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
경력
1980 국악 입문
1993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김용배 추모공연 기획, 태평소 연주
1996 타이빼이 난잉 국제민속축제
금산농악 태평소 연주
1997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열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
1998 예술의전당 신년음악회 KBS교향악단 협연
1999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살타첼로 협연
20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헝가리국립오케스트라 협연
2001 세종문화회관대극장 보스턴팝스오케스트라 협연
2002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세계무용축제 개막식 공연
2003 KBS홀 제헌절경축음악회 공연
수상내역
1993 전주대사습놀이 공주농악 장원
1994 전주대사습놀이 금산농악 장원
1995 KBS 국악대상 대통령상
1996 KBS 국악대상 금상
2006 국회 대중문화, 미디어 대상 국악상
소리꾼 장사익의 음악 이야기
장사익이 만들고 부르는 노래는 그의 가슴속에 묻혀있던 흉금을 끄집어 낸 것들이다.
이 노래들의 원초적 출발은‘흥얼거림’으로 삶의 깊이를 고스란히 가락에 옮겨 실은 과정이다. 이는 노래를 작곡한다기 보다는 소리를 "빚는다"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 실지로 그는 자기의 노래를 "엮음"으로 표현한다.
그의 초기음악은 그가 살아온 인생을 담은 내면의 독백이자 내밀한 일기였다.
찔레꽃, 귀가, 국밥집에서. 꽃, 섬 등은 그의 이야기일 뿐이었으나, 결국 보통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의 노래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따스함과 희망으로 다가와 자연스레 감동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장사익의 음악은 자신의 삶의 영역을 더 넓고 깊게 펼쳐가고 있다.
허허바다, 기침, 반달, 파도, 나그네, 사랑굿 등... 채우며 버리며 희망을, 성찰을, 사랑을... 처절하지만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또한 삼식이, 나그네, 웃은 죄 등은 동화적으로 지난날들을 회상케 하며 잔잔한 미소를 띄우게 하는 인생의 유희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전부 시로 엮어진 그의 노래들은 한번 들으면 식상해지는 요즈음의 노래들과는 달리 시간적, 공간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인생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고 있다.
소리꾼 장사익의 음악 형식
장사익의 노래는 무정형으로 기존의 음악적인 형식과 틀을 벗어나 처음에는 황당스레 들려왔으나, 시의 운율과 현대인의 감성과 호흡으로 노래를 엮어 불러왔기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새롭고 자연스럽게 들려지고 있는 것이다.(섬, 국밥집에서, 허허바다, 파도, 기침 등)
그의 형식의 특징은 국악, 재즈, 무속, 가요 등의 요소를 적절히 사용하여 독특한 성향으로 표현되어 많은 시도를 통해 공연을 해 왔다.
찔레꽃, 섬, 국밥집에서, 하늘가는 길 등은 오케스트라와의 접목을 통해 새롭게 재해석 될 것이며 특히 ‘하늘가는 길’은 한국적인 레퀴엠으로 승화시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져 어둡고 슬픈 죽음을 장엄한 상여소리로 재구성 하여 가장 우리적인 소리로 다가 올 것이다.
또한 기존 음악 형식에 국악과 재즈의 요소를 가미한 나그네, 허허바다, 파도, 기침, 귀가 등이 있으며, 김초혜 시인의 사랑굿, 허형만 시인의 아버지, 이선이 시인의 반달 등, 새롭게 엮은 노래도 선보일 것이다.
장사익 공연의 백미인 후반부에서는 주옥같은 대중음악-봄비, 동백아가씨, 대전브루스 등을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흥겹고 신나게 노래한다. 앞서 부른 노래의 진지함의 무게를 천지개벽하듯 훌훌 털어 버리며 노래한다.
그것은 맺힘의 풀어버리는 미학일 수 있으며, 유희적이지만 장사익의 진정한 노래의 의미전달 방법이기도 하다. 장사익의 노래는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의 음악세계를 차츰 확인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며 우리들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울고 웃으며 그리고 벗어내는 인생의 살맛을 더해주는 신명난 소리판이 될 것이다.
노래를 '산다'는 것
당신이 <하늘 가는 길>을 들었다면 그 이름 석자를 잊지 못할 것이다. 장사익이 마흔일곱에 생애 처음 낸 앨범은 백만 개의 시름을 내장한 목청으로 우릴 위로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단지 가슴에 숨긴 것을 끄집어내 풀어주고 싶다고만 말할 뿐.
압구정동 맥도날드 앞, 새끼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인 남자가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생전 갈아본 적 없는 묵은 밭 같은 행장으로, 언제나 반대편에 서있는 듯한 소쇄한 얼굴로 그는, 패스트 푸드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처음이라고 주저하며 말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서태지가 <하여가>를 부를 때 태평소를 불기도 하던, '94 전주대사습에선 '금산농악' 태평소 연주로 장원을 한, 사물놀이팀 '노름마치'에서 태평소를 불던, 가끔 임동창과 협연을 하던, 갈피마다 수줍게 포효하던 그 사람이 장사익이다. 그리고 오랜 잠복기를 거쳐 지난해 그가 발표한 생애 첫 음반 [하늘 가는 길]은 이제 사상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가슴에 조용히 용납되고 있다.
"난 한 사람이 듣고 만족하는 게 중요해요. 백 사람의 만족은 필요없어요."
클론이나, 김건모에 도발된 이들은 세상 모든 노래가 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바라보는 세상처럼 소스라쳐야 하는 줄만 알겠지만 (그 끔찍한 왜곡!), 미안하게도 장사익은 너무 구별돼 차라리 도망칠 수 없다. 백만 개의 시름을 내장한 목청, 심연에서의 외침, 가슴 속 침전물들을 가만히 닦아주는 보컬로 상대가 비틀거리도록 내 버려두면서, 누군가 그의 노래가 장강(長江) 같다더니 과연, 이라는 찬양시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아무리 그가 "나한텐 슬픔이 별로 없슈"라고 말해도.
그가 가수로 '데뷔'한 건 마흔일곱 살 때. 이 조로증에 시들어가는 대한민국에서, 치사하게 나이를 속이기 바쁜 꿈의 영웅들을 같잖아 하다가 그렇게 '연로한' 가수를 만나다니... 친절한 손바닥으로 등을 두드려주고 싶다. 하지만 그는 말하기를, 젊은 가수보다 며칠 더 살았다는 것으로 할 얘기가 더 많다고, 지금이 노래를 부르기 가장 좋은 나이라고.
"나한텐 인생의 높낮이가 있어요. 그 내용들이.
내 얘기가 가슴 속에 묻혀진 것들일 때 전 사람들이 교감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가슴 속에 숨긴 걸 끄집어내 개운해지도록 풀어내는 노랠 하고 싶어요.
한을 풀어주는."
참 생산적인 숨통이다. 그는 자본, 가요시장, 팔린다는 것, 개런티, 그리고 대체로 운 좋은 삶과 너무 무관하다. 차라리 책 몇 권을 만들 만큼의 고단한 사연들이 그를 수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그 흔한 한국 남자로 다가올 뿐. 그러니까, 충남 홍성군 광천, 기민하지 못한 농부의 아들로 나, 풍요가 아니라 풍경 속에서 장성하면서 (때론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풍경에 매혹되긴 오히려 쉽지 않지만), 노래깨나 한다는 소릴 곧잘 들었고, 그 소린 언제나 뇌엽 깊숙이 새겨져 그의 날들마다 하나의 강령처럼 그를 조율하고 있었고, 급기야 신사동 중국성 옆에서 '밧데리' 가게를 하던, 그다지 양명하지 못한 서른일곱 한가운데서 일생의 딱 3년을 태평소를 부는 데 바치자고 작정했고, 그 길로 소리와 대금과 피리를 배우고, 전주대사습에서 태평소로 장원을 하고, 사물놀이패와 임동창을 만났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지난해 어느 하루 그는 음반제작 제의를 거절하지 못한 채 만가 <하늘 가는 길>과 ,<찔레꽃> <귀가> <꽃> <섬> <국밥집에서> 같은 그가 지은 노래 다섯 곡과, <봄비> <빛과 그림자> <님은 먼곳에> 같은, 그야말로 불후의 유행가들을 리바이벌했다. 악보도 없이, 그 앨범은 고립되어 '그밖의 앨범'이었다가, 그의 노래에 흡반처럼 달라붙은 사람들에게 발굴되어 이제 밝은 천지를 보게 되었다.
"사회에 나온 30년 동안 회사생활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난 지금 내 길을 찾은 거예요. 노래를 하는 건...
내가 유일하게 숨을 쉬고 잘할 수 있는 것.
난 노래한다는 것 때문에 딴 건 다 거둬 버렸어요.
그래서 마음이 좋죠. 크게 생각할 것도 없고."
그가 쓴 가사들은 조용하다. 조용하면 많은 게 들린다.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내 노랜 반주를 종소리로 할 수 있고,
파도소리로도 할 수 있고,
장터소리로도 할 수 있어요. 이게 다 자연예요.
전 꼭 그렇게 할 거예요.
장사익 스타일이 다른거죠 뭐."
촬영할 때 그는 <산바람 강바람>과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을 불러주었다. 산 위에서 부는 시원하고 고마운 바람이 그렇게 불길하게 삐걱거리는 부두처럼, 폭풍의 언덕에서 맞는 광포한 바람처럼 육박해올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장난으로라도 생각할까? 그렇게 갑자기 기습해오는 그가 사랑스럽다.
"저유? Y세대쥬. X세대 담엔 Y세대 아뉴?" 하고 눙칠 줄 아는 그가, 맥도달드에서 다 먹지 못한 프렌치 프라이드 포테이토를 아까워하는 그가, 촬영을 위해 미안할 만큼 깨끗하게 손질한 한복을 꺼내는 그가, 그리하여 사람들의 맺힌 것을 풀어주리라는 그가.
그리고, 잊기 힘든 그 사람의 한마디를 보태고 싶다.
"나는 노래를 하지 않고 노래를 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