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아의 의자 / 최형만
나는 의자에 앉아 있지만 이건 활주로다 발밑에는 카펫 대신 태평양이 깔려 있고 팔걸이에는 이륙 허가가 묶여 있다
저 멀리서 내 이름이 흩어지고 라디오 틈새로 모래알이 흘러내리네 아멜리아*, 하늘을 가른 여인의 숨결처럼 경계선 위로 물드는 새벽빛 그건 비난만은 아니에요 우리가 잃어버린 건 종착지보다 방향이었으니까요
오늘 아침 의자는 바람을 배운다 앉아 있으면 등받이를 눌러오는 것처럼 어깨가 뜨겁다 탑승권이 주머니 속에서 녹슬고 나는 그 종이를 구름 속으로 날려 보내, 사라지는 순서를 눈으로 따라간다
밤이면 별들이 착륙등을 흉내 내고 내 무릎 위에는 착륙을 거부한 그림자가 쌓인다 하늘 전체가 삐걱거리는 소리들 의자 아래의 네 다리는 방위를 잃고 북쪽을 세 번 서쪽을 두 번 반복하다가 멈춘다
누군가 내게 소원을 묻는다면 그건 방 안의 거울이 문턱을 넘어 골목의 가로등을 삼키는 일 빛이 사라질 때 더 멀리까지 보게 되는 일
아멜리아, 너는 다시 이륙하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기름 대신 침묵을 채울 거야 라디오 대신 심장을 주파수로 삼아 하늘과 바다가 서로의 색을 흘리는 시간 어지럼이 천천히 내려오도록
*아멜리아 에어하트(Amelia Earhart)
- 《문학秀》 2026년 가을호 -----------------------------------
* 최형만 시인 1969년 경남 진해 출생.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과 졸업 2020 《동리목월》소설 등단. 2024《전북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제8회 원주생명문학상, 2020 중봉조헌문학상, 2020 동리목월 신인상(소설), 2023 천강문학상 수상 현재 웹진 《시인광장》 디카시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