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善之家 必有餘 慶>
(적선지가 필유여경)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말이다.
옛날에ᆢ
장대비 쏟아지던 날 밤
천둥 번개 치고
비가 퍼붓듯 쏟아지는데
주막집의 사립문 앞에서
누군가 울부짓는 사람이 있었다.
“영업 벌써 끝났소.”
자다가 일어난 주모는
안방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 때 열서너살 먹어 보이는 사동이 나와서
사립문을 열어보니 한사람이 흙담에 등을
기댄 채, 질척거리는 흙바닥에 앉아 있었다.
고주망태가 된 술꾼인 줄
알았는데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가시넝쿨 속을 헤맸는지,
옷은 찢어 졌고 삿갓은
벗겨졌고 도롱이는
비에 흠뻑젖어 있으나 마나다.
사동이 그를 부축하며 뒤뜰 굴뚝옆에
붙어있는 자신의 쪽방으로 데려갔다.
내일이 장날이라 장사꾼들이 빼곡하게,
새우잠을 자는 객방에는 자리가 없었을 뿐더러
비에 젖은 흙투성이를 방에 들이게 할 수도 없었다.
사동이 반평도 안되는 자기 방으로
그 사람을 대려가 호롱불 빛에 보니
그 사람은 볼품없는 노인이었다.
동창이 밝았을 때 노인이 눈을 떠보니
자신은 발가 벗겨져 있고 옷은
바짝 말라 머리맡에 개어져 있었다.
그때 사동이 문을 열고 생긋이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아궁이에 옷을 말렸으니 입으세요.”
그 몇일 후, 그 날은 장날이 아니라
일찍 주막문을 닫으려 하는데, 웬 장정이 들어왔다.
주모는 바깥 나들이를 나갔고 사동 혼자 있었다.
“너, 나하고 어디 좀 가야 쓰것다.”
장정이 사동의 손을 잡아 끌었다.
“안돼요. 왜요?”
그렇지만, 덩치 큰 장정은 사동을
번쩍 들어 사립문 밖에 매어 둔 말에 태웠다.
말은 달리고, 사동은
떨어질세라 장정의 허리를 껴안았다.
수십리를 달려
고래등 같은 어느 기와집 앞에 멈췄다.
사동이 바들바들 떨면서
장정에게 이끌려 대문 안 사랑방으로 갔다.
유건을 쓴 대주 어른이
빙긋이 웃으며 사동의 두손을 잡았다.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어? 그날 밤 비를 맞고...”
“그래, 그렇다.
내가 어머님 묘소에 갔다가
갑자기 폭우를 만나, 하인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나혼자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여우고개 아래 너희 주막에서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사동의 얼굴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놀라움에 벌린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날 밤 비를 맞고 주저앉은 노인을 보고,
"붓장수일까, 갓장수일까, 아니면 비렁뱅이일까?"
온갖 추측을 다 했는데, 이런 큰 기와집 주인이라니...
“너의 바람이 뭐냐?”
“돈을 벌어서 주막을 도로 찾는 것입니다.”
원래 여우고개 아래 주막은 사동네 것이었다.
그런데 이태 전,
7년이나 누워 있던 사동의 아버지가
이승을 하직하자 약값으로 쌓인 빚 때문에
주막은 저잣거리 고리채 영감에게 넘어갔다.
사동의 어머니는 저잣거리 국밥집 찬모로
일하게 됐고 형은 장터에서 지게꾼으로 일하고 있었다.
지금 주막집 주모는 고리채 영감의 사촌 여동생입니다요
사동의 내력을 다 듣고 난 대주 어른이 물었다.
“몇년이나 돈을 모으면, 그 주막을 도로 찾을 것 같으냐?”
코흘리개를 겨우 면한 사동이 손가락을 세어 보며 말했다.
“십년 안에는...” 대주 어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동을 말에 태워 돌려 보냈다.
이튿날 대주어른이 저잣거리 고리채
영감을 찾아가, 주막을 사겠다고 흥정을 했다.
이미 주막이 넘어간 가격을 알고 있는데
고리채 영감은 터무니 없는 값을 불렀다.
며칠 후 나루터 옆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좋은 길목에 목수들이 모였다.
"뚝딱 뚝딱". 석달 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시월 상달에, 널직한 기와집 주막이 완공됐다.
대주 어른은 완공식 날,
땅 문서와 집 문서를 열두살 사동에게 주며 격려했다
자!
네껏이다 너의 선한 마음을 보고
나 또한 큰 감명을 받아 너에게 베푸는 것이니
어머니와 형과 함께 잘 살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