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Ⅲ 30-1]조지훈과 월탄 ‘승무’시와 수필
승무
조지훈(1920~1968)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여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合掌)이냥 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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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學生의 <僧舞>
月灘 朴鍾和(1901-1981)
*한자어가 낯설 듯하여 한글를 병기했음.
꽃보다도 더 곱고 달보다 더 아름다운 妙齡묘령의 젊은 僧女승녀가, 먹 長衫 흰 고깔에 붉은 袈裟를 어깨에 걸치고, 외씨같은 흰 버선을 내디디어서 그윽히 흐르는 百態의 曲線을 지어 슬몃슬몃 늠실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하다가, 情熱이 점점 오르기 시작하니 忽然히 먹 長衫을 걷어붙이고 纖纖玉手섬섬옥수를 드러내어, 마침내 채를 잡아 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동동거리는 북소리와, 하느적거리는 어깨춤과, 腰線에 躍動하는 蕩美탕미가 悽艶할 때, 드디어 계집의 情熱慾火는 活火山처럼 용솟음쳐 터져 올라와서 自己가 修道修女인 것도 忘却망각하고 먹 長衫 흰 고깔을 벗어 내동댕이치고 북을 치며 춤을 추다가 북을 쳐서 그대로 愛戀애련 三昧境삼매경 속에 빠지면서 봄바람에 浩蕩호탕한 破戒女僧파계여승이 되어버리는 것이 僧舞승무라는 것이니, 僧舞는 懷春회춘의 淫蕩한 춤이요, 肉의 本能을 謳歌구가하는 無言의 詩劇을 謙겸한 우리나라 民俗舞踊민속무용의 하나다.
解放以後해방이후에 外國의 人士가 頻繁히 韓國에 往來하게 되자, 우리는 이들에게 韓國 固有의 古典고전 舞踊을 紹介하고 보이기 위해서 歡迎會환영회의 餘興여흥으로, 舞臺무대 위의 演技를 가끔 舞踊專門家가 보여주는 것은 좋았으나, 이것이 차차 번지고 퍼져서 女學校 學藝會학예회까지 韓國의 古典舞踊이라 하여 이것을 女學生에게까지 추게 하는 일이 있다. 더욱이 한층 寒心한 것은 國民學校 5, 6學年 程度의 코를 졸졸 흘리는 어린애에게까지 먹 長衫에 흰 고깔을 씌워 이 춤을 추게 하고 外賓외빈 앞에 拍手喝采를 받게 한다. 너무도 잔인한 일이 아닌가? 춤도 안되려니와 蕩女의 멋을 알아야 춤이 될텐데, 춤도 아니고 장작개비다.
根本을 캐어보지도 않고 古典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르쳐야 되는 줄 안다. 나는 어느 女學校 學藝會서 女學生이 추는 僧舞를 한참 동안 딱하게 바라보다가 會가 파한 뒤에 校長先生님께 “교장선생님이 僧舞의 由來를 아시오?”하고 물으니 “그저 고전무용인 줄만 알지 잘 모릅니다”하고 率直하게 대답한다. “이것은 修道하는 修女가 懷春을 하여 破戒하고 놀아나서 失行을 하는 춤이니, 아예 여학생들에게 다시는 추게 하지 마시오”하니, 그때야 교장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悅然히 깨달은 듯했다. 그러나 다음번 학예회때 다시 한번 가보니 如前히 여학생이 승무를 춘다. 교장은 學務에 바빠서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러나 普通보통 사람이 아니라 學校의 어른이다. 승무를 여하갱에게 추게 해서는 아니된다. 그리고 무슨 춤이라는 것쯤은 常識상식으로라도 미리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