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우리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

[박상준]

청각장애인, “우리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

<말아톤> 자막 상영, 2월 28일까지 6일간 상영
SK텔레콤도 3월 9일 1004명 초대
한국농아인협회, '영화진흥법안' 개정 촉구 사이버 시위 중

     천희순 기자 mint1003@withnews.com     입력시간 : 2005. 03.03. 00:00

(주)씨네라인-투는 지난 26일 종로3가에 위치한 서울극장에서 청각장애인 200명을 무료로 초대해 자폐청년의 마라톤 완주기를 그린 ‘말아톤’ 자막영화를 상영했다.

영화 <말아톤>에 자막이 삽입된 장면

이번 무료초청 행사는 지난 2월 23일부터 6일간 하루 두 차례 한글자막영화 ‘말아톤’을 특별 상영하면서 한 차례에 한해 무료관람 기회를 제공한 것. 이번 자막영화는 (주)씨네라인-투가 기획하고 ‘말아톤’을 제작한 정윤철 감독이 자막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

영화 말아톤, 서울극장서 한글자막 상영

이번 행사는 자막이 없어 한국 영화를 볼 수 없었던 청각장애인들이 잠시나마 문화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자폐아 초원이가 장애인에게 차별적이고 폐쇄적인 사회를 겪어나가는 과정을 그린 ‘말아톤’은 청각장애인이 관람 요청이 쇄도한 영화이기도 하다.

지난해 영화 ‘실미도’의 관객이 천만명을 넘어서면서 한국영화는 천만관객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영화관을 찾은 천만관객 속에 청각장애인은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들을수 없는 청각장애인에게 자막이 없는 영화는 오래된 무성영화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세계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한국영화일지라도 청각장애인은 공감하기 힘들다.

혹자는 최근 한글자막 선택이 가능해진 “DVD를 통해 영화를 봐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차별의 성격을 띤 차선책일 뿐이다. 비장애인들이 비디오나 DVD를 이용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보고싶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을 때 선택하는 방법이다. 그 방법을 권하는 것 자체가 바로 차별의 시작이다.

한글자막, 많은 노력과 세심함 보여

자막영화는 지난해 장애인영화제에서도 상영한 바 있다. 물론 자막영화가 아예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청각장애인에게 문화적 혜택을 준 것이지만 여러 장면의 대사를 한 화면에 삽입해 자막이 장면보다 먼저 삽입되거나 자막처리가 안된 대사가 있는 등의 여러 가지 오류를 발견됐다.

자막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

지난 장애인영화제에 비해 이번 ‘말아톤’ 자막영화는 진일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등장인물의 대사가 그대로 표기되지는 않았지만 구어체와 문어체의 차이를 고려한 듯 했고 빠른 장면전환에도 제대로 자막이 표기되었다. 또한 바람소리나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아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었다.

많은 노력과 당사자주의로 제작된 자막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적사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인물의 뒷모습만 보이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인물이 말하는지 그 대상을 정확히 표기하지 않은 대사가 간혹 발견됐고 운동장, 산, 빌딩 등 이라고 표기된, 장소를 소개하는 자막은 불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몇 가지 지적사항을 제외한다면 청각장애인이 자막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개기를 제공했을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자막영화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청각장애인 관람객, "극장서 영화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신청했다는 한 청각장애인은 영화관람 후 “너무 좋은 영화였다”며 영화를 관람하면서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한 듯 들떠있었다. 극장 복도에서 친구들에게 연신 “재미있었지?”라고 묻는 그에게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냐고 묻자 “불편할 게 뭐 있겠느냐,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자체가 기쁘다”고 말했다.

또다른 청각장애인은 “친구가 신청을 해줘 영화를 볼 수 있었다”며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춘천에서 왔다는 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청각장애인들에게 지금까지 이런 기회가 없었다”며 “서울이 아닌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청각장애인이 편하게 보고 싶은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한국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하며 극장을 나섰다.

최근 사단법인 한국농아인협회 홈페이지(http://www.kdeaf.or.kr)에 또다시 한글자막영화 상영 광고가 게재됐다. 영화 ‘말아톤’의 협찬사인 SK텔레콤의 지원으로 3월 9일 1004명을 초대해 다시한번 자막영화를 상영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는 “4월부터 서울에 있는 서너개 극장을 대상으로 6~7개월동안 한글자막 영화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확한 일정과 장소는 추후 공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화진흥법 개정 촉구, 사이버·팩스 시위 진행해

영화관람의 자유로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를 볼 수 없었던 청각장애인들은 현재 한글자막 의무화를 위한 ‘영화진흥법안’ 개정을 촉구하는 사이버 시위 및 팩스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무료초청 티켓을 배부하는 임시 티켓박스에서도 영화진흥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펼쳤다.

영화진흥법 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는 서울극장 앞 임시 티켓박스

'영화진흥법안' 개정과 더불어 청각장애인 1종 운전면허 제한을 폐지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참정권 보장을 위한 수화통역과 자막방송 의무화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정기국회때 발의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21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요구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안건으로 상정하고 제안 설명, 검토보고 등을 걸쳐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키로 하였으나 무산된 바 있다.

한글자막 의무화를 위한 영화진흥법안 개정 촉구 시위에 참여하려면 국회 문화관광위원회(http://cluture.assembly.go.kr/index.html)에, 도로교통법 개정에 동참하려면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홈페이지(http://adminhom.assembly.go.kr/index.html)를 방문해 법안개정이 필요한 이유 및 항의글을 올리면 된다.