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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생활에 대한 동경(憧憬)] 제1장 참된 심신 필로테아여, 그대는 신자이다.
그리고 그대는 신심생활을 하느님께서 특히 기뻐하심을 알고 이 덕을 얻으려고 원하고 있다. 그러나 시초에 아주 작은 착오의 결과가 날이 갈수록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므로 그대도 우선 신심의 덕이란 무엇인지 잘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많은 오류와 허무한 것 중에서 참된 심신이란 다만 하나 뿐인 고로 참된 심신을 잘 알고 있지 않으면 그르쳐 거짓된 미신적 신심에 빠질 위험이 있다.
아렐리우스라는 화가는 캔버스에다 그리는 인물을 자기 사랑하는 부인의 모상에 비슷하게 그렸다고 한다.
누구나 다 신심을 자기의 취미나 경향에 따라 그리는 것이다.
대재를 사랑하는 자는 그 마음이 원한에 차 있어도 대재만 지키면 신심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음식에 대한 억제를 중히 여겨 비록 목이 말라도 포도주나 물까지도 마시지 않는 자가 남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말로써 그 혀를 이웃 사람들의 피로 적시는 것을 괴이치 않게 여길 것이다..
혹은 매일 많은 기도를하는 것을 신심이라고 생각하면서 같은 혀로 즉시 하인들이나 아는 이에게 분노와 교만과 멸시의 말을 퍼붓는 자도 있다.
또는 가난한 자들에게는 기쁘게 주머니를 풀어 돈을 주지만 원수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양순을 낼 수가 없는 자도 있고 원수는 용서할 수 있으나 채권자에게는 엄중한 법률 규정에 의하지 않으면 돈을 지불하지 않는 자도 있다.
이런 자들은 세속에서는 신심가라고 통할지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울 왕의 병정들이 다윗을 잡으려고 그 집을 뒤질 때 그의 아내 미골은 인형을 이불속에 넣어 다윗의 옷을 씌우고 남편이 병으로 누워 있다고 병정들에게 믿게 하였다..(영왕기 1 제19장) 그와 같이 신심적 덕행의 외적 행위를 몸에 지니고 있는 자들을 세속에서는 참된 신심을 가진 영신적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가끔 있지만 실은 인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필로테아여.. 참되고 생활한 신심은 하느님의 사랑ㅇ르 기초로 하여 결국 하느님의 참된 사랑 외에 다른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랑 그대로를 신심이라고 하지 않는다..우리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자녀가 되도록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영혼을 꾸밀 때 이것을 성총이라 하고 하느님의 사랑이 덕을 행하도록 힘을 줄 때 이것을 애덕이라고 한다.
완전한 애덕으로써 우리가 열심히 또한 자주 쉽게 선을 행하게 될 때 이것을 신심이라고 부른다..가령 타조는 나르지 못하고 닭은 어쩌다가 좀 나를 수 있으나 서툴고 얕고 드물지만 독수리 비둘기 제비같은 것은 아주 높이 빠르게 나를 수 있다.
이처럼 죄인은 결코 하느님께 날아갈 수 없고 그가 달음질한다고 해도 늘 땅위에서 또한 지상 것을 위해서이다.
아직 신심의 영역에 이르지 못한 선인은 어떤 때는 선행을 하여 하느님께로 나르기는 하나 그것은 퍽 드문 일이고 대개는 느리거나 또한 무겁고 답답하다.
신심의 사람은 자주 빠르게 높이 하느님한테까지 나를 수가 있다. 즉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활동하여 우리가 사랑으로써 열심히 또한 쉽게 선행을 하게 될때 이 정신의 경쾌한 활동과 씩씩한 힘을 신심이라고 한다.
우리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키게 하는 것이 애덕이라면 이를 쉽게 또한 기쁘게 지키게 하는것은 신심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명을 다 지키지 않는 선인도 아니오 신심의 사람도 아니다.
신심 있는 사람이라고 불리려면 애덕 외에 선행을 할 때에 씩씩한 힘과 경쾌함을 가져야한다.
또한 신심이란 어떤 의미에 있어 완전한 사랑을 뜻하는 고로 다만 우리에게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다 쉽게 열심으로 준수케 할 뿐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선행 즉 의무적 계명에 한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적 권고와 성령의 감도까지도 즉시 사랑으로써 행하게 한다.
병에서 겨우 회복된 자가 필요한 길을 천천히 헐떡이며 걸어가듯이 죄에서 겨우 벗어나기만 한 통회자도 신심에 이르기까지는 하느님의 계명의 길을 헐떡이면서 천천히 걸어간다.
신심에 이르면 그 사람은 마치 건강한 자처럼 걸어갈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의 길을 달음질하며 더우기 영적 권고와 성령의 감도의 좁은 길을 헤치면서 달린다.
결국 사랑과 신심이란 불의 불꽃처럼 양자 간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사랑은 영혼의 불이고 그 타오르는 불꽃은 신심이라고 하며 애덕을 불이라고 하며 신심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나아가 영적 권고와 감도를 실천함에 있어 이를 기쁘게 용맹히 열심으로 행하게 하는 그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 -신심생활 입문에서 발췌(2015년 8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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