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최대, 최고 자동차 기업이었던 GM의 몰락은 현대사회에서 부자가 망하면 '다른 이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통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사기업간의 M&A 의 결과일 때가 많은데, 이번엔 정부가 인수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점이 되겠지요.
미국 뉴스에서는 이 GM 의 이니셜을 빗대어 농담을 하고 있습니다. '제네럴 모터즈' 의 이니셜인 GM이, 이제 'Government Motors', 즉 '정부의 자동차 회사'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하긴 대부분의 소유권을 정부에서 직접 행사하게 됐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싶습니다.
미국에 얼마 남지 않은 제조업 분야 중 하나인 자동차 부분에서 GM 과 크라이슬러가 겪고 있는 지금 상황을 보면 대략 답이 나오는 듯 합니다. 그동안의 사기업 체제에서, GM의 노사는 서로 뻔한 협잡을 해 먹고 있었습니다. GM 의 노조는 노동귀족의 전형이었고,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시간당 70달러 이상의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터무니없이 높은 임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액수는 이곳의 비행기 공장인 '보잉'의 직원들이 받는 것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이제 그들의 재정관리를 정부가 맡아 하게 됐으니, 이 거대 회사에 효율성을 부여하려 하겠지요.
하긴 정부차원의 관리와 과거의 거대 공룡 기업이 만나 더 일이 더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 그 '관료주의' 라는 것의 병폐는 세계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 오바마 행정부의 행보는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GM 부실자산 매각, 판매브랜드 축소, 대량 정리해고 등의 수순이 앞으로 기다리고 있고, 여기에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임금 축소, 의료보험 등 복지혜택의 축소 등의 환부 수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긴 그동안의 GM의 방만했던 경영을 생각하면 당연히 있어야 할 일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 거대한 기업이 '망가지기 전에' 챙겼을 수도 있는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후약방문'을 쓰는 것을 보면서, '욕심'으로 돌아가는 이 체제의 한계를 보는 느낌도 듭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GM 에 대한 접근방식은 분명 외과수술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자산의 대부분을 국유화하고 이를 통해 고용인들의 해고를 그나마 최소화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듯 합니다. 물론 거기엔 노동자들의 임금 축소 등의 정책도 포함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바마의 설득을 통해, 자동차업계의 노동자들조차 자신들의 임금수준이 컨센서스에서 분명히 어긋날 정도로 높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지금 이 상황이 사실 얼마나 큰 위기인가를 반증해주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위기의식으로 무장하고 있는 이 노동자들이 어떤 식으로 GM 의 명예를 지켜낼 것인지도 보게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손 댈수 없었던 거대 공룡 GM 에 수술의 칼을 들이대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오바마 정부가, 이를 토대로 해서 이 체제의 모순들에 하나하나 손을 대게 될 지도 궁금합니다. 또 이를 통해 정부 자체의 관료주의도 어느정도 꺾일 수 있는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오바마 정부는 GM 이란 기업의 장악을 통해 지금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아킬레스 건이 되어 왔거나, 혹은 그런 소지를 충분히 지니고 있는 '군산복합체'에 대한 직접적 통제라는 지금껏 선례가 없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의 최악의 경제 상황이 오바마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그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일들의 단추를 끼우도록 하고 있는 것이지요.
육군의 오성장군, 즉 별 다섯개 장군 출신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의 퇴임 연설을 통해 이 군산복합체의 등장과 이들의 전횡에 대해 우려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부시 정권 때 군산복합체는 '핼리버튼'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달고(대주주가 딕 체니 부통령이었다지요? 망할...) 움직였고(아직도 미국 주도의 전쟁들이 '현재형'인 이상 사실은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요), GM 역시 군용 험비 차량을 대량으로 납품했습니다. 사실, GM의 주식이 시장에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우량주로 분리되어 올 수 있었던 기저엔 이 회사가 방산 부문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큰 이유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이나, 보잉 제조 항공기에 달리는 모든 엔진을 만들어 판매하는 제너럴 일렉트릭 등도 '방산기업'으로서의 이익을 꽤 봐 온 셈이지요.
오바마 정권의 노력이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시장의 냉혹한 평가를 가릴 수 있는 정치적 고려들을 배제한 그간의 '봐주기 선심'들은 GM의 몰락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미국 자동차 업계의 대부분은 지금껏 고유가 시대가 오면 고객들의 외면을 받게 될 대기통 차량들을 주력 상품으로 발매해 왔습니다. 이미 시장은 그런 것을 알고 움직였었습니다. 그래도 GM의 경우 자신들의 차가 팔릴 것으로 예상했고, 또 국방 부문에서 많은 흑자를 남기는 편이어서 걱정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대대적인 수술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실제로는 거의 꼴딱꼴딱 숨이 넘어가던 상황)으로 치달았고, 결국 실질적 뇌사 판정을 받은 셈입니다.
이들에게 악몽이 될 상황이 분명히 왔습니다. 그동안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상황이죠. '효율성과의 전쟁'인 동시에, 자동차 업계가 비관적으로 바뀌면서, 이들은 아예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인 '물건으로 승부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금융자본으로 장난을 칠 수 있을 때, 이들은 크레딧 카드 회사까지 만들어서는 지금의 신용위기에 가까운 상황을 만들어내는데도 적어도 일조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크라이슬러 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자동차 업계들이 자기들의 물건으로 소비자를 끌게 될 때가 온다면, 그것은 미국으로서는 다시금 '전성기'를 맞을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때가 올 때까지, 미국은 지금껏 그들이 '허수의 경제'를 만들어 즐겨왔던 것들을 다 토해내야 한다는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수의 경제'가 될 때까지, 그들은 이제 금융자본을 만들어내어 그걸로 자본의 크기를 불려가는 '돈 놓고 돈 먹기'식의 경제구조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계속적으로 미국에서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로 인해 미국의 소비심리는 앞으로 몇년, 아니 길면 십수년에서 수십년까지도, 과거 몇 년 동안 보였던 호황으로 돌아서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결국은 원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조업자는 '물건'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제조업자가 금융기관을 만들어 돈 놓고 돈 먹기 장사를 하는 것... 그리고 정치와 외교에 영향을 끼치며 국민에게 부담을 늘리게 만드는 것... 정말 별로 보기 좋은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시애틀에서...
첫댓글 우와, 대단한 글이네요. 역시 현지에서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고양강/강재홍 드림
좋은글 감사합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큰 어려움이 닥칠때 무너지는 법이죠... 대한민국이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삽질만 해대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