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는 엄청 무더운 날씨 속에 성묘를 하였습니다.
그래도 반가운 얼굴들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현재는 비록 산소에서 절하지만,
그 가운데 주님의 백성이 있다면 속히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저의 부정성을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 주셔서 진리를 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9. 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 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20.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21.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22.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그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23. 주께서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전에 그들의 열조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24.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주민들이 그들 앞에 복종하게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25. 그들이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판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26.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27.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28. 그들이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버려 두사 원수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하시다가 그들이 돌이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 번 주의 긍휼로 건져내시고
29.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또 주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의 영으로 그들을 경계하시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고도
31.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본문 주해)
19~22절 : 유다 백성들의 참회기도는 아브라함과의 언약, 입애굽과 출애굽 구원, 시내산 언약의 체결, 광야 시대 회고하면서 이어진다.
광야 40년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신 것을 고백한다. 즉 만나와 반석의 물이 공급되고, 옷이 해질세라 발이 부르틀세라 아쉬운 일 하나 없게 돌보셨던 것이다.
그리고 요단 동쪽의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
23~31절 : 가나안 정복 이후에서 바벨론 포로기까지의 기간을 돌아보며 참회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무기와 숫자의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으로 그들을 이기고 차지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을 차지하고 먹고 배불러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기게 되자,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선지자들을 죽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 된다.(23~26절)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신31:20~21)
그러므로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의 죄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27~29절은 특히 사사시대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회상하는 사사시대는 ‘불순종(범죄)→고난→부르짖음→구원’이 반복되었다.
이스라엘의 악행으로 그들이 대적의 손에 넘어가면 부르짖는다. 그러면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하여 언약 백성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였다.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러 해 동안 참으셨습니다.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주님의 영으로 타이르셨지만, 사람들은 귀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주님께서는 그들을 여러 나라 백성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을 끔찍이도 불쌍히 여기셔서, 멸망시키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30~31절, 새번역)
주님께서 그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끝까지 듣지 않았고, 그 결과 열방의 손에 넘겨지고 만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손에(B.C 721), 남유다는 바벨론의 손에(B.C 586) 각각 넘겨진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긍휼이 한이 없으셔서 그들을 아주 버리지 아니하신다.
(나의 묵상)
‘인간은 망치고 하나님은 고치신다.’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 본문이 딱 그것을 보여 준다.
의로우신 하나님과 불의한 이스라엘이 긴긴 세월 동안 대조되어 나타나며, 고군분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인생을 돌아보아도 주님의 고군분투하심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이라고 으스댄 것처럼 교회를 다니면서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하나님의 규례와 율법대로 살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나도 그저 이 땅에서의 내 삶이 중요했지,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니 하나님의 뜻은 내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엄청난 착각을 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들이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판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25절)
그래서 이 복을 누리게 되었다.
지금은 신명기(6:11~13)의 말씀을 기억한다.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6:11~13)
그러나 그때는 내가 잘나서 된 것인 양 여겼고, 내가 차지한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나무에 온 마음을 붙이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복음을 알고 나니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어기고, 오히려 사탄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복음을 간절히 원해서 알게 된 것도 아니요, 내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한 때, 전적인 성령님의 개입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바로 주님의 고군분투하심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그때로부터, 지금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벽을 재건하고 율법을 읽으며 긴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의 불의를 회상하는 장면은 불의한 내 인생을 뒤돌아보는 시간이다. 그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신실하심은 내 인생 가운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과거에 나는 하나님을 불렀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내게 겉돌았고,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나무에 대한 생각으로 충만했었다.
이제는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나무에 대한 생각은 겉돌고, 주님이 내 안에 충만하기를 소원하고 또 소원한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가는 힘이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로부터가 아니라, 주님을 기뻐하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님이 충만하다는 것은 말씀이 충만하다는 것이다.(요1:1)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무슨 수로 말씀으로 충만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깨달음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말씀이 충만함으로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되어 내가 주님께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 속에서 육체로 살아가는 나는 여전히 망칠 뿐이고, 주님은 한결같이 고치신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주님을 찬양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님은 여전히 고군분투하시고, 나는 다만 주님의 품속에 안겨 나의 대장 되셔서 싸우시는 주님을 찬양할 뿐이다.
말씀 충만하기에 온 힘을 다해 주님을 기뻐하고, 자랑하고,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출애굽시키시고, 주님의 참 백성이 되기까지 고군분투하신 주님을 봅니다.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십자가에 연합되기까지
그리고 매일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며 영생을 누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고군분투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땅의 삶을 다하는 그날까지 제 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오직 나의 힘 되신 주님만을 찬양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