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상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판공성사가 무엇인가요?
지난 3월 5일 ‘재의 수요일’로 시작된 사순 시기 잘 보내고 계신가요? 매년 봄에 맞이하는 사순 시기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는 시기’(로마 13,12 참조)이며, ‘악마에 대항하여 악령과 싸워야 하는 기간’(에페 6,11-17; 1베드 5,8 참조)이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때를 ‘우리가 악마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주님께서 친히 지정해 주신 기간’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회개와 보속의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는 내적인 준비를 위해 판공성사를 봅니다. 사실 ‘판공성사’는 한국 천주교회의 특수 용어로 1년에 두 번,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에 보는 고해성사를 가리킵니다. “모든 신자는 사리를 분별할 나이에 이른 후에는 매년 적어도 한 번 자기의 중죄를 성실히 고백할 의무가 있다.”라고 교회법 제989조는 말하지만,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1년에 두 번 춘추(春秋)로 고해성사를 받는 것이 관례였고 이를 ‘판공’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판공성사’는 별도의 성사가 아니라 하느님과 화해하는 ‘고해성사’입니다.
“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모욕이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의 단절이며 동시에 교회와 이루는 친교에도 해를 끼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느님의 용서를 가져다주고 교회와 화해를 이루게 하며, 고해성사는 이를 전례적으로 표현하고 실현”(《가톨릭교회 교리서》 1440항)합니다. 그러니 고해성사는 사제가 베푸는 성사가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성사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즉, 고해성사는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길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대림 시기때 판공성사를 보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두 모여서 한꺼번에 참회 예절로 판공성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죽을 위험과 같이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한, 먼저 개별적 고백 없이 한꺼번에 여러 참회자들에게 일괄적으로 사죄가 베풀어질 수 없습니다.(《교회법》 제961조) 또한 대림 시기 때 판공성사를 보았더라도 삶을 잘 성찰해 보면, 우리를 영적으로 허약하게 만들어서 영적 건강에 해를 입히는 죄에서 벗어나 내적 치유가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사표가 나와서 의무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과 의미를 알고 기꺼이 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정성된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데 절대로 귀찮아하시거나 지치지 않으십니다. 고해성사를 보는 것은 하느님께 심판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과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보듬어 주시는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에 여러분들 모두 용기를 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5년 3월 16일(다해) 사순 제2주일 서울주보 4면, 최연준 사도요한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