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박여인은 집에 가서도 혜인이를 빨리 내려오라고 독촉을 한다.
그러나 혜인이는 떠날 수가 없다.
은성이를 누구에게 맡긴다는 말인가?
이제 은성이는 자신의 딸이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가 아무리 성화를 부리더라도 은성이와 떨어져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 되는 날 박여인은 서울로 올라온다.
올라오기 전에 이미 오승민의 어머니인 사돈에게 전화를 한다.
몇 시까지 아들네 집으로 오십사 하는 사돈의 전화를 받은 이여인은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심정이다.
사돈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 입장이라 하더라도 작은 딸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여기 저기 수소문을 해서 사람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적당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
이여인은 시간을 보며 몸을 일으킨다.
“그대로 가도 되겠소?”
아내의 표정을 보며 오씨가 하는 말이다.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지요.
일단 가서 부딪쳐보고 사정을 해 보는 수밖에요.“
“어허, 그 참!”
오씨 역시 무어라고 할 말이 없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여인은 힘겹게 아들네 집에 도착을 한다.
이미 박여인이 도착을 해 있다.
“사돈!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젊은 애들을 한 집에 언제까지 함께 있게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작은 아이도 이제는 제 갈기를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그동안 이모가 있었기에 은성이를 그렇게 키울 수가 있었지요.
그렇지만 사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안 되시겠습니까?“
이여인은 애원을 한다.
그러나 박여인은 굳은 결심을 했다는 듯 고개를 내 젓는다.
“더 이상은 불안해서 안 되겠습니다.
지금 이대로 데리고 내려가겠습니다.
서운하다고 하셔도 저로서는 더 이상 도리가 없습니다.“
“엄마!
조금만 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어서 앞장 서!”
박여인은 강제이다 시피 혜인이를 데리고 나선다.
혜인이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은성이를 본다.
그러나 박여인은 냉정하리마치 차갑게 작은 딸을 데리고 아들의 차를 탄다.
이여인은 그저 어안이 벙벙하다.
당장 은성이를 어찌 해야 할지 난감한 노릇이다.
이제 겨우 팔 개월이 된 아기를 맡아줄 곳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아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은성이를 키울 사람이 없다.
이여인은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애비야!
당장에 이 노릇을 어떻게 한다는 말이냐?“
“엄마, 처제가 갔어요?”
“어떻게 안 갈 수가 있니?
울면서 따라 나서기는 했지만 참으로 안쓰럽고 가슴이 아프다.“
”엄마, 제가 바로 갈게요.“
”그러지 말고 가게로 오너라!
여기에 있을 시간이 없다.
내가 은성이를 데리고 가게로 갈 것이니 그리로 오너라!“
“네!”
이여인은 은성이의 우유와 젖병 그리고 갈아입힐 옷가지와 기저귀를 찾아서 가방에 넣고 은성이를 업고 아파트를 나선다.
이여인은 가게에 도착을 해서 큰 한숨을 내 쉰다.
아이를 데리고 장사를 해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디라도 낮 동안만이라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이리저리 그럴만한 곳을 수소문 해 본다.
그러나 그렇게 쉽사리 나타날 리가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오승민은 서둘러 퇴근을 하고 부모님의 가게로 간다.
처제가 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있는 오승민이다.
장모님의 말씀대로 언제까지 처제를 잡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단 한 번도 처제인 혜인이가 곁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은성이를 위해서도 그리고 또한 자신을 위해서라도 혜인이는 있어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온 오승민이다.
가게로 들어서니 은성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애비야!
이 노릇을 어쩌면 좋으냐?
에미 생각이 나는지 아무리 달래도 저렇게 울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냐?“
오승민은 은성이를 들어 안아준다.
“은성아!”
은성이는 아빠의 품에 안기자 울음을 그친다.
“다행이구나!
그나저나 이 노릇을 어쩌면 좋으냐?
그렇다고 가게를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여인은 그저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애비야!
이렇게는 살 수가 없는 일이 아니냐?
네 앞길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고 은성이를 위해서라도 어디 입양을 보내는 것이 더 좋지 않겠니?“
”엄마!
입양이라니요?
우리 은성이를 입양 보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은성이에게도 못할 일이 아니더냐?“
”안 됩니다.
이제 그 사람을 묻고 와서 아직 시신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의 생명과 맞바꾼 자식입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으신지 서운합니다.“
오승민은 어머니의 말에 심한 서운함을 느낀다.
“그래, 내가 말실수를 했다.
하도 답답하고 앞일이 컴컴해서 잠시 해 본 생각이다.
그만 마음을 풀어라!“
이여인은 아들의 마음이 많이 상한 것을 알고 다독인다.
“여기저기 말을 해 놓았다.
우선 급한 대로 낮에라도 은성이를 맡아 줄 사람을 구해야겠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자.“
“엄마!
고생을 좀 해 주세요.
저도 아이를 키워줄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그래, 설마 살아갈 방도가 없겠니?
어서 집으로 들어가 보거라!“
이여인이 은성이를 안자 다시 은성이는 아빠에게 가려고 발버둥치며 울음을 터트린다.
“은성아!
아빠는 집으로 가야한다.
우리 은성이는 할미랑 있자.“
이여인은 은성이를 달랜다.
그러나 은성이는 더욱 악을 쓰며 울어댄다.
오승민은 그런 은성이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혜인이를 생각한다.
혜인이를 엄마로 알고 자라온 은성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혜인이다.
하루 종일 단 둘만의 시간이었고 삶이었다.
그런 은성이가 갑자기 혜인이의 품안을 벗어나 불안하고 견디기 힘들다는 표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서 가라!
울다 지치면 그치겠지.“
오승민은 그대로 가게를 나온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은성이의 울음소리가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자신으로서 어떻게도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은성아!
조금만 기다려!
너를 키워줄 엄마를 데려다 줄게!“
오승민의 가슴엔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죽은 아내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꾸만 혜인이의 생각이 더 앞선다.
아파트 현관 앞에 혜인이의 승용차가 그대로 있음을 본다.
행여 혜인이가 돌아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집이 있는 층수로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캄캄하게 어둠에 묻혀 있는 집이 눈에 들어온다.
집으로 돌아온 오승민은 더욱 허전함을 느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이다.
자신의 손으로 스위치를 찾아 어둠이 물러가게 해야 하는 이 상황들이 낯설고 두렵기조차 하다.
“아, 혜인!”
오승민은 비로소 혜인이 얼마나 큰 존재였는가를 깨닫는다.
딸아이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대단히 큰 존재였고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처제가 아니라 한 여인으로 자신의 가슴에 살아 움직였던 것이다.
승민은 혜인이 쓰던 방으로 들어간다.
방안은 모든 것이 그대로 있다.
혜인이의 침대 책상 화장대 그리고 작고 앙증맞은 옷장까지도 재윤이의 장난감과 옷들이 그대로 있다.
은성이가 태어나고 함께 쓰던 방이다.
은성이가 잠이 들어 있을 때 가끔 들어와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곤 했던 방으로 혜인이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승민은 가만히 침대를 어루만져 본다.
재윤이를 데리고 쓰던 혜인이의 침대.
“아!”
승민은 그대로 침대에 엎드린다.
마치 혜인이의 체취와 딸아이의 체취를 느껴보려는 듯 그대로 엎드려 한참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승민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느낌이다.
외롭고 허전하고 쓸쓸하다.
세상이 온통 암흑으로 뒤덮여 있는 느낌이 든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미로 속을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하나 가슴이 답답해지고 몸이 천길 낭떠러지기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한참만에야 승민은 몸을 일으킨다.
그런 승민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승민은 혜인의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간다.
그리곤 와인 병을 찾아내어 아무 잔에 와인을 따라 단숨에 들이킨다.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다본다.
마치 혜인이의 승용차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한참을 그렇게 아파트의 입구를 응시한다.
승민은 그렇게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조그만 소리에도 혜인이 돌아오는 것만 같아서 현관으로 나가본다.
집안에 모든 불을 그대로 켜 놓은 채 집을 나간 사람을 기다리는 것처럼 승민은 조그만 소리에도 예민해진다.
언제 혜인이의 존재가 자신의 가슴 가득히 들어차고 있었는지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승민은 이제 죽은 아내에 대한 기억보다는 은성이를 키우고 있던 혜인이가 더욱 그립고 자신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처가에서 절대로 허락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혜인이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다.
승민은 방에도 들어가지 않고 그렇게 소파에서 밤을 새운다.
아침이 밝아오자 비로소 자신이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밤을 새웠다는 것을 깨닫고는 출근준비를 하려고 옷을 벗고 샤워를 한다.
늘 하던 대로 안방에 있는 욕실로 들어간다.
샤워를 하고 나온 승민은 잠시 당황한다.
늘 있어야 할 곳에 속옷이 없다.
승민은 알몸으로 방안을 살펴본다.
서랍장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을 서랍장이지만 새삼스럽게 낯설게 다가온다.
승민은 서랍장을 위에서부터 열어본다.
어느 서랍이 자신의 속옷이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맨 위 서랍이 텅 비어있다.
아마 죽은 아내의 속옷이 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 서랍을 열어본다.
자신의 속옷이 잘 손질이 되어 가지런히 놓여있다.
혜인이의 손길이 닿은 가지런한 모습이다.
승민은 서랍을 모두 열어본다.
그제야 자신의 속옷들과 양말 그리고 손수건등 모든 필요한 것들이 차곡차곡 보기 좋게 손질이 되어 있음을 본다.
이 모든 것들이 혜인이의 손길이 닿았음을 생각한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새로운 소설 이모 엄마! 감사합니다. 봉우님 열심히 잘 읽을께요.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항상 두분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