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노래하는 에스피아르떼
시인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에스아르때 정성진
코로나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사람들이 질병의 고통으로 조용히 숨죽이고 있을 때, 지구는 태풍과 이상 기온, 지금까지 없었던 폭우로 홍수를 일으켜 온몸으로 고통의 단달마를 내지른다. 이 와중에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력파 퓨전음악그룹 <에스피아르떼>의 리더이기도 한 정성진 대표를 만났다. 팀명의 내력을 물었다. SP Arte는 이탈리아어로 희망을 이르는 스페란짜(speranza)의 sp와 아르떼를 합쳐서 ‘희망예술’을 이르는 sp아르떼를 쓴다며 팀명을 자세히 풀어준다. 그 말은 곧 음악을 하는 사람이 먼저 희망을 가져야 행복 바이러스를 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음악은 연주를 하는 사람이 먼저 즐겨야 듣는 사람도 즐겁게 들을 수 있다고.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에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가사를 보면 Guardi le stelle che tremano d'amore e di speranza! 사랑과 희망에 떨고 있는 저 별들을 보는구나! 라는 대목이 있다. 이들의 sp는 거기서 왔다.
코로나19의 발발로 온 나라가 3단계 거리두기를 하던 지난 4월, 음악창의도시인 대구에 참 의미 있는 공연이 있었다. 관람객 없이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라이브 중계로 진행되는 콘텐츠인 ‘DAC on Live’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문화예술회관 소속 4개 시립예술 단체 중 한 팀으로 참가했던 ‘에스피아르떼’도 비어 있는 객석을 보며 관객 없는 연주를 했다. 혼잣말을 하는 듯 쓸쓸한 연주였지만 그렇게라도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기뻐서 온 열정을 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때는 여름만 지나면 코로나의 기세가 꺾이고 금방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줄 알았다.
“멤버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어요?”
에스피아르떼는 바이올린(노윤지), 퍼커션(김찬양), 피아노(이연희), 베이스기타(김제윤)의 4인조 앙상블 팀이다. 성악을 전공한 정성진 대표를 더한 다섯 명 모두 클래식과 실용음악을 전공한 흔치 않은 구성으로,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크로스오버로 작곡과 연주, 편곡을 겸하며 에스피아르떼만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창단 초기의 얘기를 좀 해주세요.”
에스피 아르떼는 2017년에 창단되었다. 연습실이 없어서 레스토랑을 빌리는가 하면 지인의 이층집에서 연습을 하기도 하고, 지금의 작업실을 얻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2018년 제 1주년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본격적으로 연주활동을 시작했고 2019년에 2주년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3주년 공연을 준비하던 중에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다. 갑자기 일을 잃은 이들이 에스피아르떼뿐일까. 모든 음악인들과 극단 관계자들, 하다못해 야외 행사까지 취소된 터라 심각한 삶의 정체현상이 길어질 조짐까지 보이며 연주자들의 초조함을 더하고 있다. 연극도 영화관도 음악연주회도 관객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가 어렵다.
“다섯 명이 어떻게 만났어요?”
로마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오페라 공연까지 했는데, 순수음악 만으로는 관객을 만나기가 어렵고 현실적으로 지탱하기가 쉽지 않아서 크로스오버를 기획했다. 바이올린 연주자와 퍼커션, 베이스 기타 연주자를 만나서 해보자는 제의를 하며 연주 인원이 갖춰지게 되었다. 클래식에서 벗어나며 연주해달라는 콜이 많이 들어왔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 대신에 택배를 한다거나 아르바이트로 지탱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급 인력들이 재능을 썩히고 있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경제적인 여건을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연간 160회 정도의 연주를 하는데, 코로나가 확산되며 활동을 멈추고 있다. 언제 연주가 생길지 몰라서 항상 스탠바이를 준비하고 있지만 기다리는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하다. 에스피아르떼 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연주자들이 똑같은 입장이겠지만 멈춰버린 시간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국가의 의식이 높아질수록 음악의 가치도 올라간다.’
정성진 대표는 음악을 가장 즐겨야 하는 사람들이 현실적인 문제로 맘껏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음악가는 음악을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한데 수많은 연습과 경제적인 여건 등, 많은 제약과 부담을 극복하고 올해 안으로 3주년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음악의 사회적 기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중세 말에, 야생 설치류로 인한 흑사병(黑死病)이 돌아서 유럽 인구를 5분의 1로 줄여놓았던 적이 있다. 300년간 주기적으로 유럽 인구를 줄여나갔던 흑사병으로 인해 백년전쟁이 중단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흑사병으로 유럽이 죽어갈 때 피렌체에서는 르네상스가 찬란하게 꽃을 피웠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바로크문화가 융성해진 아이러니가 발생한 걸 보면 어려운 시절이 인간의 삶에 약이 될 수도 있겠다는 묘한 생각이 든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예술이 아름다이 피어난 것은 상심에 빠진 인간을 위로해주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슬픔을 견디며 예술을 창조해낸다. 그들을 살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가가 먼저 행복해야 관객들에게도 행복바이러스를 전달할 수 있다. 유명한 음악가들도 많지만 무명의 음악가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아서, 돈도 못 벌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굴욕을 참으며 예술을 한다. 다만 좋아서. 예술은 예술가의 영혼을 먹으며 자라는 악의 꽃이련가! 아무리 어려워도 예술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예술은 자신을 이겨야 할 수 있는 것이니. 시역과의(是亦過矣) 라고 하지 않던가.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매니아 층만 즐기는 음악이기보다 계층을 떠나 소상인을 비롯한 서민층에서 충분히 즐길 때 음악의 사회적 기능도 살아난다. 싱글곡 첫 앨범 ‘희망’을 발표하고, 싱글앨범 ‘미라클’이라는 자작곡을 또 만들었다. 희망과 기적은 그들 음악의 모토이기도 하다. 앨범을 발표하고도 연주를 하러 다닐 수 없어서 그들은 유튜브를 통한 랜선 음악회로 팬들을 만나고 있다.
“언제부터 음악을 하셨어요?”
중학교 때, 시민회관에 음악 들으러 갈래? 하는 담임선생님의 제의를 받고 따라갔는데, 시향의 연주 끝에 애국가가 흐르는데 심벌즈가 짱 하고 울렸다. 그 소리에 온몸에 전율이 일며 음악에 대한 인식의 눈을 뜨게 되었다. 성악가로서 오페라 페스티발에서 나부꼬 역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기억에 남는 연주를 꼽자면?”
1주년 창단기념 콘서트가 가장 마음에 남는다. 추운 겨울에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공연을 했는데, 칼바람을 헤치고 오신 관객을 다 받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사태가 생긴 것이 지금도 미안하다. 한 달 후에 문화예술회관에서 그때 공연장에 들어오지 못한 분들을 모셔서 앵콜공연을 한 적이 있다. 앵콜공연에 꼭 와달라며 티켓에 사인까지 해주던 죄송스러움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2주년 기념콘서트에서는 때에는 알맞게 자리를 채워주셨다.
코로나가 터지며 연주회를 못 하고 있어서 팀원들의 사기가 많이 저하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은 연습으로 실력을 쌓아서 다음 연주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연주자는 항상 스텐바이를 준비하고 있다. 르네상스는 그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대변하는 시대의 요구이다. 코로나19가 또 다른 르네상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믿어본다. 글 장정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