 막으셨고, 바울은 마게도냐로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방향을 주셨다고 확신한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 중 디모데와 누가와 함께 드로아를 떠나 항해했다. 마게도냐의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였으며, 시민들은 로마 시민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보장받았다.
한 성읍에 도착하면 유대인을 찾던 습관대로 바울은 빌립보에 이르러 우선 유대인을 찾았다. 빌립보에는 회당을 형성할 만큼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기도하기 위해 문밖 강가에서 모였다.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로마 간수와 그의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 방문 사건으로 인해서 빌립보교회가 시작되었다. A.D. 61년 혹은 62년경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펜을 들어 그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쓴다.
관찰 :
1) 문안 인사
- 1절.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 사도 바울은 언제나 처럼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곧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신의 영적 아들 디모데 또한 동일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은 공히 “그리스도 예수의 종”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빌립보”(Φίλιπποι, 필리포이)는 그리스 반도 마게도냐 주의 부유한 도시였다. 바울과 실라가 제2차 선교 여행 때 복음을 전한 곳이기도 하다. 빌립보 교회는 유럽 최초의 교회이다. “성도”(ἅγιος, 하기오스)는 ‘분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다쉬”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구약의 제사에서 정결 의식을 통해 죄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죄로부터의 분리는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의미한다. ‘분리된 자들’이 바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자들이다. “감독”(ἐπίσκοπος, 에피스코포스)은 지역 교회를 다스리고 성도를 보살피는 책임을 맡은 최고 지도자를 의미한다. “집사”(διάκονος, 디아코노스)는 원래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성도들을 위해 서로 돕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빌립보 교회의 감독이었던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의 바울에게 왔다가 병에 걸려 죽을 뻔했다. 에바브로디도가 그 병에서 나아서 바울의 편지를 들고 빌립보 교회로 가게 되었기에, 사도 바울은 그렇게 에바브로디도를 세워주는 측면에서 언급을 하고 있다.
- 2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최고의 축복이다. 이러한 문안 인사는 로마 당시의 헬라 문화권에서 없는 인사법이었고,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은혜’라는 것은 인간의 행위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그리고 ‘평강’이라는 것은 그 ‘은혜’의 결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목을 누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화목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먼저 받아서 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은혜를 타인에게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평강이 이루어지게 된다. 사도 바울은 본인 자신이 그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있기에, 빌립보 교회의 성도와 또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릴 것을 간구함으로 축복하고 있다.
2) 사도 바울의 간구
- 3절.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가택연금 상황에서 빌립보 성도들을 자주 생각했고, 자주 기도했다. 감사의 대상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하나님이었다. 우리의 감사 역시 그 대상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셔야 한다.
- 4절.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 사도 바울은 그렇게 가택 연금 상황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는 것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대한 애착이 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빌립보 교회를 향한 기대가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자체를 기뻐하면서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5절.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특별한 교회였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하여 복음 사역을 시작할 때,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개방했다(행 16:14, 15).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사도 바울 일행을 친절하게 대접했다(행 16:19~34). 제2차 전도 여행 시 바울이 데살로니가(빌 4:16)와 고린도(고후 11:9)에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헌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교회는 그가 복음을 처음 증거하던 때부터 복음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그것이 사도 바울의 기쁨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 6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사도 바울은 확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확신하고 있는 일인가?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세상에 증거하는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그 증거를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바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증거하는 것을 착한 일, 고상한 일, 인생이 해야 할 가장 존귀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셋째, 그것을 위하여 매이는 것, 복음을 변증하는 것, 복음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 등이 마땅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착한 일로써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 7절.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는 것에 대해서 마음과 물질로 동참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또한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준 바울을 본받아 자신들도 복음을 증거하고 확정하는 일에 함께 하고 있는 이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기쁨이고, 로마에서 가택 연금을 당한 상황에서도 가둘 수 없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가르침 :
1) 빌립보서에서는 사도에 대한 강조가 없다. 그 이유는 빌립보 교회에서는 사도 바울의 사도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것에 대해서 분명한 자기 인식이 있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있었을 때에나 언급을 하는 것이었다. 그가 사도라는 자신의 직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신분이었다.
2)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감사로 시작한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그렇다면 모든 면에서 완벽한 흠이 없는 교회였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빌립보 교회의 부족과 연약함이 먼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는 감사의 제목들이 먼저 보이고, 그들에 대해서 그렇게 감사한 생각을 우선적으로 하고 했다.
3)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은 처음부터 사도 바울의 선교사역에 깊이 동참하는 교회였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본질이 선교여야 함을 본으로 보여준 교회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도 바울을 본받으며 사도 바울의 선교에 대해서 마음으로, 그리고 물질로 동참하는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빌립보 교회의 감독인 에바브로디도가 로마까지 와서 사도 바울을 만나기까지 했던 것이다.
4) 사도 바울로부터 개척된 많은 교회들은 사도 바울의 소식에 대해서 민감하게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신앙의 모습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결연한 의지로 확신가운데 서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복음 전파를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가장 고귀한 일이라는 믿음, 복음을 증거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은 마땅하며 그 자체가 은혜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믿음이 초대 교회 성도들의 결연하고 강력한 믿음의 초석을 놓을 수 있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적용 :
1)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다. 사도 바울의 상황과 형편을 넘어서는 놀라운 믿음과 놀라운 기쁨을 증거하는 서신이다. 그러한 사도 바울의 믿음과 기쁨은 초대 교회 성도들을 격려했고, 그들의 믿음의 결단으로 이끌었다. 어떤 상황과 여건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참된 기쁨이 되는 삶을 바울의 모범을 통해서 깨달아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진정 사랑으로 바라보고 있고,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도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성령의 교통함이 그들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은혜로 그런 역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들을 통해 이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님의 은혜를 기쁨으로 간구한다.
3) 자신이 계획한 것이 아니라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바울. 사도 바울의 모범은 부족한 나에게도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된다. 감히 나를 사도 바울에 비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 때의 상황도 다르지만, 지금 내가 겪는 과정에서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간구하게 된다. 주님께서는 선한 일을 반드시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