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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직접쓴글 "자본주의 광고는 우리 모두가 위대한 욕망의 전사이기를 촉구한다"
자주쓴풀 추천 0 조회 95 09.06.03 12:31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자본주의 광고는 우리 모두가 위대한 욕망의 전사이기를 촉구한다"

 

 

 

17세기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라고 했다.

20세기에 바바라 크루거는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라고 말했다.

냉소적인 표현이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의 정곡을 찌른 일침인 듯싶다.

이미 오래전에 물질만능주의에 입각하여 인격마저 가늠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시장주의의 일방적인 지배와 상품주의만이 창궐하는 사회에서 삶의 존재 의미란 묘연할 뿐이며,

인간에 의한 인간을위한 인간적 본질의 현실적 획득은 무망한 노릇이 되었다.    

정말 섬뜩하고 공포심을 느낄만한 일이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최소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만큼은 더욱 그러하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씨로 이어지는 정부를 지나면서

세상은 더욱 그러한 관성을 확고부동하게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음이다.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진정으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존재성의 근거가 되는 것은 무엇이며, 그 무엇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게 혹시 당신에게는 있는가?

 

 

나는 술 광고 금지에 전폭적으로 동의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몇 년 전 술을 멀리하거나 줄여보려는 요량으로 102일 동안 금주생활을 하는 내 일생일대의 대기록(?)을 세운 적도 있었으리니,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온존하는 전체주의 식사 문화와 그릇된 술 문화로 인하여 권유받는 술을 거절하거나 조절하지 못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고 본다. 나아가 개인의 고유한 식사 권리로써의 음주 선택 권리가 박탈당한 원인 중에 하나로써 공세적으로 퍼붓는 술 광고의 해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눈으로 귀로 느끼는 맥주 광고의 흰 거품과 효과음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 충동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게 되는 경험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므로...

 

아무튼 나는 실현성이 희박하더라도 담배와 마찬가지로 술을 광고 금지품목에 포함하는 것에 적극 동의하며 자본주의 광고에 대한 유감에 대하여 몇 마디 하련다.

 

예전에 영화 '올드 보이'의 주연, 최민식씨가 출현한 정유사 광고가 있었고, 전투기가 도로에 착륙하여 주유소에 진입하나 주유원에게 문전박대당하는 광고가 있었다. 또 빨간색 짧은치마를 입은 키가 여자가 달리기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열심히 수건으로 닦아주는 설정의 정유사 광고도 있었다. 이 광고의 마지막에 들리는 말 한마디, 빨간색을 기억하라나 뭐라나...

 

나는 이 세 가지 광고를 집중해서 본 적이 없어서인지 세 가지 광고에 나오는 유류제품의 제조회사와 상표명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며 광고주가 누구인지 관심도 없다. 그런 광고들은 한낱 공해일 뿐이며 나의 중요한 시간을 도둑질할 뿐이다. 더구나 정유사 광고는 자동차에 대한 구매를 증가시키며, 결국 온실가스의 증가로 인하여 환경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보행의지를 감소시켜 건강을 해치게 할 뿐이다. 유류 구매 시, 소비자가 광고를 참고하여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정유사 광고를 제작하지 않아 소비자가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유류 소비자에게 과연 어떤 불편이나 손해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을까. 대개 연료가 부족해지면 스스로 알아서 주유소에 가는 게 상식이므로,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정유사 광고비용은 소비자 개인의 손해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전사회적 손실임이 분명하다.

 

광고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악적인 요소도 있다고 하겠지만, 무차별적인 광고가 이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광고의 비용은 전사회적 비용이며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광고의 내용에 대하여 전혀 결정할 수 없는 구조라면 이런 광고 제도에서 근원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술이나 유류 광고뿐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광고 행태 중에서 재고되어야 할 것들에 대하여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어본다.

 

 

1. 아파트 광고

 

인간의 고유한 본성을 말살하고 민중의 주거생존권을 파편화시키면서 고밀도 고층 위주로 재개발되는, 금값 아파트 문화의 무분별한 확산이 민중의 공동체적 삶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집이란, 집을 지을 때 그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하여 집을 짓고, 그 집의 수명이 다했을 때 건축 폐기물을 남기지 않아서 집이 사라진 그 자리에 바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그런 생태학적인 집이다.

 

시멘트공화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주거문화를 살펴보자. 몇 십 년 살지도 않은 집을 재건축이라는 미명아래 허물어 무수한 건축 폐기물을 쏟아내고 다시 시멘트를 비롯한 반환경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몇 배 높게 쌓아 올린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런 현상은 아마 1964년, 최초로 서울 마포에 아파트라는 것이 건축된 이래로 40년을 넘도록 계속되고 있으며, 이 미친 질주가 언제 멈출 것인가에 대하여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쯤에서 이런 말을 해본다. 반민중적인 고가의 고밀도 고층아파트의 확산을 한마디로 지배계급에 의한 ‘노동자 수납상자’의 급속한 유포라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이 될까. 만약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 변을 한번 듣고 싶다.

 

도시 집중률이 90% 이상이고 과반수 이상의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체 인구 과반수 이상의 주거형태가 아파트라는 현실에서, 무차별하게 아파트 문화를 확산시키는 자본주의 아파트 광고는 민중공동체 해체를 가속하는데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임이 매우 분명하다. 따라서 이 땅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아파트 광고에 대한 적극적인 불매운동을 조직해야 하며, 높은 인기를 누리는 배우나 지명도 있는 공인 등이 부동산 투기공화국을 조성하는 광고에 출현하여 엄청난 부를 취득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에 상응하는 수치심을 깨우쳐 주는 운동에 돌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현재의 주택 정책을 ‘투기 개념’에서 택지국유화에 근거한 ‘사용 개념’으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2. 전단지에 의한 개업 광고

 

내가 사는 곳도 아파트이다. 현관문을 열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광고지를 본다. 물론 이것들은 나에게 아무런 정보가 되지 못하므로 모두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 묻힐 수밖에 없다. 종이와 자석류 등의 자원도 아깝지만 이 광고지를 배포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노동력도 심히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광고지 배포에 대한 대가로써 약간의 금원을 취득하겠지만, 아무리 생계를 위한 일이라도 그 일이 얼마나 사회성을 가지며 직업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성찰해 볼 일이다. 대개 이러한 광고가 당해 지역에서 배달 등을 하여 힘들게 일상을 영위하는 영세 상인들의 생계형 광고라고는 하지만 다소 소모적인 요소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사회가 공격적인 영업전술을 구사해야만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사회이기 보다는, 상품에 대한 매력(구매력)과 품질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그 향기가 은근하게 소비자를 움직여서 제민중들(자영업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이 그 자신의 품위를 지키면서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이런 생각은 허황한 것일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제아무리 삶이 치열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먹고살기 위하여” 지나치게 앞만 응시하며 적잖은 품위와 개인성과 자기 철학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3. 길거리 무단 점유와 소음을 동반하는 개업홍보 광고와 무질서한 간판 광고, 밤거리의 네온 간판 광고

 

국제투기자본이 야기한 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엄청난 자영업자들이 생겼다.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30%를 상회한다고 하며 이 통계치는 OECD 국가 중에 가장 높다고 한다. 그 많은 자영업자가 개업하는 첫 날, 길거리에서 반드시 거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반라의 여성들이 상업적인 통속 음악에 온 몸을 흔들며 거리를 지나는 운전자들의 안전운전을 위협하면서 개업 홍보를 하는 풍경이다. 길이란 어느 개인의 이윤창출을 위한 광고 수단으로 점유되어서는 안 되며, 아무리 개업광고를 하는 경우라도 법적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이 허용되는 건 아니다. 또한 길이란 성인들만 지나가는 것도 아닌데 반라의 무희들이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 몹시 의심스럽다. 나는 이 같은 폐해에 대하여 도청, 시청, 경찰에 이에 대한 처리를 요청한 적이 있지만 그 어떤 긍정적인 행정처리도 기대할 수 없었다. 내가 사는 지역의 행정기관에서 ‘소음진동규제법’에 의한 공적인 처리를 희망하는 건 불가능하며, 공무원 복무규정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무원이 누구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간판광고를 보자. 간판에 의한 공해는 그 수위를 넘어 선지 이미 오래됐다. 점점 대형화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돌출형과 이동식으로 하늘과 거리를 점유하는 광고 형태는 가히 현란하기 이를 데 없다. 간판 크기를 일정하게 규제함은 물론이고 간판에 쓰이는 색상 중에 빨간색과 네온광고판 사용 권한을 병원과 약국에만 허용하는 프랑스 파리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의 길거리 풍경은 난잡하다는 표현을 넘어서 한마디로 그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을 정신분열증 환자로 만들 만큼 혐오스럽다고 하겠다.

 

우리가 한국 사회에 살면서 이런 천박한 길거리 풍경과 반사회적인 광고행위를 언제까지 용인하고 봐 주어야만 하는가! 또 다시 “먹고살기 위하여”라는 구호에 묻혀서 만인의 권리가 실종되어야만 하는가? 길은 모든 사람을 위한 문화공간이 되어야 하며 이 사회의 혈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한마디로 작금의 이 사회의 길은 혈관이 꽉 막혀서 회생하기 힘든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다 해도 결코 심한 말이 아니리라! 어서 빨리 길을 구하고 장애인 이동권도 확보하자!

 

 

4. 즉석 가공식품 광고(하향평준화 세계화의 뚜렷한 증거로써)

 

아메리카합중국(U.S.A.)의 뉴욕주 위쪽에 캐나다와 국경이 가까운 버몬트주 주도, 몽필리에시에는 그 흔한 맥도널드 분점이 하나도 없다. 청주 같은 조그만 도시에도 두 개가 성업중이고 충주에도 한 개가 있으며, 대한민국 땅에 맥도널드가 깃발을 꽂지 못한 곳이 한 곳이라도 남아 있지 않은 형편인데, 버몬트주 몽필리에시의 예는 전 세계 시장을 무대로 3시간에 하나씩 무서운 속도로 그 분점을 넓혀 가는 맥도널드에 대항하여 지역경제가 거대기업을 물리친 좋은 사례로 꼽힌다.

 

강대국의 일방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계화를 반대하며 ‘경제의 탈중심화‘만을 주장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먹을거리를 온전히 지켜내고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먹는 문화를 송두리째 변화시켜 한다는 것이다. 우리 옷을 살리자는 ’옷생활 운동‘, 인간의 본성을 살릴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한 ’집생활 운동‘과 함께 우리의 안전한 밥상을 살리는 ’밥생활 운동‘이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면 위험한 음식(특히 수입 농산물로 제조된 즉석 가공식품)을 자유롭게 광고할 수 있도록 방치하는 국가의 행위는 민중건강권을 방치하는 분명한 직무유기이다. 도대체 이 나라의 보건복지가족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한국의 민중들과 나아가 전 세계의 민중들에게 보편성을 겸비한 ‘상향 평준화의 세계화’가 필요한 것이지, 자국 민중들의 건강을 담보로 저질 음식문화를 무분별하게 수입하는 세계화를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향하여 ‘하향 평준화를 내용으로 하는 세계화’를 강요할 때 이를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주권국가의 자존심이 그리울 뿐이다.

 

 

~ 진정하게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 땅의 ‘보수’와 과연 어디에 방점을 찍고 전진해야 하는지 아직도 그 지향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진보’가 개량주의적 사민주의, 급진 평등주의, 기회주의적 출세주의, 우물안 써클주의, 묻지마식 지침주의, 비정규직의 희생위에 군림하는 정규직이기주의, 현장 관료주의, 진보적 조합주의, 공동체적 연대를 외면하는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 온정주의적 품앗이 연대주의, 해결사 노조주의, 등과 함께 어지럽게 얽혀 있는 형국이 바로 엄연한 이 땅의 노동자정치운동과 노동운동의 지형이다.

 

친일파친미파 공화국(사대주의 정치꾼과 학자들만 넘쳐나는), 독재사법공화국(민주사법국가에 반하는), 서울공화국, 삼성공화국(삼성제국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사교육공화국, 투기 공화국, 골프공화국, 현수막공화국, 복지부동의 관료주의, 지역 연고주의, 학벌주의, 혈연주의, 외모지상주의, 남성 우월주의, 상품사회의 한계에 함몰된 물신주의, 성과주의, 경쟁력 지상주의, 재벌의 기업에 대한 반상식적인 지배구조 방식 등은 작금의 이 사회를 표현하는 것들이며 조속하게 청산해야 할 과제들이다.

 

‘광고의 시대’라는 말이 익숙해 진지 이미 오래이며, 나의 광고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이 어쩌면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광고로 바라보는 이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 우울하다. 우리가 관성적으로 몰아쉬는 자본주의가 이 사회에서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존재하며 악취를 내뿜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끝이 어디로 이어질 것인지 잠시 지친 몸을 멈추고 돌아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진다면 지혜와 깨달음이 있으리라 믿는다.

 

이상이 자본주의 광고에 대한 나의 짧은 생각이다. 자본주의 광고는 인간해방과 공동체 세상을 염원하는 민중들의 가슴과 감성을 짓누르고 창의력을 말살시키므로 나는 오늘도 여전히 그들이 유감스럽다. 노동자민중이여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하자!

 

1980년대에 강렬한 정치적 색채를 띤 자신만의 문장을 전광판이나 광고매체를 사용해 도시 한복판에서 선전했던 현대미술의 도발적인 작가, 빛이 나는 문장 메시지를 공공장소에 보여주는 작업으로 유명한 미국의 설치미술 작가 제니 홀저(Jenny Holzer), 그녀가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당당하게 매달은 말로 마지막을 맺는다. 광고 문구가 이쯤은 되어야만 민중의 새로운 공동체 세상을 지향하는 '광고다움'이 아닐런지......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날 좀 말려달라)"

~ 제니 홀저의 전광판 시리즈 ‘생존’ 중에서(1985~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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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6.03 15:20

    첫댓글 몇 년 전에 제가 사는 지역의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것을 손질한 글입니다. 언소주 운동이 언론 소비자로서의 광고 시장에 개입하는 운동이었다면, 그 운동의 원칙으로써 제 글이 한번쯤은 논의되어도 좋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소비와 생산관계에서 시장주의와 상품주의는 기본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에 우리는 그 한계를 딛고 서는 운동의 경지에 다가서야 한다고 봅니다. 조중동같은 반민중신문에 광고를 주지 않는 운동을 초월하여야 하며, 광고의 내용도 신문 독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소주 운동의 궁극적인 승리'를 위하여 '상품'으로써의 언론이 아닌 '선물'으로써의 언론이 꼭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 작성자 09.06.03 12:44

    이와 관련한 여러 회원 여러분의 토론을 기대합니다.

  • 09.06.03 18:09

    자주쓴풀님 글 잘 읽었습니다... 광고의 효과는 대단합니다... 티브이나 라디오의 광고는 계속 반복해서 보고 들으면 무의식중에 쇄내를 당하죠... 어느 소주의 광고처럼 흔들어 드세요~~~ 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술마시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술집에서 그 술을 흔들어 먹더군요. 왜 흔드는지도 모르면서... 광고는 무 비판적인 수용을 강요하는 수단입니다... 아파트의 폐해 또한 심각합니다... 그러나 경기부양을 위해, 건설업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에 대한 좋은 점들만 광고를 해대지요~ 어느 누구도 아파트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 09.06.03 18:13

    다른 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서민들의 주거 수단인 반면, 우리나라만 유독 아파트가 부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광고의 효과이지요... 무 비판적인 수용을 강요당한 결과이지요... 술과 인스턴트식품 등이 우리나라에서 잘 팔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주쓴풀님~ 언소주에 좋은글 많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언소주 회원들도 이젠 공부 좀 해야하지 않을까요~~~?

  • 작성자 09.06.05 01:40

    오늘 청주지방법원에서 사법개혁과 신영철씨 사퇴를 촉구하는 1인시위에 다녀 왔고요, 저녁 시간엔 민언련에서 진행하는 언론학교 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늘 강의 주제는 "지역언론을 죽이는 언론악법과 현정부의 언론 정책에 대한 문제점"이었는데요, 한가지 계속해서 저의 뇌리에 남아 있는 궁금증과 고민 지점은 바로 광고 시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언론 개혁 운동의 한계라는 것입니다. 언론이 광고 시장의 작동 원리에 의하여 그 절박한 생존을 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언론의 공익성 극대화와 나아가 궁극적으로 언론의 사회성 강화라는 대과제는 풀리지 않으리라는 생각입니다.

  • 작성자 09.06.05 01:58

    착한헐렁이님 우리에게 광고란 무엇인지요? 예전부터 제가 고민하던 몇가지 고민 중에 하나인 자본주의 광고의 실체에 대하여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생각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근원적인 문제점에 대한 접근을 잘 시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당장의 성과에 지나치게 함몰되는 경향도 있고 또는 좀 더 쉬운 길을 가려 하는 경향성도 더러 보이기도 하고요. 저는 오늘 법원에서의 1인 시위에서 단순하게 촛불에 대한 사법권력의 탄압 등에 대한 이슈만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근원적인 변혁에 대한 이슈를 피켓에 담으려고 한 것도 아마 같은 맥락에서 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암튼 이 사회문제의 뿌리를 직시하고~

  • 작성자 09.06.05 01:56

    그 문제에 대하여 서로의 의견을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졸리네요, 손석희 100분 토론도 끝났고요. 빨리 오늘 찍은 1인시위 사진 올리고 꿈나라로 가야겠네요..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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